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위주 OTT 서비스, 퀴비 이즈 커밍

TV 영상의 역사는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BBC가 1929년, 기계식 TV로 방송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컬러 TV는 1950~1960년대 등장했고 한국에는 1980년 도입됐다. 이때는 주로 주문형 비디오를 VTR을 통해 봤다. 후후 불어야 재생이 잘되는 특징이 있다. 이후 플레이어는 VCD, DVD의 시대를 거쳐 블루레이로 차츰 업그레이드됐다.

화면을 보는 매체인 TV의 경우 브라운관 다음의 TV는 프로젝션이었다. 빔프로젝터를 큰 TV 속에 넣어 프로젝터로 화면을 띄우는 것이었다. 프로젝션은 너무 거대해서 일반 가정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이후 2006년 등장한 삼성의 보르도 TV가 대형 TV 시장을 바꾸게 된다. 2013년에는 LG전자가 55인치 OLED TV를 내놓으며 프리미엄 시장의 패러다임이 초대형 OLED쪽으로 넘어갈 것임을 알렸다. 소니 역시 OLED를 통해 프리미엄 TV 시장으로 부활했다.

플레이어의 경우 디스크를 갖고 하는 시기가 지나 케이블TV, 인터넷TV, IPTV 등의 시기를 거쳐 SVOD 시대가 된다. 서브스크립션형 VOD라는 의미로,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등 월정액 서비스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영상을 소비하는 방식과 기계가 꾸준히 변하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영상을 보는 방법이다.

흔히 영상은 린백(Lean Back) 미디어로 부른다. 소파에 등을 대고 수동적으로 소비한다는 의미다. 반대말로는 린포워드(Lean Forwad)가 있다. 대표적인 린포워드 성향의 미디어는 비디오 게임이다.

TV는 점차 커지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에는 반대로 작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보는 영상 역시 린백 성향의 미디어다. 사용자가 할 수 있는 건 되감기와 빨리 감기, 다른 영상으로 넘기기밖에 없다. 인터랙션이 매우 빨라지긴 했지만 이것은 TV 리모컨으로도 조작할 수 있는 기능이다. 댓글을 달 수는 있지만 댓글이 영상의 방향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넷플릭스에서 지난해 선보인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스토리의 갈래를 사용자가 선택해 결말을 약간은 선택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인터랙티브 영상은 지난해(국내 기준)에서야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이 흐름을 바꿀 SVOD 플랫폼이 등장했다. 이름은 퀴비(Quibi). Quick Bites를 줄인 말로, 타파스 바의 Tapas처럼 ‘한입 거리’라는 의미다. 캐치프레이즈는 ‘Big stories, quick bites’다. 대작을 짧은 시간 만에 소비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창립자는 드림웍스 CEO 출신인 제프리 카젠버그(Jeffrey Katzenberg)이며, 초대 CEO는 이베이 신화를 이끈 멕 휘트먼(Meg Whitman)이다.

제프리 카젠버그가 발표를 하고 있다. 아무리 영상이 재미있어도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보는 건 위험하다
멕 휘트먼

퀴비는 넷플릭스처럼 VOD를 선택해 볼 수 있는 서비스다. 그러나 VOD는 모바일로만 볼 수 있는 모바일 온리 서비스다. 그리고, 이 모바일 기기의 특성을 반영한 영상을 제작한다. 중력 센서를 이용해 영상을 회전하므로 턴스타일(Turnstyle)이라고 부른다.

영상은 세로와 가로 두가지 모드로 재생된다. 가로 영상은 일반적인 영상과 같다. 세로로 돌렸을 때가 특징인데, 가로 화면을 비율에 맞게 잘 잘라서 보여줄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상황이라면 가로 모드에서 주인공의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식이다. 시연을 위해 보여준 스릴러 영상에서는, 주인공은 방 안에 있고, 벨을 누르는 이방인이 등장했을 때 가로는 주인공, 세로는 다른 출연자를 보여준다. 이 단순한 방식은 많은 콘텐츠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가로 모드일 때 주인공을 비춘다
세로 모드일 때 주인공을 위협하는 문 밖 이방인이 등장한다

영상은 가로 모드를 기준으로 만들 때 더 정사각형에 가까운 카메라로 찍은 다음 잘라내는 방식을 사용한다. 세로 모드에 스마트폰 화면이나 별도 얼굴이 들어갈 땐 추가촬영을 한다고 한다. 화면을 자르는 것은 최적의 프레임을 찾아주는 AI를 활용한다.

다급해진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다
세로 모드일 때는 주인공이 전화를 하는 화면이 등장한다

퀴비의 영상은 이외에도 편당 재생시간이 짧다는 특징이 있다. 모든 에피소드는 7~10분 내외로 제작된다. 단일 쇼나 시즌제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영상을 보는 경험에는 ‘시간’도 반영된다. 예를 들어 스티븐 스필버그의 호러물은 밤시간에만 시청할 수 있다.

밤 시간에 볼 수 있는 호러물 중 하나. 화난 주인공은 타인에게 메시지를 한다
세로 모드에서는 문자를 하고 있는 주인공의 폰 화면이 나온다

영상의 낮은 레이턴시는 구글 클라우드의 기술 위에서 구동된다. 두가지 영상을 동시에 로딩하기 때문에 전환이 버벅댈 수 있으나 구글 클라우드 관계자는 저품질 네트워크에서도 구동 가능하도록 준비했다고 한다.

퀴비는 초기 진입 시 ‘볼 게 없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영상의 수 역시 충분히 준비한다고 밝혔다. 오리지널 쇼는 175개이며 시즌제를 포함한 에피소드는 8500개다. 콘텐츠 종류는 영화, 방송, 뉴스다.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전체를 몰아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클립으로 쪼개 매일 조금씩 공개하는 방식이다. 뉴스가 핵심 콘텐츠에 포함된다는 것이 특이하면서도 영상 길이를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콘텐츠 수는 언뜻 많아 보이지만 드라마 하나당 에피소드가 10~20개에 달하는 걸 생각하면 많지 않은 수일 수도 있다. 초기 멤버로 여느 OTT가 그렇듯 스티븐 스필버그, J.J.에이브럼스, 스티븐 소더버그 등의 스타 감독들이 참여하며, 제니퍼 로페즈, 드웨인 존슨, 케빈 하트 등의 스타들이 참여한다.

영상은 매일 큐레이션으로 추천 영상을 제공하며, 하루에 3시간 분량의 새로운 영상이 추가된다. 에피소드로 따지면 하루에 30개 이상이 업데이트되는 셈이다.

퀴비의 장점은 현대 영상 소비 행태(모바일 위주, 짧은 영상)에 잘 맞췄다는 것과, 능동적으로 화면을 돌리면서 볼 수 있는 것에서 오는 재미다.

단점은 오리지널 시리즈를 꾸준히 제작해야 하는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회전하는 영상 특정상 오리지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야 할 것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영상을 잘라서 써도 되지만, 그렇다면 세로 모드로 볼 특별한 이유가 발생하지 않는다. 오리지널 영상은 제작비가 큰 관계로 오리지널 대유행을 이끈 넷플릭스조차 ‘승자의 저주’에 허덕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두번째 단점은 불편함이다. 영상의 특정 영역에서 꼭 세로 모드로 회전시켜야만 얻는 정보가 있다고 하면, 수동적으로 소비하고자 하는 사용자에게는 불만이 될 것이다. 이를 만약 알림으로 알려주게 된다면 영상 몰입도도 떨어지게 된다. 퀴비는 이 단점을 ‘재미’로 상쇄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세로로 회전할 수 없는 TV 서비스는 영원히 실행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장 큰 단점은 넷플릭스가 퀵 콘텐츠 항목을 만들면 답이 없다는 것이다.

퀴비는 4월 서비스를 시작하며 북미 외 다른 국가 서비스 계획에 대해서는 밝힌 바 없다. 가격은 광고 포함 월 4.99달러, 광고 없이는 7.99달러다. 광고 역시 일반 광고가 아닌 가로-세로 모드 전환을 갖춘 광고다.

세로로 시작하는 콜라 광고
기울이면 콜라가 쏟아진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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