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리] 한국의 사족보행 물류로봇을 만나다

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 스타트업  리뷰를 연재합니다. 코너명은 ‘바스리’, <바이라인 스타트업 리뷰>의 줄임말입니다. 스타트업 관계자분들과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허구한 날 발로 차이고 끌려 다니면서 수난을 겪던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사족보행 로봇(Four legged robot)을 기억하는가. 그 친구가 어느덧 최대 14kg의 화물을 등에 이고, 계단과 경사가 있는 비포장 지형을 오르내리고, 스스로 문을 열고, 심지어 차도 끌고 다니는 훌륭한 모습으로 성장해 지난해 공식 론칭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최신 사족보행 로봇 스팟(Spot)은 건설현장과 플랜트 등 사람이 진입하기 위험한 산업 현장에 투입돼 활용된다.

보스턴다이내믹스 개로봇 수난기. 이래저래 불쌍한 아이다.(사진: 보스턴다이내믹스 유튜브 캡처)

실리콘밸리 기업 영상에서나 볼 줄 알았던 사족보행 로봇이 한국의 현실 세계에 나타났다고 해서 수원 성균관대를 방문했다. 로봇의 이름은 에이딘식스(AiDIN-VI). 로보틱스 스타트업 에이딘로보틱스(AIDIN ROBOTICS)가 라스트마일 물류 용도로 개발한 사족보행 로봇이다. 에이딘로보틱스는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최혁렬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이윤행 대표가 연구실에서 스핀오프 하여 지난 1월 1일 최 교수 및 연구실 동료들과 함께 창업한 업체다.

이윤행 에이딘로보틱스 대표와 에이딘식스 로봇. 저렇게 접혀 있는 로봇이 가동하면 발을 뻗어 일어선다.

에이딘식스는 최대 25kg의 화물을 적재하여 사람 정도의 속도(시속 3~4km)로 주행할 수 있다. 전기 배터리로 구동하는데 완충시 약 2시간을 주행 가능하다. 에이딘식스의 뒤에는 대차를 달수도 있는데, 실험 결과 1.4톤 무게의 쏘나타 차량까지 끌고 이동했다고 한다. 물류와는 별 상관없는 기능처럼 보이지만 이 로봇은 귀엽게 콩콩 뛸 수도 있다. 팔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해주기도 하는데, 이 기능은 현관문 초인종이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데 사용된다.

쏘나타 차량을 끌고 있는 에이딘식스 로봇. 1.4톤의 쏘나타를 끌고 다니는 것은 직접 못봤지만, 0.1톤의 기자는 잘 태우고 끌고 다니더라.

간단히 에이딘식스의 스펙을 보자면 이렇다. 로봇의 무게는 내장 배터리를 포함하여 약 43kg. 지형 환경을 탐지하고 높낮이를 변경하는 데 필요한 비전 컴퓨터 2대가 로봇에 장착됐다. 로봇의 다리 관절 하나에 모터 3개씩, 총 12개의 모터가 붙어있다. 로봇의 관절에는 에이딘로보틱스가 자체 개발한 ‘토크센서(Torque Sensors)’가 탑재됐다. 이 센서가 로봇의 다리가 지면에 접촉했을 때 어느 정도 힘이 발생했는지 측정한다. 이 대표는 “자체 개발한 토크센서는 에이딘로보틱스의 자랑이자 차별점”이라며 “토크센서로 기술력을 인정받아서 2016년 기계의 날에 올해의 10대 기계기술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외부 업체에 이전해 판매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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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보행’을 택한 이유

산업용 로봇을 이동하게 하는 대표적인 수단이 두 개 있으니 ‘바퀴’와 ‘다리’다. 예컨대 지난해 11월 우아한형제들이 건국대 캠퍼스 배달에 투입한 로봇은 ‘바퀴형’이다. 지난 1월 CES 2020에서 포드가 공개한 물류로봇 디짓(Digit)은 사람과 같은 형태의 이족보행 로봇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팟이나 에이딘로보틱스의 에이딘식스는 사족보행 로봇이다. 이 로봇들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에이딘식스가 사족보행을 택한 이유도 있다.

이 대표에 따르면 바퀴형 로봇은 상대적으로 많은 무게의 짐을 실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도로와 같이 바퀴가 잘 굴러갈 수 있는 환경을 벗어나면 구동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족 보행 로봇의 경우 사람 눈높이에 맞춰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지만, 안정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사족을 넘어서 6개의 다리, 8개의 다리를 가진 로봇도 있는데, 이 경우 안정성은 높아지지만 모터 제어 난이도가 상승한다는 설명이다. 이족과 사족을 변주하는 로봇도 있다.

이 대표는 “최근에는 이족 보행보다 사족 보행 로봇이 많이 개발되고 있는 추센데 특별한 제어를 하지 않고도 구조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잘 넘어지지 않고, 많은 짐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라며 “다리가 없는 바퀴 형태 로봇은 엘리베이터 탑승을 위해서 시스템 연동이 필요한데, 사족 로봇은 물리적으로 아파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서 탑승이 가능한 것도 강점”이라 말했다.

상용화에 앞선 과제들

아쉽지만 당장 이 로봇을 물류 현장에서 만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상용화에 앞서 여러 해결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이슈는 단가다. 에이딘식스 로봇 한 대의 단가는 현시점 약 1억원. 한국에서는 1억원짜리 로봇보다 더 생산성이 높은 사람을 더 저렴하게 쓸 수 있다. 대체재가 더 훌륭한 상황에서 기업이 로봇을 구매할 유인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에이딘로보틱스는 추후 로봇의 단가를 최대한 낮추는 방식으로 새로운 메커니즘과 플랫폼 기술 개발을 하고 있다”며 “3000만원 이하의 가격에 로봇을 보급할 수 있도록 기술허들을 낮출 것”이라 설명했다.

두 번째 이슈는 기술이다. 로봇이 단순히 잘 걸어 다니는 것 이상으로 외부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돌발 상황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 대표는 “전자기기로 이루어진 로봇은 온도 변화의 영향을 자주 받는다. 더울 때는 열로 인해 값이 틀어져 로봇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행동을 하거나 넘어지기도 한다. 추울 때는 로봇의 관절이 굳어서 동작에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며 “이런 환경 변화를 특성 범위에 맞춰 기록하고 로봇의 특성을 변경하는 알고리즘을 추가해서 로봇이 보다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게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사람과의 공존이다. 이 대표는 “물류 현장에서는 로봇 도입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쉬는 시간대나 위험한 환경에 로봇을 투입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로봇이 라스트마일 물류 서비스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물류 시스템과의 공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에이딘식스는 국방부 드론봇 챌린지 대회에 참가하여 ‘정찰봇’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전 적진에 침투해서 적의 위치를 파악하여 아군에게 전송하는 역할을 이 로봇이 맡았다. 사람이 하기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을 로봇이 해결했다.

물류로봇은 장기계획으로

현시점 에이딘로보틱스의 캐시카우는 물류로봇이 아니다. 당장 에이딘로보틱스의 핵심 기술은 산업용 로봇의 근접 충돌감지 센서다. 예를 들어서 산업용 로봇팔이 구동 중에 사람 손이 중간에 끼어들었다고 하자. 이를 로봇팔이 감지해 20cm 전에 동작을 멈추는 센서다. 이 기술을 보유한 곳이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게 에이딘로보틱스측 설명이다. 당장 대량 생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커스터마이징을 하여 니즈가 있는 연구소에 기술 납품을 하고 있고, 올해 본격적인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라스트마일 사족보행 로봇 ‘에이딘식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율주행까지 가능한 로봇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로봇이 사람과 차량이 함께 돌아다니는 외부 환경을 잘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로봇 자체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추후 자율주행 기능을 추가할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며 “우리의 로봇 플랫폼 기술과 연결될 수 있는 자율주행 기술업체와 협업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추후 두 개의 기술이 합쳐져 궁극적으로 무인물류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라스트마일 물류 로봇은 장애물도 많고, 지형도 고르지 못한 외부환경에서 주행한다. 어찌 보면 로봇을 가동하기에 가장 어려운 환경이 라스트마일 물류”라며 “기술과 제어, 알고리즘 측면에서 아직 여러 도전이 일어나고 있는 분야라 보급은 더디지만, 궁극적으로 결국 우리 생활단까지 물류 서비스 로봇 기술이 도입될 것이라 생각한다. 에이딘로보틱스가 사족보행 로봇을 이용한 배송 사업을 타깃한 이유도 여기 있다”고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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