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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은 왜 ‘웃튜브’라는 부캐가 필요했을까

은행 유튜브를 찾아보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은행이 낸, ASMR(원래는 자율감각쾌락반응이라는 뜻인데, 통상 잠이 잘 오도록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을 말한다)로 자기 회사 약관을 읽어준다는 그런 미친(?) 아이디어를 보기전까지는 말이다.

YouTube video

채널의 이름은 웃튜브. 우리은행이 디지털 콘텐츠 제작기업 더에스엠씨 ICS와 손잡고 만들었다. 우리은행은 원래 ‘우리은행’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웃튜브는 일종의 부캐(부캐릭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부캐가 본캐(본캐릭터)보다 인기 있다. 흥미롭고 재미있어서다. 현재 웃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상의 수는 143개. 각 영상마다 평균 조회 수가 수만회를 넘는다. 약관 읽어주는 ASMR 외에도, 각 직업군의 월급을 알려주는 ‘쇼미더페이’나 은행에서 근무하는 두 남녀가 나와 경제 상식을 전달하는 ‘은근남녀썰, 소개팅의 형식을 빌린 ‘초면에 실례지만’ 같은 콘텐츠가 웃튜브를 통해 나왔다.

어떤 사람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지난 10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더에스엠씨 ICS 사옥을 찾아 최원서 우리은행 소셜미디어팀 차장과 ICS 소속 김건우 팀장을 만났다. 두 팀이 지난 4년 동안 합을 맞춰 웃튜브를 기획하고 키워왔다. 다음은, 예상보다 진지해보이는 첫 인상의 두 사람과 나눈 대화다.

최원서 우리은행 차장과 김건우 더에스엠씨 ICS 팀장. 두 팀이 합을 맞춰 ‘웃튜브’를 기획하고 키워냈다.

 

웃튜브 ASMR 영상을 보고, 꼭 만나보고 싶었다. 대체 누가 이런 기획을 했을까 하고.

김건우 ICS 팀장(이하 김건우)= 나는 은행 브랜드를 담당하는 마케터이기 전에 은행의 고객이다. 고객 입장에서 서류를 다 읽지는 않는다. 이 서류를 어떻게하면 조금이라도 읽히게끔 만들것인가에서 고민을 시작했다. ASMR이 한 사람의 유튜버와 유저 간 교감하는 콘텐츠라는 특성이 있다. 팬덤이 형성되기 수월했고, 실제로 시청자들이 “다음에는 이런걸 해달라”라고 주도적으로 요청하기도 한다.

우리은행이라는 본래 채널이 있는데 웃튜브를 별도 기획한 까닭이 있나?

최원서 우리은행 차장(이하 최원서)= 자사 브랜드가 우호적이고 선도적이면 굳이 자사 브랜드 채널 을 버리고 서브 채널을 만들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나이키나 애플 같은 곳이 그렇다. 업종마다 다른데, 은행은 이미지가 유튜브에 핏(fit)하지 않다. 친근하지 않고, 고리타분하고 딱딱하다. 그래서 우리가 재미있게 만들려고 해봐도 브랜드가 가로 막는다.

내 브랜드가 내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장애물이 될 때는 브랜드를 버리는 전략으로 간다. 유튜브 안에서도 경제 채널이 여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중에서도 재미있는 걸 해서 상위 랭크로 가자는 목표를 잡았다. 그러려면 우리은행 브랜드를 버리는게 중요했다. 회사 채널 안에 녹아드는 것보단 메시지를 전달하는게 중요한 거니까.

우리은행 뿐만 아니다. 다른 기업들도 최근에 모두 유튜브에 자체 브랜드 채널을 운영한다.

김건우= 4~5년 전에는 대한민국 기업 100의 90은 네이버 블로그나 티스토리 채널을 운영했다. 블로그가 기업의 소셜 허브 채널이라고 말을 했던 적이 있다. 그 허브 채널이 페이스북을 거쳐 유튜브로 넘어오는 시점이다. 올해 들어서 그 현상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우리은행은 유튜브에 선두주자로 들어온 케이스다. 유리한 고지에서 2020년을 보낼 수 있었다.

운영 측면에서 보면, 블로그가 허브 채널일 때는 핵심이 되는 콘텐츠를 론칭하고 이를 기업의 사이트나 부수적으로 운영하는 채널에 연결되게끔 하는데 집중했다. 그런데 지금은 유저들이 능동적으로 변했다. 유튜브를 핵심 채널로 기업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유저가 이를 보고 매력을 느끼면 기업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 네이버 채널로 본인들이 직접 이동한다. 반대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를 보고 유튜브로 유입되기도 한다. 때문에 오리지널 콘텐츠를 유튜브를 통해 론칭하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에는 각 채널의 특성에 맞게 편집해 아카이빙시키고 있다. 어느 채널이 우위라기 보다 서로 다른 채널에서 각자 (트래픽이) 유입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무래도 기업들이 1020 세대를 타깃하기 때문에 유튜브 운영에 열심일까?

최원서= 금융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 타깃이다. 예전과 다르게 인구 통계학적 타깃이 무의미해졌다. 관심사로 타깃에 대한 분류가 재편성됐다. 예를 들어 ‘러닝’에 관심이 있다면, 세대 구분 없이 모여서 한다. 웃튜브는 금융과 경제를 어렵지 않게 다가설 수 있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김건우= 웃튜브에서 메인으로 밀고 있는 콘텐츠가 “초면에 실례지만”이라는 경제관념 소개팅 콘텐츠다. 금융과 재테크에 관심 있는 사람을 코어 타깃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실제 시청연령이 넓더라. 연령대가 어떻든간에,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무슨 대화를 하는지 궁금해 한다. 처음 만나서 돈 얘기 하기 어려운데, 그런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준다. ‘본격 경제 관념 소개팅’이라는 슬로건 아래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 수익은 얼마인지, 돈은 어떻게 모으고 있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소개팅이라는 후킹한 아이템을 갖고 경제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거다.

실제로 채널에 론칭하는 시리즈도 전 연령대를 포괄할 수 있게 만든다. 채널 지표도 10대부터 50~60대까지 고르게 찍힌다. 은행에 취업하는데 관심있는 20대를 겨냥한 ‘은근남녀썰’도 있고,  50~60대가 보는 노인 콘셉트의 ‘백세 히어로즈’도 진행한다. 실제로 저는 웃튜브를 방송국이라는 생각을 갖고 운영한다. 방송국이 여러 연령대와 관심사를 위해서 여러 시리즈를 편성하는 것처럼, 웃튜브도 그렇게 콘텐츠를 기획한다.

ASMR이나 소개팅 같은 기획을, 의사결정권자들이 한 번에 받아들였을까 싶은데

최원서= 팀 내부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그런게 유리하다. SNS 홍보팀이 생기고 나서의 특징인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사의 오케이나 만족이 아니라서다. 우리가 만족시켜야 하는 상대가 명확히 존재한다. 그들이 얼마만큼 좋아하고 반응하는지 명확한 수치가 존재한다.

김건우= 우리를 벤치마킹하는 사람들은 위에서 (하라고 해서) 시작한다. 주변을 의식하고 시작하는 분이 많다. 그렇지만, 실제로 채널이 잘 운영되려면 자생가능한 콘텐츠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KPI 측정은 어떻게 하나? 가입자 수, 조회 수로만 보나?

최원서= 그런 부분이 어렵다. 당장 눈에 보이는 수치는, 진짜 수치가 아니다. 단순히 구독자 수나 좋아요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똑같은 광고비 대비 얼마 만큼 클릭해서 반응하는지, 얼마만큼 공감하고 댓글을 쓰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단순히 보고서에 적는 수치로만은 알 수 있는게 아니고, 진짜 반응 수치를 캐치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채널 운영이 실제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나?

최원서= 영업점에서 “이 콘텐츠 보고 상품 가입하러 왔다”는 우수사례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상품 매출이 채널 운영의 본목적이 아니다. 회사에 상품 판매가 목적인 디지털 마케팅 팀이 별도로 있다. 목적에 따라 콘텐츠를 만드는 색깔도 달라진다. 우리팀은 브랜딩을 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

브랜드에서 채널을 만들 때 어떤 걸 가장 먼저 고려할까? 우리은행의 사례로 말해달라

김건우= 기업의 모델이나 연예인 영향력을 활용해 상품 출시를 알리는 등의 활동을 하려면 브랜드 미디어 채널이 필요 없다. 채널에서 중요한 것이 유저와 쌍방향 소통이고, 그 부분에서 지금 가장 대세인 곳이 유튜브다.

최원서= 회사 소개를 하기 위해 연예인 광고를 주로 올리는 곳들도 있다. 은행들도 아직 그렇게 많이 한다. 우리는 좀 다르다. 예컨대 상품 판매에 있어서, 그 구성이 모두 비슷할 수 밖에 없다면 이왕이면 우호적인 브랜드가 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연예인 마케팅에 있어서도, 우리 기업만 일등 연예인을 쓰면 굉장히 메리트가 있을 거다. 하지만 모두 그렇게 하기 때문에 차별화가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가 분석해보니, 우리는 우리 브랜드에 대해 대화하는 댓글이 이뤄지더라. 연예인 광고가 조회수는 높을지 몰라도, 브랜드 자체에 대한 대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기업에서 고객과 쌍방향 소통이 왜 필요한가

김건우= 예전에는 단순히 우리 서비스의 장점을 말했다. “제품이 이렇게 좋으니 구매해달라”로 끝났다. 그런데 유튜브 통해서 자생가능한 콘텐츠 구축해 놓으면, 유저가 역으로 기업한테 “이런 콘텐츠를 만들어달라, 이런거는 이렇게 하면 좋겠다”같은 요청을 적극적으로 한다.

최원서= 눈을 마주치고 얘기하고, 그 얘기에 대해 공감을 느껴서 피드백이 오는 그런 과정이 소통이다. 보는 사람의 궁극적인 행동을 유발하는게 있어야 한다. 광고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다.

웃튜브라는 채널명을 정할 때는 분위기가 어땠나?

최원서= 쓸데 없는 얘기만 오갔다(웃음). 네이밍은 안 중요하다.

동의하나?(웃음)

김건우= 매우 중요하진 않다. 기본적으로 이 채널이 뭘 하는지만 나타낼 수 있으면 된다. 큰 기업일수록, 상하조직이 많을수록 네이밍에 목숨을 건다. 만약 이게 소개팅 콘텐츠라면, 그것만 알려줄 수 있으면 된다. 채널명을 기가 막히게 만들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 꾸준히 발행하는 콘텐츠의 정체성 말이다. 음식점을 들어갈 때 간판이 예쁘다고 들어가는게 아니라 메뉴판의 메뉴와 맛을 보고 선택하지 않나. 그게 본질이다.

 모두가 ‘재밌고 즐거운 채널’을 만들고 싶을 텐데, 그 가운데서 시선을 잡는 콘텐츠 기획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최원서=  재밌다는 것의 정의엔 웃긴 것도 있지만, 이걸 어떻게 이렇게 시도할 수 있었지하고 보는 것 역시 재미에 들어간다. 기획에 담긴 크리에이터의 생각과 시청자의 생각이 일치됐을 때 재미를 느끼는 거다. 코믹 요소를 넣기도 하지만, 메시지와 기획 의도가 좋은 것에 집중을 하고 있다. ASMR도 약관을 이렇게 비틀었다는 것에 공감을 느껴 재미있었다고 하는 거다.

김건우= 재미는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 때 쓰는 재료 중 하나 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재미보다는 유의미한 콘텐츠가 중요하다. 기업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 에셋, 기획의도, 재미 같은 것들이 콘텐츠를 만드는 요소다.

두 회사가 같이 협업해 만드는데, 어떻게 협업이 이뤄지나?

김건우= 하나의 팀에서 협업하는 것처럼 일한다. 일주일에 한 번 미팅을 하고, 수시로 컨퍼런스콜을 한다. (우리은행 팀에서) 우리를 더에스엠씨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우리은행 팀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팀원들이 소속감을 갖고 일한다.

최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협업이 중요했다. 성공한 콘텐츠는 모두 팀에서 협업해 나온 것이다.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절실하다. 모든 아이디어에는 강점과 약점이 있는데, 어떤 아이디어를 비판하는 그 시간에 좋은점을 극대화하게 도와주고, 단점을 보완하도록 서로 의견을 나눈다. 그러면 자신감이 더 생겨서 서로 더 믿고 제안하게 된다. 그 부분에서 너무 많은 이득을 얻고 있다. 최고의 조직을 선택했기 때문에 믿고 일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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