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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의장의 분수령, ‘로켓배송’이 만든 쿠팡의 오늘

쿠팡이 지난 12일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위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S-1 양식의 신고서를 제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쿠팡이 500억 달러(약 55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쿠팡의 상장 소식이 전해지기 전 한국의 증권가에서는 쿠팡의 기업가치를 약 30조원으로 예상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앞서 이베이코리아 매물 소식과 함께 기업가치로 거론됐던 5조원과 비교하자면 월등히 앞서는 숫자다. 그만큼 자본 시장은 쿠팡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쿠팡이 높은 기업 가치를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는 ‘물류’다. 마켓플레이스를 중심으로 유형 물류자산 보유를 최소화한 여타 한국의 이커머스 업체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쿠팡의 유형 자산이 기업 가치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금융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상장 신고서에 따르면 2020년 12월 31일 기준 쿠팡은 전국 30개 이상 도시에 100여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그 규모를 합산하면 2500만 평방피트(약 70만2580평)가 넘는다. 쿠팡은 1만5000명 이상의 배송기사(쿠팡친구) 네트워크도 보유하고 있다. 소비자까지 라스트마일 물류를 위한 인프라를 직접 고용을 통해 내재화한 기업은 3대 택배기업(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을 포함하여 비교하더라도 한국에서 쿠팡이 유일하다.

다가오는 3월로 예상된 쿠팡의 상장에 있어 기업가치가 얼마로 평가받을지는 알 수 없다. 쿠팡은 뉴욕증시 상장 관련하여 당국의 규정과 제도에 의해 정보 공개가 제한됨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팡이 상장 과정에서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는 쿠팡이 제출한 상장 신고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쿠팡의 상장 신고서에는 김범석 쿠팡 의장의 이름으로 작성된 한 통의 편지가 동봉돼 있다. 편지에는 쿠팡의 미션과 쿠팡의 성장을 만든 변곡점이 무엇인지 적혀있다. 김 의장의 편지 소제목에서 추출한 키워드와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1. 로켓배송(Breaking Tradeoffs: The Birth of Rocket Delivery)
  2. 새벽배송(Millions of Products Delivered by Dawn)
  3. 쉬운 반품(Effortless Returns)
  4. 포장 없는 배송(Deliveries Without Packaging)
  5. 고객, 직원, 판매자의 동반성장(Improving the Lives of Customers, Employees, and Merchants)

김 의장의 편지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물류’다. 추출한 키워드 중 마지막 다섯 번째를 제외하면 전부 쿠팡의 물류 서비스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내용이다. 물류와 별 상관없어 보일 수도 있는 다섯 번째 키워드도 사실 물류와 연결된다. 쿠팡이 만드는 일자리의 대부분이 배송 현장과 물류센터와 같은 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쿠팡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한 3P 판매자들에게도 쿠팡의 물류는 영향을 준다.

쿠팡이 물류에 미친 이유는 ‘고객’ 때문이다. 김범석 의장은 편지의 서문에서 고객들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고객들은 놀라운 서비스(Amazing Service)와 저렴한 가격(Low Prices), 다양한 상품 선택권(Broad Selection)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도 그럴 것이 ‘놀라운 물류 서비스’를 위해서는 ‘비용’이 튀어 오르는 것이 맞다. 3자 판매자의 입점을 늘려 다양한 상품 선택권을 만든다면 균일한 품질의 물류 서비스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쿠팡이 등장하기 전 한국 이커머스 업계가 가진 공론이었다.

성장의 분수령 ‘로켓배송’

쿠팡은 전통적인 유통업계의 문법을 부수고자 한다. ‘다양한 상품 선택권’과 ‘저렴한 가격’, ‘놀라운 서비스’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 한다. 아마존이 강조하는 SPC(Selection, Price, Convenience)를 다 얻어내는 것이 쿠팡의 전략적 방향이다. 김범석 쿠팡 의장은 “우리의 미션은 고객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나’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우리는 고객경험에 있어서 존재했던 전통적인 상충관계를 극복할 것”이라 편지를 통해 강조했다.

김범석 쿠팡 의장의 편지 제목에서 강조하는 지점 또한 ‘고객’이고, 그 분수령은 로켓배송에서 나온다.

쿠팡이 상충관계를 깨는 ‘분수령’으로 보는 서비스는 2014년 론칭한 ‘로켓배송’이다. 로켓배송은 고객 관점에서는 약 600만개 이상의 상품을 오늘 자정까지 주문하면 내일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물류 관점에서는 전국 물류센터에 상품을 직매입해 재고로 보관하여 익일 배송의 속도를 만드는 방법이다. 통상의 이커머스 업체들이 택배업체를 이용하면 생길 수밖에 없는 화주사 물류센터 픽업 및 허브터미널까지의 간선물류 이동 과정이 생략돼 ‘자정’이라는 마감시간을 만들 수 있다.

물론 로켓배송과 같은 서비스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물류센터를 임대하는 것도 돈이고, 물류센터 안에 상품 재고를 ‘매입’하고 관리하는 것 또한 돈이다. 600만개에 달하는 로켓배송 상품들이 모두 잘 팔리면 좋겠지만, 안 팔리는 상품에 대한 재고 부담은 필연적으로 쿠팡이 질 수밖에 없다. 최대한 상품을 잘 팔아 재고 회전율을 높이는 것도, 안 팔리는 악성재고를 어떻게든 처리해내는 것도 로켓배송의 숙제가 된다.

배송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로켓배송의 구조 또한 비용 관점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업계의 평가가 우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쿠팡 로켓배송 초기만 하더라도 택배업체를 통해 아웃소싱하는 것에 비해 훨씬 많은 비용이 배송에 투하된 것이 맞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쿠팡의 로켓배송은 초기부터 금융 및 물류업계 관계자로부터 ‘미친 짓’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쿠팡은 몇 년 동안 누적 수조원 상당의 적자를 만들었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했다. ‘저러다 돈 떨어지면 망하겠지’

쿠팡의 상장 신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2020년 4분기 기준 분기매출 38억달러(한화 약 4조2000억원)를 기록했다. 쿠팡의 폭발적인 성장은 현재진행형이고 오랜 영업손실을 감당하는 힘이 된다.

김범석 의장도 로켓배송이 어마어마한 비용을 낼 수밖에 없는 사업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켓배송을 밀어붙인 이유는 ‘고객’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쿠팡이 요구하는 수준의 고객 서비스 품질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3자 물류업체는 아쉽게도 없었다는 김 의장의 설명이다.

김 의장은 상장 신고서에 동봉한 편지를 통해 “기존 풀필먼트 처리량(Capacity) 부족과 3자물류의 한계로 인해 쿠팡은 처음부터 자사 물류망을 구축해야 했다”며 “상당한 시간과 자본이 투하되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우리 고객을 위해 해야만 하는 결정이라는 확신에 흔들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물류는 언제고 ‘비용’이 아니다

물류는 언제고 비용이 아니다. 물류가 비용 덩어리라면 이익을 보고 있는 종합물류업체들, 예컨대 CJ대한통운이나 한진의 존재를 설명하지 못한다. 오랜 투자 끝에 물류로 돈을 벌고 있는 이커머스 기업 아마존의 존재를 설명하지 못한다. ‘규모의 경제’와 ‘밀도의 경제’가 만들어짐에 따라 물류 효율은 점차 늘어나고, 차차 돈을 버는 영역 또한 생긴다.

쿠팡 비용의 한 원인이 됐던 물류센터 투자도 언제고 계속되지는 않는다. 쿠팡의 상장 신고서에 따르면 이미 한국 인구의 70%가 쿠팡 물류센터로부터 7마일(약 11.2km) 이내에 거주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부터는 물류 불모지였던 제주도 제주시, 서귀포시까지 쿠팡의 로켓배송 권역을 확장했다.

이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쿠팡의 영업손실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8년 1조970억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치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2019년부터 영업손실은 7205억원 규모로 반등을 맞이했다. 쿠팡이 제출한 상장 신고서에 따르면 2020년 쿠팡의 영업손실(Operating Loss)은 약 5억3000만달러(한화 약 5800억원)으로 다시 한 번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쿠팡의 순매출액(Net Sales)은 약 119억7000만 달러(약 13조1500억원)을 기록했다. 쿠팡은 매출 성장과 재무실적 개선을 동시에 만들고 있다.

쿠팡 상장 신고서에 기재된 쿠팡의 주요 수치. 쿠팡은 현금흐름 측면에서는 2020년 기준 흑자를 보고 있다.

쿠팡이 2021년 본격화 하고자 준비하고 있는 것은 ‘3자 물류’다. 그간 쿠팡 자체 물량을 처리하기 위한 비용으로 여겨졌던 쿠팡의 물류 인프라와 시스템을 3자 판매자에게 제공하여 ‘이익’을 만드는 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3자 물류 사업의 골자다.

쿠팡은 3자 물류 사업 본격화를 위한 전초전으로 지난해 7월 ‘로켓제휴’ 서비스를 론칭했다. 로켓제휴는 3자 판매자의 상품을 쿠팡 물류센터에 보관해두고 로켓배송 차량으로 고객에게 전달해주는 서비스다. 뒤이어 쿠팡은 지난해 10월 2019년 자진 반납했던 택배 운송사업자 자격을 재취득하기 위해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자 신청서를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 실제 쿠팡의 상장 신고서에는 쿠팡이 3자 판매자들에게 쿠팡이 구축한 풀필먼트 및 배송 프로그램(Fulfillment & Logistics by Coupang)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택배’를 넘어선 쿠팡의 물류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이커머스 업계에는 전무후무한 물류센터부터 배송, 반품 네트워크까지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한국의 종합물류기업이 B2B 기업물류를 중심으로 물류망을 형성했고, 이커머스 물류 시장 진입은 비교적 초기임을 봤을 때 쿠팡의 B2C 전자상거래 물류망은 대형 종합물류기업들의 전자상거래 물류 인프라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켓배송 인프라에 함께 결합되는 것은 ‘시스템’이다. 쿠팡은 로켓배송을 시작한 2014년 이래로 오랫동안 직접 물류망을 운영하면서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운영 노하우를 축적했다. 쿠팡의 상장 신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머신러닝 기술 기반으로 고객 수요를 예측해서 재고를 최종고객과 가까운 인근 물류거점에 전진배치 하는 식으로 물류 운영에 활용한다. 고객 주문과 목적지에 따라서 최적의 배송 라우팅을 조합하여 할당하는 데는 단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게 쿠팡측의 설명이다.

쿠팡은 직접 구축한 인프라와 시스템을 기반으로 2018년을 기점으로 택배업체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까지 치고 들어왔다. 익일배송이 기본이었던 로켓배송에 ‘새벽배송’과 ‘당일배송’을 입혔다. 최근에는 쿠팡이 쿠팡이츠를 통해 확보한 도보, 자전거, 이륜차, 자가용 등 크라우드소싱 물류 네트워크를 통해 ‘2시간 배송’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 또한 전해졌다.

‘역물류’, 예컨대 반품 물류 또한 택배업체가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쿠팡의 역량이 된다. 그 이유는 쿠팡이 배송기사를 직접 고용했기 때문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형태로 배송기사를 외주화한 국내 대부분의 택배업체와는 처음부터 접근 방법이 달랐다.

한국의 택배기사 대부분은 건당 수수료로 돈을 버는 개인 사업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다. 그리고 택배기사들에게 ‘반품’ 수령은 돈이 안 된다. 이커머스 화주사에 방문하면 한 번에 여러 개의 상품을 픽업할 수 있지만, 반품이라 하면 기껏해야 1~2건이라 택배기사가 받는 수수료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택배기사들의 반품 업무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쿠팡은 택배기사를 직접 고용하기 때문에 원하는 고객 서비스 품질에 맞춰서 반품 서비스 타임라인을 통제할 수 있다.

쿠팡이 ‘프레시백’이라 명명한 재활용 포장재를 확산할 수 있었던 이유도 쿠팡이 직접 구축한 물류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쿠팡 배송기사는 고객의 자택에 상품을 배송하면서 동시에 재사용 가능한 프레시백을 수거한다.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이 프레시백을 세척하는 라인을 비치하여 세척을 마치고 다시 한 번 고객 배송에 활용한다. 이 또한 외주화로 인해 택배기사의 반품 물류를 통제하기 힘든 택배업체에게 있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진입장벽이 된다.

김 의장은 편지를 통해 “고객에게 한 번 배송된 프레시백은 쿠팡의 배송 네트워크를 통해 다시 수거하여 재사용한다”며 “예전 쿠팡의 화물차가 배송을 마치고 공차로 복귀했다면 지금은 고객이 사용한 프레시백을 채워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반품 수거를 위해 자택 앞에 놓인 쿠팡의 프레시백. 쿠팡의 물류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포장재를 수거하고 세척, 재사용한다.

쿠팡이 2019년부터 시작한 싱귤레이션(Singulation) 또한 김 의장의 편지를 통해 강조됐다. 싱귤레이션이란 쉽게 말해서 단품 혹은 부피가 작은 상품을 종이 상자 대신 비닐백에 포장하는 방법이다. 비닐백 포장의 증가에 따라서 배송차량도 개조했다. 택배차량 안에 ‘선반(Rack)’을 비치했고, 그 안에는 토트박스를 적재한다. 토트박스 안에는 배송지역 별로 분류된 비닐 포장 상품을 미리 담아 놨다.

싱귤레이션을 위해 개조된 쿠팡 차량에 적재된 비닐백들. 싱귤레이션은 쿠팡의 크라우드소싱 물류 인프라 ‘쿠팡플렉스’ 자가용 배송기사의 적재율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이 또한 쿠팡이 자사의 유형 자산으로 내재화한 ‘택배차량’ 인프라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 된다. 택배기사가 자비를 들여 택배차를 구매하는 일반적인 택배업체는 따라하기 어렵다. 김 의장은 편지를 통해 “쿠팡은 상품 분류에서 배송까지 모든 과정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골판지 상자 포장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안할 수 있었다”며 “맞춤형 박스에 비닐 포장된 재품을 선분류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약 75% 이상의 골판지 포장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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