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올 4월부터 ‘오픈 이노베이션 촉진 세금 제도’라는 아주 핫한 제도가 생겼다. 대기업과 벤처의 협업을 촉진시키는 조세 제도인데, 민간 기업이 10년 미만 스타트업에 10억원 이상 투자할 경우 법인세를 25% 감면해주는 것이다.”

국내서는 대기업(일반지주회사)의 벤처투자사(CVC) 설립 허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기업들의 벤처투자를 촉진 시키기 위한 조세 제도가 지난 4월부터 시행됐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25일 서울 강남구에서 연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에서 발표자로 참여한 일본 현지 벤처투자사 코로프라넥스트의 타케베 에이카 심사역이 ‘오픈 이노베이션 촉진 세금 제도’가 시행된 후 현지 분위기를 소개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업이 자신이 가진 자원을 외부에 공유하면서 혁신을 위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다른 기업에서 끌어오는 것을 말한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함으로써 혁신의 마중물을 얻게 되고, 스타트업은 안정적인 운영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국내서도 CVC 설립 허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 오픈 이노베이션의 순기능을 강조한다. 일본의 오픈 이노베이션 촉진 세금 제도는 현지의 CVC나 대기업, 중소기업 등이 설립 10년 미만의 스타트업에 10억원 이상을 투자하면 25%의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을 말하는데 오는 2022년 3월까지 한정된 기간에만 적용되는 법이다.

타케베 에이카 심사역에 따르면 일본 경제계에서는 해당 조세제도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적절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법인세 감면 혜택을 본다는 측면에서 이를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만약 10억원을 투자할 경우 법인세는 이중 75%에 해당하는 7억5000만원에만 적용되므로, 2억5000만원에 해당하는 법인세 만큼 이득이다. 최근 일본 경기 회복으로 기업에 잉여자금이 늘어나고 있는데, 새 조세 제도로 이 돈이 스타트업 투자로 흘러들어오도록 유도했다. 타케베 심사역은 “실제 이 제도 때문에 금액을 올려서 투자하는 것을 검토하는 VC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오픈 이노베이션 촉진 세금 제도의 허점도 언급됐다. 자금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흘러넘치면서, 단순히 기업의 가치만 올리는데 집중될 것에 대한 우려다.





타케베 에이카 심사역은 “(새로운 조세제도는) 기업이 성실하고 진지하게 스타트업과 협업할 수 있도록 투자 금액을 늘리는 걸 독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들도 투자 활성화를 위한 CVC 설립에 나서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도 전했다. 예컨대 ‘도쿄 디즈니랜드’를 운영하는 오리엔탈  랜드도 최근 CVC를 설립했다. 현지 디즈니랜드가 코로나19로 인한 휴업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다. 타케베 심사역에 따르면 이는 오리엔탈 랜드의 특별한 상황은 아니다. 화장품 회사인 시세이도나 자본투자와 거리가 멀 것으로 보이는 우체국, 철도회사 등도 모두 투자 전문 자회사를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이후 매년 평균 스무개 정도의 CVC가 일본에서 생겨나고 있다.

임정욱 티비티(TBT)파트너스 대표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일본보다 더 빠르게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에는 제약이 있다. 금산분리법으로 인해 일반 지주회사의 CVC 설립이 아직은 허락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재벌이 CVC를 사금고화하고, 일감 몰아주기 등의 폐해가 생겨날 것을 우려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민간의 투자가 활성화돼야 투자를 회수할 수 있고, 대기업 역시 혁신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임정욱 TBT파트너스 대표는 올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도전 과제 중 하나로 오픈 이노베이션에 열중하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상생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여부를 꼽았다. 임 대표가 “CVC 규제 완화로 국내 벤처생태계를 활성화하기”를 꼽으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서 벤처 투자 금액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고, 거액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도 많아졌지만 (투자금에 대한) 회수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나온 이야기다.

이날 토론에는 코로나 19 이후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됐다. 특히 미국에서 활동중인 세마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의 김범수 파트너는 온라인으로 발표에 참여해 “미국은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보건 위기, 경제 위기, 인종간 불평등 문제가 겹쳐 한국으로 치면 메르스 사태 중에 촛불집회와 탄핵이 벌어지는 격”이라며 “한국에서는 ‘평생직장’ 개념이 IMF 때 사라졌는데 이번 사태로 미국의 젊은 세대가 무력감과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미국 시장에서 투자 시장은 위축될 것으로 봤다. 기본적으로 기존 스타트업에 대한 후속 투자가 줄어들 것인데, 그렇게 될 경우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 역시 따라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다. 김범수 파트너는 “지금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반전이 없다면 초기 투자도 줄어들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해 상시적인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관련한 어려움을 해결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사업모델이 필요할 것이고 여기에 투자 기회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임정욱 대표도 코로나19로 인한 나타난 사람들의 일과 직장 생활의 변화가 스타트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 생활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시기, 스타트업에는 기회가 많다”며 “든든한 벤처투자자가 뒤에서 버티고 있고 적절한 투자가 이어지는 한 스타트업의 미래는 밝아보인다”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