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반도체] 좌초된 엔비디아-Arm의 빅딜, 이들의 큰 그림

편집자주: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소식을 기업 전략과 경쟁 구도, 시장 배경과 엮어서 설명합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소식이 매일같이 쏟아지지만 익숙하지 않다 보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각 기업의 전략과 성장 배경을 알면 왜 그 제품을 출시했는지, 회사의 전략과 특성은 어떤지 엿볼 수 있습니다. 더 넓게는 시장 상황과 전망을 살펴볼 수도 있죠. 하나씩 함께 파고 들어가보면 언젠가 어려웠던 기술 회사 이야기가 친근하게 다가올 거예요.

세기의 빅딜이라 일컬어졌던 엔비디아와 Arm의 인수합병이 결국 무산됐죠. 주요 기업과 정부의 반대에 의해 양사는 결국 인수합병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양사의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존 Arm의 주요 고객사뿐만 아니라, 미국·영국·유럽 등 국가에서도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엔비디아는 이미 그래픽 처리장치(GPU)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여기에 프로세서 라이선스까지 확보한다면 독점 생태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이죠.

특히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엔비디아의 Arm 인수 건에 대해 “불법적인 수직 결합”이라며 제소했습니다. 결국 양사의 인수는 불발됐죠. 이번 인수합병 불발로 엔비디아는 Arm의 대주주 소프트뱅크에게 12억5000만달러(약 1조5000억원)를 지급해야 합니다.

또한, 이번 인수 불발로 각 기업의 로드맵도 조금씩 변경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는 엔비디아, Arm, 소프트뱅크 각 기업의 특성과 그간 그려온 큰 그림, 그리고 이번 인수합병 불발 이후의 전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엔비디아가 서버용 칩 시장을 넘보는 이유

우선 엔비디아부터 살펴볼까요.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고자 했던 이유는 데이터센터 서버용 칩을 개발하기 위함입니다.

엔비디아는 그래픽 처리장치(GPU, Graphic Processing Unit) 개발업체입니다. GPU는 원래 3D 콘텐츠 그래픽 처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반도체인데, 병렬 처리 방식을 통해 한 번에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죠.

엔비디아는 이 특성을 활용해 GPU를 다양한 분야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고, GPU를 범용화하고자 전용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언어가 쿠다(CUDA)입니다. 엔비디아가 쿠다 언어를 개발하면서 엔지니어는 GPU를 활용해 AI 모델을 더 수월하게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시장을 80%가량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AI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데이터센터 서버용 칩 시장까지 장악한다면, AI 시장 생태계 전반을 손아귀에 넣게 됩니다. AI와 데이터센터는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제 데이터센터는 단순히 데이터 저장을 넘어, AI 머신러닝 처리를 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엔비디아는 전반적인 AI 생태계를 이루기 위해 데이터센터 부문에도 손을 뻗었고, 데이터센터 관련 칩도 지속해서 개발해 왔습니다.

먼저 엔비디아는 2020년 10월 데이터센터용 프로세서 DPU(Data Processing Unit) ‘블루필드’를 공개했습니다. 이는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고, 데이터센터 간 통신을 원활하게 합니다. 또한, 2021년 4월에는 서버용 CPU ‘그레이스’를 2023년에 출시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그레이스는 대규모 AI와 HPC를 타깃으로 삼은 CPU인데요,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처럼 엔비디아는 AI 생태계에 필요한 반도체는 모두 개발하거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Arm을 인수하려고 한 것은 x86에 맞설 수 있는 프로세서 아키텍처를 손에 넣고, CPU 기술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Arm 인수에 실패하면서, 이제 서버용 칩은 독자적으로 개발하게 됐습니다. 연구 인력도 따로 채용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는 아쉽지만 크게 문제 없다는 반응입니다. 엔비디아가 인력 채용에 나섰다는 이야기는 이미 나오고 있는데요, 이스라엘 매체 글로브스는 “엔비디아가 이스라엘에서 차세대 CPU 연구를 위한 인력 100여 명 이상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서버용 칩도 장악해 지속해서 AI 시장 강자로 남고자 하는 엔비디아의 큰 그림이 보입니다.

성능 향상된 Arm, 전망 ‘청신호’

그렇다면 Arm은 어떤 기업일까요. Arm은 반도체 아키텍처를 설계한 후, 그 라이선스를 판매해 수익을 내는 기업입니다. Arm은 생산라인을 가지지 않고 반도체 설계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니, 언뜻 보면 팹리스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팹리스는 자사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하는 반면, Arm은 자사 이름의 칩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Arm과 같은 기업을 칩리스(Chipless)라고 부르기도 하죠. 종종 언론 보도에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다’는 이야기를 보셨을 텐데요, 이 경우에는 Arm에게 라이선스 비용을 주고 아키텍처를 사와 만든 반도체라고 보면 됩니다.

Arm에서 개발한 아키텍처(ARM 아키텍처)는 인텔, AMD에서 개발한 프로세서의 x86 아키텍처와 차이가 있습니다. ARM 아키텍처는 x86 아키텍처에 비해 명령어를 줄인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 형태입니다. x86에 비해 구조가 덜 복잡한 것이죠. 따라서 ARM 아키텍처는 x86 아키텍처에 비해 프로세서의 소비전력과 발열을 낮출 수 있습니다.

반면, ARM 아키텍처는 x86에 비해 고성능을 구현하기에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생략한 명령어가 있다 보니, 데이터 처리 부문에서 한게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ARM 아키텍처는 주로 모바일 칩에 적용됐습니다. 퀄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삼성전자 등도 자사 모바일 칩에 ARM 아키텍처를 적용했죠.

하지만 이제는 ARM 아키텍처 성능이 기존에 비해 대폭 향상돼, 모바일 뿐만 아니라 PC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모바일 칩은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는데요, ARM 아키텍처 기반으로 PC 칩을 만들면 PC와 모바일 호환성이 좋아집니다. 결국 ARM 아키텍처는 지금보다 더욱 확산될 것이며, Arm 전망도 긍정적이라는 분석입니다.

자금 필요한 소뱅 “Arm을 미국으로”

회사의 전망과 별개로, 모회사 소프트뱅크는 어떻게 해서든 Arm을 매각하려고 했습니다. Arm은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2016년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인수했죠. 이후 약 4년 만에, Arm을 다시 매각하기로 한 것입니다.

2016년만 해도 소프트뱅크는 Arm의 성장 가능성을 보며 인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Arm의 경쟁력과 별개로 소프트뱅크는 2020년 7월 최악의 적자를 봤습니다. 자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프트뱅크는 결국 Arm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는데요, 2020년 9월 공식적으로 Arm을 엔비디아에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Arm 측에 따르면, 당시 총 인수 금액은 400억 달러(한화 약 47조원)였습니다.

처음 양사가 인수합병을 결정했을 때, 소프트뱅크는 매각 대금을 엔비디아 주식으로 받기로 했습니다. 엔비디아가 Arm 인수 대금으로 자사 주식 215만주와 현금 210억달러(약 원25조 1160억원)를 지불하기로 한 것인데요, 소프트뱅크 입장에서 환호할 만했습니다. 엔비디아 주가가 폭등했기 때문인데요, 엔비디아 주가가 고점을 찍었을 때에는 소프트뱅크가 쥐게 될 금액이 800억달러(약 95조6800억원)까지도 올랐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600~700억달러(약 71조7600~83조7200억원) 가량 됩니다.

하지만 이번 인수 건이 무산되면서, 소프트뱅크의 자금 마련 계획은 틀어졌습니다. 소프트뱅크는 어떻게든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차선책으로 Arm을 상장할 계획입니다. 이 시점에 맞춰 엔비디아 부사장 겸 컴퓨터 제품 총괄 매니저로 7년 간 근무했던 르네 하스(Rene Haas)를 신임 CEO로 선임하기도 했죠.

소프트뱅크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IPO를 통해 마련할 수 있는 자금은 엔비디아와의 인수합병 성사를 통해 쥐게 될 금액에 비해 적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 자금 수혈이 필요한 소프트뱅크는 Arm IPO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다만, 소프트뱅크는 Arm을 영국이 아닌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Arm 고객사 대부분이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엔비디아 등 미국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반대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겠다고 처음 밝혔을 당시에도 “영국 기술 주도권이 치명타를 입고, Arm도 파괴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미 팹리스 강자 대부분이 미국에 있는데, 이 기술 주도권을 미국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지요. 인수합병 불발도 국가 간 기술 패권전쟁 때문이었는데, 이후 또  2차전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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