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리] 한국 팹리스에게도 TSMC는 필요하다

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 스타트업 리뷰를 연재합니다. 코너명은 ‘바스리’, <바이라인 스타트업 리뷰>의 줄임말입니다. 스타트업 관계자분들과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한국 팹리스 기업은 무조건 삼성 파운드리만 이용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현재 세계에서 7나노 미만 공정을 구현할 수 있는 파운드리는 TSMC와 삼성전자, 두 곳 뿐이다. 시장점유율 면에서는 TSMC가 앞서고 있으나, 공정 구현 능력 때문에 양사는 경쟁 관계로 불린다. 현재 두 기업은 3나노 공정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TSMC와 삼성전자가 경쟁 구도이다 보니, 한국 팹리스는 삼성 파운드리를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업계에 있다. 하지만 삼성이 한국 기업이기에 삼성 파운드리를 이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너무 단순하다. 국내에서 디자인하우스로 창업한 에이직랜드의 이종민 대표가 TSMC를 파트너로 삼은 이유다.

에이직랜드는 팹리스의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를 돕는 국내 디자인하우스이자, 국내 유일의 TSMC VCA(Value Chain Aggregator, TSMC 협력사)다. 이종민 대표는 “물론 삼성 파운드리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한편으론 우리나라 팹리스도 TSMC를 전략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민 에이직랜드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종민 에이직랜드 대표

“팹리스의 반도체 개발 문턱 낮출 것”

국내에서 반도체 협력업체는 대부분 패키징과 테스트를 비롯한 백엔드(Backend, 후처리 공정)에 치중돼 있었다. 스타트업인 에이직랜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관행과는 달리 반도체 설계에 필요한 디자인하우스의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이종민 에이직랜드 대표는 SK하이닉스에 입사하면서 처음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고, 추후 한 스타트업 팹리스에서 경험을 쌓았다. 스타트업 팹리스에서 일한 경험이 디자인하우스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하나의 칩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설계 인력만 50명이 넘게 달라붙어야 하는데, 국내 팹리스 기업들이 이런 인재를 한꺼번에 영입하기 어려운 것도 디자인하우스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로 생각됐다.

이 대표는 팹리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2016년, 과거 회사 동료들과 함께 에이직랜드를 설립했다. 에이직랜드는 팹리스 기업을 대상으로 IP, SoC(시스템 온칩) 개발 등 설계 관련 기술과 테스트, 제품 품질 서비스를 고객사 요구 조건에 맞춰 제공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이종민 대표는 팹리스에서 요구하는 반도체가 공통적인 설계 형태를 갖는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었다. 그는 “오디오, 네트워크, AI 등 사용처에 따라 반도체 종류는 다양하지만, 각 특성을 걷어내면 70~80%는 설계가 비슷하다”며 “각 팹리스 기업은 전문 서비스 기술만 개발하고, 나머지 공통적인 설계는 하나의 기업에서 담당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특히 에이직랜드는 첫 반도체 설계부터 도와주는 레벨 제로(Level0)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를 통해 팹리스 기업의 반도체 개발 문턱을 낮추고, 더 다양하고 성능 좋은 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에이직랜드는 고객사도 지속해서 확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에이직랜드는 지난 2020년 SKT의 AI반도체 모델 사피온 설계 과정에 참여했고, 국내 AI반도체 기업 디퍼아이와도 협업해 시각 관련 AI반도체 설계를 지원했다.

국내 팹리스가 TSMC를 필요로 하는 이유

에이직랜드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국내 기업인데 TSMC 협력사라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아닌 TSMC 협력사가 되기로 한 이유는 국내 팹리스도 TSMC를 필요로 하는데, 이에 대한 연결고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종민 대표는 “한국 팹리스 시장에는 TSMC와 삼성전자 두 기업 모두 필요하다”며 “삼성은 이미 DSP를 넉넉하게 갖추고 있지만, TSMC VCA는 국내에서 에이직랜드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삼성 파운드리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살린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면, TSMC는 파운드리 사업 측면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다. 업력이 삼성전자에 비해 길고, 종합반도체기업(IDM)이 아닌 파운드리 전문업체라 삼성전자 대비 주문량도 많다. 그만큼 TSMC는 파운드리 노하우도 갖추고 있고, 공정법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파운드리 경쟁력만 놓고 비교했을 때에는 TSMC가 우세하다고 판단될 수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파운드리 부족현상이 발생하면서, 하나의 파운드리에만 위탁생산을 하는 것이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제품 설계를 가지고 있어도 생산 인프라가 부족하면 제품을 만들 수 없다. 따라서 글로벌 주요 팹리스는 한 기업에만 위탁생산하지 않고, TSMC와 삼성전자 두 곳을 모두 이용하는 추세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국내 기업이 TSMC 파운드리를 이용한다고 할 때,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TSMC에 생산을 맡기는 것은 대만에 돈을 바치는 일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운드리는 완성칩을 만들기 위해 거치는 과정 중 하나이고, 진짜 경쟁력은 양질의 완성칩을 부족함 없이 만들어 냈을 때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뒤이어 이 대표는 “현재 TSMC는 한국 수요를 적게 보고 있는데, 이 비중이 더 축소되면 우리나라는 어느 한 곳에만 위탁생산을 맡겨야 하고 이는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반면 TSMC를 이용하는 고객이 늘어나면 인프라를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추후 단가도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IPO 이후, 미국 지사 설립한다

현재 에이직랜드는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우선 올해에는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에서 반도체 인재를 확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인재 확보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내년에는 국내에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2024년에는 TSMC의 허가를 받아 미국 지사를 설립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종민 대표는 “현재 미국에는 에이직랜드처럼 레벨 제로에서부터 반도체 설계 서비스를 지원하는 기업을 필요로 하는데, 아직 미국에는 이처럼 처음부터 서비스를 지원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며 “미국에도 소규모 스타트업이 지속해서 생겨나고 있는데, 에이직랜드 사업모델은 이 같은 상황의 미국 시장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인력난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회사 내 자동화 환경을 갖추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반도체 인력난을 겪고 있는데, 반도체 설계 수요는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우선 현재 상황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에이직랜드는 자동화 플랫폼을 도입할 방침이다.

에이직랜드는 올해 2022년도 반도체대전 세덱스(SEDEX)에 참가해 자사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행사는 2022년 10월 5일부터 7일까지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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