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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MMORPG는 겁나게 많다.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이 게임이나 저 게임이나 비슷비슷하게 생긴 몇 캐릭터가 팀을 짜서 몬스터를 무찌르고, 떨어지는 아이템을 집어 먹으면서 레벨을 올리는 일의 무한반복이다. 그나마 PC 온라인의 MMORPG는 게임을 조작하는 손맛이나 자유도라도 있다고 하지. 모바일은 이건 뭐, 자동 사냥 모드 해놓고 TV도 보고, 밥도 먹고, 심지어 일도 하더라. 아니, 자동으로 게임 돌려놓을 거면, 대체 저걸 왜 하는 거야?

하여튼 그런 사정으로 인해, 겜알못인 기자는 신작 게임 간담회에 가도 뭘 써야 할지 모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존 게임들보다 직업 수가 늘었대, 그래픽이 좋아졌대, 인물 동작이 수려하다네? 서버가 늘어나서 버벅거리는 게 줄어들었대. 와, 그런데… 뭐가 다른 거지? 아무래도 내가 게임을 잘 안 해봐서 그런 걸까?

리니지2M 간담회에도 큰 기대를 하고 간 것은 아니다.

[관련기사: 김택진이 설명하는 리니지2M의 네 가지 특징]

출시 이래 3년간 전교일등, 아니 구글플레이 매출일등을 놓치지 않는 리니지M 이후, 엔씨소프트가 처음 내놓는 모바일 게임이니까. 아니, 대체 엔씨는 뭘 만든다고 3년이나 신작을 안 내놔? 이런 생각이 더 컸다. 그런데, 리니지2M 간담회를 보면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다작하지 않으면서,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큰 반향을 일으키고, 비싸다! 는 질타를 받으면서도 마니아층을 형성하면서 ‘혁신’이라는 말을 잘 쓰고, 결과적으로 고급화 브랜딩을 잘 세운 그 회사.

그러니까, 애플이다. 이거 말 잘못하면 독자들한테 욕먹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미리 말하지만 엔씨소프트가 애플에 버금간다거나, 뭐 그만큼 훌륭(의 기준도 다 다를 것 같은데)한 기업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3년간의 엔씨소프트의 행보를 봤을 때 애플의 브랜딩 전략과 유사한 측면이 (개인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사실이다. 어떤 부분에서냐면, 바로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다.

 

“원 오브 뎀은 싫다”

엔씨소프트는 올해 지스타에 참여하지 않는다. 지난 2016년부터 그랬다. 대신 2017년부터는 11월경 ‘디렉터스 컷’이라는 별도 행사를 가졌다. 디렉터스 컷은 원래 감독판 영화를 일컫는다. 개봉 이후에, 감독이 영화를 만든 의도나 현장 컷 등을 넣어 선보일 때 쓴다. 엔씨소프트는 디렉터스 컷을 통해 이듬해 선보일, 또는 현재 개발 중인 자사 게임을 소개한다. 게임 개발 총괄 중의 총괄인 김택진 대표(최고개발책임자도 맡고 있다) 가 키노트를 맡아 비전을 공개하고, 주요 개발 임원들이 자리에 올라 게임의 개발 진척도를 알린다. 11월은 엔씨가 의도했건 안 했건 지스타가 열리는 달이기도 하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대체로 지스타에서 신작을 공개해 왔다. 지스타는  수많은 관람객에게 효과적으로 게임을 소개할 기회를 주지만, 오롯한 주인공의 기회를 부여하진 않는다. 제아무리 엔씨라도, 어쨌든 지스타에선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될 수밖에 없다.

2018 디렉터스 컷 초대장. 모바일 게임을 상징하는 ‘M’ 과 이벤트 장소, 일시 정도만 적혀 있다. 애플은 통상 특별 이벤트 초청장에 변형된 사과로고에 신제품을 암시하는 짧은 단어, 그리고 장소와 일시 정도를 적는다.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는 건 애플이 잘하는 일이다. 애플도 남들 다 나가는 행사엔 안 나간다. 대신 ‘원 모어 띵(one more thing)’으로 유명한 특별 이벤트를 연다. 아이폰도, 아이패드도, 애플워치도 바로 이 특별 행사에서 발표했다. 애플의 최고 슈퍼스타(원래는 스티브 잡스였지만, 지금은 팀 쿡)가 무대에서 키노트를 하고, 주요 임원들이 신작을 공개하며, 그리고 마지막에 ‘원 모어 띵’으로 히든카드를 선보여 방청객의 환호를 끌어내는. 애플은 발표 장소에도 신경을 쓴다. 한동안 애플의 낙점을 받은 곳은 아트센터인 예르바 부에나 센터였다(신사옥이 올라간 지금은 내부 극장인 스티브 잡스 씨어터에서 발표회를 연다). 주로 예술 작품이나 공연을 올리는 공간에서 애플 최고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우연이겠지만, 엔씨도 라움 아트센터에서 디렉터스 컷을 연다. 아직 올해 디렉터스 컷의 개최 여부는 결정 나지 않았는데, 대신 지난 5일에 이곳에서 리니지2M의 출시 일정을 발표했다. 아트센터이다 보니, 멀티미디어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와이드한 스크린과 공간을 가졌다는 점, 그리고 하루에 단 하나의 행사만 하기 때문에 여유 있게 무대를 제작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라움은 엔씨가 주로 활용하는 곳이다. 키노트? 김택진 대표가 맡았다. 원 모어 띵으로, 리니지2M 외에, ‘퍼플’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공개했다. 퍼플은 리니지2M의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원동력으로, 모바일 게임을 PC에서도 할 수 있게 한다.

 

“자주 쓰는 그 단어, 혁신”

혁신! 애플과 잡스를 설명하는 단어로 이보다 적절한 것은 없을 것이다. 애플이 사랑받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혁신을 가능케 하는 인문과 기술의 결합이었다. 애플은 제품을 설명할 때 기능보다 감성을 앞세운 새로운 기술 회사였다. 그래서 매킨토시를 들고나오면서, 빅브라더 IBM을 깨부수는 반항아 애플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잡스는 맥북에어를 서류봉투 안에서 꺼냈는데, 이 퍼포먼스 하나로 ‘얇은 노트북’ 시장의 게임 판도를 바꿨다. 이때부터 울트라씬 계열의 모든 노트북은 맥북 따라잡기 경쟁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은 아이폰 광고에서 기술의 대단함을 보이는 대신, 사람들이 아이폰을 어떻게 쓰면 되는지, 그리고 그게 일상을 어떻게 바꿀지를 알리려 했다. 일상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감성, 그게 애플식 혁신이었다.

엔씨는, 올 2월 새로운 기술 프로젝트를 공개하기도 했는데 말로 모바일 게임을 조정하는 ‘보이스 커맨드’ 같은 것이 포함됐다. 이때 공개된 영상은, 아이를 안고 목소리로 혈맹에 지시를 내리는 30대 남성 등을 출연시키면서 이 기능들이 어떻게 게임에 녹아들지, 게임의 경험이 어떻게 바뀔지를 짐작하게 했다. 엔씨가 이때 밝힌 목표는, 모바일에서 완전히 새로운 게임의 경험을 이용자들에 심어놓겠다, 즉 혁신을 일으켜보겠다는 메시지였다.

나름으로 게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어 했던 부분도 있다. PC 온라인 게임 리니지는 처음으로 인터넷에서 MMORPG를 가능케 했고, 리니지2는 풀 3D를 도입했다. 이번 리니지2M에서는 모바일과 PC를 오갈 수 있게 4K 그래픽을 지원한다.

 

“다작하지 않는다”

엔씨소프트가 현재 서비스 중인 모바일 게임은 프로야구 H2와 리니지M, 단 두 개다. 연내 출시가 예정된 리니지2M까지 다 해서도 세 개가 전부다. 다른 회사들과 달리 다른 개발사가 만든 게임을 유통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이 가진 IP를 가지고 직접 개발해서 운영, 서비스한다. 그러다보니 많은 게임이 나오지 못한다. 리니지 외에 개발 중인 모바일 게임으로는 역시 엔씨가 갖고 있는 아이온과 블레이드 소울 IP를 활용한 것들이다. IP를 지속 관리하고 투자하는 것을 우선 순위로 보는 것이다.

엔씨 내부에서는 자사 개발팀들을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고 표현한다. 회사의 가치 역시 R&D를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다. 일례로 엔씨는 판교 사옥을 ‘판교 R&D 센터’라고 부른다. 삼성동 사옥 시절에도 그랬다. 일하는 전 직원을 혁신하는 사람들이라 일컫는 것이면서, 개발에 쏟는 투자 역시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내포했다. R&D 투자에서 회사의 미래를 보는 것인데, 엔씨소프트의 한 직원은 “그래야 좀 크리에이티브한 제품을 많이 만들 수 있지 않느냐”고 언급했다. 가능하면 이전 시대에 없던 기술을 선보이고, 그래서 기술을 리드하는 기업이 되고파 하는 것도 다작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올해 유일한 엔씨소프트의 신작 리니지2M

 

“비싼데도 산다, 확실한 팬층”

딱 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비싸서 욕먹는 것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애플의 경우 아이폰도 비싸고 아이패드도 그러하고 맥북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작 아이폰XS 맥스는 512GB 모델이 190만원을 훌쩍 넘긴다. 비싸서 못 살 것 같은데도, 애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다. 아이폰도 사고 아이패드도 사며, 맥북을 쓰고 애플워치를 손목에 차면서 애플의 생태계로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 안에서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는다.

애플빠와 린저씨를 비교하긴 그렇지만, 최근 유튜브에 올라온 리니지2M의 트레일러에는 “1억 이상 쓸 거 아니면 시작도 하지 마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용자들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돈을 쓰는지, 대충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주변에도 리니지M에 1억원 이상 썼다는 사람이 있어서 혀를 내둘렀는데, 리니지의 세계에선 장삼이사인가 보다. 하여튼, 리니지2M이 기술적으로 뛰어나더라도, 과금 문제는 조금 밸런스 조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저씨들 지갑도 한계가 있으니까.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CEO의 존재감”

마지막으로, CEO의 존재감이다. 사람들은 한때 애플의 다른 이름으로 스티브 잡스를 떠올렸다. 아니, 지금도 잡스는 애플의 상징이다. 엔씨소프트도 김택진 대표의 존재감이 크다. 엔씨소프트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 대처하면서 개발 체계를 ‘캠프 체제’로 바꿨다. 게임 개발 프로젝트 단위를 캠프라고 일컫고, 그 캠프장을 ‘캡틴’이라고 부른다. 김택진 대표는 캡틴들의 캡틴으로, CCO(최고개발책임자) 자리를 맡았다. 내부에서는 창의력 책임자라고도 부른다. 회사의 개발 게임을 총괄하는 리더 역할인데, 김택진 CCO를 가운데 놓고 여러 캠프가 병렬로 존재하는 형태다. 캡틴들은 캠프를 이끌면서 주요 결정사항을 김택진 CCO와 상의한다. 개발자들이 자가기 개발하고 있는 타이틀을 들고 CCO를 찾으면, 올해 어떤 게임을 갖고 유저들과 만날지 최종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모든 게임 개발에 김택진 대표가 관여하는 셈이다.

외부로 보이는 면에서도 다른 게임사에 비해선 김택진 대표가 얼굴을 자주 비추는 편이었다. 예컨대 리니지M이 나왔을 때는 이례적으로 김 대표가 직접 TV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종종 자신의 이름 영어 약자인 TJ를 딴 ‘TJ’s 쿠폰’을 게임에서 이벤트로 뿌리기도 한다. 유저들이 김 대표를 택진이형이라고 부른 것에서 착안한 것 아닐까. “애플이 최고”라고 말하던 잡스처럼, 김택진 대표도 엔씨의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는다. 리니지2M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몇 년간 기술적으로 리니지2M을 따라올 수 있는 게임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