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19, 마지막 일정으로 샌즈 엑스포 전시관을 다녀왔다. 대기업이 대형 부스를 지어 전시하는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와는 다르게, 스타트업이나 벤처 기업이 신선한 제품이나 기술을 선보이는 자리다. 일반 참여 기업도 있지만 각국 국가관들을 매우 크게 운영한다.

기대하며 한국관에도 들러봤다. 한국관은 여러 가지다. KOTRA와 KEA(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가 공동 운영하는 부스, KAIST 단독 부스, 부스는 아니지만 각종 대학이 일반 전시관 일부 구역을 빌려 운영하는 등의 전시가 있었다. 이중 사전 정보 없는 사람들이 ‘한국관’으로 인식하는 건 KOTRA-KEA의 부스다. 부스 입구에 ‘KOREA’라고 써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관에는 가고 싶지 않다. 가도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이유는 업체들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편집물 디자인에서 오는 ‘디자인 브랜딩’이 부족해서다. 우선 업체들의 부스를 보자.

제품이 있으므로 굳이 장황한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

아파트 광고 느낌이 나는 상단과 상장을 자랑하는 하단

 

우리나라 업체들의 부스는 PPT를 그대로 출력해 붙여놓은 느낌이다. 이건 전시회용이 아니라 무역을 할 때 쓰는 방법이다. 그나마도 세대가 점차 바뀌며 무역할 때도 점차 쓰이지 않고 있다. 텍스트가 과도해서 무슨 상품인지를 스쳐 지나가면서 보면 전혀 인지할 수 없다.

디자인을 할 때에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상품이나 기술은 멀리서 보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편집물에 이미지를 크게 박아 흥미를 유도해야 한다. 한국관 일부 편집물은 흥미를 잃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사람들이 서비스나 제품에 호감을 갖고 정보를 소비하도록 유저빌리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일부 국내 업체는 모든 정보를 한 번에 보여주길 원한다. 패널로 호응을 유도하고 상세 정보는 브로슈어 등의 인쇄물로 전달하거나, 참가자 명찰의 QR코드를 받아 메일로 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러한 방법은 고려되지 않았다.

가장 잘 하고 있던 업체다. 적은 텍스트로도 무엇을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SINGLE-RGB BOKEH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아쉬운 점이 있지만 진화하고 있는 케이스

스마트 골프채를 만드는 업체, 패널을 빼고 아예 그 자리에 골프채를 놓았다. 체험도 가능했으나 ‘KOREA’ 부스 전체가 체험을 위한 공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는 것이 아쉽다

패널 자체는 잘 만들었으나 표창장이 망친 케이스다. 미국 전시회에서 한국 표창장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모든 업체가 최악은 아니다. 제대로 잘 하고 있는 업체도 있었다. 그렇다면 부스 자체의 문제는 없었을까? 있다. KOTRA-KEA ‘한국관’의 디자인 언어 자체도 그렇게 훌륭하지 않다. KOREA 로고의 태극무늬는 국가상징체계로 사용되니 괜찮다고 치면, 이 남색-붉은색의 디자인 요소가 ‘한국관’ 부스에 삽입되지 않거나 숨겨져 있다. 이러한 요소는 부스 전체에 악영향을 주는 요소로도 쓰인다.

예를 들어 부스가 하얀색이면, 운영 주체가 업체들의 패널에 외곽선을 따거나 다른 색으로 패널을 만들라는 가이드를 줬어야 한다. 그러나 업체들은 하던 대로 흰 화면에 검정 글자를 썼고 결과적으로 부스 벽과 패널이 구분되지 않는 데 이르렀다.

해당 인쇄물은 업체에서 직접 제작하고, 운영 주체가 출력을 맡겼다고 했다. 자율에 맡겼다는 의미다. 그러나 국내 업체는 주로 기술에 치중한 업체가 많고 브랜딩을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 기업들이 벤처 기업이므로 그런 데 여력을 쓸 수 없기도 했을 것이다. 따라서 명확한 가이드를 주고 다른 국가 전시관을 벤치마킹하는 건 어땠을까.

그럼 다른 국가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영국관(UK Pavillion)은 LED를 사용한 간판도 시원하고 화려하지만, UK의 폰트와 부속 공식 패널의 서체가 맞춰져 있으며, 국기의 빨간색을 패널 옆의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출시품인 모터사이클에 스타트업 이름을 적어놓았다. 모터사이클과 스타트업 모두 주목을 받는 효과를 갖는다

국기와 기술을 모두 형상화하고 있다

이미지를 크게 써 상품 용도를 빠르게 설명한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패널

일본 특유의 포장재나 간판을 채용한 패널

시종일관 사람들이 몰리는 일본 기술관

편집 디자인을 원래 잘하는 일본관도 뛰어나다. 일본관과 일본 스타트업관 사진이 섞여있으나 이질적이지 않다. ‘일본 느낌’의 서체가 고유하고 특색있으며 일본이라는 국가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다. 모듈화해 변환해 쓰기 좋다. 일본관이 한국관보다 두세 배 붐비는 이유는 단순히 디자인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관은 아예 소비자가 관심 가질만한 귀엽고 바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들만 들고나왔다. 따라서 응용 기술을 선보이는 부스가 많은 한국관보다는 사람이 많이 모일 수밖에 없긴 하다. 그리고 이 전시회의 이름은 소비자가전전시회다.

 

국가의 고유 컬러가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 새로 고유의 컬러를 만들어서 전시하는 경우도 있다. 대만의 사례다.

이미지로는 룩셈베르크관이 최고였다. 정교함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지만 젊고 역동적인 나라의 느낌이 난다.

그런 면에서 한국관은 늙은 나라다. 늙어가고 있는 IT 국가로 보인다. 편집 디자인이 PPT 수준에 머물러 있고, IT 강국의 신선함과 빠름(실제 한국 스타트업의 이미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흘러간 IT 강국 같은 느낌이 난다. 물론 LG나 삼성전자 등의 부스는 매우 화려하고 뛰어나다. 그런데 그건 LG와 삼성이지, 한국이 아니다.

스위스, 홍콩, 우크라이나관은 벽을 아예 까맣게 칠해 제품에 집중하게 하거나, ‘스위스 기술’을 브랜딩한다.

 

모든 한국관이 별로인 건 아니었다. 적당하게 넘어간 KAIST 관도 있고, 특히 한국발명진흥회가 운영한 부스는 앞서 말한 디자인 요소를 적당하게 쓰고 있으면서도 패널 디자인에 각 기업 아이덴티티가 살아있고, 노란빛을 둘러 안정감 있고 보기에도 편하다. 대형 전시회에서는 이러한 요소가 의외로 먹힌다. ‘한국관’도 전체를 보면 잘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그러나 부스의 답답함이 이마저도 잡아먹고 있다.

 

‘KOREA’ 부스의 외관이 답답한 이유는 1. 편집 디자인에 자신이 없고, 2.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KOTRA-KEA의 문제라고 볼 수만은 없다. IT 영역에 한한 국가 차원에서의 서체와 디자인에 대한 가이드가 없으므로 운영 주체는 하던 대로 하게 되는 문제도 있다. 현 정부는 역대 정부 중 디자인-브랜딩에 가장 해박한 정부이므로 이러한 문제를 개선해나가야 하겠다. 내년 CES에서는 한국관을 가장 기쁜 마음으로 들러볼 수 있었으면 한다.

 

도움(많이 도움): 전종현 디자인 칼럼니스트/매거진브리크 에디터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