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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가 만든 동대문 플라이휠, 브랜디 이야기

2002년 본격화된 아마존의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를 주도했던 인사 존 로스만은 저서 <아마존웨이, 2017>에서 이렇게 전했다. 낮은 가격(Price), 다양한 상품군(Selection), 높은 가용성(Availability)은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설립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핵심 가치라고. 그가 이끈 마켓플레이스 또한 제 3자 셀러를 아마존 플랫폼으로 끌어 모아 ‘다양한 상품군’을 만들고자 했던 전략이었고, 마켓플레이스에서 파생된 풀필먼트(Fulfillment By Amazon)는 제 3자 셀러에게 아마존 수준의 물류와 서비스 역량을 만들어줌으로 ‘가용성’을 만든 수단이 됐다고.

다양한 상품군은 더 좋은 고객 경험을, 더 좋은 고객 경험은 더 많은 트래픽을, 더 많은 트래픽은 더 많은 셀러를 유치해서 더 다양한 상품군을 만든다. 그 유명한 아마존의 플라이휠을 만드는 첫 번째 축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성장은 더 저렴한 비용 구조를 만들고 더 낮은 가격을 만든다. 결국에는 더 좋은 고객 경험으로 이어지니 플라이휠의 두 번째 축이다. 플라이휠에는 존 로스만이 ‘아마존의 삼위일체’라고 이야기한 Price와 Selection, Availability가 모두 담겨있다.

동대문에서 찾는 풀필먼트

인플루언서 마켓플레이스 브랜디의 확장 전략도 이와 같았다. 판매자를 모으고 소비자를 모은다. 브랜디의 핵심 전략은 ‘물류’다. 물류를 기반으로 패션 인플루언서를 모으고 물류를 기반으로 고객의 반복구매를 끌어올린다.

동대문 기반 패션 셀러들은 브랜디 플랫폼에 상품을 촬영하여 올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귀찮은 물류와 CS는 모두 브랜디가 대행하니 이게 브랜디가 2018년 9월 정식 출시한 동대문 패션 풀필먼트 서비스 ‘헬피’다. 현재 5000개의 전체 브랜디 기업·개인 셀러 중에 약 10%가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 하루에 약 1만8000~2만3000 박스, 상품수 기준으로는 약 3만5000개가 2400평 규모 브랜디 동대문 물류센터에서 발송된다.

패션 소비자에게는 더 빠른 배송을 선물해준다. 더 빠른 배송을 만드는 브랜디의 방법은 ‘선매입’이다. 팔릴만한 상품을 재고로 미리 구비해두고 당일출고의 속도를 만든다. 이게 브랜디가 2019년 2월 시작한 비즈니스 ‘오늘출발’이다. 브랜디에 따르면 오늘출발은 통상의 동대문 기반 패션 쇼핑몰 대비 1.5배 빠른 속도를 만들었고, 이에 따른 고객의 재주문율은 치솟았다. 현재 브랜디가 직접 출고하는 물동량 중에 절반가량이 오늘출발로 배송된다.

브랜디를 잘 모를 수도 있으니 최근 숫자부터 살펴본다. 아이지에이웍스의 1월 발표에 따르면 브랜디는 국내 안드로이드 OS 사용자 기준으로 4위에 랭크된 패션앱이다. 2019년 12월 기준 64만8561의 MAU(월간 순방문자수)를 기록했다. 2019년 1월 대비 2배 이상 치솟은 수치다. 브랜디가 2018년 12월 론칭하여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남성 쇼핑앱 ‘하이버’ 또한 DAU 7만명 수준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거래액 기준으로는 1년 4개월만에 약 40배 급성장했다. 서정민 브랜디 대표는 최근 브랜디의 빠른 성장 배경을 이렇게 분석했다.

안드로이드 OS MAU 기준 국내 패션 쇼핑앱 순위. 브랜디에 따르면 브랜디 사용자 중 안드로이드 비중은 21.7%밖에 안 된다. IOS 76.2%, 웹 2.1%에 분포된 사용자를 감안한다면 그 숫자는 더욱 치고 오른다는 브랜디측 설명이다.(자료: 아이지에이웍스)

“플랫폼은 양면시장이에요. 우리 같은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이라면 판매자와 소비자 양측을 확보해야 합니다. 많은 판매자가 들어와서 신상품이 빠르게 늘어야 하고, 많은 상품을 기반으로 소비자도 계속 유입돼야 해요. 초기만 해도 소비자가 브랜디에 방문해서 하는 평가 중에 이런 이야기가 많았어요. 좋긴 한데 내가 좋아하는 상품은 없다고요. 판매자들도 내가 원하는 소비자는 브랜디에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최근에 와서는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이제 소비자는 원하는 상품을, 판매자는 원하는 고객을 브랜디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레버리지 효과가 성장까지 이어진 것 같습니다”

“셀러는 몸만 오면 됩니다”

브랜디의 플라이휠은 충분한 숫자의 판매자가 좋은 상품을 판매하는데서 시작한다. 더 많은 판매자가 브랜디 생태계에 녹아들고 더 좋은 상품을 판매한다면 소비자는 자연히 늘어난다. 더 많은 소비자는 판매자들의 이익을 늘리고 이는 더 많은 판매자를 유입시킨다. 끌어올린 반복구매율은 트래픽을 만들고 더 많은 판매자를 유입시킨다.

더 많은 셀러를 유입시키고 이에 더해 물류라는 부가가치를 입혀 가용성을 만든 브랜디의 방법론이 동대문 기반 풀필먼트 서비스 ‘헬피’다. 헬피는 쉽게 말해서 샘플 쇼룸과 촬영 스튜디오, 물류, CS센터가 결합된 서비스다. 브랜디는 헬피를 통해 동대문 패션 창업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속된말로 ‘창업비용 0원’에 패션 판매가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서 더 많은 판매자가 유입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브랜디 동대문 센터는 동대문 도매시장 거리 바로 옆에 있는 맥스타일 빌딩 7층(물류동)과 8층(샘플룸 및 스튜디오, 사무동)에 위치해 있다. 원래 물류는 성수동에서, 샘플 쇼룸은 동대문에서, 오피스는 역삼동에서 별도로 운영하는 구조였는데 이것을 한데모아 통합한 것이 2020년 1월이다. 브랜디 동대문센터의 출범이다. 기존에 없던 촬영 스튜디오도 여기 추가됐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걸어서 살펴보려면 3박 4일이 걸린다는 동대문 도매상가를 뒤적이며 좋은 상품을 찾는 과정은 브랜디 샘플 MD가 큐레이션한 상품을 쇼룸에 한데모아 제공하는 방식으로 효율화 했다. 헬피를 이용하는 셀러는 누구나 브랜디 샘플 쇼룸에 방문하여 무료로 샘플을 입어보고 현장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수 있다. 브랜디와 제휴한 1500개 동대문 도매업체의 상품 샘플들이 여기 들어선다.

브랜디 동대문센터 8층 샘플룸(사진 위)과 샘플물류 공간(사진 아래)의 모습. 현장에서는 샘플을 보고자 방문한 셀러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샘플 착용 및 촬영, 대여(최대 2주)는 헬피 셀러라면 모두 무료다. 동대문 패션 셀러라면 알 것이다. 동대문 도매상으로부터 샘플을 무료로 빌리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아무 상품이나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상 매일 500~600개의 샘플 상품이 입고되는데, 그 중 200개 정도만 샘플 담당 MD의 심사를 통과하여 브랜디 샘플 쇼룸에 걸릴 수 있다. 서 대표는 말한다. “도매업체 중에서는 중국에서 들어온 저가제품이나 속된 말로 안 팔리고 남은 재고를 샘플로 주는 곳도 있어요. 브랜디가 잘 파는 이미지를 만들어서 많이들 주려고 하세요. 하지만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아무 상품이나 걸어놓을 수는 없어요. 우리가 샘플 큐레이션에 신경을 쓰는 이유에요”

브랜디 동대문 센터 내부에 있는 다양한 컨셉의 촬영 스튜디오 이용 또한 무료다. 같은 공간에 피팅룸도 있는데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사진을 촬영하고 바로 브랜디 쇼핑몰에 올려도 된다. 그야말로 몸만 있으면 무자본으로 패션 상품 판매를 할 수 있다.

상품을 촬영하고 온라인에 상품을 올리는 과정도 동대문센터 스튜디오에서 무료로 진행하면 된다. 고객 주문이 발생하면 일일이 도매상에 연락하거나 직접 방문하여 상품을 픽업하는 과정을 브랜디가 내재화한 ‘사입물류’로 처리한다. 단순히 쇼핑몰까지 물류가 아니라 최종 소비자에게 배송 출고까지 브랜디가 처리한다. 이후 발생하는 모든 CS, 반품을 처리하는 주체도 브랜디다. 이게 헬피가 셀러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브랜디 동대문센터에 늘어선 출고작업용 롤테이너들. 브랜디는 당일 쇼핑몰에서 주문 수집된 상품을 하루 세 번 동대문 도매시장에 방문하여 동대문센터까지 사입하고 우체국택배를 통해 익일 출고한다. 그러니까 소비자 대상으로 D+2일 배송을 하는 것이 목표다.

물론 헬피는 공짜가 아니다. 헬피를 이용하는 셀러는 판매금액의 9~13%, 통상 10%를 이익으로 가져간다. 판매자의 이익을 제외한 금액에서 브랜디가 부담하는 운영비, 물류비, 인건비를 차감한 금액이 브랜디가 가져가는 이익이 된다. 현재 시점에서 브랜디가 가져가는 이익보다 개별 셀러가 가져가는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이 브랜디측 설명이다.

브랜디가 셀러 입점을 결정하는 최소한의 기준은 있다. 최소한 한 번은 동대문 시장이나 쇼핑몰을 경험한 사람을 우대한다. 특히나 쇼핑몰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셀러라면 심사 없이 프리패스다. 인스타그램 등지에서 패션 포스팅을 올리는 예비창업자 또한 입점이 가능한데, 이들을 대상으로 한 1:1 맞춤식 교육은 브랜디에서 무료로 진행한다.

서 대표에 따르면 별달리 헬피의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 불구하고 많은 셀러들이 참가하기 위해 몰리고 있다. 기존에 자체 물류망을 이용하던 많은 입점 셀러들 역시 브랜디 물류센터에 방문하고 나서 ‘헬피 셀러’로 전환을 한다고 한다. 서 대표가 설명하는 그 이유가 이렇다.

“사실 직접 보지 않고는 우리가 물류를 잘하는지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 동대문센터 7층에 오면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거죠. 셀러들이 보기에 그들보다 잘하는 것 같으면 우리에게 맡기게 되는 것이고요. 일례로 보통 헬피를 이용하지 않는 판매자들의 익일출고율이 65% 정도에요. 근데 우리가 직접 하면 88%입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인데, 알반 동대문 사입삼촌은 하루 한 번 새벽시장을 도는데 우리는 오전 2시반, 오전 6시반, 정오 이렇게 세 번 나가서 상품을 확인합니다. 당연히 수거율이 높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동대문 도매업체가 브랜디에 갖는 신뢰와 친밀도가 상승했기 때문이에요. 같은 상품을 사더라도 다른 쇼핑몰들은 2~3개씩 사가는데 우리는 20~30개씩 사가거든요. 많이 사간만큼 많이 팔기도 하고요. 마지막은 브랜디가 2019년 2월 론칭한 오늘출발 서비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어요”

재구매율 끌어올리는 ‘오늘출발’

브랜디는 고객의 재구매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큰 이유로 ‘오늘출발’ 서비스를 꼽았다. 이는 브랜디의 물류 서비스를 이용하는 헬피 셀러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오늘출발 서비스의 고객 반응이 좋자 해당 상품을 구하고자 헬피 셀러로 유입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늘출발은 쉽게 말해서 오늘 오후 2시 이전에 고객이 브랜디에서 주문한 당일 우체국택배에 출고하는 서비스다. 통상 택배의 허브앤스포크 프로세스를 탄다면 별 사고가 없다면 고객은 오늘 주문한 상품을 내일 받는다. 브랜디앱에서는 해당 상품에 ‘오늘출발’ 마크가 표시된다.

브랜디앱상에 오늘출발 마크가 표기된 상품이 상단 노출된다.

쿠팡은 오늘 자정까지 주문한 상품을 내일 보내주는데 이게 뭐 별거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동대문 패션 생태계에서 당일출고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동대문 패션 쇼핑몰이 고객 주문을 받고 그날 밤에 동대문 새벽시장에 나가서 상품을 사입하고 다음날 출고한다. 그렇기에 소비자 기준으로 동대문 의류를 구매했다면 D+2일 배송이 일반적이고, 그 또한 많은 경우 어긋나는 것이 현실이다. 브랜디가 당일출고율이 아닌 ‘익일출고율’을 기반으로 물류 성과를 측정하는 이유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 구체적인 사연이 궁금하면 다음 콘텐츠를 참고하자. [참고 콘텐츠 : 동대문 사입 현장 속으로 – 지옥편]

브랜디 오늘출발의 개념은 간단하다. 기존 동대문의 주문후 사입 구조를, 미리 새벽시장에 나와서 상품을 사오고 주문을 받으면 당일 출고하는 ‘선매입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이 또한 쉬운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문제는 ‘재고 부담’이다. 팔릴 상품만 파는 주문후 사입 구조와 달리 선매입 구조의 안 팔리고 남는 재고 처리 부담은 크다.

브랜디 동대문 물류센터 뒤편에 D+1 발송율 95%를 목표로 한다는 숫자가 인상적으로 보인다.

브랜디는 재고 처리의 부담을 ‘수요예측’ 시스템을 통해 해결했다고 한다. 브랜디에 그간 축적된 특정 상품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일매일 상품마다 다른 ‘안전재고’ 확보량을 시스템이 가이드 한다.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시스템은 매일매일 진화한다. 알고리즘에 따라서 어떤 상품은 하루에 1.4개가 팔렸는데, 안전재고를 1개 사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상품은 하루에 1개가 팔렸음에 불구하고 5개의 안전재고를 사라고 하기도 한다. 브랜디 사입팀은 시스템이 제시한 이 숫자를 의심 없이 매일매일 구매한다.

물론 시스템의 수요예측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수요예측은 말 그대로 예측이기에 항상 틀리는 것이 맞다. 이 때 브랜디 시스템은 어느 순간이 되면 재고 소진을 위한 할인을 추천한다. 예컨대 25개의 재고가 남은 A상품에 15% 할인을 걸면 23개가 더 팔릴 것이라고 시스템이 가이드 한다. 사람 직원은 그 내용을 기반으로 엑셀 파일을 뽑아서 수동 진열을 하는데, 올해 상반기 중에는 시스템이 스스로 잔량 재고를 기반으로 할인 판매를 결정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만든다는 것이 브랜디의 목표다. 서정민 대표의 말이다.

“선매입이 동대문 패션 업계에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예컨대 대형 쇼핑몰 MD들이라면 대부분 감으로 선매입 물량을 잡아 수행했죠. 문제는 재고가 늘어날 때마다 쇼핑몰 대표는 불안해지는 겁니다. 어느 순간 선사입을 멈추고, 결국 입고가 늘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그 문제를 IT로 풀었습니다. 저희도 숫자를 보고 놀랐는데, 우리 선사입 상품의 재고회전기간이 4일이에요. 물론 완벽한 수요예측은 아니지만 남는 재고는 우리가 가진 유통망으로 할인하여 처리할 수 있어요. 이 시스템을 AI로, 기계학습으로 강화하고 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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