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세상 모든 통신사에 망 사용료를 내야 할까?
“넷플릭스가 세계 모든 통신사와 협상해서 망사용료를 내는 것은 행정적으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각지 못한 답변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소 놀랐습니다.
최근 미국의 칼럼니스트인 로슬린 레이튼 박사가 SK브로드밴드의 주선 아래 한국의 언론인들과 화상 인터뷰를 가졌는데요. 박사는 이 자리에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인터넷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의 디지털 접근권을 위한 망 투자를 위해서라도 넷플릭스가 합당한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로슬린 레이튼 박사는 인터넷 규제로 학위를 받았고, 망중립성과 관련한 연구를 해온 학자이자 언론인입니다. 그의 연구나 칼럼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통신사와 넷플릭스가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에서도 종종 언급됩니다. 기업이 제공한 서비스만큼 비용을 받고, 그 돈을 투자해 더 좋은 서비스를 많은 이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레이튼 박사의 발언 취지에는 깊은 공감이 갔습니다.
그렇지만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있었죠. 지금은 SK브로드밴드 하나지만, 전 세계 모든 ISP가 넷플릭스로부터 돈을 받고 싶어할 테니까요. 그래서 하나의 질문을 담은 이메일을 레이튼 박사에게 보냈습니다.
Q. 넷플릭스나 구글과 같은 대형 CP는 전세계 모든 ISP에 돈을 내야 할까?
A.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수만개에 달하는 통신 사업자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행정적으로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구글은 수백만 광고주와 금전적인 계약을 맺고 있다. (It is not a major bureaucratic effort for YouTube and Netflix to contract directly with the world’s broadband providers, which number in the tens of thousands, as you note. Indeed Google manages financial relationships with millions of advertisers.)
제가 다소 놀란 이유가 바로 이 대답 때문입니다.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제공업체(CP)는 모든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 통신사)와 협상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서요. 그리고 아마 이것이, 통신사들의 속마음일 겁니다. CP는 통신사에 돈을 내라. 물론, 레이튼 박사의 말대로 기업은 서비스 제공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받아야지요. 이게 만약, ‘인터넷’이라는 특별한 세상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인터넷은 ‘망’을 통해서 세계를 연결하는 공간입니다. 모든 개인은 각자가 선택한 통신사에 접속료를 내고 인터넷을 쓰죠. 이 한번의 비용을 지불한다면, 그 개인은 미국이든 유럽이든 아프리카든 세계 어디든 상관없이 그 나라의 인터넷에 연결해 자료를 주고 받고 정보를 검색하고 메시지를 교환합니다. 제 기사를 독자님들이 클릭만 하신다면 쉽게 읽어 볼 수 있는 것도, 독자님과 제가 어느 한 통신사에만 사용료를 지불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망에 접속할 때마다 통신사에 돈을 내야 한다면 모두가 연결된 인터넷이란 불가능하겠죠. 이게 지금까지 인터넷 세상을 지켜온 규칙입니다.
이 규칙은, 개인이 아닌 CP한테도 적용되어 왔죠. 그러나 레이튼 박사의 말대로 지금의 인터넷 세상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고작 텍스트나 사진 정도 전송하던 때와는 달리 초고용량 동영상이 스트리밍 되는 시대에, 이렇게나 망을 많이 잡아먹는 CP를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에 대한 의견이 대두되는 것은 저도 이해가 갑니다. 통신사의 입장에서는 넷플릭스가 상법도 지키지 않는 초국적 깡패로 보일 겁니다.
그러나 SK브로드밴드가 앞장서 망사용료를 청구하는 행동이 레이튼 박사의 말대로 “용기 있다”고 봐야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장 입장 바꿔 생각하면, 국내의 CP가 해외에 진출할 경우 곧바로 이와 같은 망 사용료 분쟁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 왓챠, 티빙은 물론, 통신사들이 돈을 대고 있는 웨이브도 글로벌 진출을 계획하는 CP입니다. 이들이 세계 진출할 때 전세계 통신사와 망 사용료 분쟁을 하게 된다면요? 국내 CP의 해외진출이라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요?
너무 자국중심적인 사고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디지털 디바이드’ 문제도 있습니다. 넷플릭스와 같은 CP가 전 세계 통신사와 협상을 해야 한다면, 그 협상 결과가 꼭 서로에게 만족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협상이 결렬되어 인터넷 망의 어느 구간에서 콘텐츠 전송이 멈추게 된다면, 그 피해는 주로 누가 지게 될까요? 최고 피해자는 결국 망을 통해 콘텐츠를 보고 싶어하는 최종 이용자겠죠. 대한민국처럼 돈이 되는 시장에 거주하는 이용자는 별 상관 없겠지만, CP 입장에서 별로 수익성이 없는 시장이라면 굳이 ISP에 큰돈까지 내가면서 협상에 응하진 않겠죠. ‘망에 대한 공공적 책임’ 없이, 망을 이윤의 논리로만 봤을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레이튼 박사는 인터뷰에서 모든 CP가 돈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특정한 기준을 충족시키는 CP만 돈을 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얼마 정도의 트래픽을 쓰는 CP만 돈을 내라는 그 기준은, 누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돈을 내고 안내고 그 경계선에 있는 CP는 억울하지 않을까요? 설사 레이튼 박사의 말대로 ‘인터넷은 유상’이라는 것이 인정되어 모든 CP가 돈을 내게 된다고 하더라도, 대형 CP의 타격은 오히려 적을 겁니다. 돈이 많은 곳이니까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겠죠. 그러나 돈이 많지 않은 중소 CP는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겁니다.
“망 사업자는 이용자로부터 망 사용료를 받으므로 망을 유지하고 투자할 의무가 있다”는 넷플릭스의 주장에 귀가 기울여지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이 인터넷 사용료를 내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안에서 소비할만한 콘텐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까요. 국내 CP의 상당 수도 망 사용료에 대한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거든요. 그들 중 대부분은 넷플릭스만큼 큰 회사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들의 콘텐츠가 비용 문제로 세계로 나갈 길이 막힌다면, 글쎄요. 그것은 지금 통신사가 돈을 조금 더 벌어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으로, 통신사가 여전히 돈을 많이 벌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해 SK브로드밴드 매출은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습니다. 그 역시 망을 통해 볼 수 있는 콘텐츠의 힘 아니겠습니까?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로슬린이 레이트했네요. 인터넷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함이라 주장하는 방법이, 결국에는 중소CP와 상대적 약소국가들을 더 약자의 위치로 몰아붙이는 결과를 초래할까 우려스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