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반도체] 편 만드는 미국 차선 찾는 중국, 한국은?

미국이 우리나라와 대만, 일본에 칩4(Chip4)라는 이름의 반도체 동맹을 맺을 것을 요청했다고 하죠. 아직 각 국가가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은 아니지만, 뒤이어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은 TSMC와 삼성전자가 미국에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520억달러(약 63조4192억원) 규모의 연방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해 달라”며 특혜를 달라 요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유럽, 대만,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와도 협업을 점차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도 점차 미국 진영에 들어서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제재 때문에 다른 국가와 반도체 관련 협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간 혈맹처럼 여겨 오던 러시아와도 마음 놓고 협업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미국이 중국을 대상으로 “러시아와 기술 교역하는 것이 발견될 시 강력한 제재 가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거든요. 따라서 중국은 현재 다른 국가와 별다른 외교적 성과를 맺지 못한 채, 반도체 굴기를 실현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현재 자국 내 반도체 생산역량을 끌어모으기 위해 동맹을 구축하고 있고, 중국은 제재 속에서 반도체 산업을 영위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두 국가의 반도체 산업 현황은 어떤지, 그 가운데 우리나라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이번 인사이드 반도체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협업 강조하는 미국, 목적은 ‘자국 중심’

우선 미국부터 살펴볼까요. 미국은 자국 내 공급망 확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한국, 대만 등 국가를 대상으로 협업을 요청하고, 미국 내에서도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죠. 미국 하원은 지난 달 반도체 지원법안인 미국 경쟁법(America Competes Act)을 통과시켰고, 28일(현지시각)에는 상원에서도 반도체 생산·연구를 위한 장려금 520억달러(약 63조4244억원)를 투자하도록 하는 법안을 가결했습니다. 반도체 관련 법안은 올해 2~3분기 중에 최종 통과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이 반도체 생산라인 확보에 혈안이 된 이유는 자국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을 개편하기 위함입니다. 그간 미국은 반도체 설계(팹리스) 부문에서 강세를 보였고, 한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는 반도체 생산 측면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이게 큰 문제로 작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급난이 일어났죠. 미국은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아시아권을 필수로 거쳐야 하는데, 반도체 수급난이 발생하니 마음대로 반도체 생산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죠. 따라서 미국 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생산라인을 증설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인텔을 비롯한 자국 내 기업뿐만 아니라 TSMC, 삼성전자 등 해외 국가에도 협업 요청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가운데 일각에서는 미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이 미국 기업에 비해 수혜를 입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인텔, 마이크론 등 미국 기업이 “우리가 미국 반도체 생산역량 높이기 위해 많은 투자를 단행했는데, 우리에게 더 많은 혜택 줘야하는 것 아냐?”라며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하원에서 가결된 법안에 “다른 국가의 기업에게 혜택을 주지 말아라”와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 내 생산라인을 가장 많이 증설한 기업은 대부분 미국 소재의 기업이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그 입김을 무시할 수 없겠죠.

또한 미국은 대만을 온전히 신뢰하기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입니다. 과거에도 중국의 대만 침공설은 복수의 미국 전문가들이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의해 제기된 바 있는데요,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다시 한번 대두됐죠. 극단적인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대만 침공이 현실화될 때 겪게 될 리스크가 매우 크기 때문에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만약 중국의 대만 침공이 현실화된다면, 미국은 TSMC가 지은 생산라인을 모두 미국 소유로 전환하려 할 것”이라며 “TSMC를 비롯한 기업을 대상으로 자국 내 반도체 생산라인을 증설하라 한 것도 그 일환으로 파악된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로 미국 정부에 많은 요구를 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TSMC에 비해 삼성전자는 미국 투자를 소극적으로 단행했다”며 “그만큼 의견이 덜 반영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장기적 관점에서는 미국 기업의 의견이 장기적으로 미국 반도체 정책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은 사실 한계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요. 중국은 반도체 강국이 되겠다는, 일명 ‘반도체 굴기’ 전략을 지속해서 취하고 있습니다. 한계가 있다면, 현재 미국의 제재로 중국은 7나노 미만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들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현재 7나노 미만의 선단(Advanced) 공정이 적용된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 내 경제 전문가들은 “미중 갈등으로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와의 협력에 제약을 받고 있으며, 첨단 공정 부문에서는 현실적으로 협력이 어려운 것을 알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첨단 반도체 생산 역량을 갖추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반도체 굴기를 취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이라면 중국은 EUV 노광장비보다 좀 더 구형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DUV(심자외선) 노광장비를 사용할 수는 있다는 겁니다. 현재 중국은 이 장비를 이용해 7나노 이상의 레거시 반도체를 집중적으로 생산하고 있죠. 최근에는 차량용 반도체를 비롯한 레거시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급난이 발생했다 보니, 중국 반도체 시장도 오히려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1년 중국 내 반도체 생산량은 전년 대비 33.3% 증가한 3594억개를 기록했습니다. 레거시 반도체 부족 현상이 2023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중국은 당분간 반도체 부문에서 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중국도 7나노 미만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도 있습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연구위원은 “미국은 자국 내 보유하고 있지 않은 기술을 중국이 구현하려 할 때 제재를 가하기 때문에, 구형 기술로 판단되는 항목은 규제를 완화해갈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현재 TSMC와 삼성전자는 3나노 미만 공정과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 ‘GAA(Gate All Around)’도 개발하고 있죠. 인텔도 2024년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 ‘리본펫(RibbonFET)’을 선보이겠다고 밝혔죠. 해당 기술이 보편화된 시점에는 7나노 공정과 현재 4~7나노 반도체를 구현하는 데 적용되는 구조인 핀펫(FinFET)이 더 이상 첨단 기술이 아니게 되겠죠. 이 때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규제를 약간 완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연원호 부연구위원은 “결국 7나노 공정과 핀펫 트랜지스터 부문에서는 미국이 중국을 대상으로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그때쯤 되면 3나노 미만 공정을 절대 구현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중 사이에 낀 우리나라, 앞으로는?

우리나라는 어떻게 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입장입니다. 미국과 적극적으로 협업 체제를 구축해야 반도체 시장을 넓힐 수 있지만, 그렇다고 중국과의 협업을 온전히 포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죠.

현재 미국과 한국의 협업 자체는 비교적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이 아무리 자국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개편한다 하지만, 아직 인텔은 반도체 생산라인을 온전히 구축하지 못했거든요. 반도체 공정도 아직 개발 중에 있죠. 따라서 아직까지는 미국이 TSMC와 삼성전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정부도 이를 고려해 인텔·마이크론 등 자국 기업의 요청과 TSMC·삼성전자의 요구사항을 절충하는 방안을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최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반도체 등 기술 부문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익명의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추후 정부 기조에 맞춰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이 미국에 좀 더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한다면, 미국 내에서의 입지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기업이 미국 반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면, 그만큼 삼성전자의 의견도 더 많이 반영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중국과는 레거시 반도체 부문에서 협업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이 레거시 반도체 부문까지 제재를 크게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연원호 부연구위원은 “한국과 중국 모두 협업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며 “첨단 반도체 부문이 아니더라도, 레거시 반도체 부문에서의 협업은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과 중국, 모두 다 놓칠 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좀 더 전략적으로 각 국가에 접근해야 하겠죠.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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