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무신사를 ‘커뮤니티 커머스’의 제왕으로 만들었나
무신사는 스스로를 국내 1위 온라인 패션 플랫폼이라 평한다. 지표에 따라서 이 말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거래액’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무신사를 이길 수 있는 패션 전문 이커머스 플랫폼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2019년 무신사의 거래액은 9000억원. 무신사보다 MAU(월순방문자수)가 높다고 평가되는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 지그재그와 에이블리의 같은 기간 거래액은 각각 6000억원, 1080억원이다.
고객 구매경험과 인지도 측면에서 보더라도 무신사는 주목할 만한 성과를 만들고 있다. 2020년 5월 오픈서베이가 발표한 패션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멀티브랜드샵/쇼핑몰 중에서 무신사의 인지도(71.6%)와 구매경험률(37.1%)은 조사대상 쇼핑몰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무신사의 재구매 의향 또한 39%로 조사대상 쇼핑몰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신사는 ‘돈’도 꽤나 잘 버는 이커머스 플랫폼이다. 공시에 따르면 무신사의 2019년 매출은 2103억원, 영업이익은 440억원 수준이다. 종합하자면 무신사는 생활용품과 식료품 등 소비재 시장 전반에서 경쟁하는 쿠팡과 네이버, 이베이코리아 같은 플랫폼들에 비해서 ‘규모’는 뒤처지는 게 맞다. 하지만 뾰족하다. ‘패션’ 카테고리 하나만 놓고 보자면 네이버와 쿠팡보다 한 수 위라는 업계의 평가를 받는다.
무신사는 특히나 ‘커뮤니티’ 영역에서 돋보이는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업계에서 평가 받는다. 그리고 무신사가 커뮤니티를 활성화할 수 있었던 무기는 ‘콘텐츠’다.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에 재직중인 한 기획 담당 실무자는 “커뮤니티는 쉬워 보이지만, 장기적 관점으로 오랫동안 돈을 못 버는 상황을 인내하면서 충분한 사람을 모은 이후 커머스를 붙여야 성공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익에 집착하는 유통 대기업들은 쉽게 진입할 수 없는 시장”이라며 “커뮤니티를 구축해서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이 무신사이고, 오늘의집, 화해, 스타일쉐어 같은 스타트업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작은 ‘커뮤니티’
전제를 달리 봐야 한다. 무신사는 커머스부터 시작한 회사가 아니다. 처음부터 ‘커뮤니티’로 시작했고, 커뮤니티에 ‘콘텐츠’를 붙인 미디어 회사로 발전했다. 무신사의 전신인 온라인 커뮤니티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 개설된 연도가 2001년, 무신사가 ‘무신사 매거진’이라는 이름의 패션 전문 웹진을 발행하기 시작한 연도가 2005년이다. 온라인 패션 스토어인 ‘무신사 스토어’를 론칭한 것은 무신사가 시작된 2001년 이후로 장장 8년의 시간이 지난 이후인 2009년이다.
커머스보다 ‘커뮤니티’와 ‘콘텐츠’가 먼저 붙은 무신사의 색깔은 커머스 론칭후 10년도 더 지난 지금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커머스와는 독립적인 ‘커뮤니티’ 인터페이스가 여전히 무신사에는 살아있다. 무신사닷컴에 들어가면 그 느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무신사닷컴 메인화면에는 ‘상품’이 강조되지 않는다. 메인화면 상단 배너에는 <핑크 코디 활용법>, <데님 팬츠의 종류>, <원픽 스니커즈> 같은 패션 콘텐츠가 자리한다. 26일 기준으로 총 9개의 배너가 메인화면 상단에 순차적으로 돌아가는데 그 중 상품판매와 관련된 것은 단 두 개(설날 할인 이벤트 안내, 브랜드 라이브 방송 및 할인 이벤트 안내)뿐이다.
무신사닷컴 메인화면 중앙에도 텍스트와 영상, 사진으로 편집된 다양한 패션 콘텐츠가 자리한다. 메인화면 우측에는 길거리 패션 스냅샷 콘텐츠가 위치한다. 그나마 상품판매와 관련된 것은 무신사닷컴 메인화면 좌측에 있는 ‘랭킹’인데, 이 또한 패션 트렌드를 알 수 있는 ‘콘텐츠’의 색깔이 강하다.
이 정도면 무신사가 어떤 느낌의 플랫폼인지 짐작되는가. 지금은 커머스로 주목받는 무신사는 여전히 ‘커뮤니티’와 ‘콘텐츠’가 강한 플랫폼이다. 그렇다고 무신사의 커머스가 약하다는 것은 아니다. 2009년 당시 100여개 브랜드가 소소하게 입점한 플랫폼이었던 무신사스토어는 2021년 현재 5700여개 패션 브랜드가 입점한 대형 플랫폼이 됐다.
무신사는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커뮤니티와 콘텐츠, 그리고 커머스의 완연한 연결을 만들었을까. 무신사가 꼽은 성장의 변곡점이 몇 가지 있다. 여기부터는 무신사의 이야기다.
커뮤니티는 ‘충성고객’을 만든다
무신사가 꼽은 첫 번째 성공요인은 ‘인터랙션’, 요컨대 상호작용이다. 무신사는 예부터 커뮤니티 회원간의 친밀한 상호 작용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했다. 클럽파티를 하기도 하고, 게임대회를 열기도 했다. 일례로 무신사 스토어가 아직 등장하지 않은 2008년, 무신사는 뜬금없이(?) 회원들을 대상으로 축구게임 ‘위닝일레븐’ 대회를 열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항상 고민이었다. 20만 명 이상의 회원들이 모여 있는 무신사 닷컴의 운영진들은 항상 회원들과 뭘 해야 즐거울까. 그것이 항상 고민이었다. 회원들에게 즐겁고 신나는 라이프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무신사 닷컴이라는 패션 포탈 커뮤니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고민들은 과거의 여러 이벤트들로 드러났고 항상 회원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진행 되어 왔다. 그러나 고민은 끝이 없었다. 항상 다음을 생각해야 했고 당연히 그 다음은 더욱 즐거운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해답은 나왔다. 그것은 바로 무신사 회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선정해 대회를 여는 것이었다.(무신사 매거진 발췌/글. 심준섭)
위 글처럼 무신사는 커뮤니티 회원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회원들간의 관계를 촉진하기 위해서 네트워킹 행사를 만들었다. 그렇게 진행한 여러 행사는 무신사의 웹진 ‘무신사 매거진’을 통해 콘텐츠로 제작돼 확대, 재생산 됐다. 아무리 봐도 위닝일레븐 대회는 이커머스와는 상관없어 보이고, ‘수익성’과도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무신사는 진행했다. 커뮤니티의 문법이다.
그렇다고 무신사가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도한 많은 노력들이 ‘커머스’ 측면에서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무신사는 커뮤니티 활성화를 통해서 ‘충성고객’을 얻었다고 자평한다. 무신사라는 플랫폼의 신뢰도가 커뮤니티를 통해 올라갔고, 향후 커머스 플랫폼까지 자연스럽게 고객을 유입하는 지렛대가 됐다.
무신사 관계자는 “무신사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든 활발한 네트워킹을 통해 회원들에게 친숙한 존재이자 함께 성장해온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며 “이러한 커뮤니티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무신사는 회원들의 의견과 문의에 빠르게 대처하고 소속감과 충성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콘텐츠는 ‘매출’을 만든다
무신사는 여전히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는 콘텐츠 사업자다. 2019년 기준 월평균 7700여건의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 ‘무신사 매거진’을 통해 선보인다. 현재 전국 주요 대학가, 카페 등 500여곳에 무료 배포하는 ‘오프라인 매거진’을 발행하기도 한다.
콘텐츠는 무신사의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축이다. 무신사에 콘텐츠를 소비하고자, 커뮤니티를 즐기고자 방문하는 회원수를 늘린다. 실제 2019년 오픈서베이의 조사에 따르면 새로운 트렌드를 보기 위해 무신사를 방문하는 회원이 65%, 특별한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 접속하는 회원이 48%를 차지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딱히 살 게 없는데, 무신사를 들락날락한다. 커뮤니티와 콘텐츠의 힘이다.
여기서 이렇게 유입된 회원들이 무신사의 커머스 매출과 별 상관없을 것이라 보는 건 오산이다. 무신사의 콘텐츠는 확실히 매출과 연결된다. 별 생각 없이 무신사에 올라온 패션 콘텐츠를 둘러보던 이들 중에는 해당 상품을 구매하고 싶은 이들도 있을 거다. 무신사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무신사 스토어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되도록 유도하는 장치를 플랫폼 곳곳에 깔아둔다.
일례로 무신사는 그들의 성공을 만든 대표 콘텐츠로 ‘스냅 사진’을 꼽는다. 앞서 언급한 무신사닷컴 메인화면 우측이라는 좋은 자리에 위치한 그 콘텐츠가 ‘스냅 사진’이다. 스냅 사진은 쉽게 말해서 일반인의 거리 패션 코디를 실제 촬영 사진으로 보여주는 콘텐츠다. 무신사가 뽑은 50~100명 내외의 리포터가 스냅 사진 콘텐츠 생산자가 된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패션 코디를 촬영해 올리고, 무신사로부터 콘텐츠에 대한 월정산을 받는다. 언론사 용어로 올드하게 표현하자면 일종의 독자 기자단이다.
스냅 사진 콘텐츠 하단에는 연관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페이지가 연결된다. 실제 사진에 나온 사람들이 착용한 아이템을 무신사 스토어에서 곧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연결한 것이다. 만약 착용한 아이템이 무신사 스토어에 없다면 유사한 아이템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요컨대 스냅 사진은 무신사 방문 회원들에게 있어서 시기별 패션 트렌드를 알 수 있는 콘텐츠다. 동시에 무신사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고객 구매를 유도하는 마중물이 된다.
무신사닷컴 메인화면 좌측에 배치된 ‘랭킹 서비스’ 또한 무신사가 자랑하는 성공 콘텐츠다. 무신사는 랭킹 서비스를 통해 783만명 회원들의 데이터(상품 매출, 판매 수량, 상품 조회수, 작성 후기수 등)를 기반으로 반응형 알고리즘을 짜서 ‘실시간’으로 상품 트렌드를 보여준다.
‘랭킹 서비스’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 현재 유행하는 패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콘텐츠가, 무신사에게는 매출로 연결시킬 수 있는 마중물이 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랭킹 서비스는 무신사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을 기준으로 집계된다. 만약 랭킹 서비스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상품이 있다면 재고가 품절되지 않는 한, 무신사 스토어에서 곧바로 구매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첨언하자면 무신사에는 ‘광고’ 수익모델이 없다. 랭킹에 ‘광고’가 개입돼 돈을 받은 상품이 상단에 노출돼 콘텐츠의 순수성을 깨뜨리는 것을 무신사는 경계한다. 무신사의 대표 수익모델은 상품판매건당 브랜드로부터 받는 수수료와 PB상품(무신사 스탠다드 등) 제작, 유통으로 버는 돈이다.
무신사 관계자는 “온라인, 모바일 시장이 영상으로 확대됨에 따라 무신사는 유튜브 공식 채널 ‘무신사TV’를 개설했다”며 “무신사TV는 무신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패션을 소개하는 ‘무신사 출근룩’과 같이 무신사 고유의 컨셉을 기반으로 실용적인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제공한다. 콘텐츠 형식과 채널은 다양해지고 있지만, 무신사를 이용하는 회원 및 대중과 소통하는 우리의 영향력은 더욱 확장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의 한 가정집. 신발을 좋아하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프리챌에 온라인 신발 동호회를 만들었다. 신발 동호회는 점점 커져서 단독 도메인을 가진 웹사이트가 됐다. 웹사이트는 2005년 웹진으로, 2009년에는 온라인 편집숍이 됐다. 그랬던 회사가 2019년 2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2020년 연거래액은 1조5000억원을 바라본다.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 커뮤니티이자 커머스, 무신사 이야기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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