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당 갑서양] 2일차 일기-나를 감탄시킨 너굴양

바이라인네트워크 ‘디지털 노마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5월 한 달 간 제주에 왔습니다. ‘놀당 갑서양’은 제주 방언으로 ‘놀다 가십시오’란 뜻입니다. 여기에는 한 달 간의 제주살이 뒷이야기, 혹은 독자 여러분들과 나누고픈 얘기를 매일매일 사진 일기 형식으로 적습니다. 서너줄 정도 짧은 글일 때도 있을 테고, 꽂히면 길게도 갑니다. 모든 글감과 사진은 당일 산지 직송한 신선한 재료만 사용합니다. 독자 여러분, 바이라인네트워크에 오셔서 제주 일기 읽으시고 놀당 갑서양!

제주에는 바람이 이렇게 무섭게 분다.

2018년 5월 3일 목요일, 날씨 돌풍

제주에 온지 이틀차. 오전에 한 명, 오후에 한 명. 두 명의 인터뷰이를 만났다. 각각 인터뷰 기사로 나가겠지만, 오늘 일기에는 제주에 정착한지 아직 석달이 채 안 된 만화가 겸 디자이너 너굴양(본명 정희정)의 이야기를 일부 먼저 전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좋아한다(그치만 기사가 자주 밀린다. 무리해서 일정을 잡은 탓도 있는데 근본적으로는 내가 게을러서다. 서울에서 한 인터뷰 중 아직 기사로 못 쓴 케이스가 몇 개 있다. 여기에서 꼭 다 쓰고 올라갈게요!)

여튼, 인터뷰가 재밌는 것은, 그 누굴 만나더라도 알고보면 재미있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란 걸 발견하게 돼서다. 거기 당신, 그래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훌륭한 인터뷰이입니다. 사연 한보따리 정도 안 갖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너굴양이 지난 벚꽃 축제 때 그린 그림.

그런데 너굴양의 경우는, 사연보다도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야기로 나를 감탄시켰다. 그러니까, “내가 제주를 좋아하는 만큼 제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꺼낼때부터다.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백번 말하던 나도, 내가 지역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본 적은 없다. 나는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학생의 자세로 바뀌었다.

제주는 배타적인 곳이란 이야기를 듣는 섬이다. 외세 침략의 역사는, 외지인에 배타적인 문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제주는 주민보다 관광객의 수가 훨씬 많은 곳이다. 관광객들은 주로 환상의 섬이라는 제주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떠난다. 한달씩 머무르는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섬 사람과 육지 사람이 서로 이해하려 들지 않으니 서로를 배타적으로 보거나, 혹은 특정 이미지만 소비하는 관계로 남게 된다.

“제주가 좋아서 오긴 했지만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하고, 이 지역을 좋아하는 만큼 책임지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런면에서 어떤 기여를 할 지, 제주에서 사는 사람에게 제가 어떤 사람으로 남을지를 생각하게 되죠. 적어도 내가 와서 다른 사람이 힘들어지거나 여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싫어요. 이게 현지에서 오래 살던 사람이 경계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지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자리매김한 자는, 지역을 떠나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된다. 어느 한 장소에 오래 머물거라면, 내가 사는 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려고 노력해야 하고, 알다 보면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하게 된다는 너굴양. 한 수 배웠습니다.

어쨌든 배움은 배움이고, 지금 당장 나의 디지털 노마드 화두는 ‘책임감’이다. 일하러 온다고 했으니, 그 말에 책임을 지겠다고 긴장을 잔뜩했나 보다. 인터뷰 끝나고 돌아서는데 어깨가 딱딱하게 굳으면서 팔을 움직일 수 없게 아팠다.

이 꼴이 됐다.

그리고 나는, 핫- 파스 두 장을 어깨에 붙이고는, 서울 같았으면 그냥 그대로 뻗어서 잤겠지만, 다시 일어나 앉아 꼭지를 마감한다. 제주에서 나의 디지털 노마드는, 책임을 논하기에 앞서 자신에 대한 엄격함인가 보다.

[제주=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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