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최근 망중립성을 폐기했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망중립성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망중립성이란 망사업자가 이용자나 콘텐츠제공자를 차별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로레이팅’이 화두에 오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제로레이팅은 기업이 이용자의 데이터 요금을 대신 내주는 방식이라 ‘스폰서 요금제’라고도 불린다. 예로 ‘포켓몬 고’ 요금제를 들 수 있다. 포켓몬 고를 만든 게임사 나이언틱과 SK텔레콤이 제휴를 맺고, 포켓몬 고에 사용되는 데이터 요금을 감면해줬다. 나이언틱이 포켓몬 고 이용자들의 통신요금을 지원했다. 오픈마켓 11번가를 이용할 때 데이터 요금을 감면해주는 ’11번가 요금제’도 제로레이팅의 하나다.

포켓몬 고 이용자 입장에선 통신비를 절감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포켓몬고와 유사한 게임을 만드는 곳에선 불공정한 경쟁 환경이라 여길 수 있다. 스타트업이나 인디게임 업체는 이용자의 통신요금을 대신 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로레이팅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망중립성 원칙을 깨는 제도일 수도 있고, 이용자의 통신비를 절감시켜주는 혜택일 수도 있다.

19일 바른미래당 신용현 의원실이 주최한 ‘4차 산업혁명시대 망중립성의 미래 정책토론회’에서는 이같은 제로레이팅 도입을 두고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발제자인 김성환 아주대 경제학교 교수는 우선 인터넷 환경변화에 따라 CP의 입장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인터넷 초창기에는 CP가 혁신의 원동력이므로 망중립성 원칙으로 이들을 보호하여야 했으나 구글, 넷플릭스, 네이버 같은 대형 인터넷 기업이 등장한 오늘날에도 이같은 원칙을 고수해야 하느냐는 문제제기다.

대형 인터넷 기업이 나타나면서 이용자들의 통신비, 특히 데이터 비용에 대한 압박이 커졌는데 양면 시장의 구조에서는 CP가 네트워크 이용료의 상당 부분을 부담함으로써 일반 이용자가 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하는 사례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제로레이팅이 결과적으로 CP의 망 이용대가 지불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경우 제로레이팅이 망중립성 원칙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일부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로레이팅으로 인해 CP 간 차별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김 교수는 “제로레이팅이 CP 간 경쟁에 미치는 영향은 현재로서는 미미하다”며 “통신사가 자사 서비스에 제로레이팅을 적용하는 것도 그만큼 의 데이터 이용료 수입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부담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발제자인 박경신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김 교수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일반적인 제로레이팅의 경우 통신비 절감으로 인한 이용자 후생에 도움이 된다고 보지만, 자기 계열사를 밀어주게 되는 ‘자사 제로레이팅’은 확실하게 금지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박 교수는 “제로레이팅은 영화 배급사가 홍보를 위해 공짜 티켓을 뿌려 극장표 할인 효과를 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그러나 망시장이 과점인 상황에서 자사 제로레이팅은 비계열사 CP를 고사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망사업자가 직접 콘텐츠 사업을 하고 있을 때다. 계열사 CP가 제로레이팅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룹 전체로보면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쟁 CP들은 제로레이팅을 하면 수익이 줄게 된다.

그는 “11번가가 SK텔레콤의 자사 제로레이팅으로 인해 혜택을 받았는지 여부를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며 “11번가는 물론, 경쟁사인 쿠팡도 제로레이팅을 해주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할 수 있지만, 망사업자에 이미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하게 되면 비계열사 경쟁사들은 고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병일 진보넷 활동가는 자사 제로레이팅을 넘어, 제로레이팅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자체의 품질보다 경제적 차별을 통해 이용자 선택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망중립성 위반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연합 전자통신규제기구(BEREC)가 정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제로레이팅 제휴를 맺은 애플리케이션을 제외한 다른 것들만 차단이 되거나 느려진다면 망중립성 위반”이라며 “BEREC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시장경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에 대한 평가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재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실장도 유사한 의견을 냈다. CP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망중립성이 법제화되었거나 제로레이팅이 사전 규제되는 국가도 아닌데 왜 이런 논의가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근본적 물음을 제기했다. 제로레이팅이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애초에 우리나라 망사용료가 그만큼 비싸다는 것을 방증한다고도 주장했다. 쉽게 말해서, 얼마나 망사용료가 비싸면 제로레이팅으로 통신요금을 절감한다는 얘기가 나오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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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실장은 “망중립성을 완화해 차별적 접속제공을 하는 것이 중소 CP의 혁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며 “제로레이팅이 확산되면 오히려 기업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어 4차산업혁명 시대 신생기업 진입이 차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로레이팅을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은 류용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팀장이 밝혔다. 류 팀장은 4차산업 혁명을 앞둔 5G 시대에 맞게 망중립성 개념의 재정립과 규제 완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비스별 요구되는 망품질이 크게 다르고 이를 제공하는 비용도 차이가 나는데 현재의 망중립성 원칙(차별금지)을 엄격하게 적용할 겨웅 네트워크별 서비스 단가를 동일하게 책정해야 하는 모순에 빠진다는 것이다.

제로레이팅으로 인해 중소CP와 스타트업이 고사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해외 주요 사레에서 보듯 제로레이팅 플랫폼을 통한 통신사와 중소CP간 제휴가 확대돼 CP의 새로운 수익창출 기회가 마련된다”며 “결과적으로 제로레이팅 도입이 데이터 이용료 부담을 낮춰 이용자 접근이 쉬워지므로 중소 CP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