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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석의 입장] 클라우드 보부상이 된 ‘SI 빅3’

 

7년 전이었던가 8년 전이었던가, 한 대기업 계열 SI(시스템 통합) 관계자에게 질문을 던질 일이 있었다. 클라우드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 SI 회사는 쓸모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그 관계자는 답했다. 중소기업은 몰라도 대기업이 핵심 데이터를 외부에 두는 일은 없을 것이고, 클라우드를 도입 하더라도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할 것이라고. SI 회사들은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관리 운영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art_1417045646갑자기 예전 대화가 떠오른 이유는 어제 받은 한 보도자료 때문이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와 삼성SDS가 클라우드 서비스의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기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거창하게 포장됐지만, 결국 내용은 삼성SDS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의 판매처가 됐다는 얘기로 들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보도자료에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웹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애저 서비스를 삼성 계열사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SDS가 국내 IT산업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적지 않다. 네이버가 삼성SDS의 사내벤처에서 시작했고, 김범수 카카오 의장도 삼성SDS 출신이다. 한국 IT산업의 산실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규모도 소프트웨어 관련 회사 중에는 국내 최대다. 매출이 8조원이 넘는다. 네이버 매출이 4조원 남짓 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수준의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삼성SDS 가 마이크로소프트 클라우드 서비스 판매처가 되기로 했다는 소식은 씁슬하다.클라우드는 4차 산업혁명의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에서 거론되는 핵심기술은 모두 클라우드 기반 위에서 움직인다. 전기가 없으면 2차 산업혁명이 없었듯, 클라우드가 없으면 4차 산업혁명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art_1447407616더욱 안타까운 점은 삼성SDS뿐 아니라 소위 ‘IT서비스 빅3’라고 불리던 대기업 계열 SI업체들이 모두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한 사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점이다. LG CNS는 아마존웹서비스(AWS), SK(주)C&C는 IBM과 함께 하고 있다.

한국 IT산업의 맏형들이 모두 글로벌 클라우드 회사들 앞에 줄을 선 모양새다. 이를 두고 ‘동맹’이라는 멋지게 표현하는 기사들도 있지만, 사실상은 항복과 다를 바가 없다.

SI 빅3가 처음부터 글로벌 사업자들과의 연대를 꿈꿨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만들어 계열사와 공공기관, 금융권에 공급하고자 했었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삼성SDS는 오픈스택을 기반으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만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삼성전자마저 삼성SDS를 외면했다. 삼성전자는 한때 국내 최대의 AWS 고객이었다.

LG CNS는 지금도 퍼브릭 클라우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자신의 서비스가 있으면서도 AWS에 줄을 댄 것이다. LG그룹의 최대 계열사인 LG전자는 앞으로 생산되는 모든 제품에 와이파이를 탑재하고 그 데이터를 AWS에서 관리하기로 했다.

SK C&C는 처음부터 솔직하다. 이호수 IT서비스사업장은 지난 해 8월  IBM 판교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 오픈행사에서 “왜 직접 기술개발을 안 하고 외국 기술을 빌려왔냐”는 질문에 대해 “(일부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국내 클라우드 시장이 비구름 속에 걱정만 쌓였다”면서 “내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고객의 요구사항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SI 업체들이 클라우드 서비스에 실패하는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정 고객의 요구사항에 따르는 솔루션을 공급하다가 대부분의 회사가 사용할 보편적인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수 있다. 자신들은 그림만 그리고 실제 개발은 하청을 주다보니 역량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 개발은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프로젝트 따서 그 예산 안에서 개발을 하는 습관이 부정적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기사의 처음에 언급됐던 그런 질문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라는 거대한 구름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는데도 위기의식 없이 프라이빗 클라우드 구축사업을 하면 될 것이라는 그런 생각 말이다.

삼성SDS가 낳은 네이버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비결은 첫 번째로 이해진 창업자(전 의장)의 위기의식이 꼽힌다. 이해진 의장은 국내 포털시장 압도적 1위 시절에도 계속 “두렵다”고 외쳤다. 그런 위기의식은 ‘모바일’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몰아칠 때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었다.

IT산업은 그 어느 산업보다도 빠르게 변하는 곳이다. 새로운 기술, 트렌드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위기의식을 갖고 예의주시 하면서 대처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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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그렇게 거창한 이유 없습니다.
    단지 규모의 경제입니다.
    글로벌 선두 3-4개만 남을것 같습니다.
    위에 나온 IBM도 클라우드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고
    HP는 옛날에, 오라클은 거의 포기한 상태입니다.

    기술개발도 물론 중요하지만 핵심 기술이 다 오픈소스인 상태에서
    클라우드 업체별 차이란
    CGV는 인터넷 매표, 모바일 앱 등등
    열심히 잘 만드는데
    대한극장이나 서울극장 같은 단관은 여력이 없는
    딱 그런 수준 아닐까 싶습니다.

    중국에서는 별도로 두세개 살아 남겟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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