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들려주는 마비노기 개발 이야기

  • 이 기사는 김동건 넥슨 데브캣 스튜디오 총괄 프로듀서가 24일 열린 ‘넥슨개발자콘퍼런스(NDC)’에서 발표한 ‘할머니가 들려주신 마비노기 개발 전설’ 내용을, 할머니가 손주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각색한 것입니다. 강연은 올해 서비스 15주년을 맞은 온라인게임 ‘마비노기’의 초창기 개발 과정을 돌아보고 이를 통해 다음 세대에 무엇을 전달할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내용으로 이뤄졌습니다. 발표 제목이 ‘할머니가 들려주신~’이 된 이유는, 게임 마비노기의 테마곡인 ‘어릴적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 전설’에서 따온 것입니다.

 

아가야, 지금부터 이 할미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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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 할미가 얘기 시작하려니까 벌써 눈이 감기냐. 이 할미가, 알고보면 꽤 유명한 개발자였단다. ‘마비노기’라고 들어봤니? 벌써 15년이나 됐구나. 네 애미는 마비노기라면 사죽을 못 썼는데.

그래, 마비노기는 게임이지. 그런데 너는 마비노기가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아니? 고대 북유럽에서 음유시인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라는 뜻이란다. 켈트족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인데, 우리 똥강아지한테 이 할미가 해주는 옛날 이야기나 자장가도 포함되지 않겠니?

이 할미가 케케묵은 마비노기 개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네 꿈이 게임 개발자이기 때문이야. 이제는 내 친구들도 다 게임계를 떠났는지, 우리 때 이야기를 도통 들을 수가 없더구나. 예전에 할미가 친구들이랑 신나게 했던 수많은 게임도 이젠 다시 찾아볼 수가 없어. 아니, 멀리까지 안 가도 마찬가지지. 비교적 최근에 유행했던 게임들도 조금만 인기가 시들해지면 곧 찾아볼 수 없게 사라져버리지 않니.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은 이 세계에서 곧 사라져 버린단다. 아직 사람들이 마비노기를 하고 있을 때 내가 계속 얘기해야 우리 손주가 이 할미를, 그리고 할미가 만든 게임을 기억해주지 않겠니?

 

마비노기를 개발한 김동건 할머니, 아니 넥슨 데브캣 스튜디오 총괄 프로듀서.

 

할미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만드는 걸 좋아했단다.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로 시작했지. 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만들었어. 대학에 가고서는, 패키지 게임을 만들어서 팔 정도였지. 꽤 많이 팔았어, 3000장이나 팔았는데 얼마 남았는지 아니? 400만원이란다. 허허. 웃음만 나왔지. 3년간 개발했는데 말이야. 3년간 쓴 돈을 생각하면, 손해를 본 게지.

그래도 게임 만드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었단다. 그냥 이 할미가 즐거우니까, 좋아서 했던 일이었지. 그런데 그때, 이 할미 인생을 확 바꿔버릴 것을 만나게 된 게야. 그게 뭔지 알겠니?

 

인터넷이란다.

원 세상에. 그때는 진짜 새로운 세상을 본 기분이더구나. 하루종일 네트워크 게임을 했지. 그래, 맞아. 그래서 그랬나보다. 그때 내 또래 게임 개발자들은 패키지에 더 집중했을 때인데, 나는 조금 빨리 온라인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어. 인터넷이 얼마나 매력적인 공간인지, 그 가능성을 조금 먼저 본 게지.

그때 할미가 열심히 했던 것이 BBS라는 거였단다. 그러니까 BBS는 지금의 소셜네트워크 같은 건데, 그걸 학교에서 만들었어. 전화선에 인터넷을 연결해서 써야 해서, 인터넷을 오래 하면 전화요금이 무지하게 많이 나와 부모님한테 엄청나게 두드려 맞던, 아니, 많이 혼났던 때였지. 지금처럼 사진이나 영상을 올릴 수 있는 건 아닌데, 문자로만 게시물을 올리고, 채팅하고, 쪽지를 주고 받고 하는 그런 곳이었단다.

BBS를 만들고선, 올라오는 글을 다 읽었지. 모든 글을 다 읽으면, 접속자 리스트를 띄워놓고 일할 정도로 나는 인터넷에 푹 빠져 있었단다. 거기서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이야기를 읽는 것이 그렇게 재미졌어. 그런데 이상한 건 이 사람들이 열심히 BBS를 하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거였단다. 이상하다. 왜 그럴까?

그때 문득, ‘새로 이사온 아이의 장난감’ 같은 것이 떠올랐단다. 우리 집 아파트 단지에 어느 꼬마 아이가 이사왔다고 생각해볼까? 친한 아이들이 무리지어 놀고 있는데 이 아이가 내성적이야, 그러면 같이 놀자고 말을 걸기 어렵겠지? 그래서 애들이 먼저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장난감을 들고 놀이터를 왔다갔다 하지 않겠니? 그 꼬마가 마치 BBS에서 상주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은 걸지 못하는 그 친구들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마비노기는, 바로 이 ‘친구를 사귀고는 싶지만, 내성적인 사람들’ 그러니까, 이 할미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게임으로 기획되었어.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니? 좋은 아이템을 장착하는 것이 그 내성적인 꼬마의 장난감같은 거고, 이 사람들의 심리가 온라인 게임을 돌아가게 하는 원리가 아닐까, 생각한 게지.

 

원래는 이렇게 그림으로 로그인 화면을 꾸미려고 했었단다.

 

그런데 혼자서 온라인 게임을 만들려니 답이 안나오더구나. 회사로 들어갔어. 그게 넥슨이야. 그땐 ‘바람의 나라’가 잘 나갈 때였지. 아, 내가 너무 우리 세대 게임 얘기를 했구나. 미안하다, 얘야.

여러 기획서를 냈단다. 김정주 사장님 책상 위에 기획서를 올려놨는데, 통과를 안 시켜주더구나. 내가 보기엔 정말 돈 많이 벌었을 것 같은 게임이었는데 말이지. 다 무시 됐단다.  신입이 기회를 잡기 어려웠던 때였지. 그래서 이 할미가 어떻게 했게?

튀는 기획서를 만들었단다. 제목도 ‘마비노기가 뭐야?’였지. 어떻게 알겠니. 아직 나오지도 않은 게임을. 그래서 통과가 됐고, 마비노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됐지.

물론 모든게 다 쉽게 풀리진 않았단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어. 하나는 3D고, 다른 하나는 DB란다. 이때는 다들 2D만 했던 때라서 처음부터 다 배워야 했어. 그리고 DB를 써야 하는 것도 문제였지. 그때까지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둠바스(DOOMVAS)라는 파일 기반 서버를 사용했는데, DB는 써보지도 않았거든.

그런데 3D는 꼭 필요했어. 세일즈 포인트였어.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이 꼭 필요한데, 그때 유행하던 프리랜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었거든. 더 다양하게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단다. 그리고 콘솔 게임은 이미 3D가 대세였던 상황이니까.

DB는 온라인게임이니까 당연히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왜냐면, 학교 때 BBS를 운영하면서 파일 기반 서버가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거든. 데이터 필드를 추가하거나 확장하기도 어렵고, 안정성 역시 파일시스템에 의존적이었지. 그리고 게임 성과를 알아보기 위한 통계를 보기도 어렵고 말이다. DB를 갖추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친구인 이현기, 아니 너 현기 할아버지 알지? 왜 너 저번에 봤을 때 용돈 줬던 할아버지 말이다. 그 현기 할아버지가 ‘드래곤 하운드’를 만든 유명한 사람이야. 여튼, 현기가 만든 3D 엔진을 500만원에 사서 게임 개발을 시작했단다. 나중에 이 코드는 다 버렸는데, 그래도 눈에 보이는 걸 빨리 만들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선택이었단다.

카툰렌더링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마비노기를 사람들이 신기하게 봤던 것 중 하난데, 아, 카툰렌더링이 뭐냐고? ‘3D그래픽을 이용하여 만화와 같은 느낌을 주는 화면을 만드는 것’이라고 검색하면 나온단다. 여튼, 그때 ‘젯 셋 라디오’라는 게임에서 강렬한 느낌의 스타일 덕에 카툰렌더링을 알았지. 그런데 마비노기에서는 이게 독특하게 들어갔거든? 사람들이 그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는지 무척 궁금해했는데, 사실은 ‘아래아한글’이라는, 워드프로세서의 문서 외곽선 출력하는 기법에서 따왔단다. ㅎㅎ

아, 그래. 마비노기가 자체 개발 엔진을 썼다는 것도 중요했어. 그러다보니까 특유의 독특한 느낌을 낼 수 있어서 게임이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거 같아. 그런데, 자체 개발 3D테크닉에도 문제는 있었단다. 낮은 버전의 다이렉트X API에서 개발되다보니까 하드웨어가 좋아지는 걸 못 따라가더구나. 저수준 틀에 의존해야 하고, 정보도 사람이 직접 써야 하는 게 일이었지. 모든 건 장단점이 있는 게야.

DB를 도입할 때도, 배우면서 해야하니까 속도도 안 나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 참고할 코드조차 없었단다. 결정적으로, 파일기반 서버에 비해서 많이 느렸어. 베타 테스트 기간에는 유저 데이터를 기록하는데 5분이 걸리기도 했어. 그렇지만, 라이브 서비스를 하면서 DB를 사용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단다. 각종 통계 분석 메일을 아름다운 포맷으로 발송하니까 사장님이 기뻐하던 생각이 나는구나.

사실, 마비노기를 만들 때 나는 ‘울티마 온라인’ 같은 게임을 만들겠다! 고 큰소리를 쳤었지. 울티마 온라인을 한 경험이 마비노기에 많이 녹아들었는데, 그 울티마에도 약점은 있었단다. 게임이 불친절하다는 거였지. 재미도 있으면서 다정한 게임, 그런걸 만들고 싶었어. 그래서 동물과 아이를 등장시키고, 게이머의 생일을 기억해주는 ‘나오’ 같은 캐릭터를 만들고, 작은 것을 나누는 분위기의 캠프파이어 같은 것을 구상했지.

ㅎㅎ 그때 생각을 하니, 또 재미있는 기억이 있구나. 게임 만드는 것 말고도 ‘마비일보’라는 걸 만들었지. 우리 팀이 지금 어떻게 작업을 하고 있다, 어떤 결과물을 낼거다 하는 걸 신문 형식으로 만들어서 전체 이메일로 뿌렸단다. 아마도 지금의 넥슨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 허락도 안 받고 자꾸만 전체 이메일을 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아무 간섭없이 개발을 완수할 수 있었지. 유저를 대상으로 하는 ‘에린워커’라는 잡지를 만들어서 소통하려고도 했었단다.

이 모든 이야기는 ‘마비노기 개발 완수 보고서’에도 적혀 있단다. 초기 기획부터 개발과정, 성과를 담았지. 프로젝트를 완전히 마무리 했다는 마침표 역할을 했단다. 내가 다음일을 할 수 있게 해준 동력이 됐지. 회사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일을 돌아보고 기록을 남기는 건 추천할만한 일이야.

자니? 아직 안 자고 내 얘길 듣고 있구나.

그래, 이 할미가 이렇게 긴 얘기를 한 이유가 있단다. 과거 이야기를 하는 건 미래를 위한 것이지. 한국 게임 늘 똑같다, 발전 없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니? 물론, 이 할미 같은 개발자의 책임이지만, 과거가 너무 빨리 유실되고 있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단다. 우리의 기억, 경험 속에 있는 것들을 기록하고 나누고, 이 할미처럼 자꾸 이야기 하는 것이 더 나은 게임을 만드는 방법이 되지 않겠니? 과거의 게임들이 점인 상태로 사라지는데 이 점을 미래의 선으로 이어가보면 어떻겠니? 각각의 점을 이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러면 너는 이제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은지, 나중에 이 할미한테 말해주렴, 알겠니? 그런데 너 결혼은 언제 하니? 그래 그럼 이 할미는 데브캣 친구들이랑 마비노기 모바일을 만들러 다녀오마. 이제 어서 자야지, 좋은 꿈 꾸렴.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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