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혁신 전시하는 CES 물류는 까대기다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소비자가전전시회)는 ‘혁신(Innovation)’을 다루는 행사라고 한다. 가운데 ‘가전(Electronics)’을 보고 ‘가전제품 다루는 행사 아니에요?’라고 묻는다면 실수한 거다. CES를 주최하는 CTA(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 사족이지만 이 단체의 옛날 이름은 CEA였다. 여기서 E는 당연히 가전이다.)의 게리 샤피로(Gary Shapiro) 회장에게 직접 물어봤는데 가전제품 전시회가 아니라 ‘혁신 전시회’가 맞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헷갈리지 않게 ‘CIS(Consumer Innovation Show)’로 이름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리고 요즘 시대 혁신의 끝판왕은 ‘자동차’다. 뜬금없이 가전제품 전시회에 자동차가 웬 말입니까?’ 묻는다면 또 실수한 거다. 이것도 샤피로 회장에게 물어봤는데, 자동차에는 이 시대에 파괴적인 변화를 만드는 기술들이 집약된다고 한다. 샤피로 회장이 꼽은 파괴적인 변화를 만드는 기술이란 하나는 ‘자율주행’, 둘은 ‘인공지능’, 셋은 ‘5G’다. 게리 샤피로 회장은 “자동차는 5G를 사용하고,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되며, 때로는 로봇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요즘에는 자동차업체들이 스스로를 자동차가 아닌 IT업체라 표현하기도 한다”며 “CES에는 많은 IT업체들이 모여 생태계(eco-system)을 만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더 많은 자동차업체들이 CES에 참가하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참고 콘텐츠 : CES 아시아가 주목한 기술에서 물류 찾기]
실제 11일 개막하는 CES 아시아 2019에 가장 많이 전시되는 기술이 바로 ‘자동차(Vehicle)’다. 6개의 전시관 중 2개가 자동차를 다룬다. 주최측인 CTA에 따르면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완성차 업체만 16개라고 한다. 현대기아차, 아우디, 혼다, 닛산, 벤츠, GM 등이 포함돼있다. 아시아에서 열린 기술 전시회 중에서 이 정도로 많은 완성차 업체가 참여한 행사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요즘 같은 시대의 자동차, ‘모빌리티’
유행처럼 번지는 말이지만 요즘 ‘자동차’란 말을 그대로 쓰면 별로 멋이 없다. ‘모빌리티’라는 말 정도는 써줘야 될 것 같다. 자동차와 모빌리티가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면, 세 가지의 핵심 키워드가 나온다. ‘내연기관에서 친환경 대체연료로’, ‘소유에서 공유로’, ‘사람주행에서 자율주행으로’.
이에 따라 자동차기업은 완성차를 만들어서 공급하는 기업이 아니라 자동차의 군단(Fleet)을 보유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뒤바뀌게 된다. 이것도 멋있는 말로 하면 MaaS(Mobility as a Service)다. 자동차기업의 수익모델 패러다임이 뒤집힌다. 로렌스 번스(Lawrance D. Burns) 웨이모 자문위원은 저서(오토노미 제2의 이동혁명, 2019)를 통해 “현재 자동차 회사들이 판매하는 자동차의 평균 순이익이 한 대당 1000~5000달러 수준인데, 만약 모빌리티 서비스로 차량을 공급한다면 폐차할 때까지 3만 달러를 벌 수 있다”고 전했다.
모빌리티 기술이 만드는 혁신은 자동차기업의 수익구조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의 편의를 증대할 수 있다는 데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들의 입이 모인다. 예컨대 사람들은 차량을 소유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이동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출퇴근 시간에 4명이나 앉을 수 있는 공간에 1명만 앉는 비효율을 카풀을 통해 극복하여 교통 정체를 줄일 수 있다. 차고지에서 놀고 있다고 이야기 되는 95%의 차량을 도로 밖으로 끄집어내 불필요했던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게 된다.
안전사고도 줄어들 수 있다. 대부분의 교통사고는 졸음·음주운전, 무단횡단과 같은 법규를 무시한 사람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발생했었으니까. 로봇이 술을 먹거나 졸지는 않을테니 운전자가 완전히 사라진 ‘완전 자율주행 시대’가 온다면, 사고가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싶다. 여기까지 우리가 CES를 통해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빌리티 혁신이 만드는 앞단의 모습이다.
혁신과 까대기는 공존한다
여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뒷단’이 있다. 자율주행 기술과 무인 자동화 기술을 전시하고 있는 CES의 현장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모빌리티’가 있다. 그리고 CES를 만드는 모빌리티는 무인 자율주행 화물차와 박스를 짊어진 멍멍이 로봇군단이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운전하는 화물차, 사람이 운전하는 지게차, 사람이 운전하는 사다리차, 현장을 가로지르며 물건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가끔 지쳐서 자재에 걸터앉아 담배 한 모금 물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이 현장을 만든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첨단 기술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CES조차도 현장 물류를 위해 첨단 무인기술을 쓰는 것보다 사람을 쓰는 것이 효율적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사람이 기술보다 더 저렴하니까. ROI(Return On Investment)가 나올 수 있으니까. 아직 기술이 사람의 영역을 대체하지 못했으니까.
실제 우리의 현실세계는 저 멀리 앞서 가는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고 여전히 ‘까대기’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한국의 물류업계에선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힘들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여전히 ‘자동화’ 기술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자동화 기술을 개발, 공급하는 회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들에겐 아직 자동화 기술을 도입했을 때 사람 이상의 효율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술은 물 밀 듯이 들어올 것이다. 효율에 대한 확신만 생긴다면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기업들이, 사람들이 알아서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우마차로 가득한 거리가 불과 10년만에 자동차로 가득 차는 모습을 역사를 통해 확인했다. 방직공의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누가 시켜서 스마트폰이 피처폰을, MP3를, PMP를 전멸시킨 것은 아니다. 좋고 효율적인 기술은 알아서 퍼져나간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잃어버린 자들의 안녕
이런 상황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새로운 일자리가 기술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이들의 안녕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평생 화물차를 몰던 분이 ‘코딩’을 배우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경쟁할 수 있을지 말이다. 우리는 누구도 자동차로 일자리를 잃은 인력거꾼의, 우마차꾼의 아픔을 알지 못한다.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당장 현실세계로 오더라도 우리가 자동차기업들의 ‘모빌리티화’로 인해 정리해고 되고 있는 ‘디트로이트 현장 노동자’의 아픔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당장 우리 눈 앞에 택시기사들만 보더라도 의견이 갈리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누가 일자리를 잃은 이들의 안녕을 보장할 수 있을까. 그 역할이 정부에 있느냐, 기업에 있느냐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너무 치열하기에 어느 한 쪽으로 쏠려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스스로’ 안녕을 찾지 못한다면 위험할 수 있다. 어느 순간 무너져 내리는 현실 속에선 자신 말고는 누구도 책임져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샤피로 회장의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인류의 역사를 봤을 때 혁신은 인간의 삶을 더 좋게 만들었습니다. 기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호하려고 하던 나라보다, 혁신하려고 하는 나라의 발전이 빨랐죠. 새로운 것은 발전을 만들었고, 반대로 기존의 것을 지키려고 했을 때는 발전이 멈췄습니다. 물론 파괴적인 기술 혁신으로 인해 기존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술이 만드는 국민 편익이, 기술로 인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기술 때문에 직업을 잃는 사람들이 굉장히 어려운 생활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어느 정도 사회적인 의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미국에서는 기술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새 직장 갖도록 미국 행정부에 건의하고 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