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대통령 방한, “100유로로 전자영주권 발급하면 EU 법인 설립 가능해”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을 차별하지 않는다. 모두가 똑같이 법인세는 0%다.” e-Residency(전자영주권)으로 알려진 케르스티 칼률라이드(Kersti Kalijulaid)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한국을 찾아 한 말이다. 에스토니아가 이렇게 파격적인 정책을 운용하는 데는 정치적인 배경이 있다.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대통령

 

에스토니아는 소비에트 연방국가 중 하나로, 1991년 독립 후 성장동력으로 벤처 육성에 공을 들여왔다. 스카이프를 만든 스카이프 테크놀로지가 에스토니아의 기업이다. 전자정부에도 많은 공을 들여왔는데, 1999년부터 신분증 대신 디지털 ID(1세대) 도입을 위해 노력했고 2002년에 실제 도입됐으며, 2007년 이후 블록체인 기반 전자정부/전자 ID(2세대)를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블록체인 논문(2008년)보다 빠르다. 이 전자 ID로는 결혼과 이혼, 부동산 매매 등의 일부 행정절차를 제외한 99%의 행정 절차를 처리할 수 있다. 교육 현장(교사 연락처, 성적, 진도)이나 의료(보험증을 대체), 행정 처분(경찰), 참정권(전자투표), 인터넷 쇼핑 등 국민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대부분의 절차에 전자 ID가 도입돼 있다. 그 결과 인구수는 수원시 수준(약 131만)인데 반해 국토 면적은 남한 수준인 낮은 인구밀도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직접 관공서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암호화 역시 강점이다.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이 같은 장점을 설명하며 자신의 ID넘버를 직접 불러주기도 했다. 이 ID넘버와 비밀번호 등의 다양한 정보가 일치할 때 전자 ID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ID넘버 자체는 커다란 의미는 없는 것이다. 또한, 비밀번호를 주기적으로 바꾸고 인증 시 여러 채널을 사용하도록 캠페인을 매우 활발하게 한다고 한다. 현재는 스마트폰의 활발한 보급으로(국민 90% 이상 소유) 카드 자체도 잘 쓰이지 않는다고. 보안 기술은 구축 후 끝내는 것이 아니라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이 전자 ID 도입이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며, 그 다음 아이디어로 전자영주권을 냈다. 개인의 ID 발급과 사용이 인터넷에서 모두 이뤄진다면, 법인의 ID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전자영주권 부서를 정부 조직 산하로 정하고 창업가 출신들을 요직에 앉혀 전자영주권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다. 대통령과 함께 내한한 오트 배터(Ott Vatter) 에스토니아 이레지던시 부대표도 창업가 출신이다.

 

오트 배터 e-Residency 부대표

 

전자영주권의 장점을 단 한 문장으로 줄이라면, EU 법인 설립이다. 해외에서 직접 서비스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유럽은 진출해야 하는 경우 사용하면 좋다. 전자영주권과 법인 설립은 사이트에서 할 수 있으며 200유로, 15분 만에 완료된다. 발급된 전자 ID 실물 카드는 대사관이 아닌 수령센터에서 수령하면 된다. IC칩을 내장한 카드다.

이 전자영주권으로 법인을 설립하면 은행계좌 역시 설립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의 경우 은행도 거의 전자화돼 있다. 한국의 경우 1302건이 발급됐고, 전 세계{적으로는 167개국에서 4만 6919명이 전자영주권을 발급받았으며 법인은 4800여 명이 설립했다. 이 전자영주권은 가상의 것으로 여행할 때 사용할 수는 없다. 궁금한 내용은 에스토니아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한글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에스토니아가 영주권만 내주고 벤처에 관심 없는 국가는 아닐까? 그렇지 않다. 현재 에스토니아는 유럽의 실리콘 밸리로 부른다. 물론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곳은 많다. 수도 탈린의 탈린공과대학에서 많은 벤처들이 탄생하고 있으며, 따라서 투자 자금도 몰리는 중이다. 어린이들에게 로봇을 활용한 코딩 교육을 제공하며, GDP의 7%를 교육에 투자 중이다. 영어 사용 비율도 높다.

‘0%’으로 회자되는 법인세율의 경우 조금 더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법인세 자체는 0%가 맞지만 배당소득세가 존재한다. 소득세는 20%로 내국인이나 외국인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0%는 무슨 의미냐면 기업이 성장할 때, 발생한 매출을 재투자하거나 계좌에 넣어놓으면 세율을 매기지 않는다는 의미. 그런데 이 이득을 주주에게 배당 시 20%의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꺼번에 세금을 내는 것에 해당한다. 초기 기업에게 유리한 과세 이연 효과가 있고 법인세가 0%인 것도 맞지만 실제로 법인을 운영하는 데 드는 세금이  0%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부동산세 역시 0%로 알려져 있으나 토지세는 있다. 즉, 건물에 대한 세금은 없되 토지에 대한 세금은 있는 셈이다. 지자체별로 세금이 다르나(0.1~2.5%) 수도인 탈린은 최고 세율인 2.5%를 부과한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다만 전자영주권 신청의 경우에는 신경 쓸 영역은 아니다.

가장 큰 세금으로 사회보장세(Social Security Tax, Social Tax로 줄여 부른다)도 있다. 개인에게는 1.6%를 걷지만 기업에게는 33%를 징수한다. 이 모든 세율은 EU의 기준을 충족한다.

 

일반 카드 사이즈의 전자영주권 카드

 

물론 이러한 점에도 법인이 내는 전체 세금은 크지 않은 편이며, 에스토니아의 반부패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는 세계 22위로 매우 높다. 프랑스(23위)나 한국(52위)보다 높다. “그 배경에 전자 ID가 있다”고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해킹이나 유출 등의 사고에 사과만 하고 넘어가는 어떤 나라와 달리 높은 수준의 형법상 책임을 묻는다.

에스토니아는 독립 후 국가관을 정해나갈 때 이러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국토가 사라져도 국민의 정보가 장부에 존재하면, 온라인에서 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의 국토는 성공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저 개념대로라면 온라인에서의 에스토니아는 전 세계로 끝도 없이 확장되는 셈이다. 그 옛날의 칭키즈칸처럼.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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