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워딩이 ‘디지털’을 만나면 생기는 작은 변화

국제물류주선, 그러니까 포워딩 업계는 불투명성으로 유명하다. 어떤 물류업체가 어느 구간의 물류를 잘하는지, 그 구간의 견적은 얼마인지 도무지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렵다.

네이버에 포워딩 업체를 검색하고 아무데나 한 번 들어가 보자. 못한다는 이들을 찾기 어렵다. 모든 물류를 잘할 것처럼 이야기 한다. 당연히 모든 물류를 잘할 수는 없다. 포워딩 업체의 역량은 오랜 기간 해당 지역 물류를 수행하면서 만든 ‘파트너 네트워크’고, 당연히 네트워크가 없는 지역은 못하는 게 맞다. 애당초 포워더가 독립된 여러 파트너 회사들을 연결해서 완결된 물류 서비스를 만드는 ‘주선’ 사업자임을 상기하자.

화주 입장에서 당장 궁금한 것은 특정 구간의 ‘견적’일 것이다. 역시나 아무 포워딩 업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견적요청’을 해보자. 폐쇄형 게시판 혹은 담당자의 전화번호 하나가 노출된다. 여기에 일일이 연락해서 견적을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견적을 받는데 통상 3~5일이 걸린다는 국제물류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연히 한 업체에서만 견적을 받지는 않을 거다. 여러 포워딩 업체에 같은 과정으로 연락을 해 견적을 받고 비교해야 한다.

익스피디아는 항공기를 예매하고자 하는 해외 여행자가 출발지와 목적지, 날짜를 입력하면 항공사별 노선과 운임, 소요시간을 일목요연하게 노출시켜주는 플랫폼이다. 여객에는 이런 게 있는데, 물류는 아직 노가다가 기본이다.

그렇게 어찌어찌 포워딩 업체를 찾아 물류를 맡겼다고 하자. 화주 입장에서 단연 궁금한 것은 내가 보낸 화물이 무사히 예정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냐는 것이다. 해운업계에서 예상도착시간(Estimated Time Arrival)과 실제도착시간(Actual Time Arrival)이 틀어지는 일은 왕왕 발생한다. 기상 악화가 있을 수도 있고, 항만에 갑자기 선박이 몰려서 제 때 접안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 때 화주는 어떻게 이 정보를 알 수 있을까. 포워딩 업체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물어봐야 된다. 물론 물량이 많은 업체들은 포워딩 업체들이 미리미리 관련 정보를 챙겨주기도 하는데, 이것도 물량 없으면 찬밥이다.

여기까지가 IBM, 머스크 등 몇몇 대형 IT, 해운업체들이 ‘블록체인’을 국제물류의 투명성을 만드는 기술로 활용한다고 홍보하는 와중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디지털은 아직도 포워딩 업계에서는 머나먼 일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전은 없었는가

모두가 DT(Digital Transformation)를 외치는 시대에, 포워딩이라고 도전은 없었겠는가. 있었다. 수많은 물류 플랫폼들의 도전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적지만 있었다. 2015년 현대상선 출신의 창업자들이 모여 만든 업체 ‘트레드링스’도 초창기부터 물류 플랫폼판을 개척한 이들 중 하나다.

물론 완벽하지는 못했다. 트레드링스는 플랫폼을 통해 선박과 항공기 운항 스케줄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게 했지만, 운임 정보까지 완전히 개방하지는 못했다. 물류 서비스 공급자인 포워딩 업체들이 ‘운임 공개’를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트레드링스가 초창기부터 제공하고 있는 스케줄 정보. 이것만 해도 대단한 거다. 그 전엔 이것도 돈 받고 팔던 업체들이 있었다.

포워딩 업체들에게 ‘폐쇄성’은 그들의 경쟁력이었다. 잘 모르는 화주에게는 조금 더 높은 단가를 부를 수도 있고, 때때로 운송 지연에 대한 책임을 화주에게 전가시키는 것도 가능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딱히 투명해졌을 때 포워딩 업체들에게 좋을 것이 없으니, 그들이 플랫폼에 참여할 유인도 크지 않았다.

그래서 트레드링스가 선택한 방식이 완전 개방 운임이 아닌 ‘역경매’였다. 물류 서비스를 원하는 화주가 특정 구간의 견적을 요청하면, 그것을 보고 운송을 희망하는 포워딩업체들이 운임을 역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화주사는 그 중 마음에 드는 견적이 있다면 선택한다. 실제 거래가 성사되면 포워딩 업체에게 일정 부분 중개 수수료를 받는 것이 트레드링스의 수익모델이었다.

투명성을 향해 한 걸음 더

트레드링스의 창업 후 목표는 줄곧 국제물류업계의 폐쇄성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현재 트레드링스가 확보한 포워딩 업체 파트너의 숫자는 약 100여개. 이 정도 숫자면 전 세계 어느 곳을 연결하는 물류라도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트레드링스측 설명이다. 100여개의 포워딩 업체 파트너를 6000여개의 플랫폼 가입 수출입 화주 회원사와 연결해주는 것이 현재 트레드링스 비즈니스 모델이다.

조금 더 투명해지기 위한 한 걸음도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트레드링스의 서비스가 강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트레드링스가 내세우는 무기는 두 개다. 첫째는 지난해 12월 론칭한 ‘링고’. 수출입 물류업계의 불투명성을 해소하고자 오픈한 서비스다. 두 번째는 지난 4월 시작한 ‘쉽고’. 수출입 물류업계의 ‘가시성’을 채워주기 위한 서비스다.

먼저 링고. 지금까지 트레드링스가 제공했던 견적 서비스가 ‘역경매’였다면, 링고는 이것을 경매 방식으로 바꾸었다. 트레드링스 플랫폼에 참여하고 있는 100여개의 포워딩 업체들이 그들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구간을 상품으로 만들어서 운임과 함께 공개하는 형태다. 화주가 트레드링스 플랫폼에 출발지와 도착지, 옮기고자 하는 물량의 규모를 입력하면 트레드링스 플랫폼 안에서 제공하는 해당 구간의 운임 옵션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익스피디아’의 항공권 추천과 같은 서비스를 수출입 물류업계에 구현한 것이다.

링고 구동화면. 링고는 국제물류판 익스피디아라 부를만 하다. 포워딩 업체들의 구간 서비스를 운임과 함께 한 눈에 비교할 수 있고, 알고리즘에 의거해 잘 하는 업체를 추천받을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서비스 최적구간을 파악하는 주체는 화주가 된다. 트레드링스가 여러 구간 정보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것이 꼭 ‘최적’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담당자의 역량이 좋은 물류업체 선정을 좌우하게 되는데, 여기서 트레드링스가 제공하는 것이 ‘추천’ 기능이다. 트레드링스가 ‘운임’과 ‘소요일자(T/S)’, ‘서비스개수’, ‘서비스 안정성’ 등의 지표를 고려해서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화주사가 링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그간 최대 5일 정도가 걸려서 받던 특정 구간의 여러 물류업체의 견적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일이 전화하고 확인했던 비교견적 과정에서 얻어지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포워딩업체는 트레드링스를 영업 창구로 활용하여 새로운 화주사의 물량을 받아 돈을 벌 수 있어 이득이라는 설명이다.

박민규 트레드링스 대표는 “링고 서비스가 가능해진 이유는 포워딩 업체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서비스와 기술이 좋다고 해도 파트너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서비스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며 “앞서 거의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포워더 파트너들과 협업을 통해 신뢰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링고를 론칭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포워더의 노가다가 사라질까

두 번째 쉽고. 쉽고는 화주 입장에서는 가시성을 제공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마치 카카오택시를 호출하면 택시의 현재위치가 앱상에 표시되듯, 국제물류에서도 내 화물을 싣고 있는 선박의 현위치를 시각화하여 실시간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트레드링스에 따르면 쉽고는 AIS(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위성 데이터를 토대로 특정 선박에, 어떤 화물이 있고, 위치는 어디인지 찾아내고 맵핑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쉽고 구동화면. 쉽고는 항만에서 항만까지의 ‘실시간 가시성’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카카오택시나 우버의 서비스 공급자 위치 트래킹 기능이 국제물류에 적용됐다고 보면 된다.

단순히 ‘시각화’가 쉽고가 내세우는 핵심 가치는 아니다. 트레드링스는 쉽고 도입을 통해 기존 포워딩업체가 수기로 엑셀에 작성하여 화주사에 제공했던 리포팅 업무를 자동화하여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게 쉽고가 제공하는 핵심 가치라는 설명이다.

쉽고에서는 출도착지 정보와 지연 상황도 한 눈에 모니터링 할 수 있다. 시스템 상 예상 및 실제 출발시간(ETD/ATD), 예상 및 실제 도착시간(ETA/ATA)를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 초록색 표기는 실제시간보다 24시간 이상 초과된 것이고, 붉은색 표기는 72시간 이상 초과된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기존에 포워딩 업체들은 어떻게 일했는가. 트레드링스에 따르면 포워딩업체 담당자는 선하증권(B/L) 하나하나와 관련된 화물 정보와 출도착시간 및 지연 정보를 선사에 문의하거나 온라인으로 일일이 조회해서 엑셀파일에 수기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화주에게 제공하는 리포트를 만들었다. 포워딩업체의 익숙한 경력자라 하더라도 선하증권 하나에 딸려나오는 정보를 작성하는 데 약 2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통상 사람 한 명이 한 시간에 30개 정도의 선하증권 정보밖에 작성하지 못한다. 당연히 사람이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기와 누락 문제도 있었다.

수백수천개에 달하는 B/L 데이터를 그동안 누군가가 노가다를 해서 만들어냈고, 이게 그 엑셀 파일다. 보통 중견 포워딩업체 하나가 관리하는 월 B/L의 건수는 2000~3000개 정도 된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자료 : 트레드링스)

선하증권이 하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나가 아니니까 문제다. 박 대표는 “대형 화주의 경우 통상 500~1000개의 선하증권이 나오는데, 이 숫자를 매일매일 업데이트 하는 것은 3~4명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고, 사람이 일일이 하기엔 말도 안 되게 소모적인 반복 작업”이라며 “이것을 자동화하는 것만으로 포워딩 업체의 효율은 상당 부분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쉽고는 시스템에 선하증권 번호만 기입하면 부가적인 정보는 모두 자동으로 완성된다. 사람 작업자가 수천번을 일일이 수기로 작업했던 것이 한 번의 복사, 붙여넣기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트레드링스에 따르면 누구보다 ‘실무자’들이 쉽고 서비스를 반긴다고 한다. 박 대표는 “실무자에게 대외 리포트를 위한 엑셀 작업은 대부분 원래 업무를 다하고 ‘야근’을 하면서 했던 업무”라며 “리포트에 문제가 생기면 화주 클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실무자 입장에선 정말 부담스러워 하고 하기 싫어 한다. 그래서인지 쉽고 서비스를 선호하고 공감하는 분들은 대부분 실무자들”이라 말했다.

물류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이제 서서히 작은 영역부터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지난 16일 첫 번째 쉽고 공급 계약 체결 사례가 나온 것이다. 이랜드월드 패션사업부가 기존 사용하던 내부 수입 화물 관리 시스템에 쉽고를 연계했다.

IoT나 블록체인 같은 끝판왕 기술이 대두되기엔 아직 시기상조란 평이 우세하다. 오히려 서서히 포워딩 업계의 작은 어려움과 비효율을 조금씩 디지털화하여 개선하는 방식으로 변화는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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