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 디지털 태풍 밀려온다
보험산업에 디지털이라는 태풍이 일고 있다. 디지털 손해보험사의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시장 점유율과 미래 먹거리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디지털 손보사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영업을 하면서 직접 상품을 개발하는 곳이다. 보험상품은 기존 업계에서 취급하지 않았던 혁신적인 생활밀착형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지점이나 설계사가 없다. 모바일 앱이나 웹 등 온라인이 주요 채널이다. 따라서 디지털 손보사는 설계사, 점포 등에서 절약한 비용으로 IT기술에 투자할 수 있다. 보험료도 전통 보험사보다 저렴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국내에서 디지털 손보사 1호로 출범한 곳은 ‘캐롯손해보험’이다. 지난해 1월 SK텔레콤, 현대자동차 등이 합작해 만들었다. 캐롯손보는 스스로도 IT기업의 역할이 더 크다고 자부할 정도로 기술력과 의존도가 높다. 전체 직원 가운데 절반이 IT인력이다. 또 전사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기반으로 해, 어느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상품에는 IT기술이 녹아있다. 스위치를 켜듯 필요할 때만 보험에 즉시 가입할 수 있는 ‘스위치 온(ON)’ 상품 시리즈는 캐롯손보만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대표상품인 타는 만큼 내는 ‘퍼마일자동차보험’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보험금을 책정한다. 이 상품은 출시 11개월만에 신규 가입 계약수가 10만건을 넘어서며 시장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부터 디지털 손보사 설립을 준비했던 카카오페이도 진출을 공식화했다. 최근 금융당국에 예비인가를 신청했다. 올 하반기 출범을 목표로 한다. 카카오페이는 카카오 공동체의 서비스들과 연계해 생활밀착형 상품을 개발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페이는 “빠르게 변화하는 생활 환경 속에 다양한 혁신을 추진하고, 카카오 공동체의 여러 서비스들과 연계된 상품을 개발하며 시너지를 창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카카오페이와 가장 시너지를 내고 있는 카카오톡과의 연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자동차보험 비교서비스 사업을 구상했으나, 수수료 논란으로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보험 업계에서는 카카오와 마찬가지로 네이버가 언제든 사업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긴장을 놓지 않고 있다.
전통 보험업계가 빅테크 기업들의 진출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카카오뱅크의 사례로 비춰볼 수 있다. 카카오뱅크 출범 당시, 업계에서는 전통 금융사가 쌓아놓은 진입장벽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지금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카카오뱅크는 은행 모바일앱 이용률 1위를 기록하는 등 시중은행이 따라잡아야 할 경쟁자로 자리 잡았다.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아직 디지털 손보사의 막강한 영향력은 입증되지 않았으나, 전통 보험사들이 기존 사용자들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을 뒷받침 해주는 사례다.
이처럼 빅테크 기업들의 보험업 진출이 가시화되자, 전통 보험사에서는 디지털 손보사로 탈바꿈하거나 디지털 전환을 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6월 출범한 하나손해보험은 디지털 손보사로 탈바꿈하겠다고 밝혔다. 하나손보의 모태는 더케이손해보험으로, 지난해 하나금융지주가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당국로부터 승인을 받으며 자회사로 편입했다. 출범 당시 권태균 하나손보 사장은 ‘신생활보험 플랫폼’이라는 슬로건을 선포하며, 디지털 손보사를 목표로 내세웠다.
출범 후 약 3개월 후 하나손보는 새로운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주행거리가 짧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자동차보험 서비스를 포함해, 하나은행과 함께 기업성 일반보험 등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손보는 디지털 손보사로서의 완벽한 변신은 아직이라고 말한다. 하나손보 관계자는 “계획하고 있는 디지털 손보사로서 전환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전통 금융사들은 디지털 전환에 나섰다. 롯데손해보험은 최근 전 과정에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디지털그룹을 DT그룹으로 개편,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의 인프라 지원, 디지털 제휴 등에 주력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롯데손보의 의사결정은 데이터에 기반해 이뤄질 계획이다. 롯데손보 측은 “전 과정에서 보험업의 본질과 보험서비스의 특성을 감안한 완전한 디지털 전환과 미래형 세일즈 채널 구현을 완성해 빅테크와 경쟁할 수 있는 전통 사업모델의 디지털 혁신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삼성화재는 지난해 12월 조직개편을 통해 디지털본부를 신설했다. 카카오와 합작 설립이 무산된 후, 독자적으로 디지털 손보사 설립을 검토했으나 결국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디지털본부는 사업 방향성을 정하고, 부서별로 분산된 디지털 업무의 시너지를 유도하는 등 디지털 업무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았다.
교보생명은 올해를 디지털 기반 구축의 해로 정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지난 8일 전사경영전략회의에서 “양손잡이 경영을 위한 출발점으로 올해를 디지털시대 성공 기반의 구축의 해로 정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난해 교보생명은 디지털혁신지원실을 DT전환실로 확대개편했다. 이밖에 한화생명 KB손해보험, DB손해보험 등도 디지털 조직개편을 진행하고 관련 인사를 단행했다.
한편, 전통 보험사들의 디지털 전환이 놀라운 이유는 기존 영업방식과 산업적 특징 때문이다. 지금까지 보험상품 판매는 주로 인맥으로 이뤄지고 있다. 주요 고객층인 40, 50대는 지인 권유 등으로 보험상품을 가입한다. 게다가 보험상품은 한 번 가입하면 잘 바꾸지 않는 특성이 있을 뿐더러, 보험 설계사가 비싼 상품을 팔수록 더 큰 이익을 가져가는 수수료 기반이다. 이미 뿌리깊게 자리잡은 전통 보험업의 관례를 디지털 손보사가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홍하나 기자>0626hhn@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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