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어디쯤 와 있을까

8월25일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가 부산에서 열렸습니다. 아침에 KTX를 타고 부산에 도착해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로 곧장 향했습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인터넷기업협회가 주최한 이 행사는 스타트업 업계의 현실을 짚어보고, 희망과 개선점을 찾아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행사는 젊고 열린 분위기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자연스럽든, 혹은 억지스럽든 흐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행사에 모인 분들은 투자자, 액셀러레이터, 멘토, 정부 관계자, 그리고 기존 사업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미디어 기자들 역시 이 생태계의 중요한 한 축으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편안했지만 그만큼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리의 스타트업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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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타트업은 위기인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임정욱 센터장은 올해 상반기 스타트업의 동향을 언급했습니다. 스타트업에 관심 있다면 한번쯤 들으셨을 ‘위기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실리콘밸리는 겨울이 온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보수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것 아닐까요?

일단 투자 유치 금액과 유치 건수 모두 지난해에 비해 무난하게 증가했습니다. 상반기에는 벤처펀드 결성도 늘어났고, 표면적으로는 실리콘밸리의 투자 경색이 아직 한국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 임정욱 센터장의 분석입니다. 하지만 O2O는 너무 과열됐고, P2P 기반의 핀테크 회사도 너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하드웨어 스타트업과 게임, MCN 등은 급격하게 얼어붙었습니다.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좀 더 다양한 비즈니스가 일어나야 할 겁니다.

임정욱 센터장이 꼬집은 문제는 결국 엑싯(Exit)입니다. 그러니까 인수합병이 잘 일어나고 있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올해는 카카오가 파킹스퀘어를 인수하고, 야놀자가 호텔나우를 인수한 것 정도 뿐입니다. 지난해에는 무려 40건이나 일어났는데 올해는 단 두 건입니다. 대규모 인수도 없었고 해외에 비싸게 판 것도 2014년 탭조이에 인수된 파이브락스 정도입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결국 스타트업 업계가 생태계로서 순환하려면 창업, 성장, 그리고 엑싯의 과정이 일어나야 합니다. 임정욱 센터장은 “대기업들이 분명 관심은 있고, 알게 모르게 연락도 많이 오지만 실제로 큰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투자 자금을 확보하고 자체적으로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업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투자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게 바로 정부 자금입니다. 오죽하면 요즘 ‘정권이 바뀌면 스타트업 비즈니스에 겨울이 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키우는 건 세계 공통의 추세입니다. 스타트업은 한때 유행이 아니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요소고 지금은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원 형태나 이름이 바뀔 수는 있지만 투자 등이 줄어들 상황은 아닙니다.”

스타트업 업계가 ‘창조경제’라는 정부 슬로건과 맞물린 부분은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과 경제 구조가 바뀌고, 지속적으로 경기에 피로가 쌓이는 상황에서 정체를 해소할 방법으로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전시행정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인수합병 받아주는 생태계 순환, 문제는…

물론 대기업의 인수 합병이 인색한 부분은 아쉽습니다. 사실 삼성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어마어마한 투자를 이어가고 적극적인 기업 인수 합병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회사는 왜 안 사주냐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이호찬 KTB벤처스 대표는 조금 다른 시각을 내놓습니다.

“한국은 인수합병에 대한 시각이 조금 다릅니다. 회사 인수는 문어발 경영으로 비춰지고, 손자회사 같은 규제 대상이 됩니다. 미국에 인수합병이 많지만, 회사는 파는 게 아니라 팔리는 겁니다. 누구도 M&A를 기대하고 스타트업하지는 않습니다. 인수만이 답은 아니고 상장이나 규제 완화 등 스스로 성장하는 길을 열어줄 필요도 있습니다.”

대기업의 입장은 또 흥미롭습니다. 롯데액셀러레이터의 김영덕 상무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대기업에 들어와서 보니 M&A가 쉽지 않더군요. 인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지분을 얼마나 사야 하지?’라는 고민이 먼저 나옵니다. 우리나라 법 상 지분이 30%가 넘는 회사는 대기업에 편입시켜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수에 걸리는 법적인 문제들이 걸림돌이 됩니다.”

김영덕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

김영덕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편입되면 그 스타트업도 대기업이 되는 셈입니다. 대기업이 하면 안 되는 사업은 인수된 스타트업도 못 하게 됩니다.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할 수 있던 사업들, 그리고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움직이던 일들에 적잖은 제약이 생깁니다. 이 때문에 30% 이하의 지분을 갖게 되는데 그것만으로는 인수라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늘 우리가 지적하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에 대한 이슈가 스타트업 업계에는 또 다른 의미로 작용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롯데액셀러레이터와 엔씨소프트는 꽤 열심히 스타트업 업계에 투자합니다. 롯데액셀러레이터는 자본금 150억원으로 시작했고, 엔씨소프트는 2014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약 90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사회공헌이나 중소기업 지원에 대한 분위기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들 기업들의 입장은 ‘변하는 세상에 대한 대비를 스타트업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되는 듯 합니다.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점들은 많이 있지만 긍정적인 고민이 시작됐다는 의미로 봐야 하겠지요?

“좋은 투자자가 좋은 스타트업 만든다”

이날 가장 뜨거웠던 부분은 벤처캐피탈의 역할을 이야기한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의 세션이었습니다. 벤처캐피탈, 벤처투자자는 스타트업 생태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과거에는 교육을 통해서 기업들을 키우는 일이 많았는데, 실전만큼 강력한 선생님이 또 있을까요? 벤처투자자는 투자자금을 기반으로 스타트업을 이끌어가는 존재입니다.

“한국에 있는 벤처캐피탈은 스타트업보다 (펀드에 투자자금을 대 주는) LP(기금투자자)를 바라보는 비중이 너무 높습니다. 기업의 가치보다 양적인 성장에 더 집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당장의 이익을 바라보는 게 당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벤처캐피탈의 역할은 잘 되고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보다 잘 될 수 있는 기업의 가치를 믿고 성장을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게 송은강 대표의 설명입니다. LP만 바라보다 보니 산업에 대한 이해보다 국가 정책의 변화에 더 민감하고, 장기적인 투자에 조심스럽다고 합니다.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세콰이어캐피탈을 비롯해 해외 벤처캐피탈은 ‘발굴한다’는 말을 잘 안 씁니다. 우리는 많이 쓰는 말이지요. 투자처를 잘 고르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투자한 회사가 어려워지면 회복이나 성장보다 투자금 회수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다보니 요즘 벤처캐피탈 업계에 가장 좋은 투자처는 상장 전에 자금을 모으는 프리IPO(Pre-IPO)라고 합니다. 금세 결과를 받아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벤처캐피탈이 기업들에게 어떤 가치를 주고, 어떻게 이끌어 가고, 진정성을 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겁니다.

“우리가 은행과 다른 게 뭔지 생각해봐야 할 때”라는 말이 나오자 현장에서는 박수까지 나왔습니다. 결국 벤처캐피탈이 건강해야 스타트업을 비롯해 한국 경제의 미래가 건강해지는 것이지요. 실리콘밸리가 잘 성장한 것 역시 좋은 벤처캐피탈들이 많고, 이들이 ‘함께 경영한다’는 마음으로 뛰는 것에 있다는 이야기,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올초 알토스벤처스가 자신들이 투자한 리모택시가 청산할 때 정리 자금을 추가 지원해 준 일이 아직도 많이 이야기됩니다만, 역시 우리에게는 아직 먼 현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 업계도 이제 함께 하는 벤처캐피탈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고 나섰습니다.

스타트업 업계의 고민과 우려는 아직도 많습니다. 이제 한 나절 세션이 끝났을 뿐인데, 어딘가 한편으로 후련한 이야기들도 나오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들도 많았습니다. 발표자들이 행사가 끝난 뒤에 기자들에게 “조심스럽게 전달해 달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을 정도로 예민한 주제들도 속속 나왔지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탁 털어놓고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자체로 우리의 생태계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도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큰 무엇인가를 얻어 나온 느낌입니다. 이 느낌이 업계에 계신 분들, 그리고 관심을 갖고 계시는 분들, 그리고 예비 창업자들에게도 묵직하게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최호섭 기자> hs.choi@byline.network

※이 기사는 동아사이언스와의 제휴에 의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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