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피셜 법정] 비디오 게임이 뇌를 파괴한다고?

[편집자 주] 지난 24일 이경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및 인지과학 협동과정 교수를 초청, ‘비디오 게임에 대한 뇌인지 과학적 이해’를 주제로 한국게임미디어협회, 한국게임기자클럽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를 ‘가상 법정’ 형태로 재구성했습니다. 이경민 교수는 토론에서 각종 의학 논문을 근거로, 비디오 게임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강의하고 답했습니다. 그 내용을 왜곡하지 않는 한에서 1) 비디오 게임이 도파민 분비에 미치는 영향 2) 비디오 게임은 정말로 뇌를 파괴하는가 등의 내용을 가상 법정 형태로 다뤄봤습니다. 발표자였던 이 교수를, 이 글에서는 증인으로 모셨습니다. 이 교수의 논증이 ‘게임이 과연 뇌에 악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여러분 각자의 해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놈이 고발을 당했다. 이놈 때문에 청소년들이 중독에 빠져서 제 할 일을 못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즉각 기소를 결정했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놈을 접하게 되고 빠져들게 되면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하고, 결국엔 뇌를 파괴한다는 고발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비디오 게임은 억울했다. “요즘은 과학 수사 한다는데 내가 잘못했다는 과학적 증거를 대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과학적 증거는 이쪽에 있다고 반박했다. 입증할 증인도 신청했다. 뇌과학을 전공한 데다, 양쪽 입장에서 편파적이지 않게 입장을 낼 사람이면 검찰측도 인정하지 않겠나. 마침, 국무조정실 주도로 민관협의체가 구성되었으니, 여기에 소속되기도 한 의학박사 이경민 교수를 증인으로 불러냈다. 이 교수도 증인 출석을 승낙했다.

 

판사: 증인, 출석했나요?

 

증인: 네,

 

– 원활한 글 흐름 위해 선서 생략 –

 

판사: 변호인, 신문하시죠.

 

변호인: 증인, 증인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및 인지과학 협동과정 교수로 재직 중이죠?

 

증인: 네, 그렇습니다.

 

변호인: 뇌인지 과학을 다루고 있군요. 검사 측에서는 게임을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증인: 게임과 관련해서 중독이나 과몰입이라는 단어들을 주로 쓰는데, 둘 다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주장은 관점을 가집니다. ‘중독’이라는 단어를 쓰면 백해무익한 이미지가 연상되죠. 술, 담배, 마약, 도박 같은 것들 말입니다. 중독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나쁜 것들’이라는 의미가 부여됩니다. 그런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해서 반대쪽에서는 ‘과몰입’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요, 그런데 되려 묻고 싶습니다. 아니, 몰입이 과한 게 있고 덜 한 게 있습니까? 적당한 몰입이라는 것 자체가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변호인: 증인, 그렇다면 ‘중독’이나 ‘과몰입’ 대신 뭐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습니까?

 

증인: 게임을 많이 하는 상태, 그 자체를 묘사하는 단어를 쓰는 게 옳다고 봅니다. ‘과용’이라는 단어가 더 맞겠죠.

 

변호인: 좋습니다. 게임 과용.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는 뜻일 텐데요. 검사 측의 주장 중에서, 뇌인지 과학적으로 중요한 주장은 두 가지입니다. 게임을 많이 하면 도파민이 분비 돼서 행동장애를 일으킨다는 것과, 뇌를 파괴한다는 주장인데요, 이게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습니까?

 

증인: 우선 도파민 이야기부터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도파민은 뇌에 존재하는 신경 전달 물질 중 하나입니다. 뇌세포가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때 쓰는 물질이죠. 일상적으로 소통할 때 쓰이는 물질부터, 중요한 순간에 쓰이는 것까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도파민입니다. 이런 물질을 열심히 연구하는 게 신경과학 분야 중 신경생화학, 신경생리학이죠.

케임브리지 대학 신경과학 교수인 볼프람 슐츠가 1986년 발표한 원숭이 실험 논문이 있습니다. 도파민을 통해 소통하는 세포가 많은 영역에 전극을 꽂아 신경 세포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살핀 것인데요. 연구 결과를 보면,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도 일정량의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그런데 전기 자극을 주니까 일시적으로 도파민 분비가 늘어나네요, 게임을 하면 도파민 분비가 많이 되어서 뇌에 안 좋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근거가 이건데요,

잘 살펴봐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도파민은 원래 일상생활에서도 분비되는 겁니다. 밥을 먹을 때도 나오고, 연애할 때도 나옵니다. 뭘 해도 나오는 거라, 도파민이 나오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합니다. 즉, 도파민 분비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없지요.

그러면, 중요한 것은 도파민이 얼마나 나오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이번에는 음식 섭취와 성행위, 코카인, 각성제로 인한 도파민 수치 증가를 비교한 논문을 봅시다. 일반적으로 음식을 먹을 때는 도파민이 50% 늘었습니다. 성행위를 할 때는 100%가 늘었습니다. 밥을 먹거나 성행위를 하는 건 아주 일상적인 거라, 이때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 역시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겠죠?

자, 그럼 문제가 되는 마약을 봅시다. 코카인을 했을 때 도파민의 분비는 350%로 늘었습니다. 메타암페타민(각성제)의 경우에는 무려 1200%가 늘었네요.

 

변호인: 게임을 뇌 파괴의 주범으로 공격하는 사람들은 바로 ‘게임=마약’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게임을 했을 때는 실제로 도파민이 얼마나 분비되나요?

 

증인: 1988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비디오 게임을 포함한 미디어 사용은, 좋은 음식을 먹을 때와 동등하게 도파민 수치가 13~50% 늘어나는 경향성을 가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변호인: 마약이 아니라, 좋은 음식을 먹을 때와 같군요!

 

증인: 네, 그렇습니다. 2016년 나심 보우수히(Nasim Vousooghi) 박사의 연구 결과에서도 “게임 사용과 약물 남용은 전혀 다른 도파민 작동원리 작용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변호인: 잘 알겠습니다. 그럼, 정상적인 범주의 도파민 분비는 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증인: 아주 단순히 이야기하면, 학습기전을 돌릴 때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것을 하는 것, 시스템적으로 나한테 필요한 행동을 배우는 것이 학습 아닙니까? 만약 도파민이 없다면 이런 학습이 불가능해집니다. 도파민 분비가 안 되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게 된다는 뜻이죠.

 

변호인: 그렇군요. 그럼, 뇌파괴와 관련해 이야기해 봅시다. 증인, 도파민 분비와는 상관없이, 게임을 많이 하면 뇌 활동이 떨어진다거나 혹은 뇌세포가 파괴되는 등의 악영향은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증인: 분비된 신경 전달 물질은 피를 타고 몸속을 돌아다닙니다. 피검사를 해서 뇌 활동을 간접 측정할 수 있다는 걸 뜻하는데요. 원래는 마약 중독자가 생리적으로 정상인과 어떻게 달라지는지, 진단과 치료를 목적으로 실행되었던 연구입니다.

이 연구를 한 연구자는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을 ‘중독자’라고 표현했는데요, 마약 복용자에서 관찰되는 변화가 게임 중독자한테서 나타나는지 알아보려는 목적의 실험이었죠. 그런데 결과는 “마약 복용자에서 관찰되는 변화가 게임 중독자 그룹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다”입니다.

오히려, 다른 변화가 관찰됐죠. 머리가 좋은 사람한테서 나타나는 변화가 게임 중독자 그룹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상당한 반전 아니겠습니까? 게임을 많이 하면 작업 기억이 많아진 사람들의 변화와 유사한 변화가 관찰되는 겁니다.

뇌가 변하고 활성화가 되면, 시각운동협응이 좋아진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주의력이나 인지능력, 보상 처리 등의 능력도 증진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게임을 통해 자극을 받고, 많이 훈련된 동작의 경우 일상생활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거죠. 일례로, 게임을 많이 한 외과의의 술기 능력이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었고요.

 

변호인: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 장담컨대 이 법정 기록이 외부에 출판되면, 부모들이 ‘게임을 하라’고 아이들을 닦달할 것이고, 아이들은 곧 게임을 끊을 것입니다. 아마도 새로운 미디어와 놀 곳을 찾아 떠나겠죠.

 

판사: 변호인, 더 질문 없습니까? 그럼 검사 측으로 넘어가죠. 검사, 신문하세요.

 

검사: 증인, 증인의 주장은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도입하면 안 된다’는 측의 입장에 매우 유리하게 들리는데요

 

증인: 저는 오늘, 과학적 연구 결과에 입각한 대답만 했습니다. 근거를 갖고 말하는 것입니다.

 

검사: 오늘 증인의 발언이, 과학계나 의료계에서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내용입니까? 아니면 모두가 동의하는 내용인가요?

 

증인: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은 숙의 민주주의와는 다릅니다. 뇌인지 과학과 관련한 문제를, 과학자들이 다수결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비디오 게임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고, 그 결과 이러한 결론들이 나왔다는 걸 설명한 것이지요.

 

검사: 증인, 증인의 말대로라면 게임을 하는 게 무조건 좋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증인: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게임이 다 좋은 것은 아니죠.  예를 들어, 놀이가 현실적 욕망의 도구로 전락한 경우 나쁜 게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돈벌이의 수단이 된 사행성 게임이라든가, 경쟁만 강조해서 현실에서 억압과 배제 논리를 학습하게 하는 게임 역시 좋은 게임이라고 볼 순 없겠죠.

 

검사: 그렇다면, 그런 나쁜 게임에 빠진 이들을 위해서라도 게임을 많이 하는 걸 질병으로 보고 치료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증인: 게임을 질병의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자기 통제력 발달의 과제로 바라보는 게 문제 해결에 훨씬 효율적일 것입니다. 게임을 잘만 활용한다면, 아직 해결하지 못한 건강과 관련한 수많은 과제에 잘 쓰일 수 있습니다. 게임의 활용을 통한 뇌인지 기능의 발달과 건강 증진을 우선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판사: 증인, 잘 들었습니다. 다음 공판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승인한 ICD-11을 회원국이 적용하도록 권고된 2022년 이전에 열도록 하겠습니다. 검찰과 변호인 측은 모두, 과학적 근거로 한 합리적인 논쟁을 준비해오시기 바랍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