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프림은 어떻게 젊은이의 루이비통이 되었나

 

삼성전자는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큰 헛발질을 했다. 슈프림 오리지널이 아닌 ‘합법적 가짜(Legit Fake)’ 슈프림 이탈리아와 협업을 진행하려 했기 때문이다. 슈프림이 뭐길래 컬래버래이션 소식에 열광한 이들이 있었을까.

 

 

슈프림은 영국 출신의 출신의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에 의해 탄생했다. 제비아는 패션계에서 일하기 전에는 듀라셀 공장에서 일하는 등 평범하게 생활했으나, 아버지와 함께 들른 뉴욕에서 패션의 매력을 느끼고 소호(SOHO)의 빈티지샵 패러슈트(Parachute)에서 일하며 감각을 키웠다. 제비아는 여기서 모은 돈으로 소호에서 영국 스타일의 옷을 파는 편집샵 유니언 NYC를 열어 운영했다. 슈프림의 전 세대, 스투시를 만난 것도 이때였다. 유니언 NYC에 스투시 브랜드를 입점시키자 이를 눈여겨본 창립자 숀 스투시(Shawn Stussy)가 스투시의 뉴욕 플래그십 스토어를 함께 운영하자고 제안한다. 이후 제비아의 커리어는 슈프림 출시 전까지 스투시에서 이뤄진다.

 

숀 스투시(출처=Acclaim Magazine)

 

제임스 제비아(출처=Highsnobiety)

 

스투시는 1990년대 초반 스케이터들의 꿈의 브랜드였다. 그런데 이 패션은 스케이터뿐 아닌 힙합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쳐 점차 스케이터들과 무관한 브랜드가 됐다. 스케이터의 패션이 아닌 스트릿 패션에 가까워졌다. 또한, 수량을 많이 만들고 비슷한 상품을 계속 출시했다. 스투시에 미련이 사라진 제비아는 1994년, 뉴욕 명품 거리인 라파예트에 슈프림 매장을 세운다. 매니아를 위한 브랜드였다. 그러나 제비아 역시 스투시의 활발한 컬래버레이션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으며, 지금의 슈프림은 그때의 스투시보다 더 상업적인 동시에 서브컬쳐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슈프림 LA 매장,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공간이 실내에 있다(출처=Supreme Community)

 

초창기의 슈프림은 철저히 스케이터들을 위한 것이었다. 스케이트 데크를 꾸준히 만들고, 실내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었다. 스케이터가 아니면 의미가 없는 공간이었다. 직원들은 불친절하고 진열된 옷을 만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는 ‘사는 대로 살겠다’는 서브컬쳐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슈프림은 첫 컬래버레이션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 꾸준히 이러한 태도로 명품 거리인 뉴욕에서 머물렀고 확실한 매니아층을 만들어냈다.

슈프림이 지금의 자리까지 온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인 컬래버래이션은 1996년 처음으로 이뤄졌다. 그 역시 스케이트 관련 브랜드인 반스가 슈프림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시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제품을 한정 수량으로 출시해 갖은 체를 하는 뉴욕을 시장바닥으로 만들어버렸다.

슈프림이 쉽게 바이럴된 데는 스티커 밤의 영향도 있다. 제비아는 컬래버레이션 이외에도 슈프림이 꾸준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기를 원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그 역시 서브컬쳐의 문화 중 하나인 그래피티, 이를 스티커로 제작해 주요 시설에 붙이고, 그 주요 시설들에 저항하는 느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매체가 스티커인 것 외에 그래피티와 동일한 용법, 동일한 효과다. 슈프림 박스 로고 자체가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프로파간다 아트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저항과 고급의 이미지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슈프림은 당시 CK 모델인 케이트 모스의 포스터 위에 스티커를 붙였다가 CK에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훗날 이 포스터는 케이트 모스와 슈프림의 콜라보 티셔츠가 되기도 한다. 바바라 크루거는 슈프림이 자신의 아트웍을 훔쳤다고 판단하고 자신은 슈프림을 훔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

 

고소당했던 케이트 모스의 CK 포스터와, 그 포스터를 티셔츠로 만든 슈프림 제품
바바라 크루거의 디자인과 슈프림

 

이후 슈프림의 콜라보는 주로 하이엔드 혹은 아티스트, 혹은 전통의 서브컬쳐를 상징하는 브랜드들과 이뤄졌다. 반스, 바스키아, 꼼데가르송, 노스페이스, 나이키, 데미언 허스트, 에어조던 등과의 콜라보 제품을 만들며 슈프림은 서브컬쳐 문화의 중심이자 동시에 하이엔드 제품이 되는 아이러닉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서브컬쳐계 루이비통’이라는 별명을 넘어 실제로 루비이통과 콜라보를 이뤄내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각 도시 루이비통 매장에는 평소 루이비통을 구매하려는 사람보다 훨씬 더 긴 슈프림 구매자 행렬이 이어지자 판매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어떤 세대에게는 슈프림이 루이비통의 가치를 넘어선 사건으로 기억된다.

 

슈프림X루이비통 가방. 슈프림 로고를 달고 있지만 루이비통의 가방 모양 그대로 발매됐다(출처=World’s Best)

 

콜라보 제품은 사람이나 브랜드와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와 무관한 영역에서도 발휘된다. 슈프림은 뉴욕 교통국과 협의해 지하철 카드를 디자인해 판매했고, 슈프림 로고가 박힌 벽돌을 만들었으며, 돈을 쏘는 총 ‘캐시 캐넌’도 만들었다. 어떠한 의미를 밝힌 적은 없지만 이 제품은 모두 불타듯이 팔린다.

 

슈프림 메트로 카드, 벽돌, 캐시 캐넌(출처=shopmag)

 

이 콜라보 제품들은 기본적으로도 비싸지만 길게 줄을 서서 산 후 되파는 ‘리셀러’들의 영향으로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40달러짜리 제품이 1000달러를 넘을 정도. 혼란하고 혼돈스러운, 그러나 쿨한 매력을 모두 갖추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베트멍 정도를 제외하면 적이 없다(베트멍은 하이엔드 제품을 서브컬쳐식으로 풀어내는 브랜드로, 방향이나 모습은 다르지만 쿨한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슈프림이 합법적 가짜를 만드는 슈프림 이탈리아에게 이름을 뺏긴 건 간단한 이야기다. Supreme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 형용사 혹은 보통명사로, 상표권을 획득할 수 없는 단어다. 그러나 슈프림의 박스 로고는 그 상표를 인정받았다. 합법적 가짜를 자주 만드는 기업 바를레타(Barletta)는 과거에도 1980년대 펑크 정신을 상징하는 브랜드 ‘보이 런던(BOY LONDON)’의 합법적 가짜인 보이 런던 이탈리아-로 부르는 괴작을 만들어낸 바 있다. 보이 런던의 로고에는 우측을 바라보는 독수리와 BOY 세글자가 위치하고 있다. 즉 뒤의 ‘런던’은 BI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를 악용해 왼쪽을 바라보는 BOY 로고를 만들어 2013년부터 운영했다.

 

보이 런던 이탈리아와 보이 런던(출처=보이 런던 텀블러)

 

리걸 페이크의 대표 사례로 불리는 슈프림과 슈프림 이탈리아(출처=trovarlo 유튜브)

 

슈프림 이탈리아도 비슷한 방식이다. 슈프림이 사용한 FUTURA BOLD ITALIC체를 활용해 붉은 색의 배경에 자간과 글자 크기를 조금 바꾼 BI를 만들어냈다. 이는 슈프림에 의해 기소됐으나 이탈리아 법원은 처음엔 몰수 판결을, 그 다음에는 “슈프림 물건과의 유사성을 찾을 수 없다”는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려 물건은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획득하고 싶었던 건 ‘하이엔드와 힙’일 것이다. 갤럭시 스마트폰은 하이엔드 제품이다. 그러나 서브컬쳐적이며 힙스럽다고 부르긴 어렵다. 그러기엔 너무 많이 팔린다. 남들이 하면 안 하거나, 적어도 내가 인정하는 소수만이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한정판의 매력이다. 이 컬래버래이션으로 갤럭시는 그 혼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 슈프림이 그 슈프림이었다면 말이다.

삼성전자는 짝퉁 논란이 일자 슈프림 이탈리아와의 협업을 재검토한다고 밝힌 상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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