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석] 리디의 삼세판

흥미로운 뉴스가 최근 나왔습니다. 전자책 플랫폼 ‘리디’가 프리 IPO 투자로 3000억원을 유치했다는 내용이었죠. 함께 언급된 기업가치는 1조5000억원입니다. 리디는 공식적으로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투자 주체나 금액 역시 아직 밝힐만한 단계가 아니라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뉴스는 듣는 사람의 귀를 확 잡아 끕니다. 전자책을 팔던 리디가 어떤 미래가치를 높이 평가 받았길래 유니콘으로 언급되는 걸까요?

최근 리디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예전의 그 ‘전자책 서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전자책 단행본 판매는 리디의 근간이지만, 최근 들썩이는 움직임은 그보다는 웹툰이나 웹소설에서 더 분주해보이거든요. 웹소설 IP를 가지고 웹툰을 만들고, 이 웹툰을 바탕으로 뮤직비디오를 내놓고. 또 국내에서 히트친 웹툰을 영어권 이용자가 읽도록 ‘만타’라는 플랫폼을 내놓기도 하고요.

그래서 리디의 지난 14년을 돌아봤습니다. 제가 보기에 리디에는 크게 두 번의 변화가 있었는데요, 각 단계별로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간략하게 짚어보고요. 그다음에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리디 1기_ 전자책 서점

우선, 리디가 어떤 회사인지부터 살펴보죠. 2008년 창업해 2009년 11월, 전자책 서점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서점인데 전자책 단행본 판매가 주력이었죠. 아마존이 북미에서 내놓은 ‘킨들’이 반향을 얻었으나 국내에서는 전자책이 생소하던 때였습니다. 리디는 전자책을 국내에서 대중화시키는데 기여한 선구자 중 하나입니다(사실은 북토피아와 같은 1세대 전자책 기업들이 있었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죠).

사람들이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 대신 책을 많이 읽고, 태블릿이나 전자책 단말기에서 책 읽는 것을 친숙하게 여겼더라면 리디는 지난 10년 동안 빠르게 성장했을 겁니다. 하지만 책은 그만큼 팔리지 않았고, 전자책은 더더욱 자리 잡기 어려웠죠. 

리디 매출, 영업이익 변화 추이 (단위=억원, 억단위 이하 버림)
* 2017년부터 연결기준 ** 2018년부터 국제회계기준 적용

리디는 척박한 전자책 시장에서 꾸준히 성장했습니다만, 흔히 말하는 역동적인 성장(제이커브)를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매출 규모가 꾸준히 커왔지만, 흑자를 낸 것은 지난 2020년이 처음이었죠(아직 2021년 실적을 공개하진 않았으나 적자전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이 경우는 회사 매출 규모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지난해 공들인 ‘만타’의 마케팅 비용 집행 등에 쓰인 돈이라 투자의 개념에 가깝습니다). 

리디와 같은 스타트업의 목표는 생존에 있지 않습니다. 대규모 적자에도 계속 투자해준 투자자에게 큰 이익 실현도 해줘야 하고, 스톡옵션 믿고 고생한 직원들에게 보상도 해줘야 하죠. 그래서 띄웁니다. 승부수를.

리디 2기_ 월정액 구독 서비스

‘리디 셀렉트’라는 상품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출판계에서는 매우 센세이셔널한 모델이었습니다. 지난 2018년 7월 나온 월정액 무제한 전자책 구독 상품이었습니다. 출시 초기 월 6500원에(현재는 4900원) 리디셀렉트에서 제공하는 모든 전자책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도록 했죠. 출판계가 무지 싫어하는 모델이었습니다. 스트리밍이 주류가 되면서 사라진 음반 시장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본 탓이죠. 월정액 무제한 구독제가 출판시장의 파이를 깎아 먹을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계의 많은 이를 적으로 돌릴 뻔한 이 선택을 리디는 결국 하고야 말았습니다.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책 보는 인구를 늘리면 되겠다고 판단한 것이죠. 월 6500원에 수천 수만권에 달하는 책을 볼 수 있다면, 그동안 도서시장에서 포획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독자로 잡아둘 수 있을 거라고 봤습니다. 늘어날 회원수로 스케일업을 하겠다는 전략이었는데요, 

사실 이런 결정에는 ‘도서정가제’라는 상황도 반영이 됐습니다. 전자책에도 도서정가제가반영이 되면서 신간이든 구간이든 10% 이상 할인이 불가능해졌죠(쿠폰이나 이벤트를 아무리 먹여도 15%가 할인의 영끌 한계입니다). 장기 대여 등 여러 방법으로 전자책을 싸게 팔아 경쟁력을 확보, 헤비 유저를 끌어모았던 리디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판매 전략이 필요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리디셀렉트 역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리디는 공식적으로 리디셀렉트로 일어난 매출이나 혹은 유료 회원수를 공개한 적이 없습니다. 잘 되도, 잘 안 되도 공개하기에 부담스러운 상황이지만 아무래도 지금 리디가 셀렉트에 힘을 크게 주지 않는 것을 보면 후자가 비공개 이유에 더 가깝겠죠. 출판사들을 달래면서 단행본 전자책을 모아야했기에 일년치 예상 도서 판매분에 맞먹는 돈을 미리 주고 셀렉트에 공급할 책을 얻어올 만큼 꽤 큰 예산을 쓴 것에 비해서는 만족하지 못할 성과를 낸 것이죠.

리디 3기_ 글로벌 웹툰 플랫폼

이제 리디의 현재입니다. 앞서 조금 부정적으로 과거를 풀었지만, 그에 비해 리디가 그리 어두운 환경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희망적이죠. 프리 IPO 단계에서의 거액의 투자를 준비 중인데다 미국에서 글로벌을 타깃으로 선보인 웹툰 플랫폼 ‘만타’가 순항 중인 것으로 알려졌거든요.

만타는 월 4900원에 보유한 모든 웹툰을 무료로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앞서 단행본 시장에서 구독 서비스가 안먹혔을 순 있지만, 웹툰에서는 다른 반향을 가져올 거라고 봅니다.

만타는 현재 영어로 서비스 중인데요, 플랫폼에서 공급하는 웹툰 콘텐츠를 월 4900원에 무제한으로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물론 아직 만타의 유료 가입자 수는 공개되지 않았는데요. 구글플레이에서 다운로드 횟수는 100만회 정도라 드라마틱하게 크다라는 느낌은 들진 않지만, 평점 및 리뷰가 좋습니다. 애플과 구글 앱장터에서 모두 5점 만점에 4.8점입니다. 콘텐츠 종수가 많지는 않지만 분명히 차별화할 요소가 있기 때문일텐데요.

국내외에서 웹툰이나 웹소설은 네이버와 카카오가 잡고 있는데, 리디가 어떤 부분에서 경쟁력이 있겠나 싶은 분들이 있다면, 리디 나름의 경쟁력이 있습니다. 크게 세가지로 꼽아볼게요.

첫째, 리디가 가진 경쟁력 있는 콘텐츠입니다. 특히 로맨스와 BL 부분이 압도적입니다. 특히 BL의 경우에는 그간 리디를 먹여살렸다고 평가받을 만큼 확실한 팬층이 포진하고 있는 영역입니다. 이 부분에서 리디는 원천 IP를 많이 갖고 있고, 지금처럼 꾸준히 웹툰화하겠죠. 아래 그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장 많이 읽힌 웹툰에서 BL이 눈에 띕니다.

둘째, 디지털 콘텐츠를 유료로 일반 소비자에 팔아본 경험입니다. 앞서 오랜 시간 경험으로 얻어낸 약인데요. 과거 전자책 단행본=디지털 콘텐츠를 판매한 것과 월정액 무제한 구독 서비스를 운영해본 경험은 다른 기업이 많이 갖고 있지 않은 자산이죠. 지금 글로벌로 나가 있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웹툰 플랫폼들은 모두 무료 또는 ‘기다리면 무료’ 등의 단건 결제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계약한 작가나 에이전시가 많은 이들에게 정기 결제 모델은 아직은 시도하기 어려운 영역이죠.

그러나 리디의 경우, 가장 인기가 많은 ‘상수리 나무 아래’라거나 ‘마귀’ 같은 콘텐츠는 자신들이 직접 웹소설을 웹툰화한 콘텐츠입니다. 따라서 월정액으로 묶어서 선보일 때 유리한 부분이 있죠. 가짓수가 많지는 않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확실한 팬층이 있는 장르물을 갖고 있으므로 매달 돈을 내려는 충성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넷플릭스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영상을 가진 플랫폼이 아닙니다. 단순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넷플릭스 역시 니치 시장을 건드릴 수 있는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들어내면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죠.

세번째. 이게 또 중요합니다. 리디 내부의 조직과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돌아가게끔 현재 설계가 되고 있습니다. 잠깐 리디 조직을 살펴보면요,

1. 리디북스_ 전자책 서점(일반 단행본/ 연재형 콘텐츠)
2. 웹툰, 웹소설 제작 및 유통
3. 만타_ 글로벌 웹툰 플랫폼
4. 리디셀렉트_ 월정액 무제한 전자책 구독 서비스
5. 리디 페이퍼_ 전자책 단말기 판매

크게 이런 사업을 운영 중이고요, 대략 웹툰이나 웹소설과 관련해서는 제작하고 유통하고 판매하는 모든 필요조건을 다 갖춘 것으로 보이죠?

따라서 리디는 내부에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 유통하는 자회사들을 두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오렌지디죠. 위즈덤하우스에서 멀티콘텐츠 사업과 웹소설 사업을 이끌었던 정은선 분사장이 대표가 되어 사업을 맡고 있죠. 콘텐츠 제공업체(CP)로서 역할을 하는데 웹소설과 웹툰을 만들어서 리디를 비롯한 여러 플랫폼에 공급합니다. 그래도 역시 중심은 리디가 되겠죠. 이 외에 종이책 단행본도 만들고 심지어 OST도 만듭니다. 아래 링크를 하나 첨부했는데, 상수리 나무 아래라는 웹툰의 OST를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만들어 배포합니다. 노래는 무려 에일리가 불렀습니다.

YouTube video

최근에는 웹툰의 OST가 음원 차트에서 순위권에 오르기도 하는데요. 이는 콘텐츠 회사들의 또다른 수익원으로 등장했습니다. 오렌지디는 OST를 만들고, 또 웹툰의 영상화를 위한 IP 사업을 하기도 하죠. 리디의 또다른 자회사로는 라프텔이라는 애니메이션 플랫폼이 있는데요. 여기에도 리디가 가진 원천IP를 활용해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등장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협업 전략을 택했으니, 이를 제외하고 IP로 해볼 수 있는 것은 다해보는 생태계를 리디라는 회사 안에 모두 마련한 셈이죠.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리디의 이런 선택이 실질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회사에 비하면 아직 그 규모가 너무 작다고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네이버나 카카오가 할 수 없는 영역에서 리디가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시도를 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리디가 다음번에는 어떤 뉴스를 가지고 올지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