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리] 양봉으로 스타트업을 만들었다고?
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 일주일에 한 편, 스타트업 리뷰를 연재합니다. 코너명은 ‘바스리’, <바이라인 스타트업 리뷰>의 줄임말입니다. 스타트업 관계자 분들과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세상엔 수많은 스타트업이 있다. 온갖 아이디어가 창업의 원천이 된다. 그래서 웬만한 아이템은 새롭단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 ‘꿀 스타트업’이 있다고 했을 때 ‘헐, 꿀로도 창업할 수 있구나’ 하고 내 안일함을 반성했다. 그래서 가봤다, 꿀 스타트업.
공장을 거치지 않은 숙성꿀은 저마다의 개성이 있다. 와인이나 치즈가 산지와 숙성 방법에 따라 그 맛과 향이 달라지듯, 꿀도 그렇다. 꿀벌이 어떤 꽃의 꿀을 날라 왔는지, 그 꽃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꿀벌이 날라온 꿀에서 수분을 어떻게 얼마나 증발 시켜 채밀하는지에 따라 그 향과 맛이 다르다. 꿀에도 커피 원두처럼 ‘스페셜티(specialty)’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재훈, 권도혁 서울의 두 도시 양봉가는 세상 사람들한테 다양한 꿀맛을 알리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6월 ‘잇츠허니’를 창업했다. 이재훈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의 맞은편 건물 옥상을 빌려 꿀벌을 길러 온 양봉가다. 권도혁 대표는 캘리포니아 카멜로 휴가를 갔다가 라벤더꽃을 채밀하며 꿀 세계에 눈을 떴다. 둘은 “세상에 ‘동서 벌꿀’만 있는게 아니다, 날 것 그대로의 꿀, ‘로우 허니(Raw Honey)’를 알려보자”는데 의기투합했다.
꿀 맛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단맛의 정도 차이나 있겠지’ 라고. 그런데,
이 여섯가지 꿀은 맛이 전부 다르다. 어떤 꿀은 단 맛이 덜하면서 알갱이가 씹히는 식감이 있는데, 또 다른 꿀은 졸음을 쫓아낼 정도로 강한 단맛을 가졌다. 방심하다가 입에 떠넣은 꿀은 “악, 이게 꿀이야 한약이야!” 싶을 정도로 건강한(?) 맛의 충격을 준다.
이렇게 다른 맛을 가진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는데,
꽃과 산지, 양봉가와 채밀 작업 연도가 모두 달라서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양봉가가 사는데, 우리나라에만 2만명이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만 놓고 봐도 서로 다른 맛의 꿀이 2만개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 사진은 UC데이비스(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만든 꿀의 향미 분류표다. 꽃이나 허브, 나무처럼 예상 가능한 범주도 있는데 아예 상상조차 못했던 동물향 꿀도 있다. 권 대표는 “비에 젖은 강아지의 맛이라는 게 어떤건지 생각도 못해봤는데, 꿀을 먹어보고 아 이게 바로 그 상상 속의 맛이겠구나”라고 말했다.
로우 허니가 각자의 개성을 갖는 이유는, 공장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꽃꿀은 원래 점도가 없어 물처럼 흐른다. 흔히 생각하는 꿀의 형태가 아니다. 꿀벌이 아흔 번이나 꽃꿀을 삼켰다 뱉기를 반복해야 화학 변화가 일어나 건강 성분이 생겨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끈적끈적한 꿀을 만들기 위해서는 벌의 날갯짓이 필요하다. 벌이 쉬지 않고 날갯짓을 해 수분을 증발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우리가 아는 그 꿀이 탄생한다.
그런데 공장에서는, 이 지난한 과정을 기다리기 어렵다. 상품성 있는 꿀은 수분 함유량이 전체의 20% 이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꿀을 가열해 수분을 증발시켜 점도를 만들어낸다. 일관된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균일한 맛이 보장되지만, 대신 꿀마다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개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잇츠허니는 세계 개인 양봉가들의 꿀을 선별, 소비자에 전달하는 꿀 커머스를 연다는 계획이다. 첫 상품은 섬진강의 양봉가로부터 공급받기로 했다. 양봉가가 어떻게 꿀을 만들어내는지와 화학 테스트를 통과한 시험성적서를 확인하고, ‘스페셜티 허니’라 부를 수 있겠다고 자신하는 꿀을 팔겠다고 권 대표는 말했다.
또, 스페셜티 허니를 알리기 위한 ‘꿀 테이스팅 클래스’를 매달 한 번씩 연다. 꿀벌이 모아온 꿀을 어떻게 채밀해서 식탁에 올라오는지 그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덧붙여, 다른 향과 맛을 가진 꿀을 맛보고 평가하는 시간을 가진다. 예컨대, “한 스푼 듬뿍 덜어 입 안에 넣고 눈을 감으니 어릴 적 엄마 손 잡고 가 뛰어 놀던 동네 뒷산의 아카시아 나무 향이 떠오르네요” 하는 품평을, 부끄러움만 참는다면 할 수 있다.
아래는, 클래스의 몇 장면을 영상으로 담아온 것이다. 우선, 꿀벌이 벌꿀로 벌집을 채우는 모습이다.
꿀벌의 수명은 30일 안팎이다. 그런데 꿀벌은 자신이 물어온 꽃꿀을 벌꿀로 만들어내는 한 과정에 보름에서 한달의 시간을 쓴다.
꿀이 한 가득 담긴 벌집에서 꿀을 채밀하는 과정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사직 위쿡에서 열린 꿀 테이스팅 클래스에 참가해서 꿀 채밀을 체험해 봤다. 밀랍을 얇게 떼어내는 것이 기술이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힘이 들고 어렵다. 한동안 유행했던 꿀 아이스크림은, 저 벌집의 일부를 떼어 아이스크림 위에 올려 판 것이다.
밀랍을 제거한 벌집을 원심 분리기에 넣고 힘주어 돌리면, 꿀을 분리해 뽑아 낼 수 있다. 가래떡 뽑듯 꿀이 나온다. 이 꿀을 예쁜 병에 담으면,
두고두고 오래 먹을 수 있다. 꿀은 잘 변질되지 않는다고 한다. 꿀하면, 꿀물만 생각 났는데 생각보다 빵이나 치즈와도 궁합이 좋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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