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정부 지원이 좀비 스타트업 키운다”

“첫 창업에서 목표가 투자 유치였다. 대학생이라 번번히 실패했다. 그 다음으로 창진원의 문을 두드렸다. 받을 수 있는 모든 지원사업을 다 받았다. 2년간 2억원의 지원을 받았다. 그런데 사업은 실패했다. 정부 지원 사업에 너무 매몰되어 있던 것이 원인중 하나라 생각했다. 정부 지원 사업은 공짜가 아니다. 많은 리소스가 필요하다. 지원금을 받으려면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내가 창진원 지원을 받을 때는 1년에 200시간의 교육을 받았다. 심지어 정신 무장을 위한 해병대 캠프도 있었다. 내 사업을 위한 것이 아닌, 정부 지원을 위한 발표용 계획서도 만들어야 한다. 진짜로 비싼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김윤호 크리마팩토리 대표가 22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열린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러스’에 발표자로 참여, 정부 지원 사업에 대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크리마팩토리는 현재 정부나 투자사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매출을 일으키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김 대표는 “창업 초기에는 정부 지원이 매우 고마운 일이지만 지원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할 경우 결국 내 사업은 실패하는 좀비 기업이 될 확률이 높다”며 “지원 사업을 받는 것이 매출을 일으키는 것보다 쉽기 때문에 벗어나기 힘든 것”이라고 정부 지원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부 지원이 실질적으로 창업가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창업이 활발하고 성공 사례가 많이 나오는 나라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끼어들 공간이 없지만, 아직 생태계가 활성화되지 않은 경우 정부 지원이 창업의 마중물이 된다는 점에선 대체로 이의가 없다. 그러나 그 방식과 규모에 대해서는 “과하다”는 평가가 더 많았다. 정부 지원 자체를 목적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의 탄생이 생태계 조성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김윤호 크리마팩토리 대표

이날 컨퍼런스 난상토론에 패널로 참여한 김진상 앰플러스파트너스 대표는 “창업 지원이 방향성 없이 난잡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러 부처에서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가 없이 지원사업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무원조차 스타트업에 대해 이해를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며 “창업지원의 총 금액은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가짓수가 많은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싸이월드 창업자 출신인 이동형 피플스노우 이사장은 창업 지원과 교육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업 계획서를 쓸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있다면 노력만하면 2억원까지 지원을 받는 경우를 봤다, 과도한 지원이다”라며 “정부 지원이 사업의 목표가 되어 버린 건데 이렇게 지원을 하면 안 된다. 이들은 교육의 대상이지 자금 지원의 대상은 아니다. (꼭 해야 할 곳으로만 지원 대상) 숫자를 줄여야 하고, 금액도 몰아서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지원이 무분별하게 될 경우 생태계에서 자연 도태되어야 할 기업이 계속해 연명하게 되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이동형 이사장은 “정부가 나서 자금 지원을 한지 꽤 됐는데 그 중에서는 폐업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해 계속 연명하는 (좀비) 기업이 많이 생겼다”며 “그런데에는 어떻게 해줘야 할지 (정부가 같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도 이같은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이날 기조연설을 맡았던 변태섭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정책관은 정부의 역할이 “민간이 뛰는 길에 있는 자갈을 치워주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우리 정부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민간과 정부의 역할 정립이고 둘째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m)이다. 민간이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정부가 과거처럼 창업 벤처에 대해 “이런걸 하자, 이걸 도와줄게”라고 직접 개입하는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부처별로 중복된 지원사업을 줄이고 어느 곳에 투자를 해야 할지 민간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입장이다. 변 국장은 “올해 정부가 1500개 기업에 최대 1억원, 평균 6500만원 정도의 지원을 하려고 한다”며 “다만 포스트 팁스처럼 과잉 지원이라고 지적 받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진짜 괜찮은 기업이 아닐 경우 예산이 남는다고 해서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패널로 참여한 김진상 앰플러스파트너스 대표, 변태섭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정책관, 이동형 피플스노우 이사장.

규제와 관련한 주제도 다뤘다. 크게 두 가지인데, 철폐해야 하는 규제와 만들어야 하는 규제다.

우선 철폐해야 할 규제 이야기다. 김진상 대표의 경우 네거티브 규제를 만들기 위해선, 스타트업 생태계의 민낯을 가장 잘 아는 창업투자사에 대한 규제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가와 정부 입장을 가장 잘 파악하는 창투사에 더 많은 권한과 위임을 줬을 때 생태계 정화가 빠르게 가능할 것”이라며 “네거티브 규제로 가야할 것 중 하나가 창투사 관리 규제”라고 말했다.

 

규제 자체가 나쁘다기보다 규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아마추어 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동형 이사장은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이해관계자가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공론화가 되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며 “20년전부터 규제 해결 이야기가 나오는데 매년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되고 해결책은 뚜렷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 완화가 자칫 기업의 이익만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겠냐는 지적에는 김진상 대표가 처벌 강화를 주장했다. 대표적 사례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꼽았다. 그는 “징벌적 손해배상은 매우 기만적이라 생각한다”며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기술이나 서비스를 놓고 ‘우리도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라 발언하는데(인수합병 없이 기술 베끼는 것), 스타트업이 이 때문에 실제로 사업을 접기도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최대  10배’가 아니라 ‘최소 10배’ 정도로 해야한다”고 말했다.

 

정확하게 규제가 만들어지지 않거나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기존 기득권의 정치논리에 희생되는 스타트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대표적 사례가 풀러스다.

이동형 이사장은 “(싸이월드 시절) 도토리로 음악을 팔았는데 그때 음악저작권협회가 권력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규제 문제를) 풀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저지르고 봤다”며 “풀러스를 비롯해 창업자가 일단 저지르고 자기가 손해를 감수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규칙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할 또 다른 분야로 블록체인이 거론됐다. 최근 많은 기업이 코인공개(ICO)를 통해 자금조달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규제가 없어 향후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취지다.

이동형 이사장은 “예를 들어 ICO 업체들이 (계약서 같은 의미의) 백서를 발행하는데, 이게 언어가 달라지면 모두 별건의 문서로 인정돼 법적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며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죄를 짓지 않게 해줘야 한다. (지금은 규제가 없는데) 나중에 규제를 만들어서 감옥에 갈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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