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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나이트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구글도 무너질까

에픽게임즈는 ‘게임 엔진’으로 유명한 회사다. 게임을 출시할 때마다 개발자가 모든 구성요소를 새로 만들 순 없으니, 통상 자주 쓰이는 기술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놓고 보다 쉽고 빠르게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한 소프트웨어를 게임엔진이라고 부른다. 에픽게임즈의 ‘언리얼’은 ‘유니티’와 함께 게임 엔진 분야의 양대 산맥이다.

이 에픽게임즈의 최근 행보가 심상찮다. 엔진을 넘어 게임, 아니 플랫폼 회사로 변화를 꿈꾸는 것으로 보인다. 단초는 이 회사가 만든 ‘포트나이트’의 성공이다. 포트나이트는 배틀그라운드와 유사한 배틀로얄류 게임이다.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북미에서는 이미 배틀그라운드의 인기를 뛰어 넘었다. 회사 측 발표에 따르면, 어떤 기기에서든 포트나이트를 한 번이라도 플레이해 본 이용자의 수는 2억명을 넘었으며, 최대 동시접속자 수는 830만명을 기록했다.

포트나이트의 인기가 올라가자 에픽게임즈는 튀는 행동을 했다. 지난 8월, 안드로이드 버전 포트나이트를 발표하면서 구글플레이를 제치고 자사 홈페이지에서 직접 APK를 다운로드 받아 게임을 하도록 한 것이다. 구글에 떼어주는 30%가 과하다고 판단했으며, 중간 플랫폼 없이 직접 유저들과 만나기 위한 결정이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배짱이 세거나, 믿는 구석이 없다면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포트나이트만큼 성공한 게임이 아니라면 감히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이용자들이 모바일 게임을 구글과 애플 양대 마켓에서 다운로드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에서, ‘구글 피처드’ 같은 홍보 없이 흥행을 점치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포트나이트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개발사와 퍼블리셔는 그간 꼬박꼬박 구글과 애플에 30%의 세금을 내왔다. 이용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필수로 통과해야 하는 게이트의 통행료인 셈이었다. 대형 플랫폼의 존재로 게임 이용자 모수는 늘었지만, 영업익은 오히려 줄었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업계는 포트나이트의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15일 지스타 참석을 위해 방한한 에드 조브리스트 에픽게임즈 총괄 디렉터는 기자 간담회에서, 탈구글 선언 이후 APK 다운로드가 늘어났는지를 물어본 어느 기자의 질문에 “내부 정책상 특정 플랫폼 관련 실적을 공유하진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결과에 만족하고 있다”며 “구글에서 에픽게임즈 측으로 어떤 액션을 취하거나 하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삼성으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은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은 갤럭시노트9를 발표하면서 포트나이트를 선탑재했다.

에드 조브리스트 에픽게임즈 총괄 디렉터

“구글이 없어도 잘 할 수 있다”는 말은, 또 다른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포트나이트 모바일의 행보는 구글의 절대 장악력에 균열을 일으킨 것이다.

특정 게임의 투쟁이 플랫폼의 위력을 약화시킨 사례가 한국에도 있다. 지난 2015년 넷마블의 모바일 게임 레이븐이 주인공이다. 당시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은 ‘for kakao’가 지배하던 시절이다. 카카오 게임하기에 입점하지 않으면 대중을 만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카카오 게임하기는 30%의 수수료를 받았다. 구글에 30%를 떼어주고 남은 70%에서 또 30%를 카카오에 떼어주니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그런데 레이븐은 for kakao를 거부했다. for kakao에 줄 수수료를 차라리 마케팅에 쓰겠다는 전략이었다. 넷마블은 네이버와 제휴를 맺고 네이버 플랫폼에서 많은 마케팅을 펼쳤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는 시장에 “반드시 for kakao가 있어야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이후 for kakao의 위세는 약해졌고, 카카오와 제휴 없이 직접 구글플레이에 게임을 올리는 게임들이 많아졌다.

구글을 자극한 에픽게임즈의 다음 행보는 무엇이 될까?

게임 개발사, 또는 퍼블리셔 종사자들은 에픽게임즈 자체가 하나의 플랫폼이 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굳이 에픽게임즈의 게임이 아니더라도 사이트 자체를 열어놓고, 포트나이트를 다운받으러 온 이용자들에게 다른 게임도 함께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에픽게임즈가 원래 엔진 회사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 한 업계 관계자는 “에픽게임스 플랫폼에 쉽게 얹을 수 있도록 언리얼 엔진 자체에 모듈과 서비스 등을 장착하고, 개발사 대상으로 프로모션을 하게 되면 에픽사이트가 제 3의 마켓플레이스로 파급력이 강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에픽게임즈의 든든한 물주, 텐센트를 잊으면 안 된다.

텐센트는 에픽게임즈의 최대주주다. 중국은 현재 신규 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을 중지한 상태다. 판호 미발급이 장기화 되면서 텐센트의 주가가 떨어지기도 했다. 텐센트도 더욱 성장하려면 결국 글로벌 진출을 할 수 밖에 없다. 이 때 포트나이트는 텐센트에게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에픽게임즈가 제 3의 플랫폼이 된다면 텐센트 입장으로선 손 안 대고 코푸는 형국이다. 북미 지역에서 힘이 센 마켓플레이스를 갖게 되는 셈이다. 텐센트가 에픽게임즈를 물심 양면 지원할 명분은 충분하다. 심지어 텐센트는 한국을 비롯, 세계 유수의 게임사들의 지분을 마구잡이로 흡수하고 있다. 자신들이 투자한 게임사에 “구글 대신 에픽에 게임을 태우라”는 압박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글로벌로 에픽게임즈가 포트나이트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것도 이 가설에 힘을 싣는다. 예컨대 지난 18일 막을 내린 국내 최대 게임쇼에서 에픽게임즈는 외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메인스폰서를 맡았다. 지스타의 메인스폰서는 최소 수십억원을 써야 하는 위치라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PC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양쪽을 동시에 홍보하면서, 포트나이트라는 브랜드 알리기에 적극 나선 상황이다.

국내는 더더욱 구글플레이 의존도가 높은 시장이다. 포트나이트로 APK를 휴대폰 단말기에 직접 다운로드 받아 설치해 게임 하는 것이 익숙해진다면, 앞으로 국내 모바일 게임 이용자들도 구글 플레이 외에 다른 마켓 플레이스를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같은 시나리오를 에픽게임즈는 어떻게 생각할까? 다음은 에픽게임즈 코리아의 공식 답변이다.

“에픽게임즈 측은 개발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생태계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기때문에 그러한 방향으로 업계가 나아가야 한다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저희플랫폼을 통한 타사 게임을 유통하는 계획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있는 것이 없습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변은, 더 많은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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