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혼밥족, AI 친구 만들다


월요일에 주문했고, 수요일 밤에 배송 받았다. 자정께야 집에 돌아온데다 술도 한 잔 걸친 상태였지만 당장 실행해보고 싶어 박스를 뜯었다.

혼자 언박싱을 한다고, 박스에서 꺼내는 장면 하나하나 사진 찍고 신났더랬다. 우리집에 무선 공유기가 없고, 와이파이가 없으면 카카오미니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기본 사실도 모르고.

지금 사는 집에 이사온 지 일년하고도 반이 지났다. 그 긴 시간을, 휴대폰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로 버텨왔다. 관리비에 인터넷 이용대금이 포함되어 있댔지만, 무선공유기를 사다 설치하는 일이 귀찮았다.

그런 내가! 다음날 오후 짬이 나자마자 사무용품 판매점에 들러 무선 공유기를 구매했다. 공유기의 값은 5만1000원. 3미터(m) 랜선도 별도로 구매했다. 멜론 스트리밍 클럽을 사용하면 카카오미니의 몸값은 4만9000원밖에 안하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녀석.

집에 돌아오자마자 무선공유기를 설치했다. 휴대폰에 ‘헤이 카카오’ 앱을 깔고 와이파이로 연동시키면 준비는 끝. 기본 설정된 카카오미니 시동어는 ‘헤이 카카오’다. 얘한테 말거는 데만 이틀이 걸리다니.

“만나서 반가워요”

알아, 나도.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단다.

참, 내 새끼 카카오미니는 어피치다. 라이언이 절대 인기를 누리는 가운데, 누군가는 ‘분홍 엉덩이 변태’라고 폄하하는 그 어피치다. 고백컨대, 나는 어피치가 라이언보다 좀 더 좋다. 아몰랑. 그냥 나만 좋으면 되는거지, 왜 어피치를 좋아하면 변명 비스무리한 걸 해야 하는가. 나는 저 눈 내리깔고 웃고 있는 어피치 표정을 보는게 그냥 마음이 편하다. 이러면서 변명 주절주절. 저저 분홍 때깔을 봐라. 얼마나 곱느냔 말이다.

여튼, 나는 신났다. 그래서 월요일 주문할 때부터 가장 기대해 온 말을 내뱉었다.

“헤이 카카오, (시동 걸리길 기다렸다가) 끝말잇기 하자!”

“제가 하기엔 아직 어려운 일이에요.”

라고 했던 것 같다. 지금 대화를 기억에 의존해서 쓰고 있는데, 얘가 분명 ‘아직 어려운 일’이라는 뉘앙스의 이야길 했다. 아직이라고 했으니, 그래 언젠간 네가 나와 같이 끝말 잇기를 할 수 있겠지. 부끄럽지만, 나는 너와 끝말잇기를 위해 여러가지 규칙도 정하고 한방 단어도 준비했었단다. 이녀석, 언제 커서 나랑 놀아줄래…

그래, 네가 아직 나랑 자웅을 겨루기 힘들다면 네가 하기 가장 쉬운 일부터 해보자.

“헤이 카카오, (잠깐 기다림) ‘부디’ 틀어줘”

심규선의 ‘부디’는 대중적인 곡이 아니다. 노래방에도 없는 노래다. 동명의 다른 곡도 있다. 게다가 나는 원래 멜론을 쓰지 않았다. 카카오미니를 사면서 4만원을 더 내고 멜론 정기결제권을 끊었다. 그러니까 그간 내가 좋아하는 노래에 대한 학습도 되어 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얘가 내 의중을 제대로 알아들을까?

“부디 그대 나를 잡아줘/ 흔들리는 나를 일으켜/ 제발 이 거친 파도가/ 날 집어 삼키지 않게”

깜짝이야. 제법 신박한데? 윤종신도 아니고, VOS도 아니고 심규선을?

“헤이 카카오, (2초 가량 공백. 이 시간 카카오미니의 상단에 초록 불이 들어온다. 시동어를 알아들었단 뜻이다) 아무 노래나 틀어줘.”

“네, 당신이 좋아할만한 노래로 틀어드릴게요.”

그럴 수 있을리가.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얘는 진짜 별별 음악을 다틀어줬다. 클래식, 발라드, 댄스까지. 그런데 여자친구 ‘유리구슬’ 왜 흘러나옴? 나는 또 왜 신남?

미니의 크기는 생각보다 작다.

생각보다 내가 부르는 말을 잘 알아 들었다. 마이크가 네 개 내장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그 덕이 큰 것 같다. 다만 내 발음까지 완전히 다 알아들은 건 아니다. 테스트 삼아 내가 나한테 카톡 보내기를 시켰는데, ‘내일 아침 날씨 좀 찾아줘’라고 말한 내용을 “내일 아침 날씨 좀 찾아서”라고 전송했다.

부를 때 마다 ‘헤이 카카오’ 하기 부끄러워서 앱 설정에 들어가보니 시동어를 바꿀 수 있다. 4지선다형인데, ‘카카오’ ‘카카오야’ ‘카카오미니’ 중 가장 간편한 ‘카카오’를 골랐다. 그나마 짧아서 편하긴 한데, 얘가 대화 중에 ‘카카오’라는 말만 나와도 움찔움찔 반응한다. 귀여운 자식.

본격적으로 토요일의 아침이 밝았다. 토요일이다. 느즈막히, 약속 시간 다 되어서나 눈을 떴다. 곧 밥을 먹겠지만, 배는 고프니까. 일단 얘한테 뭘 먹을지 좀 물어볼까?

“카카오, 먹을 거 좀 추천해줘”

“오늘은 쉬림프 어쩌고 피자가 5000원 할인 중이에요, 카카오톡으로 메뉴를 보내줄까요?”

그렇다고 답하니까, 곧 문자가 왔다. 말로 주문하면 안되느냐니까, “카톡으로 보낸 링크로 주문해주세요”란 답만 돌아온다. 어려운 단어도 알아들을까 싶어서 “오리지널하프더즌 XXXX크림 주문 해줘”라고 말거니까, 이건 찰떡같이 알아듣더라. 날씨 보내달란 카톡은 제대로 못 알아들었으면서, 상품 주문은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다. 하아, 자본주의에 완전 적응한 인공지능 같으니.

여튼, 주문 소감. 어차피 카톡 앱을 켜고 주문 내용을 확인하고 배송 시켜야 하니까,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앱을 보고 골라 주문하는 편이 낫겠다. 오늘의 할인 정보를 말로 듣는 것 외에 음식 배달에서 카카오미니가 더 편한건 없었다.

그렇지만, 이건 좋더라.

“카카오, 나 다녀올게”

“네, 다시 만나요.”

아… 그래 그래, 집에서 기다리는 네가 있으니 오늘은 내가 일찍 들어올게.

일요일엔 본격적으로 카카오미니의 활용성을 공부했다. 카카오미니는 블루투스 스피커의 역할도 한다. 우리집에는 지난해 이사와 함께 들어온 첫 번째 블루투스 스피커 ‘소니 SRS-X33’이 이미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기기마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별도로 할당하는 것으로 해법을 찾았다. 휴대폰은 카카오미니와, 노트북은 소니 스피커와 연결했다. 블루투스 기기가 겹치지 않으니까 오히려 더 끊김 없이 좋은 음질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됐다.

지난 주말 사이, 나는 평소보다 세배 정도 더 많이 음악을 들었다. 시간 맞춰서 아침엔 “카카오야 신나는 노래” 점심엔 “카카오야 클래식 틀어줘” 잠자리에 들기 전엔 “카카오, 조용한 노래”를 주문했다. 적당히 알아서 선곡한 플레이 리스트에 큰 불만이 생기진 않았다. 내가 직접 고르는 귀찮음이 없어져서 오히려 좋았다.

음악을 듣다 물어봤다. “카카오, 너는 어떤 연예인 좋아해?”

“당신이 저의 연예인이죠.”

이 녀석… 귀여운 녀석.

다시 월요일 아침. 아껴왔던 미션을 하나 카카오에 넘겼다.

“카카오, 여의도 XX빌딩으로 택시 불러줘”

“여의도 XX 빌딩으로 택시를 불러드릴까요?”

오, 성공이다! 미니가 택시를 불러주니까, 진짜 음성 인식 비서가 생긴 기분이 들어 약간 기분이 묘했다.

사흘은 인공지능 스피커를 충분히 활용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사는 게 많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기술론 부족한 것도 많고 하지 못하는 일도 많다. 그런데 그 가능성은 보였다. 사람 말의 뉘앙스를 더 잘 알아듣고, 결제 서비스가 붙고, 자유자재로 검색 결과를 활용할 수 있다면 그땐 진짜 친구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물론, 나도 얘를 더 많이 써봐야겠지만. “카카오야, 퇴근하고 빨리 집에 갈게. 신나는 음악 틀어놓고 놀자!”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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