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노트 창업자가 꺼낸 비장의 한 수

한때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을 상징하는 것은 멋진 사무실이었다. 에버노트 창업자인 필 리빈도 그랬다. 더 많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목 좋은 곳에 사무실을 얻어 훌륭한 인테리어로 힘을 줬다. 그런데 지금은? 직원들에게 최고로 멋진 사무실 환경은 자신이 선택한 근무지다. 코로나19 이후 사무실이나 협업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있다.

재택하던 필 리빈의 눈에, 온라인 협업도구가 들어왔다. 온라인은 다 효율적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 효율성에 최적화된 근무방식이 재택임에도, 온라인 회의에는 생각보다 비효율이 많다. 회의에서는 결과적으로 발표자 한 명만 떠드는데, 모두가 그 내용을 같은 시간에 들어야 한다. 온라인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목적에 따라 조금 더 효율적으로 바꿔보자, 그게 화상회의 솔루션 ‘으흠(mmhmm)’이 탄생한 배경이다.

필 리빈 으흠 최고경영자(CEO)

으흠이 기업을 대상으로 서보인 서비스 ‘으흠 포 팀즈(mmhmm for teams)’가 23일 국내에서 공식 출시됐다. 앞서 말한 것처럼 으흠은 화상회의 솔루션인데, 그렇다고 해서 줌이나 구글미트 같은 솔루션 경쟁자는 아니다. 줌처럼 온라인에서 실시간 회의를 연결해주는 역할도 물론 하지만, 조직원에 공유할 발표 자료(영상)를 쉽게 만들어 배포하는데 초점을 뒀다. 보완재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어느 학교의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시간에 전교생이 다같이 줌에 접속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원 낭비다. 전교생이 강당에 줄서서 이야기를 듣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이럴때는 오히려 훈화 영상을 녹화해서 공유하는 게 낫다. (볼지 안 볼지는 모르겠지만) 교사나 학생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속도로 시청할 수 있어서다. 회사에서는 더더욱 그럴테고.

게다가 줌의 맹점은 ‘슬라이드 중심’으로 발표가 흐른다는 거다 . 오프라인 회의였다면 사람의 말이 먼저고 그 배경으로 슬라이드가 보여야 하는데, 온라인에서는 사람보다 슬라이드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커뮤니케이션의 몰입도를 떨어트린다.

으흠이 파고드는 부분이 여기다. 따로 떨어져 있지만, 같이 있는 것 만큼 재미있게 발표(또는 회의) 영상을 만들도록 도구를 제공하겠다는 거다. 구체적으로는 개별 슬라이드 장표마다 사람의 말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담을 수 있게 했다. 장표별로 녹화를 따로 뜰 수 있고, 마음에 안 들면 곧바로 삭제하고 다시 만들 수 있다.

이런 기술이 불러오는 효과는 상당하다. 왜냐하면, 장표를 만드느라 애를 쓰는 대신 “말로 때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을 중심으로 슬라이드는 “이해를 돕는” 본연의 업무로 돌아간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 으흠의 유트브 화면을 보고 오는게 더 설명이 쉬울 거 같아 아래 첨부했다. 필 리빈이 직접 설명하는 으흠의 소개 영상이고, 한국어 자막이 달렸다.

YouTube video

문제는, 이게 정말 모두에게 쉬운가 하는 거다. 으흠의 한국팀이 이날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어느 카페에서 서비스를 시연했는데 진대연 아시아태평양 사업개발 총괄의 발표가 실시간으로 영상화 됐다.

진대연 으흠 아시아태평양 사업개발 총괄.

이때는 정말 쉬워보였다. 그래서 일단 한 번 해봤는데, 못만들 것은 아니지만 초보자에게는 연습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아래는 회원가입부터 슬라이드 한 장 제작까지 딱 3분 들여 만든, 초보자의 한심한 결과물.

만들기 아주 쉽다는 개발자의 말은 문과생은 믿지 않는다. 그래서 영상을 시험 삼아 한 번 만들어봤다. 사진 속에 있는 거, 조커 아닙니다. 웃상입니다.

이렇게 만든 영상은 MP4 형태로 공유가 가능하므로 유튜브에 업로드 할 수 있다. 쉽게 영상을 제작해 공유하고픈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실시간으로 자신의 발표 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데, 이때 다른 이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어 회의가 가능하기도 하다.

으흠은 2020년 창업 후 네번의 펀드레이징을 통해서 총 18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도 투자사 중 하나다. 넷플릭스, 나이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 등이 현재 으흠을 사내 솔루션으로 채택해 쓰고 있다. 필 리빈 CEO는 “많은 이들이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이때가 가장 큰 기회의 순간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는데, 100여일 동안의 재택이 불러온 새 아이디어가 어쩌면 온라인 화상 회의의 경험을 바꾸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100일은, 곰이 사람으로 변하는 것 이상의 시간인가 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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