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택배’를 어떻게 바꿨나 (feat. 한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택배 물동량은 과거보다 20% 이상 성장했습니다. 물론 과거 메르스, 신종플루 등 감염병이 확산됐을 때도 택배 물동량은 늘었지만, 그때와는 다릅니다. 과거와 달리 물동량 상승 추이가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김현우 한진 대표이사 직속 사업총괄부 상무)”

코로나19가 택배업계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비대면’이 트렌드를 넘어선 일상으로 접어들었다. 비대면 문화를 뒤에 업은 이커머스 시장이 무시무시하게 성장하고 있으며, 관련된 파생 상품인 ‘택배’ 또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택배업계에는 기분좋은 소식이지만, 마냥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한 편에서는 택배 배송의 물량을 흡수하는 대체재의 존재가 관측되니 ‘배달’이다. 음식배달을 넘어선 물류망이 등장했다. 이륜차 기반의 물류망이 과거 택배로 배송되던 상품 수요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도심지에는 오프라인 유휴 공간과 다크스토어를 활용한 마이크로 물류 거점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택배업체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어떻게 빠르게 바뀌는 경쟁 상황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난 3일 비욘드엑스가 주최한 <라이프 플랫폼 컨퍼런스 2020>에서 김현우 한진 사업총괄부 상무가 발표한 내용을 키워드로 꼽아 정리했다.

비대면

사실 택배는 원래부터 비대면이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택배는 고객 부재중 배송이 일반적이었다. 김현우 상무의 발표에 따르면 택배기사가 고객을 만날 확률은 통상 15%. 85%는 고객을 만날 수 없다.

코로나19 이후로 바뀐 게 있다면 고객을 대응하는 관점이다. 고객 대응 관점에서 ‘사람’에서 발생하는 이슈보다 ‘디지털’ 관점을 신경 쓰게 됐다. 일례로 한진은 과거 아침 조회시간에 택배기사들에게 ‘고객에게 인사하는 법’, ‘옷 입는 법’, ‘현관 응대법’과 같은 것을 교육했다. 예컨대 초인종을 ‘띵띵띵띵’ 누르지 말고, ‘띵동~, 띵동~’ 간격을 갖고 누르라는 식의 서비스 교육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 한다. 고객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코로나19가 만든 가까운 변화는 ‘문앞 배송’이 당연해진 거다. 가까운 과거 택배업체들은 고객 방문 전에 전화를 하여 부재중 여부와 상품 수령 장소 등을 확인했고, 이를 ‘해피콜’이라 불렀다. 해피콜을 하지 않으면 클레임을 제기하는 고객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고객들이 해피콜을 하지 않아도 대부분은 양해를 해준다는 게 김 상무의 설명이다. 해피콜 프로세스는 문앞 배송을 하고 택배기사가 사진을 찍으면 상품 도착 메시지가 사진과 함께 고객에게 카카오톡 알림톡으로 발송되는 프로세스로 바뀌고 있다. 한진 또한 디지털 관점의 고객 응대를 고민한다.

흩어지는 배달과 배송의 경계

물류업계 관계자가 아니라면 ‘배달’과 ‘배송’이 뭣이 다른지 잘 모를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배달은 ‘근거리’ 이동에 따른 물류다. 음식 배송보다 음식 배달이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이는 이유다. 배송은 조금 포괄적인 개념인데 단거리보다는 장거리 이동에 따른 물류에 주로 쓰인다. 택배는 흔히 배달보단 ‘배송’으로 표현되는 이유다. 처음부터 장거리 이동 물류를 뜻하는 ‘수송’, 한정된 공간 안에서 물류를 뜻하는 ‘운반’이라는 용어도 있으니 참고하자.

김 상무에 따르면 이 ‘배달’과 ‘배송’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진다. 이륜차 물류 중심의 물류망을 보유하고 있는 배달대행업체들이 ‘음식 배달’을 넘어서 택배로 배송할 법한 상품 카테고리까지 확장하고 있다. 택배 프로세스에 반드시 수반되는 서브터미널 집하, 허브터미널 입고 및 분류, 전국 서브터미널로 간선운송을 하여 소비자까지 배송하는 구조가 의미가 없어진다. 일례로 국내 한 배달대행업체는 ‘현대모비스’ 대리점까지의 자동차 부품 공급 물류를 이륜차로 수행한다.

김 상무에 따르면 배달업체들의 배송 확장은 택배업체들에게 위협이 돼 다가오고 있다. 식료품 업계를 중심으로 이미 변화가 관측된다. 코로나19 이후 주문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즉석밥, 간편식품 같은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택배업체를 굳이 사용하지 않고 고객에게 이륜차 즉시배달을 하는 현상이 관측된다.

그래서인지 한진뿐만 아니라 많은 대형 택배업체들이 최근 이 ‘즉시배달망’을 확충하고자 고민하는 움직임이 관측된다. 요컨대 CJ대한통운과 배달의민족이 같은 영역에서 ‘물류’로 경쟁하는 것도 가까운 시일 안에 다가올 수 있는 미래다.

마이크로와 메가의 공존

배달과 배송의 경계가 흩어지면서 물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 과거 보관 운송 중심 기능을 갖춘 RDC(Regional Distribution Center)로 대표되던 물류 운영 개념은 최근에는 소비자 중심 거점 기반 FDC(Front Distribution Center)로 넘어가고 있다는 게 김 상무의 설명이다. 여기에 결합되는 대표적인 키워드가 이커머스 물류와 연결되는 ‘풀필먼트(Fulfillment)’다.

여기에 FDC를 뛰어넘어 온오프라인을 연계하는 ODC(On-Demand Distribution Center) 개념의 센터가 생기고 있다는 게 김 상무의 설명이다. 인구 밀집지에 위치한 오프라인 매장들이 ‘온라인 마켓’ 물류센터 용도로 변하면서 즉시 배달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전국 오프라인 매장은 물론 랄라블라, 올리브영과 같은 H&B스토어가 온라인 판매를 지원하는 시설로 바뀐 지 오래다. 허브센터를 거쳐 하루를 거쳐 오는 택배와 다르게 30분 즉시배달이 가능하다.

한 편에서 택배회사는 넘쳐나는 물동량을 감당하기 위해서 메가 허브센터를 확충하고자 분주하다. 종전보다 물류센터 최대 처리량(Capacity)을 늘리는 것이 맥이다. 요컨대 허브의 대형화, 지역 물류센터의 분산화가 동시에 관측되는 게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트렌드 확산에 의한 이커머스판의 대표적인 변화다.

코로나19 이후의 한진

한진은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시대의 배송시장 변화에 대응하고자 5가지 비즈니스 전략 키워드를 준비했다. ‘사용자 경험’, ‘디지털 감성’, ‘온디맨드’, ‘공간’, ‘CSV(Creating Shared Value)’가 그것이다. 이건 비단 배송 영역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배달’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김 상무의 강조 사항이다.

첫째, 사용자 경험. 한진에게 있어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에게 주는 디지털 경험이다. 과거 한진이 ‘텍스트’를 기반으로 고객에게 택배 가시성을 제공했다면 그 개념이 진화한다. 택배에서도 마치 ‘카카오택시’처럼 실시간 가시성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나온다. 쿠팡과 마켓컬리와 같은 이커머스 업체들이 했듯, 상품 도착 정보를 사진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카카오톡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과 결합돼 제공된다. 이게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 작은 차이점 하나가 향후 택배업체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는 게 김 상무의 설명이다.

둘째, 디지털 감성. 김 상무에 따르면 단순히 디지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고객의 ‘감성’을 건드려야 한다. 예를 들어서 택배를 받는 고객이 택배박스 송장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아빠, 생일축하해”와 같은 메시지가 송출되는 식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사라진 쿠팡 로켓배송의 감성이 디지털판으로 택배에 재현된다.

셋째, 온디맨드. 이 또한 한진이 속도보다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고객이 왜 새벽배송에 열광했을까. 김 상무는 그 이유를 ‘빨라서’라 보지 않는다.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갖다 줬기 때문이다. 한진도 향후 현재 택배 프로세스에선 구현되지 않았던 고객이 시간을 선택하면 택배기사가 해당 시간에 택배를 맞춰서 배송하고 반품 수거하는 프로세스를 구현하고자 준비한다.

넷째, 공간. 한진은 배달 속도에 대응하고자 다양한 ‘픽업 장소’를 제공하는 옵션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준비한다. 은행과 편의점 등지에 설치된 무인보관함을 연계한 서비스를 고민하고 있다. 이는 오프라인 매장 입장에서도 유인이 있다. 택배를 수취하기 위해 방문한 고객이 매장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편의점에 택배를 수령하기 위해 방문한 고객이 담배 한 갑, 주스 한 병을 함께 사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CSV. 김 상무가 이야기하는 CSV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다르다. CSV란 회사가 보유한 역량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상생 모델을 만들어서 각자의 경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관련 사례로 한진은 지난 5월 ‘농산물 기프트카드’를 만들었다. 기프트카드로 간편하게 함안에서 수확한 수박을 선물할 수 있게 만든 거다. 선물 받은 사람은 QR코드를 스캔하여 주소만 입력한다면 산지에서 생산된 수박을 집 앞까지 받을 수 있다. 받는 사람은 필요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고, 판매자는 좋은 가격에 상품을 팔 수 있고, 택배 수요도 발생하기 때문에 수요자, 판매자, 택배업체 모두가 이익을 보는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게 한진측 평가다.

김 상무는 “우리는 비대면 시대로 가고 있지만, 고객과 어떻게 접촉할 것인가가 전략의 핵심”이라며 “배송과 배달의 본질은 곧 고객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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