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만든다는 협의체에 게임업계를 참여시킨다고 했는데 연락받은 바 없다. 대한민국에는 문화체육관광부도 있는데 보건복지부가 정부 부처 내에서 합의를 거치지 않고 국제회의 대표 자격으로 WHO 총회에 가서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에 지지 발언을 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

게임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게임중독)’를 공식 질병으로 분류시키는 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데 이어 우리 보건당국도 관련 정책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비상이 걸린 게임업계는 한국게임산업협회 주최로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은 “복지부가 만들어낸 틀에 들어가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논의를 진행하게 되는 것”이라며 “복지부에 계속 얘기를 전달하고 있지만 우리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제 발표는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이 맡아 진행하며, 패널 토론에는 강경석 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장,김성회 유튜브 크리에이터(G식백과), 전영순 게임과몰입힐링센터 팀장(건국대학교 충주병원), 최승우 정책국장(한국게임산업협회)이 참여했다.



 

■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 어떤 내용 담고 있나

[관련기사: WHO, ‘게임장애’ 질병분류에 만장일치 통과]

WHO는 국제질병 표준분류기준(ICD)의 정신질환진단 분류기준인 DSM-5에 인터넷게임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IGD)를 정식으로 등재키로 했고, 오는 2022년부터 회원국이 새 질병코드 정책을 도입해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우리 정부는 ICD를 변형해 한국표준질병분류(KCD)에 반영하는데, KCD는 통계청이 관계부처와 협의를 해 5년마다 개정한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KCD 개정은 2025년에 가능하다. 게임 업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선 이유는 WHO의 결정이 KCD에 반영되기 전,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통해 의사를 반영시키기 위한 것이다.

WHO는 게임이용장애와 관련, 중독의 판정 기준을 지속성과 빈도, 통제 가능성 등에 초점을 맞췄다. 예컨대 게임 통제 능력을 잃고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게임이용장애로 분류했다. 아울러 게임을 지속하는 기간과 관련해서는 12개월 이상 지속될 때로 보았지만, 증상이 심각할 경우 12개월 미만이라 하더라도 게임이용장애로 볼 수 있다고 규정했다.

WHO는 게임이용장애와 관련, 질병코드를 부여한 것이 게임장애의 특징과 같은 건강상태를 가진 이들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발표했고, 게임산업에 종사하거나 게임을 즐기는 이들 중 극히 일부만 이러한 게임장애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 게임 업계의 반응은 어떤가

이와 관련한 게임업계의 입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만만한 게임 좀 그만 때려라”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셧다운제’가 유지되는 나라다. 청소년들은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온라인 게임을 하지 못한다. 성인도 온라인 게임에 쓸 수 있는 돈이 월 50만원으로 한정되어 있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자신의 취미생활에 쓸 시간과 돈을 국가가 강제한다.



이는 국가가 과도하게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뜻이 된다. 당연히 게임과 관련한 규제가 헌법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토론 발제를 맡은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은 “물론 부득이한 경우에 국가가 국민의 문화영역에 개입을 할 수 있지만, 이는 객관적인 통계를 밑받침으로 하거나 이를 통한 자율적인 개선을 전제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국가가 먼저 나서서 국민의 행동양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다수의 국민을 잠재적인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나라 헌법이 추구하는 문화국가의 원리에 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개인들의 개별적이고 자율적인 행동들을 통해서 사회 전체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성장해나간다는 것을 헌법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로 삼아야 하는데 이번 WHO의 의결은 그 해석과 집행에 따라서는 게임과 관련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고 “WHO의 의결의 의미는 단순한 통계나 건강 상태를 보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정하여야 할 것이며, 이를 넘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질병으로 진단하거나 혹은 이를 위한 증세를 획정하기 위한 것으로 사용되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아무리 좋은 뜻으로 ICD가 개정된다고 해도,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갖가지 규제가 생기고, 또 게임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게다가 게임 외에도 사람들이 몰입해 즐기는 취미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에만 포화가 집중되는 것이, 산업이 큰데 비해 별다른 힘이 없어서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 참가한 게임 개발자 출신 유튜버 김성회 씨는 “게이머들은 이번 결정으로 수많은 빨대가 꽂히는 걸 상당히 걱정하는데 한국의 게임업체는 꽤 돈을 많이 벌어 덩치는 크지만 싸움을 못하는 코끼리에 비유된다”며 “게임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최근 미디어나 강연에서 하는 발언을 보면 게임에 대한 증오심을 심어주며 코끼리의 살점을 뜯어먹으려는 하이에나처럼 보인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여러 정신적, 심리적 질환이 게임으로만 인한 것은 아닌데 이 모든 원인을 게임에서 찾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전영순 건국대학교 충주병원 게임과몰입힐링센터 팀장은 토론에서 “연구결과에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중독을 보이는 아이들 집단의 특징을 보면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가족 내 친밀감이 낮은 것이 높은 지수로 보고가 된다”면서 “게임 중독 역시 게임의 문제라기보다 개인의 심리와 사회적 측면을 같이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임으로 인한 낙인 효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10대 청소년에 정신질환자라는 코드가 부여될 경우 나중에 아이가 성인으로 자란 이후 대학 진학이나 취업에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강경석 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장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추적조사를 한 결과 게임 과몰입군에 있던 친구들이 이듬해 일반군으로 옮겨가거나 일반군에 있던 이가 과몰입군으로 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며 “5년간 꾸준히 과몰입군에 있었던 비율이 1.4%에 불과하다는 결과를 보면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삼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고 지적했다.

■ 게임 업계는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WHO가 만장일치로 의결했지만, 매년 10월 열리는 보건의료분야표준협력센터(FIC)에서 ICD를 수정하고 개정하거나 카테고리 삭제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2020년까지 반대 의사를 지속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KCD에 개정된 ICD가 반영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2025년 KCD 개정 전에 타당성 검토 과정에서 게임 이용장애와 관련한 의견접수가 가능할 것이라 관계부처 협의와 현장방문, 질의 등을 하겠다는 것이다.

최승우 정책국장은 “2022년이 지나더라도 FIC를 통해 삭제가 가능하고, 이미 삭제된 전례도 있다”며 “아울러 ICD에 반영됐다고 모든 것이 KCD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고 사전준비부터 개정안 작성 등 네 단계를 거치며 타당성 검토를 하므로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행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