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와 영화수입배급사협회의 갈등, 그 본질은?


또 다시 불붙은 ‘월정액 구독 서비스’ 논쟁


‘월정액 구독 서비스’와 관련한 논란이 또 다시 벌어졌다. 이번엔 무대가 OTT(인터넷으로 방송, 영화 등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영화수입배급사협회(수배협)가 국내 OTT 업체들을 상대로 칼을 빼들었다. 정산과 관련한 새로운 합의를 요구하며 우선적으로 콘텐츠 공급 중단을 발표했다. 대상은 왓챠, 웨이브, 티빙 등 국내 OTT 업체들이다. 
[box type=”bio”] 수배협과 국내 OTT 간 논쟁 일지

  • 2020.07.17 수배협 ‘변화하는 한국 영화시장의 독자적 VOD 생존방법, VOD 시장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대처방안’ 공청회 개최. 이 자리에서 국내 OTT 서비스에 영화 콘텐츠 서비스 중단 결정
  • 2020.08.05 수배협, 공청회 협의 결과 발표. 콘텐츠 공급 중단 결정 보도자료 배포
  • 2020.08.05 왓챠, 수배협의 자료 배포에 대한 공식 입장 발표
  • 2020.08.~ 수배협의 2차 입장발표 예정. 수배협, 왓챠 향후 대화의 자리 마련할 것으로 예상

수배협 발표로 줄어드는 콘텐츠 수 : 전체 100여개의 영화수입배급사 중에 수배협에 소속된 14개 회사가 권리를 가지고 있는 콘텐츠들이 종료될 예정. 왓챠에서 서비스되는 전체 약 8만여편의 콘텐츠 중에 약 400여편의 영화가 종료됐거나 이달 중 종료.

수배협의 입장 발표는 지난 5일 있었다. 앞서 지난달 17일 수배협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서 협회사 간 이뤄진 협의가 바탕이 됐다. 콘텐츠 공급 중단 대상에서 대표적인 OTT 서비스 ‘넷플릭스’가 빠진 것은 이 회사가 계약 기간 동안의 판권을 한 번에 사오는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와는 달리 왓챠 등 국내 OTT 기업들은 월 1만원 안팎의 이용료를 시청 회차별로 나눠 갖는 수익공유(RS) 정산방식을 채택했다. 수배협 측은 “월정액 구독서비스에서 수익공유 정산 방식을 채택하면 기존 IPTV 대비 영화사나 배급사의 수익이 크게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또, 회차별 정산 구조에서 시리즈로 나오는 드라마를 영화와 함께 취급하는 것은 영화에 불리하다고도 주장했다.

당사자 중 하나인 왓챠는 수배협의 발표 당일 즉시 입장을 밝혔다. 왓챠 측은 수배협의 대화 요청에 응하면서도  “구독형서비스(SVOD)로서 왓챠에는 건별 결제가 거의 없는 구작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오히려 저작권자들에게 새로운 수익 발생의 기회가 생긴다”라고 설명했다. 또, “영화만을 위한 개별 과금 시스템을 마련하라는 수배협의 주장은 왓챠에게 구독형 OTT 모델 자체를 버리고, IPTV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항변했다.

이 논쟁에서 왓챠가 유독 부각되는 이유는 웨이브와 왓챠의 수익 모델 차이 때문이다. 왓챠는 모든 콘텐츠를 월정액 구독 서비스로 제공하는 반면, 웨이브나 티빙은 월정액 구독 서비스 외에 IPTV와 같은 영화 콘텐츠 건별 결제 모델도 함께 제공한다. 또, 웨이브와 티빙은 애초 국내 TV 시리즈에 강점을 갖고 있으므로 영화 구작 서비스를 중점적으로 하는 왓챠와는 또 다른 상황이다.[/box]


콘텐츠 유통 구조의 틀을 뒤흔든 플랫폼


앞서 월정액 구독 서비스와 관련한 논쟁에 ‘또’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같은 논란이 음원이나 도서 시장에서도 반복됐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플랫폼’의 등장이 있다. 콘텐츠를 사고 파는 시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오면서, 거래의 무대가 플랫폼으로 달라졌다. 핵심은 결제 모델의 변화다. 이 플랫폼이라는 공간은 콘텐츠 판매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월정액 구독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공급자와 소비자를 잇는 유통구조의 틀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플랫폼의 힘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찾느냐에 달렸다.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획기적으로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혹은 파격적인 구성의 상품을 공급해야 한다. 더 많은 상품을 더 저렴하게 제공하는 방안을 콘텐츠 플랫폼들이 채택했다. 일정 금액을 내면 무제한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의 월정액 구독 서비스는, 확실히 단건 결제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그러나 공급자 입장은 다르다. 공급자의 경우에는 당장 월정액 결제 서비스 도입이 손해다. 플랫폼이 콘텐츠 공급자에 주는 당근은 “파이를 키워 결과적으로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갈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지만, 콘텐츠를 공급하는 입장에서는 아직 파이가 덜 커진 상태에서 당장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건당 결제를 해야 영화를 볼 수 있는 IPTV에 비해 월정액 구독의 수익공유 정산 방식이 손해라는 생각은 영화 산업 관계자들 사이에 팽배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기자와 통화한 수배협의 손희준 사무국장은 “(공청회 현장에서) OTT 플랫폼에 6개월 서비스했는데 1만5000원을 정산받았다는 곳도 있더라”라며 “지금처럼 회차 대비로 수익을 정산하는 방식에서는 (플레이당 콘텐츠 수익이) 80원이 될 지, 100원이 될 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플랫폼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주장도 어렵다. 이미 소비자들이 구독 모델의 장점을 맛봤다. 여기서 딜레마가 온다. 손희준 사무국장은 이같은 상황을 “월정액의 함정”이라고 불렀다. 그는 “영화 한 편을 보는데 3000원을 내야 하는 IPTV와 월 1만원만 내면 수백, 수천편을 볼 수 있는 월정액 모델이 있다면 당연히 소비자들은 월정액 모델을 택할 것”이라며 “플랫폼에 수익이 가는데, 산업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수익은 줄어드는 상황이 지속되면 앞으로 좋은 콘텐츠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극장가로 향하는 발길이 뚝 떨어진 상황이 영화산업의 마음을 더 급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 등 OTT가 빠르게 성장한 것은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의 외출이 뜸해진 때였다. 손 사무국장에 따르면 이전까지 IPTV의 매출에는 큰 타격이 없었다. 지금의 입장 발표는 앞으로 논쟁에서 주도권을 쥐고 산업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즉, OTT라는 판을 우리도 같이 짜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아직 플랫폼도 이들의 입장을 모두 받아들일만큼 성장하진 못했다. 왓챠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OTT가 커졌다고 하지만, 극장에서 줄어드는 매출을 상쇄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당장 왓챠도 적자다. 넷플릭스처럼 모든 IP의 판권을 사올만한 자본이 없다. 왓챠가 넷플릭스와 경쟁하지만,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제작 방식’을 택할 수 없다. 대신 ‘모든이의 취향을 존중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콘셉트를 잡은 것도 비교적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구작을 월정액으로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들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스트리밍은 과연 음원 시장을 죽였을까?


밀리의서재나 리디북스가 전자책 월정액 무제한 서비스를 들고 나왔을 때 출판사들 중에서는 “넷플릭스 형 구독 모델을 막아야 한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 시장을 죽였듯이 전자책 구독 서비스가 도서 시장을 죽일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 곳이 많았다. 정말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 산업을 위축시켰을까?

지난달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9 음악 산업 백서’를 보면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2014년 이후 음악시장의 성장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건 스트리밍시장의 확대와 공연시장의 꾸준한 성장세다. 스트리밍시장의 성장이 보다 고무적인 건 전체 스트리밍시장 상승세(34%)와 유료 스트리밍시장 상승세(32.9%)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제한 정액제 스트리밍서비스나 창작자와 스트리밍서비스 사업자 사이의 적절한 수익 분배 구조 등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다수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스트리밍시장에 있어서만은 ‘대가를 지불하고 음악을 듣는다’는, 당연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당연하지 않은 전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보고서 33~34p)

물론, 손에 잡히는 CD나 테이프의 판매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만약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반 시장을 대체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수익은 지금보다 더 크지 않겠느냐는 반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예 시대가 온라인으로 바뀌는 걸 막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히려 음반 시장을 위축 시킨 것은 불법 다운로드 시장이었고, 유료 구독 스트리밍이 불법 다운로드 시장을 대체함으로써 수익을 정상화 시키고 있다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물론, 영화 산업 관계자도 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월정액 구독 서비스의 덩치가 커져 IPTV 시장을 위축시킨다는 풍선효과를 우려하면서도 “세계적 대세로 가는 것이 OTT라는 것은 인정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공급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꺼낸 것은  스트리밍이 대세로 가는 그 과정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공급하는 주체들이 제 목소리를 내야 새로운 경제 질서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손희준 사무국장은 왓챠 등과 대화의 자리 마련을 요구하면서 “밥그릇 싸움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왓챠 측도 ” 공청회 뿐만 아니라 각 수입배급사, 영화산업 관계자와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라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적극적으로 참석해 논의를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대화에 응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수배협 측은 국내 OTT와 대화를 시작으로 종국에는 넷플릭스와도 대화를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일단, 먼저 대화 테이블에 오를 수배협과 왓챠, 둘 사이 입장차가 쉽게 좁혀지긴 어려워 보인다(웨이브 측은 아직 대화 참여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IPTV처럼 단건 결제 방식도 갖고 있으니, 콘텐츠 공급업체 쪽에서 제공 방식을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그러나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왓챠 측은 “왓챠는 홀드백을 빠르게 요구한 적도, 요구할 계획도 없다”라고 말했다. 즉, 지금보다 더 늦게, IPTV로 충분히 수익을 본 이후의 작품을 공급하는 방안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보다 핵심인 ‘정산 방식 변화’와 관련해서는 난항을 겪을 조짐이다. 극적인 타협안이 가능할지, 그래서 플랫폼과 콘텐츠 공급업체 간 서로 만족할 상생의 방안이 나올지 앞으로가 주목되는 바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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