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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전기차 3대장 ‘지리’가 선택한 반도체 회사

김선길 로옴세미컨덕터 코리아 대표이사 인터뷰

대중적인 브랜드는 아니지만, 로옴 세미컨덕터(이하 로옴)는 반도체나 전자부품 산업계에서는 알려진 이름이다. 모바일 기기와 자동차가 구동될 때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만드는 ‘SiC 전력모듈’을 세계 최초 성공적으로 양산한, 역사적인 기업이라서다.

그런데 이 로옴이 최근에 다시 국내외 언론에서 회자된 일이 있었다. 중국의 3대 전기차 회사라 불리는 ‘지리’가 로옴과 파트너십을 발표한 것이다. 전기차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로옴에도 훈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지리와 협력 건은 더더욱 이 회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됐다.

김선길 로옴세미컨덕터 코리아 대표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리는 로옴의 어떤 면을 평가했을까? 전기차 시장 성장이 반도체 회사들에는 어떠한 기회를 안겨줄 수 있을까? 김 대표와 서면으로 한 번, 전화로 한 번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작년 가을 이후 자동차 부문에서 수요가 더 증가하고 있어, 이번 분기에도 호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전기차 시장의 성장에 고무적인 발언을 했다.

김선길 로옴세미컨덕터코리아 대표이사

전기차 산업과 함께 상승곡선 타는 로옴

로옴은 원래 고객의 요청에 따라 대규모 집적 회로(Large Scale Integration)를 제작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한 곳이다. 1958년에 일본 교토에서 설립했다. 고객 맞춤형으로 부품을 제공해야 하다 보니 SiC(실리콘 카바이드) 전력반도체뿐만 아니라 LSI, 디스크리트, 전력반도체 등 디바이스에 필요한 부품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면서 성장했다.

그러다 2012년에 SiC 전력 모듈 양산을 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SiC 전력반도체 시장에서 브랜드를 확립했다. 전력 모듈은 전자기기 내에서 전력을 제어하는 부품이며, 전자기기에 공급되는 전력을 기기 내에서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SiC 전력반도체로 이름을 알린 로옴은 현재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SiC 전력반도체에 주력하고 있는 로옴이 최근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자동차 산업이 활성화되면서다. 전기차는 한 번 충전하고 긴 주행거리를 달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배터리 용량도 중요하지만, 전력 효율성도 중요하다. 같은 배터리 용량으로 전력을 더 효율적으로 분배해 적은 전력을 잡아먹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기차 시장에서는 전력반도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실제로 로옴의 매출에서 자동차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로옴의 자체 통계에 따르면, 2004년에는 전체 매출에서 자동차 부문 매출이 11%를 기록했으며, 2020년도에는 35%를 넘었다. 김선길 로옴코리아 대표이사는 “로옴은 2000년대 전반부터 자동차 산업에 필요한 부품을 제공해 왔는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이번 회계 분기에는 자동차 산업 매출 구성 비율 40%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료부터 검증까지 스스로 책임진다

로옴이 전력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점은 수직 통합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 반도체 및 전자부품 기업은 웨이퍼 생산이나 패키징 등의 과정은 타 업체에게 위탁하고, 설계나 생산 쪽에 주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로옴은 전자부품의 재료가 되는 웨이퍼 생산부터 최종 생산된 제품을 포장하고 테스트하는 후공정 처리까지 모두 자사 내에서 담당한다.

먼저, 로옴은 Si크리스탈(SiCrystal)이라는 SiC 웨이퍼 생산 업체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이를 통해 로옴은 재료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 후공정 및 검증 과정에서도 로옴은 SiC 전력반도체와 구동IC(전자기기를 구동하는 데 사용되는 반도체 회로)를 한 번에 검증할 수 있는 웹 시뮬레이션 툴 ‘로옴 솔루션 시뮬레이터(ROHM Solution Simulator)’를 도입해 자체적으로 해결한다고 한다. 이 시뮬레이터를 통해 로옴은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시스템 레벨의 검증 단계까지 전반적인 생산라인 상황을 파악하고, 개선이 필요한 공정 과정을 빠르게 확인해 시정할 수 있도로 했다.

김 대표는 “로옴은 수직 통합 생산 체제를 도입해 문제 상황 발생 시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며 “따라서 높은 품질의 제품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고, 타 업체에 비해 신뢰도와 성능이 높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옴-지리車, 전기차 넘어 자율주행 위해서도 맞손

로옴은 전력반도체 외에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저항기 등 주변 부품을 함께 제공해 시스템 전반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다 보니 전기차 시스템 최적화를 위해 로옴을 찾는 기업도 적잖다는 것이 김 대표의 말이다.

이 강점을 가지고 로옴은 지속해서 완성차 및 관련 부품 업체와 파트너십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자동차 전동화업체 비테스코(Vitesco),  중국 자동차 부품업체 UASE, 신에너지 자동차업체 리드라이브(Leadrive ) 등과 협업한다.

특별히 지난 8월 초에는 중국 전기차 3대장 중 하나인 지리자동차(Geely)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파트너십을 통해 지리자동차는 로옴의 SiC 전력반도체와 부품을 자사 전기차에 탑재한다.

지리자동차는 로옴의 SiC 전력반도체를 활용해 전력소비를 절감하는 ‘고효율 메인 인버터(traction inverter)’와 차량용 충전 시스템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배터리 비용을 절감하고, 충전 시간을 단축시키며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다.

SiC 전력반도체 적용을 시작으로 지리자동차는 로옴과의 협업점을 늘려 나갈 예정이다. 김선길 대표이사는 “로옴의 통신 IC를 포함한 다양한 부품도 사용해, 고성능 ADAS와 인텔리전트 콕핏 시스템 등 자율주행차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음 목표는 GaN 반도체?

로옴은 앞으로 자동차와 관련된 포트폴리오를 늘려 나갈 예정이다. 김 대표는 “다양한 기업에서 자동차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데, 자동차 시장에서의 매출 성장을 목표로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차세대 전력반도체로 불리는 GaN(갈륨나이트라이드) 반도체도 집중해 개발하는 제품 중 하나다. GaN 전력반도체를 사용하면 일반 실리콘 반도체를 사용했을 때보다 에너지 손실이 75%가량 줄어든다. 또한 GaN 전력반도체가 SiC보다도 전력을 더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반도체 생산업체들은 GaN 반도체 개발에 팔을 걷고 나서고 있다.

김 대표이사는 “GaN 반도체는 전력반도체 성능 측면에서 SiC보다 성능이 더 높기 때문에, GaN 반도체를 지속해서 개발하고 있다”며 “조만간 GaN 전력반도체 관련 소식을 들려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로옴의 SiC 파워 모듈 (출처: 로옴)

한편, 김선길 대표이사는 한국 시장에 대한 포부도 밝혔다. 김 대표이사는 “한국에는 B2C뿐만 아니라,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유수의 기술을 보유한 대기업이 다수 존재한다”며 “로옴은 한국에서 B2C와 더불어 자동차, 산업기기 등 B2B를 중점적으로 영업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 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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