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셀리코 “시각 장애, 보는 것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겠다”
“갑자기 중심 시야가 사라진 상태에서 기존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시각장애는 한 번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다. 특히 황반변성, 녹내장, 당뇨성 망막병증처럼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시각장애는 고령화와 함께 빠르게 늘고 있다. 국내에만 황반변성 환자가 약 200만명, 녹내장 환자가 120만명에 이른다. 세계적으로는 2030년까지 약 2억2000만명의 시각장애인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자눈 개발 스타트업 셀리코는 저시력자를 위한 AI 시력보조 글래스 ‘아이케인(EYECANE)’을 개발한다. 황반변성 환자들은 시야 중심부에 검은 점이 생기는 ‘암점’ 현상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아이케인은 1300만 화소 카메라로 포착한 중심부 영상을 실시간으로 편집해 환자가 볼 수 있는 주변부 시야로 영상을 옮겨준다. 시력을 잃기 전만큼 편하게 눈을 쓰는 것은 아니더라도, 집중해 업무를 볼 때는 이런 기술이 저시력자의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경기 성남 분당에 위치한 셀리코 사무실에서 만난 김정석 대표(=사진)는 “시각장애인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실제로는 95% 이상이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라면서 “대부분은 시력을 잃기 전까지 일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온 이들이라 시력 보조글래스가 집중해야 하는 업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석 대표는 반도체 공학(SOC)을 전공한 가천대학교 교수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 경추 부상으로 전신 마비가 된 아버지 친구의 사례를 보며, 전기생리학을 응요해 끊어진 신경을 통신 장치로 복원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연구를 시작했다. 이 공학적 호기심은 시각장애인용 전자 눈 이식 성공 으로 이어졌고, 현재는 시각장애인과 저시력자를 위한 AI 글래스 아이케인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저시력자를 위한 AI 시력보조 글래스
셀리코가 현재 상용화한 아이케인은 전맹이 아닌, 교정 시력이 0.3 이하인 저시력자를 대상으로 한다. 기술의 핵심은 증강현실(AR)과 AI의 결합이다. ▲문자 인식(OCR) ▲음성 인식(STT) ▲음성 안내(TTS) ▲사물·장면 인식 기능을 넣어 “글자를 읽어주고, 사용자의 음성 명령으로 확대·축소를 조절하며, 낯선 환경에서는 주변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이 모든 처리를 실시간으로 구현하기 위해 영상 압축과 경량화된 AI 인터페이스 기술을 적용했다.

하드웨어를 만들 때는 많은 고민을 했다. 아무리 기능이 좋아도 비전 프로와 같은 VR 기기처럼 크고 무겁다면 일상에서 쓰긴 어렵다. 물론, 아직 아이케인도 통상 쓰는 안경만큼 쓰기 편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배터리와 연산 기능을 스마트폰으로 분리해 무게를 75g까지 줄이는 등, 사용성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했다. 김 대표는 “가볍고 장애인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면서 “하드웨어를 만들 때 시각장애인용 기기라는 티가 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안경이 제공하는 기능도 많이 줄였다. 초기 버전의 아이케인에는 암점 진단, 암점 영역별 이동 등 다양한 기능이 들어갔다. 그러나 실제 사용자 테스트 결과는 달랐다. 기능이 많을수록 헷갈린다는 반응이 많았다. 김 대표는 “(눈앞에 맺히는 상을) 확대해서 잘 보이게 해달라거나, 암점에 맺히는 상을 중간에서 크게 키우지 말고, 화면 가장자리로 옮겨서 보여달라는 등의 본질적 요구만 남더라”고 설명했다.
실제 테스트에서 반응은 어땠을까? 아이케인을 쓰지 않고는 3미터 거리의 시력표를 읽지 못하던 황반변성 환자가 착용 후 0.5 수준까지 읽는 사례가 나왔다. 해외 전시회 현장에서도 즉석 체험 후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아이케인을 개발하며 축적한 기술을 ‘시각장애’ 이외의 부문에도 확장하는 중이다. 아이케인이 문자, 음성, 시각 정보를 통합 처리하는 에지형 AI 기술을 갖고 있으므로 이를 AI 인터페이스가 적용되는 대부분의 분야에 공급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대표적인 것이 하나은행과의 협업이다. 고령자·외국인을 위한 금융 안내 솔루션을 시범 적용했다. 상품 설명서를 읽어주고, 핵심 내용만 요약해 음성으로 안내하며, 베트남어 등 다국어 번역을 지원한다. 인터넷 연결 없이도 작동하도록 설계해 보안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저시력자용 제품이 가장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금융·모빌리티 등 더 큰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전자눈 연구에서 출발한 창업 “최종 목표는 여전히 ‘보게 하는 것’”
김정석 대표의 출발점은 ‘전자눈’이다. 박사 과정에서 손상된 망막에 이미지 센서를 이식해 시각 정보를 다시 전달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지금 단계에서 전자눈은 물체의 윤곽을 인식하는 수준으로 해상도가 낮지만, 뇌의 가소성 덕분에 일정 기간 훈련을 거치면 인식률이 점차 올라간다는 점을 확인했다.
셀리코가 만든 이식형 전자눈 칩은 2000픽셀급 해상도를 구현했고, 픽셀 간 간섭을 줄이는 기술을 갖췄다. 동물 실험 단계까지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상용화였다. 사람 대상 임상시험과 식약처 인허가에는 막대한 시간과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아이케인은 셀리코가 전자눈까지 가는 길에 생겨난 일종의 징검다리다. “이식형 의료기기는 임상과 인허가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회사의 주력 제품으로 삼으면 그 전에 회사가 버티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김 대표는, 우선은 저시력자의 일상을 개선하는 제품으로 회사의 수익 구조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정부 R&D 사업으로 장기 프로젝트를 이어가면서, AI 글래스 판매를 통해 자생력을 갖추려 한다.
내년 1월부터, AI 인력 충원과 기술 고도화에 투입할 인력을 보충하기 위한 투자 유치도 준비 중이다. 유럽 시장의 문도 두드리고 있는데, 보다 복지제도가 안정적이고 보조금을 상시 제공하는 유럽에서 아이케인의 시장이 더 크리라고 봐서다.
궁극적으로는 전자눈 상용화라는 목표도 끝가지 가져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삽입형 전자눈 반도체를 통해서 전맹(완전히 시각을 잃은 상태) 환자들이 앞을 보게 하겠다는 포부다. 김 대표는 “셀리코의 목표는 여전히 시각장애인이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시각장애인을 돕는 기술이지만, 언젠가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로 확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