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물류업계가 당면한 화두는 DT(Digital Transformation)였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강조했듯, 업계에서는 DT의 물결이 한창이다. 물류, 유통, 제조업계에선 유행처럼 DT를 위한 전담TF를 구축하고 있다. 해당 조직에서 ‘인공지능’이니 ‘블록체인’이니, ‘빅데이터’니, ‘사물인터넷’이니, ‘AGV(Automated Guided Vehicle)’니 하는 디지털 트렌드의 오프라인 적용을 고민한다. 송상화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물류산업의 핵심 키워드는 앞으로 5년, 10년이 지나도 무조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밖에 답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물류업계 관계자들이 꼽은 물류산업을 변화시킬 기술들. 블록체인(52.79%), 인공지능(51.3%)을 필두로 로보틱스(44.61%), 자율주행차(42.01), 드론(24.91%)이 뒤를 잇는다. 송 교수에 따르면 이 중 2019년 주목해야 할 기술은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이다. 인공지능은 당장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블록체인은 상용화를 앞둔 준비단계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송 교수의 설명이다. (사진: 송상화 교수 첼로 컨퍼런스 2019 발표자료)

그리고 물류산업에 다가온 DT의 궁극체는 ‘물류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데 여러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모인다. 김형태 삼성SDS 물류부문장(부사장)은 “삼성SDS는 그간 전통적인 보관, 하역, 통관 같은 영역이 아닌 SCM(Supply Chain Management), 컨설팅, PI(Process Innovation)와 같은 영역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며 “앞으로 삼성SDS는 물류산업의 DT를 만드는 새로운 도구들, 예컨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같은 것을 공급망 적재적소에 삽입하고 있다. 특히 SME(중소기업)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물류 플랫폼 사업 ‘첼로스퀘어’에 DT를 위한 신기술을 접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SDS도 물류의 DT를 고민하는 기업이다. 물류 플랫폼인 첼로스퀘어를 운영한지도 조금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삼성SDS는 여전히 삼성전자 물량 중심의 기업이라 플랫폼이라 부르기엔 아쉽다는 한계가 있다. 김형태 부사장이 지난 14일 첼로 컨퍼런스 2019에서 밝힌 올해 목표 중 하나는 삼성전자가 아닌 외부업체의 물량을 20% 이상 처리하는 것이다. 사진은 첼로 컨퍼런스 2019에서 발표하는 김형태 부사장의 모습.

하지만 물류 플랫폼은 지금까지 뜨지 못했다. 대기업들의 물류 플랫폼은 관련 계열사의 물량을 돌리는 수준을 못 넘어서고 있다. 유의미한 외부업체의 물량을 확충하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의 의미가 없다. 스타트업의 물류 플랫폼 역시 압도적인 성과를 냈다고 보기엔 부족함이 있다. 아직도 투자금을 쏟고 있는 적자조직이 많다는 것이 그 현상을 방증한다. 애초에 물류 플랫폼 스타트업 창업 자체가 한국에선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도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물론 돈 버는 플랫폼(이라기 보단 주선사에 가깝다.)이 있긴 하지만, 대개 그들은 지하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굳이 앞에 나서지 않는다. [참고 콘텐츠: 물류에 ‘생활’이 붙으면 떠오를 기술 3가지]

비단 국내 상황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송 교수는 “최근 몇 년 동안 프레이토스(Freightos), 제네타(Xeneta), 프레이트허브(Freighthub) 등 물류 플랫폼을 지향하는 스타트업이 수두룩하게 등장했지만, 성과를 낸 기업은 많지 않았다”며 “우버프레이트(UBER Freight), 컨보이(Convoy), 카고메틱(Cargomatic)과 같은 화물운송 시장을 혁신하겠다고 나타난 플랫폼 역시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물론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로켓처럼 급성장하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물류 플랫폼이 안 되는 이유

송 교수의 말을 빌려 물류 플랫폼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를 하나 꼽아 보자면 “물류의 현실은 까대기인데, 플랫폼은 저 멀리 있기 때문”이다. 물류 플랫폼 기업의 ‘이상’은 데이터가 플랫폼에 알아서 모이고, 그 데이터를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발전시키고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 직원이 앉아서 인수증 타이핑을 치고 있고, 틀린 데이터가 올라오면 사람의 수기로 고치고 있으며, 사람이 직접 화물기사에게 전화해서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고 있다.

송 교수에 따르면 플랫폼은 ‘데이터’가 모인 환경에서 꽃을 피운다. 그런데 우리 물류업계의 현실은 ‘데이터’조차 없는 것이 실정이다. 언젠가 기자는 CJ대한통운 관계자에게 “택배현장에서 쓸 만한 데이터가 많이 나오지 않냐”는 질문을 했다. 그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 택배업체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는 송장에 적히는 고객 개인정보 정도가 전부가 아닐까요. 이걸로 뭘해야 될지 모르겠고요. 실제 유의미한 데이터는 택배를 이용하는 고객사인 유통화주에게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유통업체가 데이터가 많아 비명을 지르냐면 그것도 아니다. 다른 형태의 고민이 다가온다. 언젠가 최근 이커머스 사업을 시작한 한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가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데이터가 중요한 것은 다 알죠. 실제 데이터가 엄청나게 많이 나오긴 해요. 근데 무슨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우리의 성장에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더욱이 물류는 수많은 관계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네트워크’를 통해 완성된다. 예컨대 원자재를 소싱하고, 공장에서 제조하고, 수출항까지 화물을 보내고, 통관을 거쳐 국제물류(항공, 해상)로 수입항까지 운송하고, 수입항에서 다시 한 번 통관을 거쳐서 고객의 물류센터까지 운송된다. 이건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한 것이다. 여기에 수출업자와 수입업자의 은행과 보험사, 전자서류(EDI, Electronic Data Interchange) 업체 등이 연결된다. 글로벌 공급망 환경 안에서 소싱을 한 군데서만 할리는 없고, 도착지 역시 한 군데일리 만무하다. 엄청나게 복잡하다.

전통적인 국제물류 프로세스. 이 복잡한 프로세스를 제어하기 위해선 단순한 중개 플랫폼으로는 무리가 있고, 직접 제어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게 송 교수의 설명이다. (사진 : 송상화 교수 첼로 컨퍼런스 2019 발표자료)

이런 물류 환경을 ‘디지털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프라인의 세계를 실제 화물이 움직이듯, 화물과 관련된 정보가 물 흐르듯이 연결돼야 한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물류 네트워크 안에 단 한명의 중간 사업자라도 ‘디지털’을 거부한다면, 그곳에서부터 정보의 단절이 생긴다는 점이다. 송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일례로 이런 것이 있어요. 물류 플랫폼이 포워딩 요율을 공개하면 선사가 화를 냅니다. 이 바닥에선 요율을 어디에 공개적으로 올리면 안 되거든요. 대한민국 물류는 불투명하고, 우리는 그 불투명성에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역할이, 우리 스스로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이상은 물류 플랫폼(마켓플레이스)에 있지만, 현실은 포워딩 업체들이 조금씩 온라인화하는 것 정도에요”

우리의 이상과 멈춰있는 현실(사진 : 송상화 교수 첼로 컨퍼런스 2019 발표자료)

디지털 퍼스트, 플랫폼 넥스트

요컨대 플랫폼보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다. 물론 궁극적으론 ‘플랫폼’을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플랫폼이 되기 전에 디지털화의 기반을 닦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선무다.

송 교수가 꼽은 ‘디지털화’에 일보 다가간 기업 사례는 ‘플렉스포트(Flexport)’다. 이 기업은 지난달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10억 달러의 투자 유치를 발표하면서 ‘유니콘 리그’에 합류했다. 플렉스포트는 거창한 물류 플랫폼을 표방하지 않는다. 그들은 ‘글로벌 포워딩 회사’고, 포워딩 업체가 하는 일을 조금은 디지털화한 디지털 포워더(Digital Forwarder)일 뿐이다. 송 교수는 “프레이토스니 제네타니 프레이트허브니 물류 플랫폼을 표방하는 수많은 기업들이 나왔지만, 군계일학은 플렉스포트뿐”이라며 “스스로를 물류 플랫폼이 아닌 디지털 포워딩 기업으로 포지셔닝하는 플렉스포트는 현재 세계 11위 수준의 물량을 움직이는 기업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언컨대 물류산업에서 ‘플랫폼 기업’은 향후 10년 내에 나올 수 없다”며 “하지만 유의미한 모델은 나올 것 같다. 당장은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이 물류 플랫폼의 발전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물론 블록체인은 당장은 트랜잭션 속도 등 기술 한계로 인해 물류산업에서 폭발적인 성장은 어렵다는 게 송 교수의 예측이다. 하지만 장차 물류산업의 발전을 위해 블록체인이 반드시 가야할 기술임에는 분명하다. 블록체인은 물류산업의 태생적인 한계로 지목되는 ‘투명성’을 만드는 기술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9년은 블록체인의 상용화 이전 제휴를 준비하는 단계가 될 것이라는 게 송 교수의 예측이다.

인공지능에서는 올해 상당한 약진이 관측될 것이라는 게 송 교수의 설명이다. 송 교수가 꼽은 인공지능 기술의 무서움은 ‘범용성’이 굉장히 강하다는 것이다. 특정 분야의 지식을 깊게 습득하지 않아도 적용 가능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앞으로 특정 도로의 교통 정체가 발생할지 예측하고 싶다고 해보자. 기존 방법은 전통적인 교통공학 이론을 적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교통 정체 상황을 시간대별로 ‘색상’으로 나타낸 사진 수백만장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이 사진들을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강화 학습한다면, 전통적인 교통공학 이론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더 높은 정확도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실제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하여 ‘공급망’의 일부를 디지털화하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레버톤(Leverton)은 종이문서를 디지털화하는 회사다. 예전에 사람이 직접 입력하던 문서정보를 인공지능의 비전인식 기술을 활용하여 입력하는 방식으로 디지털화하고 있다. 이 기업은 플랫폼 기업이 아니다.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복잡한 물류 프로세스 중 일부분을 디지털화하고 데이터를 취득하는 기업이다.

컨보이도 그간 모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앞으로 예상되는 물동량을 예측한다. 통상 화주가 특정 지역에 화물을 보낼 니즈가 있다면 여러 운송사에 연락해서 요율을 체크하고, 또 체크하는 과정을 거친다. 반면, 컨보이는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처음 화주가 선택한 요율 1~2개가 거절당하면 특정 요율을 제시한다. 화주 입장에서는 며칠 더 커뮤니케이션에 시달리느니, 컨보이가 제시한 요율을 선택하는 것이 이득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기업 우버프레이트도 특정 운송 서비스 구간에 2주간 예측요율을 제공해주고 있다. 모두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물류의 ‘부가 서비스’를 만든 사례들이다.

송 교수는 “물류업계의 전통적인 경쟁전략은 타산업, 혹은 타지역으로 진출하여 시장의 파이를 뺏어오는 것이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물류기업들은 더 이상 뺏어오기 전략을 하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새롭게 대두되는 전략은 물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전에 없던 서비스’를 제공해서 돈을 버는 것과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이라 밝혔다.

결국 물류업계가 기존 것을 잘하는 방식으로 경쟁하면 안 된다.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일보는 플랫폼이 아닌 디지털화, 정확히 말하면 데이터 취득이 먼저라는 게 송 교수의 설명이다. 혼전 양상의 전장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송 교수의 한 마디를 전한다.

“요즘 연구실에서 국책과제로 ‘최적화 연구’ 같은 것 한다고 하면 절대 선정되지 않아요. 기업 고객에게 ‘최적화 과제 또 하시죠’하면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딥러닝 하실까요?’하면 그들의 행동이 달라져요. 무조건 달려옵니다. 딥러닝의 시대, 인공지능의 시대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