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루가와 다자요는 왜 사업을 접어야 했나

“규제는 유관기관의 권한이 막강하다. 가이드라인이 모호하거나 손바닥 뒤집듯 하루아침에 바꿔 버리면 기업 입장에서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해도 의미가 없다. 최소한 어디까지 되고 어디까지는 되지 않는지,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게 해주면 벨루가처럼 서비스를 두 번이나 중단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김현종 벨루가 이사(공동창업자)가 20일 아산나눔재단과 구글스타트업캠퍼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공동 주최한 ‘스타트업코리아!’ 정책제안 보고서 발표회의 패널토론에 참석해 한 말이다. 벨루가는 2016년 크래프트 맥주 정기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전통주를 제외한 주류의 경우 통신판매를 금지하는 주세법으로 인해 사업을 중단했다. 문제는 주세법에서 “음식에 부수적으로 제공되는 주류”의 경우 판매가 가능하게 되어 있어, 사업 모델을 변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의 해석에 따라 사업을 또다시 접어야 했다는 데 있다.

유관기관의 해석에 따라 상식선에서 진행하던 사업을 접어야 했던 사례는 또 있다. 빈집을 임대, 리모델링해 숙박업을 하는 스타트업 다자요는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곳’만 투숙객을 받아 숙박을 제공할 수 있다는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사업이 불법이라는 해석을 최근 농림축산부로부터 받았다. 1990년대 농어촌 주민의 가외소득 증진을 위해 생겨난 이 법은, 최근처럼 빈집이 늘어나고 있는 지역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빈집을 리모델링해 숙박한다는 것은 기존에는 없던 사업 모델이라 마땅한 근거법이 없었으나, ‘농촌에서 숙박업을 한다’는 이유로 농어촌정비법을 어긴 게 되어 결국 사업을 중단하게 됐다.

두 회사가 사업을 중단한 까닭은 우리나라가 ‘포지티브 규제’를 채택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포지티브 규제란, 할 수 있는 것을 법으로 열거해 놓은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은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 그런데 모든 나라가 포지티브 규제를 택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세계에서 가장 스타트업이 활성화된 나라들은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갖고 있다. 해서는 안 되는 것만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을 말하는데, 이 경우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신산업을 우선 허용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국가가 관리, 감독을 강화한다.

패널토론에서 참석자들이 한국 스타트업 성장과 발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김영덕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 안창국 자본시장위원회 국장, 김현종 벨루가 공동창업자, 이태희 벅시 대표

포지티브 규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업의 기회를 사전에 박탈한다는 것이다. 이날 연구보고서를 발표한 안희재 베인앤컴퍼니 파트너는 “누적 투자액 기준으로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중 절반이 국내에서는 규제 저촉으로 인해 사업을 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버나 리프트처럼 이미 기업공개를 한 곳은 포함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만약 이들이 엑시트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가 이뤄졌다면 모빌리티에 대한 규제가 심한 국내 환경을 고려할 때 규제 저촉에 해당하는 글로벌 기업은 더 많을 것이란 뜻이다.

 

출처=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을 위한 스타트업 코리아 연구 보고서

 

보고서에 따르면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한 미국이나 중국, 영국, 인도 등이 포지티브 체제인 한국과 독일,일본 대비 훨씬 많은 유니콘을 보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O2O 12곳, 금융 23곳 헬스케어 19곳, B2B 제조/테크 65곳 등을 포함해 총 177개의 유니콘이 활동한다. 우리보다 규제가 심할 것 같은 중국도 O2O 13곳, 금융 5곳, 헬스케어 8곳, B2B 제조/테크 16곳 등을 비롯해 94개의 유니콘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O2O 2곳, 금융 1곳 등 총 9개의 기업이 유니콘이 됐다. 한국은 의료 선진국으로 분류되지만, 원격의료로 대표되는 디지털 헬스케어에 있어서만큼은 불모지에 가깝게 되어 버렸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극단적인 갈등을 불러온 분야가 ‘모빌리티’였다면 보고서는 O2O 서비스, 디지털 헬스케어, 핀테크, 숙박 등 대부분의 신산업에 규제 장벽이 있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법안이 기존 오프라인 사업 모델 중심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 접근 외에도 스타트업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신규 규제가 양산되고, 또 이와 관련해 입법부와 행정부가 소극 행정으로 인해 규제 개혁과 유권 해석이 장기화되는 문제가 있다. 기존 사업자와 갈등 역시 중요한 이슈다.

다른 나라라고 해서 아예 규제나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일본에서도 새로운 숙박업의 등장이 갈등을 낳았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지난해 6월  개인 보유의 단기 임대를 허가하는 ‘신민박법’을 시행해 스타트업과 기존 사업자 간 규제 형평성을 확보하면서 공정한 시장 경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꼭 같은 지붕 아래 실 거주자가 있어야만 숙박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대신, 집주인이 거주하지 않을 경우 숙박객 요청에 대응 가능한 주택숙박관리업자를 고용토록 했다. 달라진 시대상황을 반영하면서 갈등을 해결하려 노력한 것이다.

물론, 우리 정부도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규제에 대한 꾸준한 문제제기를 듣고 그중에서도 ‘포지티브 규제’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해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2017년 9월 신산업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전환’ 방향을 확정한 이후로 단계별로 개선안을 내놓았고, 올해는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를 열고 일정 기간 규제 유예를 통해 신규 사업을 시장에서 테스트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 1월 제도 첫 시행 후 7월 15일까지 6개월간 총 81건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사업이 승인되었다. 시행 초기이지만 실질적인 사업 허용으로 연결되는 성과가 일부 보이는 만큼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받는 점은, 느린 심사속도와 제한적 사업 허용 범위, 엄격한 심사 등이다. 예컨대 한 폐차 중계 서비스는 샌드박스를 통과했음에도, 기존 폐차장에 적용되는 설비를 구비하고 자동차 해체업자 등록을 해야 한다는 기존 폐차업자들의 반발로 인해 한때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안희재 파트너는 “제한된 정도의 허용, 긴 심사 등 스타트업이 체감하는 샌드박스에 대한 어려움은 여전히 많은데 정부에서 피드백을 받아 보완 노력하고 있다고 들어서 주시하고 있다”며 “진정한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갈 수 있는 역할을 샌드박스가 수행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지적했다.

샌드박스에 들어가든 아니든 간에,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는 부지기수다. 반반택시(택시 동승) 서비스를 하는 코나투스도 샌드박스 통과가 늦어지면서 사업 시작을 못해 존폐 위기를 겪었다. 원격 진료 허용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 역시 의사 협회의 반대가 있고, 이동식 반려동물 출장 장례 서비스도 농림부로부터 ‘오프라인 장묘업 등록 기준에 맞추라’는 요청이 있어 사업 추진을 하기 어려운 상태다.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체제로 전환하는 것 외에, ‘규제 신설을 제어하기 위한 규제 영향 분석 및 일몰제의 강화’ ‘스타트업 규제 유권 해석, 적극 행정을 위한 지원책 마련’ ‘스타트업 -기존 사업자 간 공정한 경쟁의 룰 수립’ 등도 규제 환경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보고서에 소개됐다. “시대가 바뀌면 법의 필요성이 바뀌듯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해당 규제가 필요한지 지속 여부를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과, “소비자 효용이 높은 혁신 서비스의 시장 진입을 허용하되, 기존 사업자와 스타트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의 형평성을 맞추는 것”이 숙제로 남아있다는 뜻이다.

한편, 보고서는 스타트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규제 개선 외에도 ‘혁신적 서비스와 제품 개발을 위한 데이터 인프라 환경’ ‘창업-성장-회수-재투자의 선순환을 위한 투자 환경’ ‘스타트업에 필요한 인력 확보를 위한 인재 유입 환경’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규제 개선과 쓸만한 데이터, 돈, 사람을 핵심 키워드 뽑은 것인데, 이같은 환경이 받쳐줘야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 육성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스타트업 육성이 중요한 이유는 이경숙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이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한국이었다면 규제로 인해서 사업을 시작도 못 했을 스타트업이 세계에서는 혁신 사업으로 성장해가고 있다”면서 “스타트업은 한국 경제의 일부가 아니라 이미 경제 그 자체고 본질이고 미래”라고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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