이달 초, 강릉에서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가 열렸다. 주최측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감사 오치영 지란지교 창업자도 강릉을 찾았다. 행사 이튿날 첫 발표는 중동에서 잘 나가는 서비스 ‘아자르’를 만든 안상일 하이퍼커넥트 대표가 맡았다. 쉬는 시간, 선배 창업자인 오치영 대표가 안 대표를 찾아가 명함을 교환했다. 안 대표는 “지란지교는 어릴 때 부터 보고 자란 기업”이라고 인사했다. 오치영 대표는 그 인사가 좋으면서도 안 좋은 말 같다고 얘기했다. 그저 오래된 회사가 아니라, 앞으로도 후배들이 보고  꿈을 키울 수 있는 오래갈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 것으로 들렸다.

지란지교는 척박한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28년을 버텨 살아남았다. PC 통신용 에뮬레이터를 만들었던 대학생들이 이제는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큰형님이 됐다. 지란지교는 스물다섯개 계열사를 가진 그룹사로 컸다. 핵심사업 중 하나인 보안 솔루션의 지란지교시큐리티는 코스닥에 상장했다. 부침도 많았다. 계열사를 쪼개고 신사업을 늘리면서 자회사의 실적 악화가 발목을 잡기도 했다. 인수합병한 모비젠의 상장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어떤 우려는 오치영 대표를 향하기도 한다. 오 대표는 현재 해외 사업의 전초기지로 삼은 지란지교재팬의 대표 자리만 남기고는 국내 사업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국내에서 그의 타이틀은 CDO. 최고 꿈 책임자(Chief Dream Officer)다. 그가 자신의 직책에 ‘꿈’을 단 것은, 지란지교 안팎의 인재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장을 마련하겠다는, 그야 말로 ‘꿈’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투자를 도맡아 하는데, 성공하면 큰 성과지만 그만큼 실패의 위험도 안고 있다.

그가 회사 구성원들을 설득해가며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글로벌로 도전하는 이유가 있을까? 오치영 지란지교 CDO를 강릉에 이어서 지난 21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지란지교 사옥에서 한 번 더 만났다. 스타트업과 벤처투자사들의 발표를 집중해 듣는 그를 보면서, 스타트업 투자에서 어떤 기회를 보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오 CDO는, 인터뷰 전날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동범 지니언스 대표, 아비람 제닉 SSD랩스 대표와 함께 술을 한 잔 마셨다고 했다. 이스라엘인인 아비람 대표의 한국 국적 취득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지란지교와 지니언스는 SSD랩스에 나란히 투자한 사이다. 오 대표는 “셋이 힘을 합치면 한국의 보안 기업이 글로벌로 나아가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 CDO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모든 이유가 함축되어 있는 말이기도 했다.

오치영 지란지교 패밀리 창업자이자 CDO.

part1. 지란지교라는 스타트업 생태계

한국에서의 직함이 CDO(최고 책임자). ‘드림()’ 직함에 달고 있는 경우는 처음 보는 같다

스물여섯에 창업했다. 대학생 창업이 매우 드물던 때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싶었다. 열심히 한 만큼 내가 책임질 수도, 보상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오랬동안 해왔는데 나만 그럴게 아니라 우리 회사 구성원들한테도 그런 기회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드림 플랫폼’을 만들어서 회사를 분산시켰다.

주력 사업들을 분사시켰다 (지란지교의 현재 계열사는 스물다섯개다)

내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와) 관계를 엮기도 하고, 투자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드림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그런 걸 하다보니까 ‘CDO’라는 타이틀을 단 거다. 그게 한 5년이 된 것 같다.

지란지교라는 안에서의 완성된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고 싶은 건가?

어떻게 보면 비슷하다. 우리나라 전체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있다면, 우리 회사 나름대로 그런 생태계를 꾸려보고 싶다. 인생의 철학이 “선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자”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절반 정도는 그런 같다

맞다. 사장이라고 해서 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식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더라도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라면 못할 것 아닌가. 회사 가지고 배팅을 할 순 없으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킨 일만 할 것이냐, 아니면 진짜 가슴 뛰는 제대로 된 일을 할 것이냐, 이게 굉장히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나 뿐만 아니라 지란지교 구성원 모두가 말이다. 나와 우리 회사가 우리나라에 흔적을 남긴다고 하면, 이렇게 살아남아 성장할 수 있구나 라는 걸 보여주는 걸 거다. 그게 내가 가진 꿈 중 하나다.

흔적을 남기고 싶다 말이 포인트 같다. 그런데, 스타트업은 실패할 확률도 크다. 부담은 없나?

많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무리 많더라도 그중 가장 중요한 넘버원은 살아남는 거다. 지금 지란지교가 28년 째인데 앞으로 100년은 지속될 기업을 만들고 싶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지란지교 군단에서 100년을 이어갈 기업 후보군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가장 큰 동기부여는 믿어주는 거다. 그리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 투자가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지만, 투자 그 자체에 대한 부담이 회사에도 있을 것 같다. 투자를 결정할 때 내부적인 갈등은 없나?

부담이 굉장히 크고 갈등도 되게 많았다. 그렇지만 리스크는 늘 있다.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변화가 필요하다. 변하지 않으면 천천히 망한다. 변하고 혁신해야 다음 세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 20년 전에 있던 소프트웨어 기업 중 지금 살아남은 곳이 몇 군데나 되나? 도전으로 인해서 회사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은 물론 좋지 않다. 하지만 서서히 망하는 것보다는 더 오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으면서 변화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지금 노력 하는 것 중 하나가 꿈을 꾸고 도전하면서도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투자가 모회사에 영향이 없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

예를 들어서 펀드를 만드는 것?

그렇다. 펀드를 만든다. 또, 투자로 인해서 다른 계열사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자회사 간 관계를 끊어 놓는 걸 수년에 걸쳐서 해오고 있는데, 거의 다 완성이 되어가고 있다. 모회사와 자회사의 관계도 약간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서로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시너지를 내도록 해야 한다. 투자를 하는 이유도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한 거다. 지속가능을 바라고 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런 구조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투자의 관점에서 눈여겨 보는 스타트업이 있나?

이미 투자한 곳 중에서도 성장을 잘하고 있는 곳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채널코퍼레이션(채널톡)이다. 멘토로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는데, 이제는 가르쳐 주는 것보다 내가 배우는 게 더 많다. 지금 시대에 맞는 일하는 방식이나 리더십 같은 것들이다. 또 기업용 서비스형 소프트웨어(B2B SaaS)에 관련된 곳에 관심이 있다.

B2B SaaS는 원래 지란지교가 하는 영역이다

B2B SaaS에 관련한 초기 기업 중에 굉장히 좋은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 빛을 보지 못한 곳들이 있다. 해외, 특히 일본 비즈니스에 진출하고자 하는 곳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빛을 보고 있다 것은 알려지지 않은 회사란 이야기인데, 어떻게 그런 곳을 알아낼 수 있나? 

찾아 간다기 보다는 많이들 찾아온다. 기술이 굉장히 좋은데 아직 적확한 마켓을 찾지 못한 곳 등이다. 제가 도와줄 게 있는 곳이 제일 좋다.

어떤 자질을 중요하게 보나?

중요한 것은 ‘집요함’이다. 성공에 대한 집요함, 제품에 대한 집요함, 고객에 대한 집요함이 중요하다. 여기에 그게 무엇이든 성공해 본 경험이 더해진 사람이 뭐를 해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겨울을 말한다. 지금의 투자 환경을 어떻게 보나?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보지만, 지나고 보면 기회는늘 이럴 때 왔다. 추운 것도, 위기인 것도 맞다. 하지만 위기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 여기에 어떤 기회가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겨울에는 겨울에 할 일이 있고 위기에는 위기에 할 일이 있으니까. 스타트업의 옥석을 가리거나 혹은 인수합병 같은 게 더 쉽게 이뤄질 수도 있다. 겨울을 잘 대비한 사람은 봄에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겨울을 준비하지 못했거나 혹은 자기가 배부르다고 기회를 사용하지 못한 사람은 얼어 죽거나 평범할 거다.

20년전에도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겨울이 왔다. 당시 상황과 비교한다면?

그때에 비해서는 지금이 여러모로 훨씬 나은 분위기다. 그때는 잘못하면 진짜 죽는 분위기였다. 죽는 게 회사만 망하는 게 아니라 개인도 망하는 분위기라고 할까. 지금은 최소한 그런 분위기 정도까지는 아니다. 망하더라도 다시 털고 시작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 그리고 아직 긍정적인 건 그래도 벤처 투자금이 (시장에) 여유가 있는 걸로 안다.

(반팔 사이로 팔에 새겨진 타투가 언뜻 보였다) 타투는 무슨 뜻인가?

“The journey is the reward”라는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인데, 과정 자체가 보상이라는 뜻이다. 꼭대기 까지 올라가는 성공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나? 비즈니스를 28년째 하고 있는데, 이 과정 자체를 즐기고 싶어서 새겼다.

오치영 CDO는 한동안 인터뷰 제의를 거절해왔다고 했다. 본인보다는 지금 회사를 이끌어가는 경영진이 주목받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해 회사의 경영 위기를 겪은 이후 지란지교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비전을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이번 인터뷰에 나선 이유다.

Part2. 글로벌의 출발점, 일본

요즘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나

일본에 처음 진출했을 때는 격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갔는데, 지금은 3주에 한 번 정도 간다. 지란지교재팬의 대표로 있으니까.

지란지교재팬의 현황은 어떠한가?

최근에 지란지교재팬의 자회사인 다이렉트클라우드가 8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B2B SaaS를 하는 곳이고, 온라인 스토리지 서비스를 하는데 성장속도가 굉장히 좋다. 또, 일본 내 자회사인 제이시큐리티가 상장을 준비 중이다. 일본에서 2~3년 내에 한두개 자회사가 상장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가 생각하는 비즈니스 전략은, 재팬 투 글로벌(Japan to Global)이다.

일본을 통해서 해외로 나간다?

우선 집중할 곳은 일본이고, 일본을 통해서 글로벌하게 가려 한다. 한국의 소프트웨어가 글로벌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그 길을 닦고 싶다. 그래서 일본에서 잘하고 있는 비즈니스 두 개를 상장시켜서 하나의 본(모델)을 만들고, 여기서 버는 돈으로 일본에 진출하고자 하는 회사들에 투자도 하고 글로벌로 더 나아가기 위한 분위기도 조성하고 싶다.

내가 맡은 미션을 두 가지로 보는데, 하나는 CDO의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재팬 투 글로벌이다. 우리나라 보안 기업이 글로벌로 크게 성공하는 걸 보는 것이 나의 꿈인데, 그 시작점이 일본인 거다.

일본에서의 성과는 어떠한가?

일본으로 간지 15년이 넘었다. 계열사를 다 합치면 인원은 70~80명 정도 규모고, 매출은 120억~130억원 정도 된다. 아직은 전체 매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10~15% 정도지만 앞으로 10년 내에 글로벌 비중이 50% 까지는 갈 거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매출의 규모를 높이는 것보다 매출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규모퀄리티의 차이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서 솔루션 매출과 SaaS 매출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일회성 판매보다는 지속적으로 솔루션을 공급하고 꾸준하게 뭔가를 할 수 있는 SaaS 매출에 신경을 많이 쓴다.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것보다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쪽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왜 일본인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소프트웨어 시장이다. 그 시장이 우리나라 가까이에 있다. 개인적으로는, 해외 비즈니스는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 갈 수 있어야 한다. 또, 일본 시장은 품질을 중시하고, 불확실성도 적다. 여기에서 (인정받아) 자금을 모은다면 새롭게 다른 걸 시도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기업에 일본이라는 시장이 가깝게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한때 일본에서 한국 기업을 터부시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실력이 있고 제품이 시장에 먹힐 수 있다면 (국적은) 큰 문제가 안 된다.

일본 사업을 직접 챙기는데, 영어와 일본어는 수준급일 것 같다. 그런데 인터뷰 직전에 전화영어를 한다고 해서 사실 좀 놀랐다

매일 오후 5시 20분부터 30분까지, 10분씩 전화영어를 한다. 생존 영어, 생존 일본어를 조금 하는 정도인데, 그나마 (전화영어를) 하지 않으면 실력이 또 준다. 꾸준히, 매일 습관처럼 공부하고 있다. 제가 제일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꾸준한 거다. 사업도 한 번 시작하니까 될 때까지 하지 않나(웃음).

그게 제일 어려운 것 아닌가

어려운 것 같지만 그 꾸준함의 힘을 믿는다. 패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습관화 시키다보면 실력이 되고 내재화된다. 운동도, 공부도, 일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단순히 노력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습관화 시키는게 필요하다.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달라

막연하게 보는 것보다 마일스톤 내지 아니면 중간에 목표가 있어야 되는 거지 않나. 우리의 중간 목표는 2030년에 B2B SaaS로 월 매출 1000억원을 만드는 거다. 지금 지란지교 매출액 합이 연간 1200억원 정도다.

8년 동안 8배를 더 키우겠다는 이야기인데

못지키면 창피하니까 말하는 거다. 큰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려는 거다. 그렇지만 이 목표가 진짜 목표는 아니다. 우선은 단순한 목표가 있어야 구성원들하고도 의사소통이 쉽다. 이 숫자 역시 하나의 과정인 거고, 앞으로의 꿈은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았던 것처럼 구성원들한테도 그런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다. 지란지교를 넘어서 우리나라 스타트업과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한테도 그런 계기를 만들어주도록 계속 노력하는 게 꿈이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보안이나 소프트웨어로 성공할 수 있도록 길을 닦고 싶고.

지란지교 군단처럼 들린다

그렇다. 지란지교가 지초와 난초의 사귐이라는 뜻이다. 향기로운, 좋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 너무 똑똑한 것, 부자인 것 자랑하지 말고 우리 나름대로의 향기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멋지게 즐기면서, 주변에 그런 영향을 끼치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