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챗 후발주자 위프가 마니아 시장을 파고드는 법
AI가 콘텐츠 산업의 문법을 바꾸고 있다. 장르나 매체 같은 기존 분류로는 설명되지 않는 콘텐츠가 등장하면서, 무엇이 이용자를 붙잡아두는지가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카카오벤처스는 이 변화의 최전선에서 AI 콘텐츠 스타트업을 시드 단계부터 발굴해 투자하고 있다. 아직 지도가 그려지지 않은 이 시장에서, AI 네이티브 세대를 사로잡고 있는 스타트업들을 만나본다. [편집자 주]
[카카오벤처스 X AI 콘텐츠 스타트업 ①] 김지웅 카카오벤처스 이사
[카카오벤처스 X AI 콘텐츠 스타트업 ②] 김광민 언엑스 대표
[카카오벤처스 X AI 콘텐츠 스타트업 ③] 나봉민 딥그로브 대표
[카카오벤처스 X AI 콘텐츠 스타트업 ④] 조성민 아폴로스튜디오 대표
[카카오벤처스 X AI 콘텐츠 스타트업 ⑤] 류승아 벙커키즈 CPO
캐릭터챗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위프’가 출시 1년 2개월 만에 월 매출 56억원(올 9월 기준)을 기록했다. 비결은 BL(Boys’ Love)에 집중한 것이다.
캐릭터챗은 이용자가 AI와 대화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서비스로, 스캐터랩의 제타와 뤼튼의 크랙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후발주자인 위프가 BL이라는 마이너 장르에 집중한 이유다. 회사 측은 일반적인 로맨스를 앞세우면 선발주자와의 차별성이 없다고 봤다. BL은 보편적 감성은 아니지만 마니아층이 두텁고 이용자의 지출이 큰 편이다. 그 결과 위프는 충성도 높고 구매력이 큰 이용자 층을 확보했다. 벙커키즈에 따르면 위프 결제 이용자의 하루 평균 체류 시간은 3시간 37분이다.
위프가 BL을 택한 데에는 류승아 벙커키즈 최고제품책임자(CPO)의 경험이 컸다. 기획부터 출시까지 위프를 총괄한 류 CPO는 BL 소비자로서 캐릭터챗을 즐기다 불편한 지점을 직접 경험했다. 예를 들어 자신을 남성으로 설정했는데도 AI가 ‘그녀’로 지칭하거나 긴 머리카락, 가는 손목 같은 여성 묘사를 쓰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성애 로맨스 콘텐츠가 많아 AI가 학습한 대로 답하기 때문이라는 게 류 CPO의 설명이다. 그는 BL 이용자라면 누구나 같은 불편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위프는 BL 소비자를 중심으로 여성향 전반으로 콘텐츠를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BL뿐만 아니라 이성애 로맨스부터 로맨스 판타지까지 다양한 장르를 다루고 중이다.

지난 2일 류 CPO를 만나 위프의 성공 비결에 대해 물어봤다.
벙커키즈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셨는데, 재합류했을 당시 벙커키즈는 어떤 상황이었나요?
피보팅(사업 방향 전환)을 위해 제품 기획을 다시 해야 했어요. 재합류했을 때는 기존 인원도 다수 바뀐 상태였고요. 카카오벤처스의 투자금이 있었기에 1년 반 동안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최소기능제품(MVP, 핵심 기능만 담은 시험 제품) 실험을 하면서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제품을 고르고자 했는데, 마지막까지 구성원들 사이에서 계속 이야기가 나온 제품이 캐릭터챗이었습니다.
BL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출시할 때 위프는 캐릭터챗 시장의 후발주자였어요. 이제 막 출시되는 위프는 이미 시장에 자리 잡은 다른 캐릭터챗보다 캐릭터 수도 적고 기능도 적을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이용자가 저희 서비스를 택할 이유가 있어야 했어요.
저는 BL 소비자였기에 기존 시장에 있던 캐릭터챗을 이용해 볼 때도 페르소나(이용자가 설정하는 자기 캐릭터)를 남성으로 지정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캐릭터챗에서는 저를 ‘그녀’라고 부르거나 긴 머리카락이나 가는 손목처럼 여성을 묘사하는 표현을 종종 쓰더라고요. 이용자가 롤플레잉을 하면서 즐기는 캐릭터챗에서 이런 표현들은 몰입을 깨뜨리거든요.
LLM은 기본적으로 확률을 기반으로 하는데, 기존 로맨스 콘텐츠에는 BL보다 일반적인 이성애 로맨스가 많다 보니 AI도 학습한 내용에 따라 결과를 산출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다 보니 이용자가 페르소나를 남성으로 지정한다고 해도 남자 캐릭터는 이용자를 여성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BL 장르를 소비하는 이용자는 저와 같은 불편함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이 문제만 해결해도 BL 소비자는 전부 우리 플랫폼으로 올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마니아 성향이 짙은 장르인데 회사의 반응은 어땠나요?
정승완 대표께 BL 장르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을 때 가장 먼저 나온 말이 “BL이 뭐야?”였어요. 서브컬처(소수 취향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는 사실 거기서부터 설명해야 하잖아요. 대표님은 제 이야기를 듣더니 감사하게도 저를 믿어주셨어요.
다른 캐릭터챗 서비스도 BL로 이용할 수 있는데, 위프만의 차별성은 무엇일까요?
이성애 로맨스 위주로 제공되는 캐릭터챗 플랫폼에서는 BL 클리셰를 제대로 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어요. BL에만 있는 클리셰들이 있거든요. 이를테면 아웃팅(성적 지향이 본인 뜻과 상관없이 알려지는 일)을 당해 갈등이 생긴다든지, 커플이 됐는데 혐오 시선을 받는다든지 하는 내용이요. 이런 클리셰를 세밀하게 다루려면 프롬프트(AI에 주는 지시문) 수준에서 주 이용자가 BL 이용자라는 사실을 AI에 인지시켜야 하는데, 이성애 로맨스 위주 플랫폼에서는 BL 이용자가 만족할 만큼 구현하기 어려워요.
또한 BL 소비자 안에서도 취향이 제각각이라 세분화된 취향에 맞춘 태그 분류가 중요해요. 예를 들면 광공(집착이 강한 캐릭터)은 좋은데 다정공(다정한 캐릭터)은 싫다든지 하는 식으로 취향이 굉장히 세분화돼 있어요. 그래서 위프는 BL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태그를 분류했고, 원하는 취향으로 검색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위프에 BL만 있는 건 아니죠?
네, BL만 있는 건 아니에요. BL 이용자들이 반드시 BL 장르만 보시는 것은 아니에요. BL 이용자는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다른 여성향 장르도 소비하시거든요. 위프에는 BL 전용 캐릭터와 BL·이성애 로맨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캐릭터가 구분돼 있어요. 시스템 프롬프트를 통해 같은 캐릭터로도 서로 다른 장르의 서사를 즐길 수 있습니다.
현재는 여성향 전반으로 콘텐츠를 확장해나가고 있고, 여성 소비자들이 많이 소비하는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도 위프의 강점이 되도록 서비스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결제 이용자의 하루 평균 체류 시간이 3시간 37분에 이르는데, 이용자가 이렇게 오래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위프는 관계 중심적인 서비스예요. 캐릭터와 로맨스를 기반으로 서사를 쌓아 나가거든요. 본질적으로 이 서사의 주인공은 ‘나’예요. 기존 콘텐츠는 일방향적으로 감상하는 형태였다면, 캐릭터챗의 서사는 ‘나’의 선택으로 쌓아 가는 형태거든요.
캐릭터와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이 들어가고, 이 캐릭터와 어떤 역경을 헤쳐 나가면서 관계를 형성하게 되면 이 관계를 버리고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 가기도 쉽지 않아요. 저부터가 위프 중독자이기도 해요. 회식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위프 속 캐릭터와 대화를 하고 잘 정도로요.
위프가 이용자를 오래 머물게 하려고 설계에서 신경 쓴 점은 무엇인가요?
내부에서는 서사가 쳇바퀴처럼 굴러가야 한다고 항상 말해요. 서사는 갈등, 선택, 결과를 반복합니다. 이용자에게 지나치게 높은 자유도를 주면, 이용자는 다음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항상 선택을 유도하는 형태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위프는 이용자 의견을 어떻게 듣고 서비스에 반영하나요?
저희는 기본적으로 모든 기능을 이용자 의견을 토대로 개선해나가고 있어요. 위프 내부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자 만족도를 수집합니다. 이용자의 행동 지표를 반영해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서예요.
메시지마다 ‘좋아요’, ‘싫어요’로 피드백을 줄 수 있도록 만들기도 했고요. 사실 이런 대화 하나하나의 피드백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답변을 다시 생성하는 재시도 같은 행동도 부정적인 신호로 수집해요. 대화 내용이 마음에 안 들었다는 뜻이니까요.
위프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챗도 이용하는 분들을 모니터링 파트너로 따로 운영하고 있어요. 헤비 이용자분들께 위프에 쓰는 AI 모델을 먼저 공개하고 반응을 살피는데, 부정 평가가 많으면 그 모델은 내놓지 않는 편이에요. 반대로 그분들께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면 반영해서 개선하기도 합니다.
위프 초반에는 디스코드(이용자 커뮤니티 메신저)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면서 베타 테스터를 8기까지 모집해 운영했어요. 그때는 2주마다 세부 기능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어요. 그 피드백을 반영해 앱을 개선해나갔습니다.
나중에는 디스코드를 모든 이용자에게 공개해 소통을 많이 했는데, 제 디스코드 닉네임은 ‘집에 못 간 기획자’예요. 밤에 자주 출몰했습니다. 건의함과 질문함도 있었는데, 이용자들의 의견을 듣고 저도 앱을 사용해 본 입장에서 공감하면서 제품을 만들 수밖에 없더라고요.
피드백을 반영해 개선한 기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기억을 수정하는 기능이에요. 위프의 기억력은 관계와 서사의 핵심 정보를 기억하는 3중 구조로, 서사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시스템을 탄탄하게 구축해 놨는데, 그중 하나의 시스템에서 기억을 수정하고 싶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기억이 삭제됐거나 잘못 입력된 경우에 캐릭터의 뇌를 꺼내 이 부분을 고치고 싶다는 요청인 셈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수정 기능을 공개하게 됐습니다. 피드백을 반영해 보니 수정을 하시는 분들의 채팅 지속력이 훨씬 더 높더라고요.
그 뒤로는 예전 기억을 불러올 수 있는 ‘무손실 압축 기억’이라는 기능을 출시했어요. 처음에는 버그 문제로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는 이용자들이 정말 자주 사용하는 기능이 됐습니다
이야기 중에 AI가 엉뚱한 말을 하거나 문장이 끊기면 몰입이 깨질 텐데, 이런 문제는 어떻게 막고 있나요?
시스템적으로 품질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생성형 AI가 확률에 따라 작동하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줄 수도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시스템 설계는 몰입을 깨는 요소를 막는 데 집중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한국어 대화 중에 외국어가 불쑥 섞여 나오거나, 문장이 마침표 없이 끊기는 문제들이요.
이를 위해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시스템, 프롬프트, 출력 모델의 적절한 조합인 ‘스위트 스폿(가장 효과가 좋은 최적의 조합)’을 찾으려고 A/B 테스트(두 가지 안을 나눠 비교하는 실험)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그 스위트 스폿을 찾은 것이 위프가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이 외에 이용자의 몰입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은 크리에이터들의 역할이라고 보고 있어요. 이 방향성에 맞춰 위프는 이용자의 몰입을 깨뜨리는 요소는 막고, 크리에이터의 자유도는 최대한 높이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보완해나가고 있습니다.
캐릭터챗에 적합한 AI 모델과 맞지 않는 모델이 있나요?
저희가 사용해 봤을 때 오픈AI의 GPT는 캐릭터챗과 잘 맞지 않더라고요. GPT는 기본적인 성격이 비서, 즉 어시스턴트에 가깝다고 느꼈어요. GPT와 대화를 하면 “이게 맞나요?”, “이렇게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처럼 대화 끝이 물음표로 끝나는 식이에요.
캐릭터챗은 그 캐릭터의 성격을 잘 지켜줘야 하는데, 어시스턴트 같은 성격이 부여되다 보니 캐릭터들이 계속 순해져요. 그러다 보니 사용률이 떨어져서 딱히 선호하지 않게 됐어요. 다만 내부적으로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 작업에는 GPT를 사용하기도 해요.
의외로 캐릭터챗에 구글 제미나이가 잘 맞아서 가장 많이 쓰고 있어요. 체감상 제미나이를 이용하면 캐릭터성이 잘 유지된다고 느꼈고, 이야기의 서사도 좀 재밌어지는 측면이 있어요.
위프는 어떻게 수익을 내고, 크리에이터와는 어떻게 나누나요?
웹툰이나 웹소설처럼 이용자가 플랫폼 내 재화를 충전해서 소비하는 구조예요. 이용자에게는 메시지당 과금하고 있고, 더 깊고 긴 대화를 원할 경우에는 프리미엄 기능을 구독 모델로 이용할 수 있어요.
크리에이터들에게는 수익의 일정 비율을 정산합니다. 현재 크리에이터 등급은 4개로 나뉘어 있는데 각 등급마다 정산 비율이 다릅니다. 프라임 등급부터는 현금 정산이 가능해요. 하이퍼 등급 크리에이터 중에는 분기에 1000만원을 벌어 가시는 분들도 계세요.
플랫폼 입장에서 선호하는 크리에이터나 작품이 있을까요?
크리에이터는 모두 일관된 기준으로 봐요. 이용자들의 애정을 보여주는 재화 소모량이 가장 큰 기준이고, 좋아요 수나 댓글 수, 채팅방당 메시지 수 등을 고려한 복잡한 알고리즘이 적용됩니다. 하이퍼 등급 크리에이터의 작품은 몰입도가 높은 콘텐츠로 보고 신규 이용자들에게 권장하는 측면은 있어요.
현재 매출의 40%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국가별로 몰입하는 콘텐츠에 특징이 있을까요?
나라마다 선호하는 취향도 달라요. 일본 이용자들은 다수의 캐릭터가 함께 나오는 콘텐츠를 선호해요. 위프에는 신뢰나 애정 등을 점수로 보여주는 관계 점수 시스템이 있는데, 태국 이용자들은 이런 게이미피케이션(게임 요소를 접목한 기능) 요소를 좋아하더라고요. 미국 이용자의 경우에는 웨어울프나 뱀파이어 같은 인외 캐릭터(사람이 아닌 존재)를 선호하세요. 베트남 이용자들은 여장 남자 키워드를 좋아하고, 브라질 이용자들은 빙의물을 좋아합니다.
국내 이용자분들은 새로운 시도를 좋아해요. 공을 많이 들인 캐릭터일수록 확실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제품의 로드맵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일반 이용자들이 사용하기 쉬운 형태로 제품을 개선하고 싶어요. 지금은 입력창에 어떤 말을 써야 할지 어려워하시는 이용자분들도 계시거든요. 이 부분을 개선해 보고자 하고, 해외 진출은 일본과 미국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내년 연 매출 목표는 얼마인가요?
올해 9월 매출은 56억원 수준이에요. 내년에는 매출 3000억원을 달성해 볼 계획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오민선 기자> omsoms94@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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