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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어느 60세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이야기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젊은 직군이다. 이 직종 종사자의 상당수는 20~30대 청년들로 구성돼 있다. 개발자가 40대가 되면 프로그래밍을 직접 짜는 일이 줄어들고, 점차 관리직이나 기술영업직을 맡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러다보니 50대 개발자도 찾기가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젊은 개발자들은 40대 이후에 커리어를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진다. ‘할 줄 아는 건 프로그래밍 밖에 없는데 40대 이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현직 개발자들이 많다. “개발자의 최종 테크트리는 치킨집 사장님”이라는 자조적인 농담이 있을 정도다.

큐브리드 한기수 이사를 인터뷰한 것은 그가 이런 점에서 희귀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 연구위원의 나이는 만 60세이다. 그는 지금도 매일 코드를 짜는 현직 개발자다.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후 30년 동안 컴퓨터 프로그램 코드를 썼다고 한다.

IT산업은 그 어느 곳보다 변화가 심한 곳이다. 이 산업의 종사자 평균연령이 낮은 것도 빠른 변화 때문이다. 프로그램 개발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현재의 프로그래밍 언어와 프레임워크, 인프라 환경은  30년전과 완전히 다르다. 한 이사가 30년 동안 계속해서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다는 건 이 변화에 계속 적응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60세에도 현직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 있는 큐브리드 연구소 한기수 이사

 

간단히 자기 소개 좀 해주세요.

소개할 게 별로 없는 사람인데요.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 있고요,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개발을 오랫동안 했고요, 5년전에 큐브리드에 와서 지금은 데이터베이스 개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전공하셨나요?

석사는 네트워크 관련해서 했고, 박사과정에서 데이터베이스를 공부했어요. 큐브리드에서 데이터베이스를 하고 있지만 큐브리드 이전에는 데이터베이스 실무 경험이 많지는 않았고요.

소프트웨어 개발자 중에서는 연세가 꽤 있는 편이시지요?

그런가요(웃음).

얼마나 오랫동안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셨나요?

박사과정 수료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개발을 시작한 이후로 30년 정도 됐네요.

어떤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셨나요?

통신표준이나 프로토콜, 커뮤니케이션 소프트웨어를 주로 개발했습니다. 통관자동화 소프트웨어 같은 거도 개발했고, SI(시스템통합)도 했습니다.

코딩을 30년 동안 하시는 분은 흔치 않은데요, 중간에 관리직 같은 쪽으로 빠질 생각은 안해보셨나요?

저는 넓게 보는 건 잘 못하고, 좁게 파고드는 스타일이라 이 일이 맞는 것 같습니다.

시니어 개발자가 되면 젊은 개발자들과 소통하기 좀 어려워지고, 나이 어린 매니저와 일해야 할 때도 많은데 어려운 점이 없었나요?

조직이니까 각자 맡은 역할이 있고, 저는 맡은 역할을 하면 됩니다. 큐브리드에서도 연구소장이 계시는데, 그 분은 거시적인 것을 보고 나가고 저는 팀에 주어지는 일을 하면 됩니다. 일과 일이 아닌 것을 명확히 구분하면 됩니다. (관계의 문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벌어집니다.

5년 전까지는 SI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5년전에도 고객사에 나가서 코딩을 직접 하셨나요? 발주자 측 실무자들이 어려워했을 것 같아요.

아마 그랬겠죠. 그 때문인지 아예 어떤 발주사는 프로젝트 수행하는 개발자 조건에 나이제한을 두기도 합니다. 40세 이하, 50세 이하 이런 식으로요. 이 역시 일과 일이 아닌 것을 구분하면 되는데, 우리 문화에서는 그렇게 잘 안되죠.

55세에 큐브리드에 입사하셨는데.

SI 일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과거에 알던 후배가 큐브리드 연구소장으로 오게 됐어요. 그러면서 저보고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더군요. 큐브리드는 엔진의 80% 이상이 C언어로 되어 있어요. 요즘은 자바 엔지니어는 많지만 C나 C++ 개발자가 많지 않죠. 아마 C 개발자 인원충원이 어렵고 해서 저한테 연락이 온 거 같아요.

큐브리드에서는 어떤 일을 주로 하시나요?

처음에 와서는 트러블슈팅(문제점 찾아 해결)을 주로 했어요. 데이터베이스 엔진 버그 수정하고, 코드 분석해서 오류를 제어하는 일을 했습니다. 2년 전부터는 메인 엔진에서는 손을 뗐고 지금은 데이터베이스와 유저 접점,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 쪽을 담당하고 있어요.

30년 동안 프로그래밍을 하셨는데, IT가 엄청나게 빠르게 변하잖아요. 그 변화에 다 적응해야 30년 동안 생존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비결이 있나요?

구글 덕분이죠(웃음). 새로운 거 나오면 배우거나 적응하려고 했습니다. 옛날과 달리 요즘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배우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지적으로 우월한 시대는 지났고 정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느냐, 어떻게 빨리 내 걸로 만들 수 있느냐 이런 게 중요하죠.

데이터베이스와 외부의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저희 팀에서는 여러가지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룹니다. 제가 아는 것만 붙잡고 있으면 이 팀을 이끌 수 없죠. 새로운 것이 나오면 전문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50~60% 정도는 습득합니다. 나이는 있지만 필요한 걸 어느정도까지는 습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직은 있어요.

요즘 개발언어가 엄청 많은데 공부도 하시나요?

예를 들어 큐브리드가 GO언어(구글이 만든 프로그래밍 언어)를 지원 안 했다가 작년에 GO언어를 지원하기로 결정됐죠. 제가 직접 드라이버를 개발하는 건 아니었지만, 저희 팀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저도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하죠. 만 59세에 새로운 프로그램 언어를 공부해야 했죠.

GO언어 관련 에피소드도 하나 있는데, 저희가 GO 언어지원이 완전하지 않을 때 고객사에서 지원을 원해서 팀원이랑 저랑 달라붙어서 원하는 수준으로 만들어서 계약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주로 다루는 언어는 C와 C++지만, 자바나 펄, 파이썬 등도 어느 정도 수준은 돼야 합니다.

30년 동안 한 종류의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이 일이 재미있으셨나요?

네 재미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뭔가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고 하는 거에 흥미가 많았어요. 학생 때도 이상한 수학 문제 이런 게 나오면 그런 문제를 가지고 계속 생각해보고 해결책을 내고 이런 거를 재미있어 했어요. 이 분야도 비슷한 면이 있어요. 저희가 하는 일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하는 게 다가 아니고 생각지 못한 버그를 찾아내거나 전체 코드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하는 일이 많죠.

은퇴를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있죠. 제가 느긋하게 즐기고 이런 스타일이 아니라 아직은…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내가 모르는 분야, 문제, 접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전체를 파악하는 건 어렵더라도 어느정도 개념은 잡을 수 있도록 도전해야 합니다. 도전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이 직업으로 계속 하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계속 바뀌어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큐브리드의 취업규칙에 따르면, 이 회사의 정년은 60세다. 원래는 이제 한 이사는 은퇴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큐브리드 정병주 대표와 한 이사는 2년전 60세 이후에도 계속 근무하자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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