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I/O] 구글이 꿈꾸는 가상현실

가상현실의 난리라면 난리입니다. 요즘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IT기업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갖는 주제는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일 겁니다. 구글 역시 이 두 가지 주제를 앞으로의 중요한 주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구글이 바라보는 가상현실의 결과물은 다른 기업들과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헤드셋을 쓰고 가상 공간을 보는 VR, 그리고 증강현실이라고 부르는 AR입니다. 구글은 이미 이와 관련된 플랫폼들을 갖고 있습니다. VR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고성능 VR 플랫폼인 ‘데이드림’, 그리고 단돈 몇 천원에 VR을 맛볼 수 있는 ‘카드보드’입니다. 그리고 AR을 위한 탱고 플랫폼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탱고는 3년 전, 데이드림은 1년 전에 공개됐습니다. 생각해보면 발표된 지는 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그리고 아직 서서히 진화하고 있지요. 구글은 가상현실을 바라보는 방향이 확실하지만 갈 길을 서두르지는 않는 듯 합니다.

vr_1
▲유튜브는 가상현실을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이번 구글I/O에서 소개된 가상현실 관련 서비스들 역시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구글이 머신러닝을 기존 서비스들에 접목해 무엇인가를 만들어냈듯, 가상현실 역시 구글이 갖고 있는 경쟁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튜브는 360도 영상을 담아내는 하나의 플랫폼입니다. 그 동안 유튜브는 카드보드나 데이드림 헤드셋을 위한 콘텐츠로 이 가상현실 영상을 써 왔습니다. 구글은 이 헤드셋을 보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크롬캐스트나 안드로이드TV로 전송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헤드셋과 동시에 TV에 전송하는, 기술적으로는 아주 단순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게 놀라웠던 건 그 동안 VR을 ‘1인용 콘텐츠’로 생각하던 것에서 벗어나 ‘함께 즐기는 콘텐츠’로 개념을 확장했기 때문입니다.

가상현실 게임이나 영상을 함께 즐기거나 이를 중계 등으로 확장하는 건 물론이고, 교육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구글이 애초 카드보드로 가상현실을 저렴하게 구현하려고 했던 부분도 익스피디션(Expedition)에 있습니다. 박물관, 여행지, 자연환경 등 교실에 세상을 담고자 하던 것이었지요.

장비를 갖추면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360도 영상으로 방송을 할 수 있는 환경도 갖췄습니다. 구글은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시연을 아주 잠깐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텔을 비롯해 근래 VR과 관련된 콘텐츠들 중에서 가장 현실감을 잘 전달해주면서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바로 스포츠 콘텐츠입니다. 이는 기존 TV가 담아내지 못하고, 오로지 인터넷 기반 플랫폼만이 가져갈 수 있는 ‘킬러’로 콘텐츠로 꼽는 게 그리 무리는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유튜브는 가상현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혼자만의 콘텐츠가 아닌 함께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매개체가 됐습니다. 단순하지만 구글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vr_2
▲데이드림은 2.0으로 업데이트됐습니다. 스마트폰 외에 자체 헤드셋도 올해 안에 발표됩니다. HTC의 바이브와 레노버 등이 파트너로 참여합니다.

데이드림은 2.0으로 업데이트되면서 본격적으로 가상현실 플랫폼으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스마트폰과 연결해 더 나은 가상현실 환경을 만들겠다는 가능성에서 시작했다면 이제는 안드로이드처럼 이를 하나의 컴퓨팅 환경으로 만드는 플랫폼을 제시했습니다. 구글은 소프트웨어, 그리고 콘텐츠 개발자들이 데이드림을 통해 더 나은 가상현실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틀을 마련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스마트폰에 꽂는 헤드셋 플랫폼 데이드림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화합니다. 먼저 소프트웨어입니다. 구글은 ‘쇠라(Seurat)’라는 프레임워크를 발표했습니다. 쇠라는 19세기 프랑스 화가로 점묘 화법으로 유명합니다. 이 이름이 낯설고 의외일 수 있습니다. 구글의 쇠라는 데이드림 헤드셋이 가상 현실을 그려낼 때 한번에 모든 그래픽 요소들을 그리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부분만 렌더링하는 기술입니다. 헤드셋이 바라보지 않는 방향, 그리고 보이지 않는 뒷면은 아예 연산하지 않고 비워두기 때문에 똑같은 하드웨어라도 연산에 드는 노력이 크게 줄어듭니다. 불필요하게 연산할 것이 줄어들면 그만큼 더 좋은 그래픽을 그려내거나 화면 재생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실감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알고 보면 쇠라라는 이름도 꽤 그럴듯 합니다.

구글의 발표에 따르면 같은 환경에서 쇠라를 이용하면 1시간 걸리는 렌더링을 13밀리초만에 그려낼 수 있다고 합니다. 1초도 아니고 0.13초입니다. 극단적인 상황을 설명한 것이겠지만 더 나은 가상현실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vr_3
▲쇠라(Seurat)는 가상현실의 결과물을 더 좋게 만드는 그래픽 기술입니다.

데이드림의 새 하드웨어도 발표됐지요. 갤럭시S8과 LG전자의 차세대 스마트폰이 새로운 데이드림 스마트폰으로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구글I/O에서 구글은 꽤 많은 제조사의 스마트폰을 데이드림용으로 언급했는데, 실질적으로 그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데이드림을 위한 스마트폰의 조건이 무엇인지 클레이 베버 구글 VR, AR 담당 부사장에게 물었는데, 잔상없는 화면이나 예민한 센서 등 다소 막연한 기준을 내놓았습니다. 비밀은 아니고 다소 복잡하고 기술적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부적으로는 하드웨어의 조건이 명확하게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구글은 픽셀 스마트폰 외에도 올해 갤럭시S8을 중심으로 데이드림 생태계를 늘려 1천만 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전용 헤드셋입니다. 스마트폰을 꽂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전용 디스플레이와 자체 프로세서, 그리고 다양한 센서가 접목됩니다. 고성능을 위해 최근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퀄컴의 차세대 프로세서 ‘스냅드래곤845’가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헤드셋 앞에는 작은 카메라가 두 개 달려 있습니다. 이를 통해 주변의 사물을 읽어내 가상현실 콘텐츠에 반영할 수도 있고, 사물을 기준점 삼아 헤드셋의 움직임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월드센스(WorldSense)’라고 부르는 기술입니다.

이는 바로 전 주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발표한 MR 헤드셋, 그리고 최근 인텔이 가이드라인을 세운 ‘프로젝트 얼로이’와 비슷합니다. 이에 대해 클레이 베버 부사장에게 물었더니, “명칭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기술적 방향성은 비슷하다”고 답이 돌아왔습니다. 대신 “구글은 하드웨어에 대한 경쟁보다 콘텐츠와 생태계, 플랫폼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고 합니다. 구글의 강점은 역시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복합적인 플랫폼 환경과 다양한 콘텐츠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답이기도 합니다.

vr_4
▲데이드림은 이제 출시된 지 6개월이 됐습니다. 구글의 가상현실은 콘텐츠와 플랫폼이 결합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구글 가상현실의 ‘복합적인 플랫폼’은 웹에서 단적으로 비춰집니다. 구글은 크롬 브라우저를 이용해 웹에서 가상현실 콘텐츠와 일반 콘텐츠를 함께 볼 수 있는 환경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데모에서는 크롬 웹 브라우저의 화면이 둘로 갈라져 위쪽은 카메라를 이용한 증강현실 정보를 보여주고, 아래는 증강현실에 뜬 관련 정보를 보여주는 식입니다. 이게 별도의 앱이 아니라 자바 스크립트와 웹GL만으로 웹 브라우저 안에서 그대로 재생됩니다. 먼저 크롬의 베타 버전인 크로미움 브라우저부터 시작해 올 하반기에는 관련된 기능이 정식으로 들어갈 계획입니다. 구글은 증강현실을 위한 ‘탱고’ 플랫폼을 올해도 키워갈 계획인데, 이 뿐 아니라 웹 등 다양한 환경에 증강현실을 접목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만들었습니다.

구글I/O를 통해 구글이 꺼낸 수많은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말미에 머신러닝과 가상현실 사이에 미묘한 연결 고리가 보입니다. 클레이 베버 부사장은 키노트에서 “Computing that works more like we do”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앞으로의 컴퓨팅은 점점 더 우리처럼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가상현실은 세상을 더 진짜처럼 보여주고, 머신러닝은 사람이 반복해야 하는 일들을 차분하게 해낼 겁니다. 구글은 단순히 기술적인 의미의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술들이 만들어낼 새로운 컴퓨팅 환경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세상과 가상현실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겁니다.

vr_5
▲클레이 베버 구글 VR, AR 담당 부사장은 ‘앞으로의 컴퓨팅이 더 우리처럼 움직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키노트에서 가장 놀라웠던 기술은 VPS였습니다. 구글이 새로 만들어낸 말인데, Visual Positioning System의 줄임말입니다. 카메라를 통해 주변 환경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내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판단하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기준점을 중심으로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과 똑같습니다. 이를 위해 영상을 수집하고, 머신러닝으로 위치를 학습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 동안 컴퓨터 안에 가상의 무엇인가를 만들어왔지만 이제는 가상공간을 현실로 끄집어내고자 합니다. 컴퓨팅은 더 사람처럼 움직이고 현실과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의 경계는 더 모호해지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 옆 자리에 포켓몬이 앉아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가상현실로 당장 뭔가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가상현실은 많은 기업들을 통해 가다듬어지고 있습니다. 구글 역시 구글I/O로 갖고 있는 경쟁력들을 잘 묶어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가상현실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vr_6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더 흐릿해질 겁니다. 이는 돌아보면 오랫동안 우리가 꿈꿔온 컴퓨팅의 방향성이기도 합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최호섭 기자>hs.choi@byline.network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