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시장에서 나노 경쟁이 갖는 의미

부품 시장에서 ‘나노 경쟁’이 치열하다. 반도체 위탁생산업체(파운드리)의 얘기만은 아니다. 메모리를 만드는 기업도 나노 기술 경쟁에 한창이다. 여기서 나노 기술(Nano Technology; NT)은 반도체 소자(트랜지스터)의 크기를 나노 단위(10억분의 1미터)로 미세하게 만드는 공정을 말한다. 트랜지스터의 크기를 줄이면 줄일 수록 반도체 원가를 절감할 수 있어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들의 관심도 이 경쟁에 쏠리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의 기반이 되는 웨이퍼는 8~12인치 정도 크기를 가진다. 하나의 메모리 칩은 웨이퍼 안에 트랜지스터를 꽂을 수 있을 만큼 꽂고, 규격에 맞게 잘라내는 방식으로 생산된다. 트랜지스터의 크기가 미세해지면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같은 크기의 웨이퍼에 꽂을 수 있다. 같은 크기의 종이에 그림을 그릴 때, 미세한 붓으로 그리면 더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때문에, 나노 공정을 도입하면 하나의 웨이퍼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다. 현재 12인치 웨이퍼 하나 가격이 154만5000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웨이퍼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렇다면 주로 어떤 기업이 나노 공정 경쟁에 나섰을까?

메모리 시장점유율 3위 안에 드는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다. 이들은 최근 메모리 시장 미세한 D램을 생산하기 위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도입하고, 14나노 D램 양산 경쟁을 하고 있다.

우선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12일 14나노 EUV DDR5 D램을 양산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2020년 3월 EUV 공정을 적용한 D램 모듈을 고객사에 공급했으며, 처음으로 EUV 멀티레이어 공정을 적용해 14나노 D램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DDR5가 상용화되는 시점에 맞춰 14나노 D램을 생산할 예정이다.

이주영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D램개발실장 전무가 14나노 D램 양산 발표 당시 “삼성전자는 메모리 업계 중 가장 먼저 멀티레이어에 EUV 공정을 적용해 업계 최선단의 14나노 공정을 구현했다”며 “고용량, 고성능뿐만 아니라 높은 생산성으로 5G·AI·메타버스 등에 필요한 메모리 솔루션을 공급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월 24일 진행한 이사회에서 EUV 장비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총 5년에 걸쳐 4조7549억원을 들여 4세대(1a, 14nm) D램 양산을 준비할 예정이다. 이후 2021년 7월에는 EUV 장비를 활용한 10나노미터급 4세대 모바일 D램 양산을 개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 메모리 생산업체 마이크론도 지난 1월 “1a D램을 양산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메모리 3사 중에서는 가장 발표가 빨랐다. 다만 일각에서는 마이크론의 1a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기준과 다르기 때문에, 최초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세 기업은 다가올 차세대 D램 DDR5를 14나노 크기로 양산하기 위한 기술 개발을 진행하는 중이다. 여기서 DDR5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DDR4에 비해 용량이 네 배 높고, 대역폭(특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주파수 범위)은 두 배 높아 차세대 메모리라 불리고 있다.

이들이 나노 공정에 관심을 부쩍 갖는 근본적 이유 중 하나는 메모리 반도체가 규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시장에서는 제품의 가격과 성능으로만 승부를 봐야 한다. 물론 모든 반도체는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가격 경쟁력과 성능이 좋아진다. 그리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도 선두 기업들과 후발주자 간 메모리 세대 차이는 난다. 하지만 선두를 달리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경우, 시장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부문이 가격경쟁력 외에는 많지 않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세 기업의 제품 라인업을 살펴보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 메모리반도체 기업 종사자는 “선두 기업 중 하나가 신제품을 출시했다는 것은, 다른 두 기업도 현재 (유사한 제품을) 출시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메모리 제품군이 2~3세대 이상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기술 경쟁력 자체는 크게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동일한 규격의 제품을 모두가 같이 생산하다 보니, 메모리 기업은 원가를 낮추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원가를 낮추면 더 싼 가격에 고객사에 반도체를 제공해 더 많은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원가를 대폭 절감하면 이익도 많이 남는다. 메모리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 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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