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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엔씨소프트 취직하려는 기사

지스타에 왔다. 회사가 지스타 기획기사를 쓴다고 전 직원 소집령을 내려서다. 이번 기획을 총괄한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선배로부터 <‘지스타 2018 게임기업 채용박람회’ 둘러보니>라는 주제의 기사를 쓰라는 명을 받았다.

먹고살기가 이렇게 힘들다. 그래서 실제 게임회사에 이직하겠다는 각오로 이 자리에 왔다. 게임회사라곤 IT업계 대표 등대인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 게임회사 이직에 성공하면 그것만으로 대박 콘텐츠 빵빵이다. 언젠가 한 기자 선배가 엔씨소프트로 이직한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나도 엔씨소프트 갈거다. 20년 전에 리니지 하면서 이럽션 법사 키워봤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지스타2018 게임기업 채용박람회> 한 편에는 이력서와 커리어 컨설팅을 해주는 부스가 있다. 이번 게임기업 채용박람회를 기획한 HR 플랫폼 ‘원티드’의 직원들이 이 자리에 상주하며 참가자들의 진로 고민을 상담해준다. 나도 상담이 필요하다. 물류 전문기자로 5년을 살아온 내가 게임회사 취업이 가당키나 한지 아는 것이 먼저다.

원티드의 이력서 컨설팅 부스는 이번 채용박람회에서 가장 오랫동안 대기줄이 늘어섰다. 인기 많았다.

자리에 앉아 과거 한 IT기업의 서비스 기획 직무에 지원했을 때 써놨던 경력기술서 파일을 열어 보였다. 원티드에서 리크루팅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는 분이 내 이력서를 쭉 훑어봤다. 조언을 정리하자면 내 이력서가 너무 길다고 한다. 장장 9페이지다. 규모 있는 회사의 인사담당자는 하루에도 수백 개가 넘는 지원서를 보는데 일일이 모든 내용을 살펴볼 수 없다고 한다.

의기소침한 내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상담을 해준 분이 이런 말을 덧붙였다. “사실 이렇게 9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아요. 이것도 능력이에요”라는 이야기다. 물론 인사담당자가 보면 ‘신기한 놈일세’ 하면서 던져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이력서는 4페이지 이하로 간결하게가 포인트라고 한다.

전문기자 경력을 갖고 게임회사에 지원한다면 어떤 직무가 가장 적합할지도 함께 물었다. 오랫동안 물류 콘텐츠 생산자로 일을 했으니 ‘물류 게임’을 만드는 회사의 서비스 기획 직무에 지원한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는 조언을 받았다. 체코회사 SCS소프트웨어가 만든 <유로트럭 시뮬레이터>라는 게임이 생각났다. 화물운송기사(Trucker)가 돼 유럽전역을 돌아다니는 리얼타임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물류 게임 같은 거 안만든다. 서비스 기획은 넣어봤자 떨어진다.

유로트럭시뮬레이터2 스크린샷. 이 게임의 핵심은 ‘리얼타임’이다. 몇 시간 동안 도로 달리면서 아무것도 안하는 게임을 왜 하냐는 평도 있는데, 생각보다 매니아가 많다. 라디오 틀어놓고 유럽거리를 달리면서 감자칩 까먹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이제 마지막 확인이다. 나를 알았으면 상대방을 알아야 한다. 운 좋게 지인을 통해 엔씨소프트와 함께 게임업계 3대장(3N)이라 평가 받는 경쟁사 넥슨 인사팀 관계자와 연결될 수 있었다. 그 분에게 물류기자 출신 구직자가 게임회사에 지원했을 때 그나마 합격할 가망이 있는 직무는 무엇인지 전해 물었다. “무난한 게 홍보고 그나마 허들이 낮은 게임QA(Quality Assurance)나 기획업무에 지원하면 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런데 QA는 게임분야 파워블로거나 전문기자 아니면 힘들 거라고 한다. 홍보 지원하란다.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의 지인이 넥슨 인사팀 관계자를 연결해줬다. 지인이 중간에서 메신저 역할을 했다.

게임회사 홍보의 조건

엔씨소프트 성공 이직을 위한 답은 홍보에 있었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채용박람회를 돌면서 게임기업 인사담당자들에게 홍보직무 채용 계획을 물었다. 현재 홍보직무 채용을 하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게임회사들이 주로 채용하는 직무는 ‘개발’이나 ‘디자인’ 쪽이었다. 홍보는 대개 ‘수시채용’을 진행하는데, 현직 기자라면 알음알음 홍보팀에서 채용 제안을 하기도 한다는 게 한 게임업체 인사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홍보만 보고 엔씨소프트에 지원서를 넣기에는 문이 좁았다.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마케팅’까지 확장해서 보기로 했다. 물론 홍보와 마케팅은 엄연히 다른 직무지만 뭐 어떤가. 나는 최근 전직장을 퇴사했을 때 모 IT기업에서 마케팅 직무 채용 제안을 받았었다. 기자와 홍보, 마케팅. 뭔가 나도 잘 모르는 접점이 있으니까 제안이 들어왔겠지 싶다.

그렇게 액토즈소프트, 네오위즈, 넷마블, EA코리아, 엔씨소프트까지 5개의 기업 부스를 돌았다. 각 기업 인사 담당자들에게 홍보, 마케팅 직무를 지원하는 데 있어 필요한 역량을 물었다. 돌고 보니 몇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엔씨소프트 부스에 늘어선 줄. 나도 거의 30분을 기다리고 나서야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게임에 대한 관심

이 날 만난 게임회사 인사담당자 상당수가 ‘게임에 대한 관심’을 게임회사 마케팅, 홍보 담당자의 필수 역량으로 꼽았다. 사실 필수라기보단 ‘기본’에 가깝다. 예컨대 한국에서 축구게임 피파(FIFA) 시리즈를 서비스 하고 있는 EA코리아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대부분 축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게임까지 이어진 ‘축구덕후’들이라고 한다. 실제 축구 구단, 축구선수 등 관련 경력자들이 마케터로 근무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물론 단순히 게임만 좋아하면 별로 쓸모 없다. 다양한 게임 경험을 통해 업계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그 경험을 고객접점의 마케팅과 연결시킬줄 알아야 한다. 넷마블 인사담당자는 “넷마블 마케팅 분야에 지원한다면 최소한 ‘지금 넷마블이 하고 있는 마케팅의 강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단순히 마케팅 경력자라고 다 뽑는 것이 아니라 게임 마케팅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고, 넷마블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지 판단한다”고 말했다.

네오위즈 인사담당자는 “네오위즈 마케터라면 게임에 대한 관심은 기본”이라며 “마케팅은 크게 창의적인 마케팅과 고효율과 비용절감을 추구하는 마케팅이 있는데, 그때그때 회사 사정에 따라 필요한 역량을 가진 사람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외국어

외국계 회사에 지원한다면 ‘외국어’ 역량은 필수다. 예컨대 EA코리아의 마케팅 담당자는 홍보와 퍼블리싱을 해주는 넥슨과 미국 EA본사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한다. 외국 본사와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선 당연히 ‘영어’는 중요한 역량이 된다.

넷마블과 같이 별도 해외법인을 운영하거나 해외사업을 하는 회사를 지원하는 데도 ‘외국어’가 채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량이 된다. 참고로 넷마블의 3분기 해외 매출액은 3824억원으로 전체(5260억원) 대비 73%로 그 비중이 높다.

넷마블 인사담당자는 “넷마블은 홍보조직을 국내와 글로벌 담당자로 분리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홍보담당자 채용은 글로벌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고 있다”며 “넷마블 글로벌 홍보담당자는 언론 홍보보다는 넷마블 해외법인과 커뮤니케이션을 맡는다. 해외법인의 사업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국내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일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엔씨소프트 역시 올해초 공격적인 해외 M&A를 통해 글로벌 사업 확장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성공 이직을 위해 ‘외국어’ 역량이 필요할 것 같은 느낌이다.

네트워크

단순히 외국어만 잘해도 별 쓸모가 없을 수 있다. 특히 홍보 분야의 경력 이직을 생각한다면 의미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인사담당자들의 설명이다. 예컨대 넷마블은 단순히 ‘외국어’만 잘하는 직원을 뽑으려고 하지 않는다. 외국어 역량과 함께 회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사람을 뽑는다.

홍보 업무를 지원한다면 기자 출신이 유리한 부분도 있다. 대언론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하는 홍보 담당자라면 기자 생태계를 이해하고 관련 네트워크에서 구축해놓은 친분이 필요한데, 그 조건에 기자가 부합한다는 것이다. 액토즈소프트 인사담당자는 “홍보실 직원을 대리급 이상 경력직으로 채용하고 있는데, 주로 기자 출신”이라며 “이 외에도 TA(Technical Artist)라 불리는 브랜디드 콘텐츠를 생산하는 직무도 필요할 때마다 수시채용 한다”고 밝혔다.

엔씨소프트도 그들이 하는 유관사업과 관련된 분야의 네트워크와 역량을 가진 사람을 마케팅, 홍보담당자로 채용한다. 엔씨소프트는 게임뿐만 아니라 웹툰, 영화, 투자, 드론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때문에 관련된 사업분야의 역량과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이라면 굳이 게임, IT업계 출신이 아니더라도 채용문은 열려있다는 설명이다. 엔씨소프트 인사담당자는 “회사 내부에서 엔씨소프트는 게임회사가 아니라 ‘지금까지 성공한 게 게임인 회사’라고 불린다”며 “게임이 아닌 ‘즐거움’이라는 큰 가치를 지향하는 회사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엔씨소프트 가즈아

엔씨소프트 이직을 위한 진짜 기회는 내년에 온다. 엔씨소프트 인사담당자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기업 브랜딩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 채용을 준비하고 있다. 사업을 위한 별도의 조직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엔씨소프트 인사담당자는 “아직 논의하는 단계라 구체적인 직무를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내년 상반기 브랜드 강화 업무를 위한 인력을 많이 채용할 계획”이라며 “내년 3~4월이면 관련 공지가 올라갈 것 같은데, 그때 내용을 보고 지원 자격이 맞다면 지원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 조언했다.

나는 다가올 내년 상반기를 기다리며 일단 리니지를 다시 깔려고 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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