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슨의 26Gbps 시연, 그리고 5G의 숙제

5세대 이동통신은 얼마나 왔을까요? 지금 상황에서 이 질문에 누구도 명쾌하게 답을 던져주기는 어려울 겁니다. 아직 단말기는 커녕, 기술의 표준조차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게 왜 필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지금 4세대 LTE도 빠르고, 아직 그 망이 목표한 만큼 완성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벌써 5세대 이동통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장 풀어야 하는 명확한 숙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2018년 2월에 열릴 평창 동계올림픽입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5세대 이동통신을 시연하고, 이를 통해 이동통신 강국으로서의 자리를 다시금 자랑하겠다고 목표를 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세계 통신 시장도 발걸음이 바빠졌습니다. 5세대 이동통신의 상용 서비스까지는 꽤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2018년에 시범 서비스를 성공한다면 ‘최초’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신과 관련된 기업 치고 세계 최초 시범에 욕심부리지 않을 회사도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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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MHz 대역폭으로 1초에 3GB씩 내려받아

에릭슨LG도 결코 예외는 아닙니다. 에릭슨LG는 지난 12일, 안양 연구소에서 26Gbps에 이르는 5G 데이터 전송을 시연했습니다. 26Gbps면 1초에 약 3GB를 전송할 수 있는 엄청난 속도입니다. 흔히 통신 속도 테스트에서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좋아하는 ‘단위’로 환산하자며 ‘1초에 영화를 3편 정도 전송할 수 있는 속도’라고 보면 됩니다. 지금 LTE가 이론상 450~600Mbps를 전송할 수 있습니다. 0.45~0.6Gbps라고 쓰면 조금 더 와닿으려나요. 일반적인 ‘광랜’ 서비스가 100Mbps 속도고, 최근에야 기가 인터넷이 깔리면서 600Mbps~1Gbps 정도의 속도까지 올라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5G는 무선으로 26Gbps를 복사합니다. 지금 아무리 빠른 SSD도 1초에 3GB씩 읽고 쓰지 못합니다. 심지어 이날 시연한 네트워크는 챔버의 환경 때문에 제 속도를 다 내지 못했고, 탁 트인 야외에서는 27Gbps 이상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30Gbps까지 쏠 수 있습니다.

대신 이 정도 속도로 통신하려면 자원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합니다. 통신 속도를 끌어올리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일단은 주파수가 필요합니다. 이날 시연했던 주파수는 15GHz대 대역으로 주파수의 폭은 800MHz나 됩니다. 800MHz가 얼마나 큰 주파수냐면, 최근 이동통신사들이 정부에 약 1조원씩 내고 새로 할당받은 주파수가 20MHz입니다. 현재 통신사들이 이렇게 LTE에 쓰는 주파수의 전체 대역이 80~100MHz입니다. 이 대역폭이 얼마나 넓은지에 따라 속도와 가입자 수용량이 그대로 정비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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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5G의 표준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동안은 실제 기술들이 상세히 공개될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미 다 알려진 것일 수도 있지만 몇 가지를 짚어봅니다. 일단 주파수당 통신 속도입니다. LTE는 10MHz의 주파수 대역이 있으면 75Mbps의 속도로 통신할 수 있습니다. 상향, 하향 주파수를 따로 할당하는 FDD LTE는 각각 10MHz로 총 20MHz의 주파수가 필요하지요. 이 시연 장비를 기준으로 주파수당 속도를 계산해보면 10MHz당 375Mbps를 전송하는 꼴입니다. 주파수 효율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릭슨LG도 40배 큰 주파수로 현재 LTE보다 200배 가량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주파수가 모든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날 시연된 기지국은 업로드와 다운로드를 시간 단위로 쪼개는 TDD 방식으로, 최고 속도를 내기 위해 자원의 90% 이상을 다운로드에 집중시켰습니다. 실제로도 5G의 초고속 망은 다운로드에 집중되기 때문에 TDD로 구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에 128개 안테나가 하나의 단말기에 전파를 모아주는 빔 포밍과 여러개의 안테나로 동시에 전송하는 MIMO 기술이 복합적으로 적용돼, 손실을 줄이고 속도를 끌어올렸습니다.

주파수 당 전송 효율 높아져

이 정도 고속으로 통신할 수 있는 주파수는 현재 새로 할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5G의 고속 통신망은 15GHz외에도 18GHz, 28GHz 등의 주파수가 고려되고 있습니다. 이 주파수들은 도달거리가 짧아서 여태까지는 크게 필요가 없던 황무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론적으로는 700~800미터정도 도달할 수 있고, 실제로는 500미터 정도가 한계입니다. 아무리 해도 1킬로미터까지 닿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주파수를 쓸 수 있을까요? 기존 주파수는 아무리 해도 더 이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딱히 대안은 없습니다.

대신 이 고속 기지국은 전국에, 전 세계에 깔리는 건 아니고, 필요한 곳에만 제한적으로 깔릴 겁니다. 그럼 ‘5G 전국 서비스는 안 되는 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5G는 단독으로 운영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아직 표준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 에릭슨을 비롯해 대부분의 통신 기업들은 LTE망을 기본으로 두고, 환경에 따라 몇 가지 기능을 특화시키는 방향으로 5세대 망을 꾸릴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 ‘최대 속도’ 시연이 전부가 아닌데 이 부분만 강조되는 현재 상황이 썩 달갑지는 않습니다.

5G의 또 다른 핵심인 응답속도에 대한 시연은 없었습니다. 5G의 한 축인 실시간 통신에 대한 부분입니다. 사실 많은 데이터를 실어나르는 것보다 실시간으로 통신할 수 있도록 하는 응답 속도가 5세대 이동 통신이 세상을 바꿔 놓을 열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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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연된 장비는 약 2밀리초의 속도로 통신합니다. 현재 LTE가 10밀리초 정도의 응답 속도를 내니, 5배 정도 빠르게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5G는 1밀리초 이내의 응답 속도로 빨라질 계획입니다. 이쯤 되면 화상 통화도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무인자동차의 센서 정보도 실시간으로 분석됩니다. 음성통화도 더 이상 기존 서킷망에 기댈 필요 없이 VoLTE로 처리하는 게 더 낫고,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동시에 전송됩니다.

풀리지 않는 숙제 ‘어떻게 쓸 것인가’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볼까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는 어떤 5G는 볼 수 있을까요? 패트릭 요한슨 에릭슨엘지 대표는 “아직 어떤 데모를 보여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답했습니다. 현재 통신 속도도 표준화되지 않았고, 모뎀과 단말기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이날 시연된 단말기도 휴대폰 크기는 커녕 ‘야쿠르트 카트’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큽니다. 인텔이나 퀄컴이 모뎀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나오고 있고, 손 안에 들어오는 단말기가 나오는 건 사실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다만 평창 동계올림픽은 이제 1년 반이 조금 더 남았고, 5G의 표준화는 2018년은 커녕 2022년쯤 이뤄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아마 동계올림픽에서 보여질 시범 서비스 역시 이 정도의 통신 속도를 내는 데에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기반이 되는 통신 속도도 중요하지만 ‘왜 5G가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이 동시에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최고속도보다 이 빠른 네트워크가 도시에 어떻게 접목될 지에 대한 시나리오들이 더 시급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평창이 아니더라도 에릭슨을 비롯해 노키아, 화웨이 등 장비만 설치하면 어디서나 똑같이 시연할 수 있는 게 고속 통신입니다. 단적으로 0.3초에 영화를 한 편 받는다고 해서 영화가 더 재미있어지지 않습니다. 속도와 ‘세계 최초’에 대한 조급증 만큼이나 ‘어디에 쓸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는 게 중요합니다. 세계 통신 시장도 “에릭슨이 빠른 건 알겠고, 한국은 이 5G 속도를 어떻게 활용하나”에 관심을 기울일 겁니다. 그 답을 내지 못한다면 LTE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답이 나올 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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