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반도체] 차세대 전력반도체 ‘GaN’ 시대 열리나

[편집자주]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소식을 기업 전략과 경쟁 구도, 시장 배경과 엮어서 설명합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소식이 매일같이 쏟아지지만 익숙하지 않다 보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각 기업의 전략과 성장 배경을 알면 왜 그 제품을 출시했는지, 회사의 전략과 특성은 어떤지 엿볼 수 있습니다. 더 넓게는 시장 상황과 전망을 살펴볼 수도 있죠. 하나씩 함께 파고 들어가보면 언젠가 어려웠던 기술 회사 이야기가 친근하게 다가올 거예요.

저전력, 이라는 키워드가 반도체 업계에서 심심찮게 들리고 있습니다. 같은 크기의 배터리로 한 번 충전에 오래 디바이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덜 소모할 수 있는 반도체를 도입해야 합니다. 또한, 서버⋅데이터센터를 가동하면서 생기는 에너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를 구동하는 데 드는 전력을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최근 서버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저전력 반도체에 대한 주목도도 올라가는 추세입니다.

저전력 반도체의 핵심에는 화합물 반도체, 그 중에서도 GaN 반도체가 있습니다. GaN은 갈륨이라는 금속과 질소를 합친 화합물을 말하는데요, 질화갈륨 혹은 갈륨 나이트라이드라고도 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웨이퍼를 만들면 더 전력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불러도 생소하고 어려운 느낌이 드는 GaN이지만, 저전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앞으로 GaN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번 인사이드 반도체에는 GaN 반도체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GaN과 저전력을 구동할 수 있는 배경을 설명하다 보니 이번에는 조금 공학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하지만 왜 이 시장에 GaN 반도체가 필요한지, 현재 GaN 반도체 시장이 어디까지 왔는지 배경부터 차근차근 알아가 봅시다.

반도체 업계가 GaN을 찾는 이유

우리가 흔히 아는 반도체 칩은 대부분 실리콘으로 만든 웨이퍼를 기반으로 합니다. 실리콘은 평소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의 성질을 띠지만, 불순물을 첨가하면 약간의 외압만 가해도 전기가 통하는 도체의 성질을 띤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도체라는 이름도 부도체와 도체의 중간 성질을 띤다고 해서 붙게 된 이름이죠.

실리콘 웨이퍼 위에 회로를 그린 후, 이를 크기에 맞춰 잘라내면 우리가 흔히 아는 반도체 칩이 됩니다. 실리콘이 반도체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반도체 칩도 전류가 흐르면 구동되고 전류가 흐르지 않으면 구동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바일 사용자가 늘어나고 세계적으로 서버⋅데이터센터 시장이 커지면서 전력 효율성이 좋은 반도체 칩을 찾는 곳도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반도체가 아닌, 더 전력 효율성이 좋은 반도체 칩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죠.

반도체 제공업체는 실리콘 기반 웨이퍼가 아닌 SiC(실리콘 카바이드)나 GaN(갈륨 나이트라이드)와 같은 화합물 기반의 웨이퍼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SiC는 실리콘과 탄소가 합쳐진 화합물을, GaN은 갈륨이라는 금속과 질소 화합물을 말합니다. 이 화합물은 실리콘에 비해 전력 손실이 덜 된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 말은 곧 해당 물질로 반도체를 만들면 실리콘 반도체 칩에 비해 전력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SiC나 GaN이 실리콘에 비해 전력 손실이 덜 될 수 있는 비결은 ‘밴드갭(Band Gap)’에 있습니다. 밴드갭이란 전자가 전류로 흘러갈 수 있는 대역인 ‘전도대(conduction band)’와 평소 전자가 활성화돼 있지 않고 기저에 깔려 있는 대역인 ‘가전자대(valence band)’ 간 차이를 말합니다. 모든 물질은 전자와 밴드갭을 가지고 있는데요, 각 물질의 특성에 따라 전류가 흐르는 조건과 정도 등이 차이가 납니다.

전도대, 가전자대, 밴드갭 도식, 그림=바이라인네트워크

평소 우리가 물체를 만질 수 있는 이유는 전자가 활성화돼 있지 않고 가전자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전자가 활성화돼 있으면 물체를 만질 때마다 전류를 느끼겠죠. 전자가 위로 올라오는 시점은 이 기저에 깔린 전자에 전류나 열 등 에너지가 가해질 때입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에너지가 많이 가해지면, 가전자대에 있던 전자가 전도대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 때 우리는 ‘전류가 흐른다’ 혹은 ‘전기가 통한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물질 내 밴드갭이 넓을수록 전자는 전도대까지 올라가기 어려워집니다. 다시 말해, 밴드갭이 넓은 물질에서는 전류가 쉽게 이동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밴드갭이 너무 넓으면 전류가 아예 통하지 않겠지만, 반도체 범주 내에서는 밴드갭이 넓어질수록 전력 손실이 덜 일어난다고 볼 수 있죠. 따라서 밴드갭이 넓은 반도체 물질로 칩을 만들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인 채 이를 구동할 수 있습니다.

GaN은 반도체이지만 밴드갭이 넓어 다른 물질에 비해 전자 손실이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 높은 주파수, 전압, 온도에서 더 낮은 전력 손실로 작동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GaN은 고온 안정성이 우수하며, 낮은 온저항(impedence, 임피던스)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온저항이란 회로에 전압이 가해졌을 때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는 값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물질 고유의 저항값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이 수치가 낮아서 전도된 이후에는 전류가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합니다. 따라서 업계는 GaN을 차세대 전력반도체의 핵심으로 꼽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INI는 “GaN 전력반도체 소자를 인버터로 활용하면 전체적인 에너지 손실이 실리콘 반도체에 비해 75% 줄어든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보니 GaN 전력 소자는 전기 자동차, 데이터 서버, 무선⋅고속 충전과 같이 전력 효율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 활발히 사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GaN 통신 소자는 5G 이동통신에 사용되기 적합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5G가 응용될 자율주행차나 데이터 처리 트래픽 등에 응용될 예정입니다.

 

GaN 반도체, 어디까지 왔나

누군가에게는 GaN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만, 이미 업계에서는 GaN 초기 시장이 열렸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간 GaN 반도체가 다른 칩에 비해 기술적으로 우세하다는 전망은 지배적이었으나, 기술 자체가 초기 단계이다 보니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했습니다. 또 적용 사례가 많지 않다 보니 시장에서 신뢰도를 쌓아 생태계 확장 기회도 봐야 했습니다. 여러 한계가 남아 있었던 GaN 시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활성화가 덜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시장에서는 고성능⋅저전력을 추구하는 업계 특성상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주요 반도체 생산업체는 아니지만, 저전력을 필요로 하는 니치마켓을 중심으로 점차 적용 사례를 늘리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니치마켓을 중심으로 적용 사례가 생기니, 시장에서의 신뢰도도 어느 정도 검증되는 분위기입니다. 일각에서는 “GaN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기대감을 표현하기도 했고요.

국내 GaN 웨이퍼 제공업체 아이브이웍스(IVWorks)도 최근 들어 GaN 반도체 시장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말합니다.

아이브이웍스 관계자는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전시회에 참여하면 GaN 반도체에 대한 관심도가 낮은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올해에는 미국 휴스턴 전력전시회(APEC)이나 독일 뉘렌베르크 동력기술전시회(PCIM) 등에 참석하면서 GaN 적용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모바일, 서버⋅데이터센터 등 저전력을 요구하는 산업이 증가하면서 관련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GaN 반도체 제품이 나오면서 관련 시장도 과거에 비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이브이웍스 엔지니어가 12인치 GaN on Si를 들고있다. (자료: 아이브이웍스)

정부 차원에서도 작년부터 전력반도체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21년 4월 정부는 ‘차세대 전력 반도체 기술개발 및 생산역량 확충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해당 방안은 2025년까지 차세대 전력반도체 상용화 제품을 5개 이상 개발하고, 이를 뒷받침할 6~8인치 SiC⋅GaN 파운드리 인프라를 국내에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시장 성장세와 정부 지원에 힘입어 아이브이웍스는 현재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식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맞지만, 반도체 수급난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데다가 세계 각국이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 전략을 지속해서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브이웍스도 전력반도체 생산 부문에서 경쟁력과 공급 능력을 초기에 확보하고 전력반도체 시장점유율을 선점하기 위해 기업공개(IPO)를 한다는 입장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자체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 웨이퍼 생산시스템 ‘DOMM’을 공장 내에 도입하고, 기존 대비 더 많은 웨이퍼 생산이 가능한 4세대 양산장비(hybrid-MBE)를 도입했습니다. 이로써 GaN 반도체 생산 원가를 절감하고 생태계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직은 GaN 반도체보다는 실리콘 웨이퍼 기반의 반도체가 주를 이루고 있긴 합니다. 실리콘이 주요 반도체 업체의 주력 상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국내에서도 점차 GaN 반도체 시장이 개화하는 분위기인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기업과 정부 지원의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나타날 지, 그래서 GaN이 차세대 전력반도체라는 명성에 맞게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지에도 관심이 가네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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