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트가 불러온 IT 노조 설립 나비효과

IT 기업의 노조 설립 나비효과는, 흥미롭게도 ‘파리바게트’에서 시작됐다. 파리바게트 같은 프랜차이즈는 노동조합을 만들기 태생적으로 어렵다. 우선, 노동자가 각자 다른 매장에서 홀로 일해 다른 노동자를 만날 겨를이 없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이 있더라도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해 문제제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프랜차이즈 근로자에 노조설립은, 필요는 느껴도 나서기는 어려운 문제였다.

그 일을 파리바게트 제빵 노동자들이 해냈다. 이 소식은 IT업계에도 충격을 줬다. “혼자 일하는 개발자는 모래알 같아서 절대로 뭉치지 않는다” “IT기업이 무슨 노조냐”라는 생각을 가졌던 이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을 열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네이버가 IT 기업 중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파리바게트의 사례를 분석해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이하 화섬노조)의 지회로 들어갔다. 네이버가 하자, 그동안 크런치 모드로 비판 받아온 게임업계도 부지런히 뒤를 따랐다. 지난 3일과 5일 이틀 차이로 넥슨과 스마일게이트가 각각 노조 지회 설립을 알렸다.

화섬노조 임영국 사무처장은 6일 ‘바이라인네트워크’와 전화 인터뷰에서 “게임업체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전부터 노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며 “크런치모드로 표현되고 있듯,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데다 임금수준이 높지 않은 등 근로조건이 워낙 열악했다”고 잇단 노조설립의 배경을 설명했다.

♦ IT 기업들은 왜 화섬노조를 택했나

파리바게트부터 네이버, 넥슨, 스마일게이트까지 모두 민주노총 산하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의 지회에 가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네이버의 노조 설립을 도우면서 옆에서 지켜본 강은미 정의당 비상구 부대표는 이와 관련해 “노조 경험이 전무한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IT업계는 노조를 만들기 정말 어려운 환경”이라며 “중간에 포기하거나 실패하는경우가 많은데 화섬노조가 끝까지 잘 책임지면서 성공의 경험으로 이끌어낸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회사와 대화를 하기 위해 만들어낸 창구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을 조직할 때도 내부의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서로 다른 구성원의 요구사항을 취합해서 하나의 단일한 목표를 만들어내야 해서다. 이 과정에서 말이 통하지 않거나 강압이 있다면 노조가 만들어지기 힘들 뿐만 아니라 힘을 갖기도 어렵다.

지금 IT 기업에서 일하는 주축은 1990년대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20~40대다. 파리바게트의 경우엔 여성이 더 많은 조직이라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이 때문에 화섬노조는 새로운 세대와 대화하는데 집중했다. 임영국 화섬노조 사무처장은 이들의 특징을 “기존에 노동조합 운동을 했던 사람들과는 다른 세대들”이라고 표현했다.

임 사무처장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한 기존 노동운동 세대가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젊은 세대와 소통이 되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 파리바게트를 접하면서 우리도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런 자세로 접근하면서 서로 배워가는 과정을 겪다보니 네이버가 왔을때 대화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번의 소통 경험이 일으킨 연쇄효과는 크다. 네이버의 경험이 넥슨과 스마일게이트에도 영향을 미쳤다.

임 사무처장은 “게임업계의 노동시간은 주 52시간을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실제 임금은 주어진 포괄임금제에서 인정하는 연장만큼만 받고 있어 무료 노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상황에서 넥슨이 같은 IT라는 동질성을 가진 네이버를 통해 화섬노조를 찾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수찬 넥슨 노조지회장도 “화섬노조 분들이 젊은 노동자랑 많이 일해봤다”며 “이분들이 우리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르더라도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과로로 뻗어버린 고양이 개발자

♦ 무엇이 모래알을 뭉치게 했나

주52시간제가 시작됐고 유연근무제가 도입됐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이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크런치 모드도 여전히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어 근본적인 근무환경 개선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IT 기업의 업력이 20년 이상에 접어들어 근무 인력들이 40대에 접어 들고 있는데, 게임업체 평균 근속 연수가 3년에 머무르는 등, 고용 불안정이 심하다는 것도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 것으로 보인다.

임 사무처장은 “게임 회사 특성상 팀 프로젝트가 접히면 이직을 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전환배치를 하거나, 전환배치가 안되면 이직을 해야 하는 분위기와 문화가 익숙한데도 노조 설립에 앞장섰다가 피해를 볼까봐 말을 못했는데 용기를 낸 사람들이 생겨서 노조를 만들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게임회사에는 노조 대신 노사위원회가 존재했다. 근로자 대표로 회사에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주체이지만, 이들의 의견을 회사가 받아들여야 할 법적 근거는 없다. 대화의 파트너지만, 힘이 없는 파트너였던 셈이다.

네이버에 노조가 생기고 나서 포괄임금제가 폐지되었다는 점도 게임업계 노조 설립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네이버 노조가 생긴 시점은 4월이고 포괄임금제가 폐지된 것은 7월이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제도 폐지에 노조의 발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근로 시간 단축이 게임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임 사무처장은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크런치모드로 과로사가 발생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며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식권을 보장해 줄 수 있다면 더 창조적인 것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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