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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석의 입장] 전쟁과 기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생각보다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침공을 감행한 러시아 측은 전쟁을 일으키면 손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이 러시아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나 봅니다.

이번 전쟁은 IT 업체들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의 전쟁이지만, IT 관점에서는 세계대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쪽 편을 들기 시작한 글로벌 테크기업들

원래 기업은 이기적이고 비겁합니다. ‘정의’나 ‘평화’ 같은 고차원적 가치보다는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집단입니다. 이 때문에 기업은 ‘나쁜 국가’나 ‘나쁜 정부’와도 손을 잘 잡습니다. 평소에 내세우던 가치와 반대되는 길도 잘 갑니다.

예를 들어 애플은 마치 개인정보를 금과옥조처럼 중요시한다고 주장하지만, 중국에서는 정부의 고객정보 사전검열에 순응합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경찰의 위치를 알려주는 시위대의 앱을 앱스토어에서 삭제하기도 했죠.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라는 캐치 프레이즈로 도덕군자인 척 하던 구글 역시, 중국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검색결과를 검열하는 앱을 준비하다가 들통난 적이 있습니다. 기업들은 이처럼 말과 행동이 다르게 하면서 “각 국의 법과 제도를 준수한다”고 포장합니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는 특이합니다. 정부와는 각을 세우지 않는 것이 기업의 불문율인데 이번에는 모두 러시아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넷플릭스,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부분의 빅테크 기업이 러시아에서 제품판매나 서비스를 중단, 또는 최소화했습니다. 심지어 모회사가 중국회사인 틱톡마저 러시아에서 일부 서비스를 제한했습니다.

왜 기업들은 러시아를 버렸을까요? 정의롭지 않은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응징하기 위해서일까요?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아마 유럽과 미국에서의 여론 때문일 것입니다. 러시아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에는 그렇게 큰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유럽과 미국 시민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 러시아 시장은 다소 양보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만약에 중국과 대만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애플과 같은 회사는 중국 정부와 적대적인 위치에 설까요? 중국은 애플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큰 시장인데 말이죠. 물론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클라우드 안보, 클라우드 주권

이번 전쟁에는 클라우드 업체들도 참전했습니다. 클라우드 3대장이라 불리는 아마존웹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클라우드(GCP)는 모두 러시아에서 신규 서비스를 중단했습니다. 기존의 서비스를 중단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당장 러시아에서 큰 혼란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규 서비스가 중단되면 러시아의 클라우드 이용자들은 적지 않은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클라우드 3대장 이외에 오라클이나 SAP와 같은 기업들도 서비스를 중단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또 가정을 해봅시다. 만약 AWS, 애저, GCP 등 클라우드 업체들이 러시아에서 일시에 서비스를 중단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러시아 기업들은 패닉에 빠지게 될 겁니다. 러시아의 클라우드 확산도에 따라 사회가 마비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AWS의 반나절 장애로 시민들이 큰 혼란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러시아 정부가 이들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해왔다면 러시아 정부는 전쟁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클라우드는 이제 사회의 기본 인프라가 됐습니다. 클라우드가 멈출 경우 사회 전체가 마비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클라우드를 안보나 주권의 관점으로 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 LG, SK 같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은 사실상 클라우드 원천 기술 개발을 포기했습니다. 이들의 IT 자회사들은 AWS, 애저, GCP의 유통사 역할을 할 뿐입니다. 네이버, KT, NHN 등이 자체적으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운용하고 있지만, 아직 그 힘이 미약합니다.

반도체는 기술냉전 시대의 핵무기

TSMC, 인텔, AMD 등 주요 반도체업체들도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습니다. 러시아는 이제 반도체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자국에서 디자인한 칩인 옐브루스 칩마저도 수급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옐브루스 칩이 대만의 TSMC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는 기술 냉전 시대의 핵무기입니다. 냉전 시대에 핵을 중심으로 서구권과 동구권이 갈라져 자신만의 세계를 이뤘듯 이제 반도체가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반도체 생산력을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미국, 대만, 중국 정도입니다. 미중 무역전쟁을 펼칠 때 미국은 반도체를 가지고 중국을 공격했습니다. 특히 화웨이가 이 공격으로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외치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는 중국의 SMIC와 같은 반도체 회사에 손을 내밀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중국이 러시아의 손을 잡아준다면 20세기와 같은 기술냉전 시대에 돌입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중국도 쉽게 러시아의 손을 잡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화웨이처럼 중국기업들도 대만, 한국, 미국에서 만드는 반도체가 필요하니까요. 중국의 컴퓨터들도 인텔이나 AMD 칩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SMIC라는 생산기지를 가지고 있비만 SMIC는 아직 미세공정에 약합니다. 미국의 입김으로 미세공정을 위해 필요한 ASML의 EUV(극자외선) 장비를 살 수도 없습니다.

중국은 이번 전쟁과 관련 아직 뚜렷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중국의 전통적인 우군이라고 볼 수 있지만, 명확히 러시아 편을 드는 모습이 아닙니다. 물론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행보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전쟁에서 교훈을 얻는 것아 씁쓸하지만, 이번 전쟁은 기술 보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줍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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