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컬리, 코로나, 그리고 2000억원
마켓컬리(운영사: 컬리)가 2000억원 규모 시리즈E 투자를 8일 마무리 했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엔 신규 투자사인 DST글로벌의 리드로 기존 투자사 힐하우스캐피탈, 세콰이어캐피탈차이나, 퓨즈벤처파트너스, SK네트웍스, 트랜스링크캐피탈 등이 참여했다. 컬리가 창업 이후 유치한 총 누적 투자금액은 4200억원이다. 컬리는 이번 투자유치는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벤처에 대한 투자심리가 급감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져 그 의미가 크다고 평했다.
마켓컬리의 말마따나 코로나19로 인해 투자업계가 경색된 것은 맞다. 지난해 12월 HDC현대산업개발과 매각 계약까지 체결했던 아시아나항공이 코로나19 이후 뱉고 싶은 애물 단지가 돼 인수 작업이 무기한 연기된 것을 생각해 보면 각 나온다. 이 외에도 매출 감소로 기업가치 산정 등에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 업체들의 투자 연기 사례는 곳곳에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는 마켓컬리에게 있어선 기회를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비대면 소비 행태가 확산 되면서 마켓컬리의 주력 카테고리인 신선식품의 온라인 침투율이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2020년 2월 마켓컬리의 매출은 전월 대비 25%가 늘었다. 영업일수가 부족한 2월은 통상 이커머스 비수기로 꼽히는데, 그럼에도 만들어진 급성장이다. 마켓컬리의 3월 매출 또한 전월대비 19% 신장했다. 3월 대비 4월 매출은 증가폭 없이 비슷한 수준이라 마켓컬리 입장에선 조금 아쉽지만, 그럼에도 코로나19 확산 기간(1~4월)동안 마켓컬리가 만든 평균 월 성장률은 13%다.
마켓컬리가 현시점 판매하고 있는 상품 카테고리 중 식품(신선·가공 포함)이 차지하는 비중은 80%, 생활용품 등 비식품 카테고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다.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침투율이 빠르게 올라간 카테고리가 중심이 된다.
코로나19 이전의 신선식품
신선식품은 오랫 동안 어려운 이커머스 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카테고리로 꼽혔다. 짧은 유통기한으로 인한 재고 및 폐기, CS 관리, 신선식품 취급에 따른 저온 물류센터와 냉장차량 인프라 운영, 신선 포장 부자재에 따른 높은 물류비가 온라인 사업자들이 신선식품 카테고리에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던 장벽으로 꼽혔다. 그래서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뒤집는다고 이야기 되는 시대에 여전히 신선식품 카테고리 헤게모니를 잡고 있었던 것은 최근까지도 오프라인 매장들이었다.
이건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2020년 1월 20일 직전인 1월 13일 오픈서베이 조사 결과다. 2020년 기준으로 보더라도 조사 대상 소비자들 중에 61.4%가 오프라인 식료품 구매를 여전히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온라인 식료품 구매를 선호하는 소비자는 13.9%에 불과했다.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신선식품을 구매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첫 번째는 내가, 우리 가족이 먹는 음식은 눈으로 확인하고 구매하고 싶었으니까.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신선식품을 구매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신선도 확인의 어려움(63.2%)이었다.
두 번째는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언제 상품이 올지 모르니까. 혹여 택배 배송이 늦어진다면 자연스럽게 상품 맛이 갈 것 같으니까. 오픈서베이 조사에 따르면 두 번째로 많은 소비자가 선택한 온라인으로 신선식품을 구매하지 않는 이유는 배송 중 식료품이 변질되거나 상할까봐(37.7%) 였다.
감염병이 흔든 소비자의 마음
그런데 코로나19가 이런 소비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놨다. 신선식품이라면 보고 만지고 구매 직후 집으로 들고 와서 냉장고에 넣어놔야 되는 것이었는데, 그러려면 감염병의 공포를 뛰어 넘어야 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야 됐다. 이 때 소비자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코로나19 확산 이후의 데이터를 보면 그 결과가 명확하게 나온다.
통계청이 6일 발표한 온라인쇼핑 동향에 따르면 2020년 3월 이커머스 거래액 12조5825억원 중 음·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3%(거래액 기준 1조3176억원)로 전체 카테고리 중 1위를 차지했다. 세부 상품군별로 보자면 농축수산물과 음·식료품 거래액이 각각 전년동월 대비 91.8%, 59.4%씩 큰 폭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반 성장한 것은 음식서비스 카테고리, 그러니까 음식배달인데 이 또한 코로나19 특수로 3월 전년 동월대비 75.8% 성장했다. 또 다른 데이터로 배달대행 플랫폼 바로고의 숫자만 보더라도 1월 기준 한 달 700만건의 음식배달 주문을 쳐냈던 것이 3월에는 1000만 주문건을 넘어섰다. 코로나19로 인해 통상 10% 이상의 배달 주문이 늘어난 것이다. 와이즈앱에 따르면 배달의민족, 요기요의 3월 결제 추정금액 합산액은 그보다 더 큰 1월 대비 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오프라인은 죽어나갔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0년 2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 조사에 따르면 대표적인 신선식품 유통채널이었던 대형마트의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10.6% 급락했다. 백화점의 상황은 더 암울했는데 전년 동월 대비 21.4% 추락했다. 그나마 오프라인 유통의 자존심을 살려준 것은 각각 7.8%, 8.2%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한 편의점과 SSM(준대규모점포)이었다. 사실 이 두개 오프라인 채널 성장을 견인한 카테고리도 신선식품인데, 온라인만큼의 파격적인 성장을 만들지는 못했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다.
누가 이제 신선식품을 온라인 마이너 카테고리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코로나 이후, 진짜가 갈린다
코로나19 여파로 새롭게 온라인에서 신선식품을 구매한 소비자는 전에 없던 경험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무슨 오늘 오후 10시, 11시, 12시까지 주문하면 내일 오전 7시까지 보내주는 새벽배송을 누구나 다 해주지 않는가. 여기서 쿠팡을 쓸지, SSG닷컴을 쓸지, 롯데온을 쓸지, 마켓컬리를 쓸지, 오아시스마켓을 쓸지는 선택의 문제다. 업체들의 주문 마감시간은 조금씩 달라도 새벽에 오는 건 다 똑같다.
요즘 같이 아무나 새벽배송 하는 시대에 새벽배송만으로는 조금 부족할 수 있다. 컬리처럼 새벽배송에 ‘풀콜드’를 얹을 수도 있다. 풀콜드란 산지부터 고객까지 연결되는 가치사슬 전체를 일정 온도로 유지하여 전달하는 콜드체인 체계를 말한다. 당연히 이렇게 하면 반대급부로 비용이 튀어 오르지만 컬리는 그 길을 간다. 고객 입장에선 이게 좋아 보인다면 쓰면 되고, 딱히 뭐가 좋은지 모르겠으면 다른 거 쓰면 된다. 이 또한 선택의 문제다.
굳이 새벽배송이 없어도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은 많다. 지마켓에도, 네이버쇼핑에도, 11번가에도, 위메프와 티몬에도 신선식품은 올라온다. 이런 곳에는 새벽배송은 없어도 단독 상품이, 많은 상품이, 품질 좋은 상품이, 저렴한 상품이, 하다 못해 쿠폰이라도 팡팡 터질 수 있다. 어떤 채널을 선택하느냐는 소비자에겐 선택의 문제다.
소비자들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참으로 많은 선택을 했다. 어떤 이는 한 번 쓴 어떤 채널에 매료돼 이탈하지 못하고 반복 구매 한다. 또 다른 어떤 이는 여러 채널을 이동하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경험한다. 어떤 이는 최악의 구매 경험을 하고 오프라인 채널로 돌아왔을 수도 있겠다. 공통점이 있다면 코로나19 기간 동안 온라인은 떴고, 오프라인은 졌다. 오프라인에서만 신선식품을 소비했던 많은 이들이 온라인으로 신규 유입됐다.
소비자의 선택 속에서 진짜는 갈린다. 누군가에겐 저렴한 상품과 흑자를 자랑하는 오아시스마켓이 좋을 수 있겠다. 누군가는 전국구 새벽배송망을 넘어 당일배송까지 시작해 버린 그 놈의 물류를 자랑하는 쿠팡이 좋을 수 있겠다. 누군가는 엄청난 오프라인 유통 자본과 옴니채널을 자랑하는 공룡 친구들이 좋을 수 있겠다. 이 와중 새벽배송이고 나발이고 네이버쇼핑이나 지마켓, 11번가가 좋을 수 있겠다.
마켓컬리도 그 중에서 진짜를 경쟁한다. 몇 년은 더 날뛸 수 있는 2000억원짜리 총알은 충전됐다. 마켓컬리의 총알은 상품과 물류다. 그 중에서 방점이 찍혔다면 상품이다. 마켓컬리가 풀콜드 물류에 집착하는 이유도 좋은 상품 품질을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거창하게 써놨는데 코로나19 이후 신선식품 카테고리를 차지하기 위한 온오프라인 리테일 업체들의 뺏고 빼앗기는 전면전이 시작된다. 마켓컬리만 돈 쓰는 것도 아니니 소비자라면 쿠폰 파티를 준비하자.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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