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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전직 잡지 편집장이다. 종이 잡지 두군데에서 편집장을 지냈다. 따라서 이번 애플뉴스+(플러스) 출시에 대한 소회가 남다르다.

 

종이를 넘기는 맛을 왜 아이패드에서 찾냐고요

스마트폰 초창기 종이 잡지 디지털화는 모든 인쇄 매체의 화두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쇄 매체 업체들에게는 위기감이 부족했다. “종이를 넘기는 맛을 좋아하는 독자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따라서 매거진 디지털화를 할 때 잘못된 선택들을 주로 했다. ‘종이를 넘기는 애니메이션을 넣자’는 것이었다. 종이를 넘기는 듯한 느낌의 스큐어모픽 디자인 자체는 좋은 아이디어다.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이란 실물의 도구 형태를 디지털에서 흉내 내는 디자인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과거의 iOS 메모 앱에 종이 질감을 구현해놓았다거나, 월렛에서 등록한 카드를 삭제할 때 파쇄기로 부숴버린다거나 하는 애니메이션 등을 통칭한다. 이는 플랫디자인 시대(iOS7, 구글 머티리얼 디자인)가 되며 사라졌다.

메모장 질감과 모양을 그대로 만들어놓은 메모 앱, 카지노나 게임 센터를 흉내내낸 게임 앱

문제는 그 종이 넘기는 느낌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드웨어 리소스(주로 램)을 버려가며 굳이 종이 넘기는 액션을 해야 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레이아웃’이었다.

당시 잡지사들에는 디지털 감각이 없었다. 디지털 감각을 가진 젊은 인력을 뽑을 생각도 없었다. 감각을 가졌다 해도 그걸 구현할 예산이 없었다. 극소수의 잡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잡지가 영세했다. 이유는 잡지가 다른 언론사와 다르게 ‘제조업’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종이값과 인쇄비, 디자인비가 매달 고정비로 나가니 인터넷 언론보다 더 큰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잡지의 꽃은 레이아웃

클리셰적인 이야기지만 잡지를 만들 때, 특히 ‘잡지의 꽃’으로 부르는 항목들이 있다. 모든 잡지가 시사지는 아니니 저널리즘이나 취재력은 논외로 치자. 이 당연한 두가지를 제외했을 때 ‘잡지의 꽃’으로 부르는 것은 두가지, ‘편집장’과 ‘레이아웃’.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영화를 본 독자 여러분이 있을 것이다. 패션지 종사자에 대한 이야기다. 편집장으로 나오는 메릴 스트립의 정밀하고 날카로운 연기가 매력적이다. 그리고 연기가 지나치게 멋진 나머지 무능한 편집장들도 악마처럼 굴었다. ‘후배에게는 엄하지만 훌륭하게 지도해주는’ 엄하지만 다정한, 무심한듯 시크한 역할 놀이를 편집장들이 해대느라 기자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괴팍하게 구는 게 미덕처럼 보였다. 본인에게만.

그때 기자들은 매일 “지가 안나 윈투어야?”라는 말을 되내였다. 안나 윈투어는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편집장의 실제 모델이다.

당시 신입이었던 분들은 이 보헤미안 랩소디적 기분에 맞추는 데 일에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다. 이미 잡지의 꽃이 편집장인 시절이 지나 있었는데도.

진짜 꽃은 레이아웃이었다. 종이 잡지의 디자인은 아무렇게나 배치되는 게 아니다. 멋있으면 그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자가 편집장으로 일할 때도 독자의 시선이 어디에 꽂히는지, 어디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는지에 대해 긴 시간 생각하고 디자이너와 상의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이 잡지를 디지털화하기 위해서는 이 레이아웃을 처음부터 한번 더 다듬어야 했다. 보통의 잡지들은 대부분 A4지와 비슷한 크기인 국배판을 기준으로 한다. 그정도 크기는 돼야 멋있는 이미지를 넣고 텍스트도 그럭저럭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잡지를 주로 보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는 국배판보다 작다. 비교적 큰 아이패드도 국배판 잡지에 비해 턱없이 작았다.

당시 기자가 하던 잡지로, A4지를 약간 변형한 판형을 사용했다. 지금 보면 눈물만 난다.

그렇다면 잡지사들은 어떤 선택을 했어야 할까? 레이아웃을 재편집해 아이패드용/아이폰용 잡지를 만든다? 당연한 선택이지만 일부를 제외하면 잡지사들은 그냥 PDF를 제공하고 종이넘기는 맛을 굳이 구현했다. 기자는 “아니 태블릿에서 종이넘기는 걸 왜 굳이 하냐고요 집에가서 전화번호부나 넘기세요”라며 매일같이 담당자와 싸워야 했다.

PDF 매거진에 DRM을 걸어 잡지를 보면 핀치로 확대-축소를 계속 반복하며 잡지를 읽어야 한다. 아이패드에선 그나마 덜하지만 아이폰에서는 돋보기를 들고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탐정이 된다. 보기도 어렵고 멀미도 유발한다. 레이아웃의 달인들은 화면 안에서의 레이아웃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와이어드의 등장

그러다가 와이어드와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인터랙티브 매거진이 등장했다. 두 잡지는 이미 훌륭한 인쇄매체였다. 그러나 디지털의 장점을 그야말로 극대화해 스마트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인터페이스로 구현하고, 동물이나 벌레의 곳곳을 탐구할 수 있는 잡지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대다수의 잡지사가 ‘한국의 와이어드’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비용이 천문학적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이 한 호만 만들고 전선을 뽑고야 말았다(unwired).

현실적인 타협안은 앱 매거진 서비스였다. ‘더 매거진’과 ‘탭진’ 같은 사업자에게 PDF를 넘기고 이 안에서 책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두 손가락으로 확대해가며 읽어야 하므로 UI적으로는 별로였다. 그러나 탭진 서비스사는 서비스 운영을 잡지사들보다 잘 하는 편이었다.

해외에는 탭진과 유사한 ‘맥즈터(Magzter)’가 있다. 앱 내에서 잡지를 구매할 수 있는 옵션과, 무제한 사용 옵션이 있다. 한국 잡지들도 입점해 있다. 문제는 이 앱도 PDF 기반으로 스마트폰에서는 보기 어렵다.

폰에서 맥즈터 앱을 열어봤다.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

물론 롤링이 가능한 텍스트 박스, 동영상 등을 넣은 앱 매거진들도 있었다. 보그, 지큐, 맥심 등에서 만들었다. 그러나 개별 앱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비용이 들었으므로 영세 잡지사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보그와 지큐도 수익성을 이유로 앱 매거진 사업을 철회했다. 영세사업자들은 구축은 물론, 구축 후 홍보하는 것도 큰 일이었다.

 

갑자기 분위기 잡지

삼성도 비슷한 노력을 한 적이 있다. 갤럭시 노트용 인터랙티브 매거진을 볼 수 있는 ‘리더스허브’를 론칭하고 13종의 국내 인기 잡지를 탑재했었다. 인터랙티브 수준은 와이어드가 아닌 맥심 정도. 이정도면 잡지 보기엔 충분하다. 그러나 서비스를 수익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지 리더스허브는 전자책 위주 서비스로 재편됐다.

삼성전자의 리더스 허브 앱 인터랙션 가이드. 잡지보기에 충분하다(출처=삼성전자 뉴스룸)

애플뉴스+는 앱 매거진들과 구축에서의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애플뉴스 개발과 동일하다. 레이아웃을 가이드에 맞춰 만들어도 되지만 주어져 있는 가이드라인을 따르기만 해도 잡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레이아웃을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다면 개발자 한명이 전체를 만들고 퍼블리싱할 수 있을 정도다. 애플은 애플뉴스+를 위해 API와 뉴스퍼블리셔 앱을 제공한다. 애플의 설명에 따르면 자사 CMS에서 기사를 자동으로 애플뉴스로 변환해주는 기능도 탑재하고 있다고 한다.

 

애플뉴스+는 잡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잡지사에게 애플뉴스+의 장점은 1. 수익보장 2. 홍보 및 마케팅 자동화 3. 구축과 사용의 가벼움 정도가 아닐까.

애플뉴스+는 월 9.99달러의 가격으로 300종의 무료 잡지를 볼 수 있는 서비스다. 300종이면 충분히 많은 편이다(잡지가 300종이라는 건 300권이라는 뜻이 아니다). 관심 분야가 일반적이라고 하면 한달 동안 읽을거리로 충분하다. 반대로 자동화와 큐레이션 기능이 활성화돼 있으므로 비교적 작은 잡지사도 기사 단위로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애플뉴스+는 잡지를 통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주제에 따라 여러 잡지의 기사를 한꺼번에 읽는 기능도 있다. 해당 기능은 PDF 앱매거진에서는 구현이 어렵다(불가능은 아니다). 통일된 개발 툴로, 통일된 곳에서 배포할 수 있는 애플이나 구글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모두 갖고 있는 업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동일한 코드를 작성해 아이폰 버전으로 봤을 때(X Code 프리뷰)

동일한 코드를 작성해 아이패드 버전으로 봤을 때(X Code 프리뷰)

만약 영세 잡지들이 디지털화를 못 해서 허덕이던 2012년 즈음 애플뉴스+가 있었다면, 그들에게 애플은 신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그 잠재 추종자들은 모두 사망했다. 기자가 창간한 잡지도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무덤에 묻었다.

잡지의 콘텐츠는 신문이나 인터넷 뉴스와 다르다. 주간지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기사가 장편으로 쓰인다. 장편으로 쓰기 위해 호흡도 길고 기승전결도 갖춘다. 단행본과 신문의 중간, 거기서 단행본쪽으로 약간 더 치우친 타입이다. 천천히 읽을 시간이 있다면 신문과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기자 한명 길러내기가 어려우며 선천적인 글솜씨에 영향도 많이 받는다. 반대로 잘 길러진 기자가 많을 경우 독자의 선택권이 매우 풍부해진다. ‘잡스러운 것을 모았다’고 해서 잡지라고 부르는 만큼 다양성에 기반한 풍부한 콘텐츠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레이아웃을 보자. 완벽하다

마지막 의문은 두가지다. 1. 한국에 런칭하게 될까 2. 아무 잡지나 애플 구독에 포함될 수 있을까(심사가 까다롭지 않을까) 정도다.

이때 떠오른 결론은 이것이다. 네이버나 카카오가 같은 방식으로 런칭하는 게 낫겠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