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재밌니?] 우린 폭망했을까?

실패한 거대한 꿈을 말하기에 조심스러운 요즘입니다. 커다란 비전이 성공하면 많은 이에게 영감과 희망, 이득을 주겠지만 실패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입히니까요. 언젠가 사업과 사기는 결과적으로 한끗 차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어느정도 심정적 동의가 됩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정말로 많은 돈이 돌고 있습니다. 몇년전만 해도 눈에 띄는 기업이 수십억원 투자를 받는 일이 화제가 됐는데, 이제는 수백억원 아니 수천억원의 투자도 종종 일어납니다. 정말 돈이 흔해진 세상이죠. 물론, 그중에 제 돈은 없습니다만, 아마 독자 여러분의 돈도…(죄송).

아이디어 하나로 단기간에 집중 투자를 받아 유니콘이 된 대표적 사례, 위워크(WeWork)입니다. 공유 오피스의 시조격이라고 볼 수 있죠. 건물을 사거나 비싼 월세를 내기 어려운 기업 또는 개인에게, 사무공간 일부와 공유 공간을 임대하는 사업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부동산 사업이지만 “이곳에서 멋진 동료를 만나고 사업을 키워라, 그리고 사랑도 하라”는 메시지가 양념으로 쳐졌습니다. 그리곤 끝내주는 업무 환경을 조성해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을 ‘힙’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죠. 애덤 뉴먼이라는, 정말 ‘구라’로 세상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은 청년 창업가에 홀랑 반한 투자자들이 그의 야망에 돈이라는 기름을 부었습니다.

물론, 위워크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사업을 하고 있죠. 올 1분기에는 실적을 개선, 주가가 올랐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동안 추락을 경험한 것도 사실입니다. 단기간에 기업가치 470억달러(약 60조원)의 평가를 받으면서 신화를 썼으나, 재무구조의 불건전성으로 결국 기업공개(IPO)에 실패하고 창업자마저 쫓겨났죠.

이 드라마틱한 기업 이야기가 드라마로 나왔습니다. WeCrashed. 한국에서는 ‘우린 폭망했다’로 방영됩니다. 애플TV에서요. 파친코 덕분에 애플TV 가입자가 늘었을 테지만, 그래도 아직은 국내에선 애플TV 영향력이 크진 않죠. 무료체험 일주일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시작했다가 계속 지불을 하고 있네요.

 

포스터를 본 김에 캐스팅 이야기부터 잠깐 할게요. 찰떡입니다. 창업자 애덤 뉴먼의 역에는 배우 자레트 레토가, 그리고 뉴먼의 배우자 레베카 펠트로 분에는 앤 해서웨이가 열연합니다. 사실 이 둘의 캐스팅도 대단하지만, 외모 똑닮에서 소오름 돋는 이는, 위워크의 공동 창업자 미겔 맥켈비죠. 실물과 배우가 얼마나 닮았는지, 보실래요?

 

 

장난 아니죠? 왼쪽이 실제 미겔 맥켈비고요, 오른쪽이 배우 카일 마빈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닮은 사람을 찾았죠? 드라마에서는 더 똑닮인데, 애플TV 화면 캡처가 불가능해 프로필 사진으로 대체한 게 초큼 아쉽습니다. 실제 인물과 배우의 외모 일치도가 극중 몰입도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걸 이번에 체험했습니다. 이게 드라마인지 다큐인지, 배우인지 실제 인물인지 여튼, 몰입도 측면에서만큼은 이 드라마가 빼어나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드라마는 총 8편 1시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저는 아직 1편밖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보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제가 왜 애덤 뉴먼이 구라로 세상 모든 걸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 했느냐면요, 드라마에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위워크라는 이름 조차 지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러니까 손에 쥔게 거의 아무 것도 없는 애덤 뉴먼이 시멘트 구조물만 있는 사무 공간을 갖고는 말빨 만으로 입주자들을 구하는 장면이요.

첫 입주자가 보증금을 내겠다고 말한 그 순간에, 위워크(처음에는 그린 데스크)의 사무공간에는 책상도 하나 없었습니다. 오로지 시멘트 바닥 뿐이었죠. 동업자가 “(입주자를 구하려면) 책상부터 놓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애덤이 “책상은 필요 없다”고 하더군요. 저도 보면서 저게 무슨 개소리야 그랬는데요.

놀라운 일이 펼쳐집니다. 애덤이 동료에게 바닥에 누워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곤 동업자의 키를 기준으로,  L자 모양으로 바닥에 흰 테이프를 쭉쭉 이어서 붙이더군요. 그러니까 거기가 책상이 들어설 공간이라는 표시죠.

있는 거라곤 바닥에 붙은 테이프 표시 밖에 없는 공간에서 애덤은 입주 희망자에게 아직 이뤄지지 않은 인테리어를 말로 표현합니다. 여기 이곳에, 당신과 당신의 미래 동료들을 위한 공간이 생긴다고요. 이 공간에서 당신의 동료를 만나고, 비어퐁을 하다 나눈 대화에서 사업의 아이디어를 찾고, 그러다 사랑도 하라고요. 여기서 열정을 다하고, 실패하는 걸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로 쐐기를 박죠. 왠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말이죠?

하여튼, 그 말을 듣는 청년의 눈앞에 그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펼쳐져 보입니다. 어느새 보증금을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죠. 세상에. 사업은 정말 아무나 하는게 아닙니다. 애덤은 확신에 찬 사업가고 그래서 성공이라는 환상을 그려내지만, 보는 우리는 미래를 알죠.

드라마에서는 창업자인 애덤의 도덕적 해이도 묘사됩니다. 이 반짝이는 별은, 약에 절어 있고 성실하지 않으며, 사치를 일삼고 개인의 부를 쌓는데에 더 최선을 다합니다. 위워크에서 쫓겨난 애덤은 사실 지금 부동산 부자죠.

이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에 “보는 것이 괴롭다”는 평가를 여러군데서 들었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그런 평가를 불러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면서 사실 저도 조금 괴로웠거든요. 우린 폭망했다가, (위워크에서 일한) 우린 폭망했다 아니냐는 자조가 이해갑니다.

그렇지만, 드라마를 끝까지 보면 그렇게 절망적이지만은 않다고 합니다. 스타트업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도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다고 하니, 저도 마저 볼 예정입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위워크에 투자할 때는 부동산이 아니라 공유공간을 통한 라이프 스타일,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서 미래를 봤다고 하던데요. 드라마도 드라마지만, 위워크를 비롯한 공유공간 비즈니스의 미래도 사뭇 궁금해집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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